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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46화 (246/342)

Chapter 246 - 행복해지게 해줘.(1)

행복해지고 싶다.

그 바램을 이루기 위해서 어찌나 많은 노력을 했었던가.

"..."

"..."

울지 않는 아기와 시선을 마주한다.

나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 태어난 자그마한 아이.

언젠가 봤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서, 심장이 저릿저릿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이.

어쩌면 내 기억에서 잊혀질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찾아올 줄만 알았더랬다.

"...린."

분홍색 머리카락에 희미하게 보이는 분홍색 눈동자.

피에 젖어 있던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서, 절로 숨이 거칠어졌다.

내가 죽였잖아.

뭘 안심하고 있는 거야, 아리엘.

너는 죄인인데.

"미안, 미안하구나. 내가, 내가 잘못했어..."

입을 벌리자마자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잔뜩 튀어나왔다.

품에 안긴 온기.

그리고 그런 온기를 받아들며 기뻐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의 추악함까지.

그 사실을 인지하자,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역겨움에, 더러움에, 그리고 그 모든 기억들 때문에.

"헉, 흐윽, 흐..."

지금의 린은, 기억이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알 수는 없었지만, 기억이 없다고 해도 예전처럼 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 손으로 죽인 딸을 감히 어떻게ㅡ

"아."

그리고 그 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했던 생각이, 여신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아무리 기억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신은 여신이었다.

그러니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되는ㅡ

"싫어, 싫어, 싫어!!"

다시 그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기 싫어.

증오와 분노의 연쇄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단 말이야.

공기가 무거워 고개를 숙이니 후두둑, 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아기의 몸에 떨어진 눈물 방울이 순간 붉게 물든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헉, 흐억, 하윽......"

숨을, 쉬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입을 벌려봤지만, 폐를 가득 채우는 청량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틈새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오직 짙은 혈향 뿐.

아무래도, 나는 나 자신에게 더 이상의 삶을 허락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ㅡ

'ㅡ살고, 싶어.'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침대 위로 눕혀짐과 동시에, 가느다란 팔이 허공을 휘적였다.

살려줘.

살려주세요.

누군가가, 누군가가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ㅡ

"아리엘 씨!"

다행히도, 구원은 있었다.

***

"...상태는 어때?"

"충격으로 인해서 잠시 의식을 잃으신 상태에요."

"숨은, 잘 쉬고 있고?"

"에밀리 씨가 만드신 마도구 덕분에 다행히 숨은 쉬고 계세요."

머릿속에서 울리는 직감을 따라 아리엘 씨의 방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잠시 그와 비슷한 상상을 해봤지만, 너무도 끔찍해서 1초라도 더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아리엘 씨가 돌아가셨더라면ㅡ

아니, 아니지. 그만 두자, 엘리.

"아무래도, 린 씨가 태어난 것 때문에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에요."

"...그래?"

아직 린 씨인건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황상 그렇게 보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충격을 받을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녀가 스스로의 손으로 린을 죽였다는걸 알면 다른 반응이 튀어나올게 분명했다.

아무리 되살리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그것은 용서받지 못하는 일이었으니까.

하물며 살해당한 아이가 용서했다고 해도 말이다.

물론 그녀의 지인들 대부분은 그녀를 이해하겠지만서도.

"...아리엘 씨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요."

여기서 또 새삼스럽게 깨닫고 말아버린다.

아리엘이라는 사람은 참 마왕이라는 직함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만약, 만에 하나라고 다른 이들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마왕의 성질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달랐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마왕 같은 아리엘 씨가 아리엘 씨일 리가 없었으니까.

"부디, 괜찮아야 할 텐데..."

"처음보다는 많이 괜찮아졌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생전 처음 보는 용사님의 약한 모습에 오히려 더 냉정해졌다.

과거 사람들의 시체를 보며 벌벌 떨던 자신을 다독여 주던 용사님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역할이 뒤바뀌어 버렸다.

그만큼 아리엘 씨를 사랑하고 계시기에 나오는 반응이겠지.

"이럴 줄 알았다면, 나중으로 미룰 걸 그랬어."

"..."

"나중이라도 좋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나중이었다면, 달랐을지도 몰랐잖아."

"용사님."

자책하기 시작하는 용사님께 나지막히 말했다.

아무리 후회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 자체를 후회하시면 안된답니다.

용사님과 아리엘 씨가 나는 사랑들과, 그 사랑에 대한 결실을 후회한다면 모두가 불행해질 뿐이니까요.

불행한 이들을 그 누구보다 많이 봐온 그녀에게 있어서 지인의 불행이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것에 불과했다.

