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7 - 행복해지게 해줘.(2)
"당신도 결국 저랑 똑같아요."
"..."
"스스로를 위해서 자식을 죽인 빌어먹을 년."
"..."
맞는 말이었다.
나는 린이 살기를 원한다는 스스로의 바램 때문에 린을 죽였으니까.
한숨이 나올 정도로 멍청한 진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마음이었다.
내 일상에, 내 행복에 린의 생존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내 손으로 죽였다.
그 빌어먹을 이기심을, 나는 절대 외면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죽어버리는 건 어때요? 지금 죽으면 평생 동안 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웃기는구나."
"뭐가요? 일생일대의 기회라구요?"
"살아도 평생 함께 있을 텐데 말이다. 처음보다 거짓말을 못하게 됐구나."
조금 확신이 드는 건, 눈앞의 여신이 겨우 내 상상에 불과한 여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렇게 힘든데 굳이 여신의 얼굴을 떠올릴까?
아니, 솔직히 이 상태에서 여신은 꽤 귀여운 수준이지.
오히려 린이나 할리벨이 나왔다면 더더욱 고통받았을 터.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저지른 죄가 있으니 달게 받겠다는ㅡ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
"내가 상상하는 꿈인 척 할 필요 없다. 네가 여신인지, 아니면 내가 만든 환상인지 따위는ㅡ"
"..."
"ㅡ아니, 애초에 나는 네 환상 따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지. 전부 너였어."
나를 조롱하는 목소리를 아직까지 기억한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기억하는 그 목소리도.
무의적으로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저건 여신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여신이 분명했다.
"내가 불행한 것을 보며 기분이 좋느냐?"
"흥."
"이제 나도 불행하고, 너도 불행하게 생겼구나."
"...무슨 뜻이죠?"
잠시 숨을 골랐다.
여신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흐리멍텅한 황금빛 눈 속에 담겨있는 증오조차 검은색 무언가가 질척하게 섞여들어 있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까.
정말 맞다면, 신이라는 것도 정말 별 것 없는 존재일지도 몰랐다.
그저 조금 더 특별하고, 오래 사는 종족일 뿐.
"아직, 그 아이에게 범해졌을 때의 여파가 남아있는 것이지? 그래서 필사적으로 기억이 돌아오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고."
"..."
"네 기억이 돌아와도 그 자그마한 몸이 지금까지 쌓여서 넘쳐 흐른 쾌락을 받아내지 못할 것 같아서 일부러 그런 거지?"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진짜인 모양이구나."
별거 아닌 사실이었다.
동시에, 중요한 사실이었다.
여신의 최후가 그런 외설스러운 것으로 끝났다는 것에 조금 정도는 미련이 남아있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았던 것이었다.
만약 여신의 최후가 다른 생명체들과 똑같이 고통으로 끝맺음 했다면 절대 이런 평화로운 상황이 펼쳐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기억을 되찾은 여신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 온갖 공작을 벌인다.
물론 언젠가는 그게 전부 여신의 탓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겠지.
하지만 그 자리에 과연 내가 있을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 였다.
"그래서, 당신이 뭘 할 수 있죠? 당신이 쓰러진 건 저 때문이 아니라 그 반쪽짜리 마족 때문이잖아요? 과연 그들이 저를 탓하며 저를 죽여낼까요? 하, 설마."
"..."
"그저 착한 아이처럼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인간들은 알아서 착각할 수밖에 없겠죠."
당신이 죽으면, 그들에게 저는 무엇이 될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이 없는 저는?
당신이 남기고 간 마지막 유산.
당신을 가장 닮은 파편.
가장 소중이 여겨야 할 생명.
그리고, 다시금 모셔야 할 신ㅡ
"당신이 제 뿔을 집어삼킨 덕분에, 약간의 간섭 정도는 가능했답니다. 아주 미약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서를 바꾸는 것 따위야 개미를 짓이기는 것보다 쉬웠죠."
여신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내가 다시 깨어날 수 없으리라 확신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 말을 들으면 괜한 반발심이 들어 깨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린의 얼굴을 보지 못하겠다는 죄책감이 더 컸다.
분하지만, 여신의 말이 맞았다.
그녀나 나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식들을 죽인 것이니까.
하지만ㅡ
"네가 불행하게 될 것이란 건, 네가 죽거나 다치거나 다른 이들에게 배척당하게 될 것을 예견해서 그런게 아니다."
"...흥,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죽게 된다면 내가 지금까지 너에게 주던 애정, 온기, 부드러움, 사랑ㅡ 그 모든 것들을 놓치게 될 텐데. 그걸로 괜찮겠느냐?"
