Chapter 244 - 행복해지고 싶어.(3)
"..."
"..."
바라본다.
노려본다.
째려본다?
미코가 온 것 까지는 좋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정확히는 미코 쪽만 심상치 않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지금까지 자신에게 신탁을 내렸던 존재가 이런 꼴이 되어있으니 조금 기분이 나쁜 듯 싶었다.
'...확실히, 힘을 주었다고는 해도 마족을 이 세계에 불러온 진범이었으니까.'
여신 자체는 미코에게 힘을 주었지만, 그 힘으로는 그저 마족들을 죽이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되살리는 힘이 아닌 죽이는 힘.
단순히 그 사실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기만으로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지금처럼 이를 드러내고 아이를 물어뜯어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ㅡ
"지금 뭐 하는 거냐?!"
"노, 놔랏! 지금 당자 저 망할 여신을 물어뜯어 죽이지 않고는 못 참겠다!!!"
"진정, 진정해라! 아직 기억도 돌아오지 않은 착한 아이란 말이다!"
아이에게 달려드려는 미코를 붙잡고는 품에 꽉 안았다.
차마 나에게는 거칠게 대하지 못하겠는지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여우 수인이 하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진정시키니 천천히 숨을 골랐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녀석이 너무 그러지 말거라, 응?
"후으, 후아... 진짜, 네가 아니었다면 절대 참지 않았을 거다!"
"...지금도 충분히 참지 않은 것 같다만."
숨을 고르는 미코의 등허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척추를 타고 손가락을 놀리니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그걸 보면 지금은 아마 화가 조금 풀린 듯 싶었다.
다행이다.
만약 끝까지 했다면 아이가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는데.
...뭐, 진심으로 미코가 아이에게 해코지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서도.
"하아, 그래서. 이 녀석에게 내 꼬리를 쥐여주고 싶어서 불렀다?"
"네가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는 했다."
"...말은 또 잘 하는구나."
어처구니 없다는 듯 고래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꽤 역동적이었다.
그래도 진심이기는 했으니까, 응.
슬쩍 손을 뻗어서 미코의 정수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황금빛 귀가 쫑긋거리는 것이 참 귀여웠다.
이게 바로 수인의 맛이지.
치유가 된다고 할까.
"어쨌든, 너라면 몰라도 저 녀석은 안 된다. 지금까지 나를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치가 떨려서 참을 수가 없어."
"그래도, 지금은 다르니까 조금만 참거라, 응?"
용서를 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따로 진득하니 설득을 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미코를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아이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아직은 자그마한 한 걸음일 뿐이지만, 분명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절대 이 녀석에게 꼬리를 주는게 아니야. 네가 받아서, 이 녀석에게 주는 거다. 알겠느냐?"
"그래, 정말 고맙구나."
슬그머니 내밀어지는 꼬리에 환히 웃었다.
아이는 처음 보는 종류의 꼬리에 꽤난 신난 것 같았다.
역시 미코의 꼬리가 훨씬 좋지?
랴뇨리의 꼬리도 참 좋지만, 미코의 꼬리는 결이 다르니까 말이지.
괜히 수인 마을의 촌장을 한게 아니라고?
...물론 꼬리의 감촉으로 촌장을 정하는 건 아니겠지만서도.
"부드럽지? 원래는 이런 꼬리가 아홉개나 있었단다."
"..."
아홉개라는 말에 아이의 표정이 흡사 '!'로 바뀌었다.
뭔가 아홉개일 때를 바라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미코는 아홉개의 꼬리를 가질 수가 없었다.
미안한 일이었지만, 엘리가 처녀를 가져갔으니까.
처녀가 없어도 꼬리를 늘리는 수행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이유가 딱히 없다고 했던가.
안타깝지만 아이가 미코의 아홉 꼬리를 보려면 시간이 꽤나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아가가 착한 아이로 있어준다면 아홉개인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
"...그런 걸로 설득이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명색이 그 여신인데."
미코는 아무래도 여신이라는 두 글자를 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싶었다.
이 정도라면 분명 10년 정도 뒤 서로에 대한 모욕의 언어로 여신이라는 단어가 사용될지도 몰랐다.
확실히 나도 여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지...
지금은 엄청 증오하는 것도 아니라서.
'여신과 아이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보는 것보다는 같은 존재로 보기로 정했으니까.'
그것을 정한 것에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다던지 하지는 않았다.
그냥, 아이와 여신을 다른 존재로 보면 나중에 혹여라도 미움 받을 때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 선택이었다.
비겁한 선택이지.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은 겁쟁이의 생각이었고.
"...음, 꼬리를 뽑아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
"그 정도의 힘을 없을 거다. 아마도."
