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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54화 (254/342)

Chapter 254 - 행복, 사랑, 그리고.(7)

"허, 허리가... 흐윽..."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너무 아팠다.

오래간만의 관계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잘 때의 자세가 잘못 되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아무리 움직여도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분명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일어났어?"

"...너는 멀쩡해 보이는구나."

"멀쩡하지, 왜?"

"..."

아서의 표정은 평소와 같이 멀끔했다.

아니, 멀끔하다 못해 훨씬 더 좋아보였다.

얼굴이 번들거린다고나 할까. 마치 보양식을 먹은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보양식, 이라.'

괜한 생각에 슬쩍 이불을 끌어올렸다.

나체 상태 그대로 노출되어 있던 젖가슴이 천 아래로 가려지자 아서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변태야.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니 그제서야 원래대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걸 즐기는 것 같았다.

"허리 아프니 오늘은 안 된다."

"...딱히 오늘 하자고 한 적은 없는데."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 눈빛이!"

불경? 불순?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위험한 시선이었다.

지금 당장 나를 한 번, 혹은 여러 번 덮치고 싶다는 듯한 눈.

수컷의 그것을 딱 마주치마자 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허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이상 절대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

"안 잡아먹을 테니까 너무 그러지마."

"...진짜지?"

이불을 콧등까지 끌어올리고는 눈을 깜빡였다.

어제 그렇게나 잡아먹었으면서 오늘도 잡아먹으면 양심이 없는 거지.

슬며시 다가오는 아서에 맞춰서 들어올린 이불을 슬쩍 내려두었다.

...고개만 들고 있는 것도 힘드네.

목에 주고 있던 힘을 풀어내자 폭, 하는 소리와 함게 머리가 베개 안으로 안착했다.

조금 전에 봤던 천장의 얼룩이 생각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괜찮아?"

"허리 아래로 안 움직이는 것 빼고는 괜찮다."

"...안 괜찮은거 아니야?"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시야 안에 아서의 얼굴이 들어오자마자 조금 투정을 부렸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이 남자야.

투덜거리듯이 혀를 차고는 슬쩍 손을 내밀었다.

손이라도 잡아줘.

말 없이 내밀어진 요구에도 아서는 내 의도를 재깍재깍 알아들었다.

"큼큼..."

"목 마르면 옆에 물 있으니 그거라도 마시거라."

목이 건조한지 헛기침을 하는 아서에 탁자 위에 올려진 물병을 가리켰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고 해서 가져다 둔 것이었는데, 뭔가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더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꿀꺽 꿀꺽 물을 마시는 아서의 얼굴을 구경하기를 잠시.

문득 떠오른 생각에 슬며시 입을 열었다.

"여보."

"푸웃ㅡ!!!"

"...뭐 하는 짓이냐, 대체."

나에게 물을 뿜어냈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불결하다고 느낀 건 사실이었다.

대체 뭐 때문에 저런 리액션을 보여준지 모르겠네.

여보, 라는 호칭 정도면 부부 사이에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잖아?

예전에 왕도에서 탈출할 때도 했었고 말이지.

...물론 그때는 부부보다는 원수에 더 가깝기는 했지만서도.

"나에게 '여보'라고 불리는게 싫은 건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ㅡ 콜록, 콜록!"

"..."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잔뜩 노려봤다.

물론 그런게 아니라는 것 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서로를 '여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 테니까.

아서는 분명 그런 상황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터였다.

"...어제 너무 괴롭혔다고 복수 하는 거야?"

"딱히 그런 건 아니다. 나도 이름으로 불리는게 더 좋지만ㅡ"

"가끔씩은 부부다운 호칭을 사용하고 싶다, 이거지?"

"...그래."

잘 아는 녀석이 모르는 척 하기는.

입술을 비죽이며 아서를 노려봤다.

장난이 섞인 투정이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서를 당황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어제 나를 죽도록 괴롭힌 것에 대한 복수야.

다른 복수들은 접어둬도, 이것 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음, 그러니까ㅡ"

"여보."

"..."

"여보라고 불러."

단호하게 말하자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다.

뭐가 그렇게 어색한 걸까.

손을 뻗어 아서의 팔을 잡아당기자, 힘 없이 끌려 왔다.

봐, 일부러 져주고 있잖아.

"자, 불러보거라. 어서."

"...여보."

"그래, 당신."

봐,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잘 했다는 것에 대한 상으로 아서의 뺨에 쪽, 하고 뽀뽀를 해줬다.

사실 이름으로 불리나 여보 같은 호칭으로 불리나 아서가 나에게 주는 애정은 변함 없지만 말이지...

그래도 느낌이란게 있잖아?

"아리엘, 얘 좀 어떻게 해 봐! 나한테 들러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잖아!"

"응?"

시간이 조금 흘러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됐을 무렵.

문을 열고 나타난 에밀리가 소리를 지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등 뒤에는 여신ㅡ 아이를 데롱데롱 매단 채로.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에밀리가 아무리 떼어내려 안간힘을 써도 안 떨어지는 것을 보니 마신은 마신인 듯 싶었다.