"...무슨, 소리를."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여신은 분명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 이딴 거지 같은 말을 쏟아내지는 않아도 될 터였다.
하지만 여신은 그렇게 했다.
왜? 어째서?
물론 그녀 스스로도 모르겠지.
어쩌면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기억하고 있지 않느냐. 아무리 정신은 신체 안으로 숨어버렸다고 해도,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느냐."
"..."
"내가 너에게 준 사랑이, 전부 거짓으로 보였던 건가?"
여신이 영원히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런 상상을 하고는 했었더랬다.
이루어질 수 없을 불확실한 미래에 모든 것을 걸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었더랬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여신의 기억이 돌아와도 그녀를 내가 낳은 아이로써 사랑해 줄 것을.
어쩌면, 이건 스스로와 하는 맹세일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나는ㅡ
"그리고,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느냐. 내가 정신을 잃은 건 너 때문이겠지? 아무리 내가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이 정도로 늦게 깨어날 리가 없어."
"하."
"나는 누구와 다르게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라서ㅡ 할머니."
"하아?!"
따지고 보면 할머니가 맞지 않나?
물론 족보상으로는 할머니였던 존재가 죽은 뒤 딸로 다시 태어난 것이기는 했지만ㅡ 지금은 정신 세계 속이니 할머니라고 불러도 되겠지.
그래, 엄마의 엄마.
신과 같던 어머니가 우러러보는 신.
신이었던 존재.
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존재.
"정말, 나를 보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나? 내 형제자매들을 죽일 수록 수척해지는 어머니를 보면서, 행복을 느낀 건가?"
"..."
그러니까, 조금 정도는 투정을 부려도 되겠지.
어떻게 보자면 콩가루 집안이나 다름 없잖아.
할머니와 손녀가 뒤통수가 깨지도록 싸워서 세상을 멸망시킬뻔 했다는게.
불퉁거리는 말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제 질리지도 않아?
조금 정도는 감정을 접어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는구나. 푸하... 나는 지금까지 이름도 모르는 존재에게 시달리고 있던 거였군..."
조금이지만 입 안이 씁쓸했다.
하긴, 할머니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여신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말할 생각은 없는 것 같네.
아니, 애초에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중얼거림을 나누고 있을 뿐이었지만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 건 대화가 아니니까...'
그래, 뭐든지 전부 이해한다는 듯한 말투이기는 했어도 나는 여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형제자매를 전부 죽인 것 따위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
린을 죽인 것만으로도 영혼이 천 갈래로 찢어지는 것만 같았는데, 그 많은 아이를 잃으신 어머니는 과연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웃기지도 않았다.
이해를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싫었을게, 당연하잖아요? 당신 같은 부산물들을 낳느라 그 아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
"그 아이만이 나의 전부였는데 대체 왜, 왜, 왜, 왜!!!"
"..."
"그렇게 낳지 말라고 말했는데도 계속 낳았어. 왜? 어째서? 내가 부탁 했는데도 계속, 계속, 계속!!"
아이를 낳는 순간 희미해지는 영혼에 겁을 집어먹었더랬다.
이대로 계속 저 부산물들을 낳는다면 내 아이가 죽어.
내 아이.
나를 가장 닮은, 내 아이.
그렇기 때문에 죽였다.
아니, 죽였기 때문에 계속 낳았던가?
횡설수설하며 중얼거리는 여신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은 여신도 어머니였다는 결말로 끝나는 걸까.'
그녀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은 무조건적인 악이었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더러운 악.
하지만 저 여신의 머릿속에 선악이라는 개념이 존재할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가ㅡ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겠지.
지금 저 꼴을 봐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신에게 있어서 선이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
여신에게 있어서 악이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네가 내 형제자매들을 죽일 때마다, 어머니께서도 너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아니, 훨씬 더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웠겠지."
하지만ㅡ
"그럼에도, 어머니는 왜 계속 아이를 낳으셨을까."
조금이지만 알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직접 두 귀로 들은 적은 없었지만,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의 가엾고도 가여운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ㅡ 여신에게 칭찬이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렸을 적 자신을 볼 때의 그 행복한 표정을 다시금 보고 싶어서 그러셨겠지.
"당신을 사랑해서 그런 거야."
"..."
"당신과 어머니 자신을 닮은 아이를 계속 낳게 된다면, 분명 당신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테니까."
여신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나는 그런 여신의 얼굴을 슬픔과 후회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