부디 모두가 행복할 수 있기를.

형태는 다르더라도, 전부 축복 받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아리엘!"

문이 열리고, 이번에는 미코 씨가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옷이 잔뜩 흐트러져 있는 것이 아무래도 급히 달려온 듯 싶었지만, 신체가 빈약해서 그런지 그 어떤 감상도 들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들어오는 고양이 수인들까지.

분명 처음 볼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적대적일 수 없는 이들이었는데, 이제는 그들에게 아리엘 씨의 존재가 정말 소중한 것이 되어버린 듯 싶었다.

"어떻게, 어떻게 된 게냐! 아리엘이 갑자기 왜 쓰러져?!"

"진정하세요, 미코 씨."

"진정하게 생겼느냐! 설마 다른 녀석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아니면 여신 그 망할 년이 기억을 되찾았다던가ㅡ"

미코 씨가 으르릉거리자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화가 잔뜩 나셨구나.

범인이 누구인지만 알게 된다면 당장에라도 찢어버릴 듯한 기세였다.

그 범인이 아리엘 씨의 죄책감 덩어리라는 걸 안다면 또 어떨까 싶지만서도.

"다른 누구에게 해코지 당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마음이 아프셔서 앓아누우셨을 뿐이지."

"마마!"

"어떻게 된 거야?!"

평소에는 아리엘 씨만 종종 드나들던 방 안이 꽉 들어찼다.

레이나 씨와 케이 씨, 그리고 일곱 쌍둥이까지.

일곱 쌍둥이들은 얼마 전에 전생의 기억을 전부 되찾았는데, 그들끼리 어떤 이야기가 오간지는 몰라도 그녀를 적대적으로 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호의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원래도 병약한 녀석이기는 했지만 말이다냐..."

"최근 들어서 많이 나아지셨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방심한 것 같아요."

고양이들이 냥냥, 하고 울었다.

옆에 있던 여우의 맞장구는 덤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세계수에 있게 할 걸 그랬어."

"역시 계속 옆에서 지켜보는 편이ㅡ"

엘프가 후회했고, 도적이 고민에 빠졌다.

그런 여러 종족들과 직업을 가진 이들의 합주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걱정을 해주는건 고맙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다들 나가주세요."

"..."

"지금의 아리엘 씨는 안정이 필요한 상태에요. 계속 그렇게 떠들다가 혹여라도 그녀가 늦게 깨어난다면, 책임 지시겠나요?"

솔직히 지금 스스로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아리엘 씨가 쓰러진 것을 발견한 사람인 이상, 정상적이라면 그게 또 비정상이겠지.

조용해진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축객령을 내렸다.

지금은 그저 조용히 있고 싶었다.

아리엘 씨의 안정을 위해 조용히 시키는 것도 맞았고.

"하아..."

아리엘 씨.

입 안에 맴도는 그 이름을 불러보았다.

오늘처럼 그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날은 처음이었다.

왜일까.

어째서지?

분명 평소와 같은데ㅡ 아니, 아리엘 씨가 쓰러지셨으니 절대 평소와 같지는 않겠지만서도.

아무튼, 느낌이 조금 달랐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다가, '아리엘 씨'라는 호칭에서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래, 어쩌면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걸지도 몰라.

천천히 숨을 내쉬며,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아리엘."

다시 한 번.

"아리엘."

한 번 더.

"아리엘."

역시 이름 뒤에 씨를 붙이는 건 그만 둘까.

어느새 뻗어진 손이 아리엘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얼마나 당신을 이름으로만 부르고 싶었는지 몰라요.

차라리 이런 용기를 진작부터 가졌다면, 그랬다면 당신이 쓰러지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요?

나라는 존재가 린 씨보다 더 소중하고,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면.

그랬다면ㅡ

"ㅡ그랬다면, 당신이 이렇게 쓰러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를 바라보며 웃을 때의 그 웃음도, 가끔씩 보여주는 맹한 모습도, 그리고 환희에 찬 표정으로 세계수의 가지를 만지작 거리는 것도.

그 전부가 저에게 있어서는 빛이자 소금인데.

그런 당신 없이 단 하루라도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렇게 쓰러지시는 건가요?

당신을 갈망하는ㅡ 아니, 갈애하는 존재들이 이렇게 많답니다.

전부 당신의 친절에, 아슬아슬함에, 희미함에, 사랑에 중독 되어버린 부족함의 신자들이랍니다.

"...벌써부터, 당신의 황금빛 눈동자가 보고 싶어요."

보지 못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목이 말랐다.

마치, 타오를 듯한 갈증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계속해서.

계속해서, 심장을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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