이렇게 보니까 귀엽네.

마치 언니의 등에 달라붙은 여동생을 보는 것 같달까.

'어라, 어떻게 보면 맞는 말 아닌가?'

"귀엽구나, 후후."

"그런 말만 하고 있지 말고! 무겁단 말이야!"

어린 아이 같은 투정이었지만, 얼굴이 붉게 물든 걸 보니 아무래도 진심이 가득 담겨있는 듯 싶었다.

그래, 딸을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 손짓하자 잔뜩 성이 난 에밀리가 타박타박 가까워졌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에게 꽤나 시달린 모양이구나.

별로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서도.

"자, 아가. 엄마한테 와야지? 응, 그래. 여기란다."

"...떼어내려고 할 때는 절대 안 떨어지던데."

"그러니?"

고생했구나, 고생했어.

에밀리의 분홍빛 정수리를 꾹꾹 쓰다듬자 쑥쓰러운 듯 고개를 쑥 집어넣는다.

옆에 있는 아서는 언제나와 같이 기이한걸 본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ㅡ

네가 옆에서 계속 그러고 있으면 에밀리의 귀여운 모습을 못 본단 말이야.

그런 의미를 담아 옆구리를 찌르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냈다.

그래, 차라리 고개를 돌리던지 해.

"..."

"왜 언니한테 붙어 있었니?"

"언니, 푸흡... 에밀리가, 여신의 언니... 큭... 크흐하...!!"

"...웃지마, 쓰레기 용사 주제에."

에밀리를 잔뜩 놀려대는 아서와 그런 아서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에밀리.

마치 사춘기가 와서는 '이제 아빠랑 같이 안 씻을 거야!' 같은 소리를 하는 딸 같은 느낌의 광경이었다.

정작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겠지만서도.

뭐, 그래도 중요한 건 외모의 나이가 아니라 정신의 나이ㅡ 아차, 이게 아니지.

...아무튼, 에밀리도 겉으로 보면 아이니까 가족처럼 보여도 어색하지는 않을 터였다.

"...마."

"...응?"

그러다가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아서도, 에밀리의 것도 아닌 생소한 목소리.

아니, 분명 들어보기는 했지만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ㅡ

최근 들어 가장 빠르게 고개를 움직여서는, 품 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았다.

"...마, 마."

"...아?"

귀에서 뇌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의 전달이 조금 느렸다.

그러니까, 방금 내가 들은게 맞는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를 내려다 보니, 그 자그마한 손을 쭉 뻗어서는 잼잼 움직여댄다.

꿈이 아니었는데.

아서나 에밀리의 표정을 보면 환청도 아닌 것 같고.

"저기, 한 번만! 한 번만 더 마마라고 불러줄 수 있겠니?!"

"..."

"...역시."

조금이지만 실망 해버렸다.

아이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불러달라는 말을 해버린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렇지만, 듣고 싶었는걸.'

어떻게 보자면 강박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마ㅡ 혹은 엄마라고 불리고 싶은 강박.

이 강박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분명 마키나를 고르돌에게 빼앗ㅡ 큼, 돌려줬을 때부터일 터였다.

치료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고나 할까...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비슷했겠지만..."

"..."

멍하니 나를 올려다 보는 황금빛 눈동자를 내려다 보며 쓰게 웃었다.

지금이 안 되면 또 다음 기회를 노려보는 편이 좋겠지.

칭얼대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이었다.

혹시라도 기억을 되찾게 된다면 꽤나 골치아픈 일이 될 테니 말이다.

"꾹 참을 테니까, 기억을 되찾더라도 마마라고 불러주렴."

"너무 과한 기대를 하는거 아니야?"

"그런 것 치고는 너도 나에게 엄마라고 불러주지 않았느냐."

날카로운 말에 부드럽게 반박해줬다.

여신도 여신이지만, 과거 에밀리와의 관계는 가히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더렸다.

그런 에밀리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줬으니, 분명 여신도 그렇게 될 수 있을 터였다.

길고 험난한 길이 될지도 모르지만ㅡ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겠지.

"...나중에 실망해도 위로 안 해줄 테니까."

"나는 해줄게, 아리엘."

"너는 입 다물고 있어, 아서!"

조막만한 주먹으로 아서의 명치를 투닥투닥 두드리는데, 타격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아니, 확실히 저 정도로 덩치가 차이 난다면 타격이 없겠지.

하나도 안 아파서 그런지 아서의 표정도 평온했다.

에밀리의 짜증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달까.

마치 딸아이의 투정을 받아주는 아빠 같은 모습에 괜히 웃음이 터져나왔다.

"후흣..."

"왜 웃어?"

내 웃음 소리를 들은 에밀리가 물었지만, 대답해주지는 않았다.

이유를 말했다가는 하루 종일 잔소리를 들을 것 같다는게 그 이유였다.

미안, 에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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