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8 - 행복, 사랑, 그리고.(1)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때를 기억한다.
내가 낳은 두 번째 아이.
나를 보며 손을 뻗어대는 그 자그마한 모습에ㅡ
숨을 쉴 수가 없었더랬지.
'아가, 나는 너만 있으면 된단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그냥 너만, 너 하나만 있으면 돼.'
그렇기에 나는 아이를 부르는 고유 명사로 '아가'를 택했다.
이름을 붙여주지 귀찮았다거나, 스스로의 작명 센스를 의심하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아이를 내 가장 소중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내가 처음으로 소중히 대했던 단어로 아이를 부른 것이었다.
그래, 어떻게 보자면 이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게 한이라면 한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당신 따위가 저를,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것이 본심이었다.
눈앞에 있는 녀석ㅡ 아이를 쏙 빼닮은 빌어먹을 마왕.
내가 제일 사랑하는 마왕.
나만의 귀염둥이이자, 나의 대적자.
직전의 말이 틀렸다는 것 정돈느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이해할 일 따위도 절대 없겠죠.'
여신에게 있어서 눈앞에 있는 마왕 포함 나머지 모든 것들은 그저 증오의 부산물들에 지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 역겨워.
행복하게 미소짓는 저 빌어먹을 생명체들의 지저귐이 요란스러워, 입 밖으로 분노를 토해냈더랬다.
너희들은 나에게 고통만을 준 존재들이야.
너희 같은 건, 존재해서 안 되는 것들이다.
"이 증오를, 당신이 알 수 있을 리 없잖아요."
"..."
"아무리 오래 살아왔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죠? 제 앞에 서는 모든 것들이 그저 갓 태어난 어린 양들일 뿐인데."
증오를 잊지 못하는 어리석은 신이라고?
그래, 그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속죄였다.
아니, 이건 아이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다.
최초의 아이의 죽음과 둘째 아이의 죽음.
그 죽음을 추모하는 장례식.
영원히 끝나지 않고, 마무리 되지 않고, 끝의 끝에 도달해도 끊임없이 연장 되어가는 그런ㅡ
"내가 그 아이를 잊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랍니다."
잊을 리가 없겠지만.
만약 잊을 거였다면 진작 잊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복수는 영원토록 계속될 터였다.
시간이 흘러 지금 있는 인간과 마족들이 전부 죽어도.
그렇게 계속해서 날이 지나, 결국 이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지?"
"..."
"아, 물론 너와 나는 알겠구나.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복수를 해서 마음이 시원해지기는 하나?"
눈앞의 여자는 전혀 겁 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당했다.
그 표정은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를 훈계하는 것과 닮아있어서, 여신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봐?
당장에라도 그럴 시선을 보내는 눈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너 자신의 행복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건가?"
"하, 당신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제 행복인 걸 아직도 모르시는 건가요?"
"그게 행복한 사람의 표정인가? 나는 잘 모르겠군."
"..."
하지만 그 한 마디.
확고하게 나아갈 제 마음 속에 파문을 던지는 그 한 마디ㅡ
반사적으로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본 것이 잘못이었다.
정확히는, 눈동자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이 실책이었다.
'나는, 나는...!'
전혀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 아니었다.
잔뜩 지쳐, 더 이상 계속하고 싶지 않다는 듯 힘이 잔뜩 빠진 멍청한 얼굴.
이게, 내 얼굴이라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내가 그 아이를 위한 복수 때문에 이런 표정을 지을 리가ㅡ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결국은, 도망치고 말았다.
***
오늘도 아리엘 씨는 깨어나지 않으셨다.
찡그리고, 울먹이고, 화를 내는 것 같다가도 결국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더랬다.
무슨 꿈을 꾸고 계시나요.
아직도 린에 대한 꿈을 꾸시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여신에 대한 꿈?
"아리엘 씨가 쓰러지신지 벌써 일주일 째에요..."
벌써 일주일.
겨우 일주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났다.
그 정도의 시간 만으로도 아리엘 씨는 창백해지고, 여위고, 약해져갔다.
아리엘 씨.
당신의 백옥 같은 피부 그 어느 곳이 더 하얗게 변해야 한다고 그렇게 창백해지세요.
당신의 그 비쩍 말라 가느다란 팔 어느 곳이 더 얇아져야 한다고 그렇게 여위여 가세요.