뿔이 없으니 딱히 힘이 강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오히려 허약하다면 허약할지도 몰랐다.
어딘가 몸이 좋지 않다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아마도라는 이야기를 덧붙인건, 언젠가 잔뜩 화가 났을 때 뿜어져 나왔던 괴력 때문이었다.
'지금도 사용할 수 있으려나...'
손을 쥐락펴락하며 그때의 감각을 되새겨 봤지만, 무언가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분명 무의식중에 그런 힘은 사용하지 말라고 제동을 걸어주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도 엄청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구나. 심술을 부리지도 않고."
"지금도 충분히 심술을 부리고 있다만?"
아이가 쥐고 있는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니 아이의 몸도 좌우로 흔들렸다.
그런데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건 아이의 힘이 강하다기보다는 미코가 적당히 힘조절을 하고 있다는게 맞겠지.
...정말이지, 미코도 참 츤데레라니까.
누가 봐도 흔히 볼 수 있는 츤데레 여우 수인 캐릭터였다.
작은 몸에 아이들을 잘 돌본다는 특징까지 곁들인 엄청 귀여운 여자아이.
'여자아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조금 많기는 하지만 말이지.'
물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이를 언급할 수 있을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지만서도.
아무튼, 미코에 대한 답례는 아이가 꼬리를 붙잡고 있는 동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했다.
너무 일방적인 거래지 않냐고 불평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미코에게도 좋은 교환인 듯 싶었다.
언제는 마족이니 마왕이니 하면서 엄청 싫어했었으면서.
사람이란 건 변하기 마련이었다.
나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분명 아이도 좋아할 수 있게 되겠지.
'나를 쏙 빼닮은 아이니까.'
언젠가는 두 사람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나누는 날이 올 터였다.
***
'당신이 뭘 할 수 있죠? 당신은 그저 점점 희미해지는 영혼을 붙잡고 절망할 일 밖에 남아있지 않다구요?'
'당신의 뿔 하나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에, 다른 하나는 저의 힘을 회복하는 것에 사용된답니다.'
'귀여운 나의 마왕님. 당신 같은 건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어.'
'그 아이가 당신을 낳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번에는 속삭임이었다.
내 영혼이 여신에게 농락 당하며 들었던 악의 섞인 중얼거림.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듣는 내내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저주, 증오, 분노.
여신을 이루고 있는 그 모든 것들 사이에 서서, 온종일 몸을 웅크리고 있었더랬다.
"너의 그 증오도,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 아니느냐."
'당신이 뭘 안다고? 당신이 나의 아픔에 대해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데?'
"나도, 나도 엄마니까!"
'하, 겨우 그런 이유로?'
나에게 저주의 말을 늘어놓던 목소리가 내 말에 코웃음을 쳤다.
분명 기억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화까지 나눌 수 있었다니.
그저 내 망상일 뿐일지도 몰랐지만, 어떻게 보자면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 김에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쏟아내는 편이 더 마음 편하겠지.
"그렇게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나를 증오하고 있는 건가?!"
'그래, 당신이 미워서 참을 수가 없어.'
"하지만, 너를 배신한 마족은 내가 아니었어!"
너를 배신한 마족은 내가 아니라, 다른 이였다.
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의 잘못을 내 잘못으로 바라보는 저 여신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지.
"나는, 어머니의 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낳은 아이의 아이라고!"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요? 어차피 당신도 다른 마족들처럼 저를 배신 했었을 텐데.'
"...나의 어머니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네가 바라보는 어머니의 그것과 같았을 거야."
꽉 막힌 사고방식에 힘이 쭉 빠졌다.
어차피 기억일 뿐이라면, 설득보다는 푸념을 늘어놓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서 처량하게 쭈그려 앉았다.
어떻게 찾아온 기억인지는 몰라도, 처음의 여신 또한 이런 공간 안에 있었더랬지.
이런 어둠이 싫고, 또 싫어서 세상을 빚어내고 자신을 빚어내고, 마침내 스스로를 조각내서ㅡ
"기껏 한 번 배신 당한 걸로 징징대기는."
'뭐라고요?!'
"애새끼도 아니고. 그래, 나는 분명 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거겠지."
어머니가 말하는 여신이란 존재는 내가 감히 바라볼 수 없을 정도의 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우러러 보는, 거의 신과 같이 생각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어머니이자 진짜 신.
언제나 그 존재를 만나보고 싶어했더랬다.
어머니는 언제나 때가 이르다며 만류하시고는 하셨지만.
'애새끼라니, 지금 무슨 말을...!!'
그래, 상대가 이런 애새끼라면 소중한 딸을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응,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