이미 충분히 약한 몸이, 대체 얼마나 더 약해져야만 멈추실 건가요.
"...어째서 당신이 이런 일을ㅡ"
"...윽.
"......아리엘 씨?"
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분명 이 세계에 더 이상 신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엘리는 하늘에 있는 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곧바로 잡아채고는 그대로 호흡을 살폈다.
정상.
깨어난 순간 다시 숨을 쉬지 못하게 된다면 어쩔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아슬아슬한 숨결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안녕, 엘리."
"아리엘 씨!"
참지 못했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는 상대를 꼭 껴안은 엘리가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난감하다는 듯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손길에는 자그마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
당신과 같은 신체를 가지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분명 이런 온기,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겠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만이 느낄 수 있는ㅡ
"조금 길게 꾸어야 할 꿈이 있어서 말이다, 조금 늦어버렸구나."
많이 기다렸니?
마치 그렇게 묻는 듯한 시선에 엘리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끄덕이고 싶었지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기다리는 일이라면 그 어느 것이 많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답니다.
절대로.
"이제는 조금, 괜찮으세요?"
몸이 아닌 정신을 묻는 말이었다.
물론 몸 또한 상당히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지닌 마음의 상처가 잘 덮어졌는지를 확인해야 했으니까.
"괜찮다. 걱정끼쳐서 미안하구나, 정말로."
"괜찮, 괜찮아요. 아리엘 씨라면 얼마든지 폐를 끼쳐도 되니까!"
"엘리."
"...네."
"정말 고맙구나."
희미한 미소였지만, 그곳에는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저에게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것이 당신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창문 틈새로 내리쬔 햇빛이, 아리엘 씨의 머리카락에 부딪혀 산산히 부서졌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성해 보이던지 감격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우, 울지 말거라!"
"우흑, 흐윽..."
"...정말이지."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
잠시 문 앞에서 망설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을 연 채로 고개를 조금만 넣은 채로 정작 몸은 들어가지 않았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린이 있겠지.
쓰러진 다음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분명 어느 정도 몸이 자라있을 터였다.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엘리 말로는 아무런 이상 없이 건강하다고 했지만, 혹시라는게 있었다.
만약 나를 보고 발작이라도 일으킨다면?
증오와 저주의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낸다면?
내가 견뎌야 할 죄의 무게였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그저 도망치고만 싶었다.
'아니, 이대로라면 나아갈 수 없어. 마주하지 않으면, 후퇴할 뿐이니까ㅡ'
그러니까.
흡, 하고 숨을 들이쉬고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빛이 들어오며 보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눈에 넣으니 심장이 쾅쾅 뛰어내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마지막에 보았을 때와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오히려 조금 더 혈색이 돌아보이기까지 했다.
머리 위에 올려진 자그마한 뿔과, 등에 달린 달개, 그 옆에서 살랑거리는 꼬리까지.
"...린."
순간 할리벨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법한 유사함이었지만,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아이가 린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그렇기에 이름을 불렀다.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아이의 표정은, 마치 인형이나 한 폭의 초상화 같이 그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설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린이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환상을 보고 있는ㅡ
"어머니."
"...흣."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껴안았다.
언제 다가온지도 모를 온기가, 내 허리춤을 둥글게 감쌌다.
크기가 너무도 작아 완전히 다 둘러지지 못한 팔뚝에서 희미한 아이 분내가 풍겨져 왔다.
이건 현실이다.
그 사실을 알려주는 향기에 천천히 몸을 숙였다.
"린, 린... 내가, 잘못했어..."
"보고 싶었어요."
잘못을 비는 나에게, 아이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 싶었다니, 내가?
아아, 그래. 자신을 죽인 이유를 묻기 위해서 보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원망의 말을 쏟아내고, 분노하고, 증오하기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던지 전부 감내할ㅡ
"사랑해요."
"..."
"제가, 어머니를 미워할 리가 없잖아요."
나지막한 말에 눈을 끔뻑였다.
이제는 내가 환청도 듣는 모양이구나.
내가 원하는 말을 지독하게도 잘 알아차렸어, 하하.
"사랑해요, 어머니.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환청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 모든 것들은, 거짓이 아닌 현실이었다.
"...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의 눈동자는 예전과 같았다.
분홍색.
예쁜 분홍색.
그 무엇보다 예쁜, 사랑의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