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7 - 희망.(3)
같은 이름의 인간과 마족이 합쳐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을까?
아니면, 상호간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던 걸까.
내 품 안에 안겨있는 아이를 내려다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양수가 다 마르지도 않아 축축하게 젖어있고, 쭈글쭈글한 아기.
탯줄조차 자르지 않아, 나와 연결되어 있는 자그마한 생명체.
"...아서."
"..."
"인사해야지."
알아차리지 못하는게 이상한 것이었다.
거울을 보면서 '이게 대체 누구지?' 하는건 바보나 할 짓이었으니까.
그래, 그랬지.
아서의 소꿉친구였던 아리엘이,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쯤은 가끔 하고는 했었다.
그저 확신이 안 들었을 뿐이지.
"그토록 기다리던, 소꿉친구가 다시 돌아왔는데."
"...나는."
아서는 여러모로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더더욱 그러했고.
특히 아서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표정이 아주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저들에게 있어서 내 품에 안긴 아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반겨야 하는 존재?
아니면 잊고 있었던 존재?
그것도 아니라면ㅡ
"안녕, 아리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서의 목소리.
분명 같은 이름이었지만, 부르는 느낌이 달랐다.
나를 향해 부르는 건 사랑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것은 우정이나 혹은 이미 먼 과거에 두고 온 첫사랑을 향한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다행이야.'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 추할지도 모르지만, 아서의 가장 소중한 건 무조건 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존재.
내가 제일 사랑해야할 존재.
내가 제일 사랑해갈 존재.
안도감과 출산 끝의 탈력감에 작게 숨을 토해냈다.
"자, 아기를 보는 건 여기까지 해두자꾸나."
"...그래."
아서는 꽤나 복잡해 보니는 표정이었다.
그래, 분명 그럴 수밖에 없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건 그거였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건 또 다른 일이었지만.
"자, 이리 오려무나."
슬쩍 젖가슴을 가져다 대니, 힘차게 빨아온다.
이렇게나 작은데도 참 힘이 좋구나.
나 자신에게 젖을 먹이는 건 조금 어색한 일이었지만, 서로 다른 경험을 했으니 다른 존재로 봐도 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응, 그렇네.
"아기다, 아기!"
"엄청 귀여워!"
"자자, 너무 달라붙으면 아기가 놀랄 거라구요?"
얼굴을 불쑥 들이미는 아이들을 능숙하게 제지한 레이나가 천천히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콕, 하고 찔러들어가는 손가락과 누가 봐도 말랑거리며 파이는 뺨까지.
이미 몇 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갓 태어난 인간 아기를 보는게 꽤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낳는 나 자신 또한 이렇게 작은 인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건가 싶으니까.
"수고하셨어요, 마마."
"수고했어."
딱히 수고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아기가 잘 태어나 준 거지.
내 손을 붙잡아 오는 두 아이의 손길을 느끼며 후후, 하고 웃어보였다.
앞으로 이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됐다.
부디, 앞으로의 삶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
나를 보며 희미한ㅡ 동시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
손을 뻗어 잡아보려고 했지만, 팔이 짧아서 닿지가 않았다.
분명 바로 눈 앞에 있는데 왜 붙잡을 수가 없을까.
대체 왜?
"아가."
"..."
귓가에 부드럽게 울려퍼지는 목소리.
그것을 듣자마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들어본 적 있어.
이 목소리는 분명 그때 그곳에서, 꿈 속에서 들어봤던 목소리야.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았단다."
"...으우."
뭔가 잔뜩 울 것 같은 표정에 위로라도 하고 싶어서 입을 벌렸지만, 나오는 건 옹알거리는 소리 뿐이었다.
말을 하기에는 너무 작아.
분명 마지막의 기억은 시골 처녀로써의 기억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작은 아기가 된 채였다.
이대로라면 말을 할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 걸까.
2년? 최소한 1년은 충분히 걸리겠지.
"너와는 꼭 대화를 나눠보고 싶구나."
"...으우."
"그 시절의 아서가 어땠는지 알고 싶으니 말이다."
나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
당신과 함께, 내가 알지 못하는 아서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아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그건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인간의 성장은 빠르면서도 느려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테니까.
물론 그런 기다림 마저도 좋다고 할 사람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빠른 편이 좋겠지.
...
그래, 분명 그럴 터였는데ㅡ
"...이 성장 속도는 조금 너무하다고 생각하는데."
"응? 무슨 말이라도 했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개를 갸웃하는 여인ㅡ 아리엘이 황급히 놀라 손을 파닥파닥 움직였다.
그러니까, 나 맞지?
마족인 나?
머릿속에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분명 내가 맞았다.
지금의 자신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크고, 크고, 또 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기에 입을 댔다고? 내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당시에는 본능이라고 했지만, 다 큰 처녀의 정신 상태로 상대의 젖가슴을 마음껏 빨아댔다고 하니 뭐랄까ㅡ
수치스러워 다시 죽고 싶은 느낌이랄까.
물론 진짜 죽는다는 뜻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러니까, 그ㅡ 저, 맞죠?"
"...그렇게도 볼 수 있지."
사락사락, 하며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참 부드러웠다.
과거에 잊고 있던 기억ㅡ 엄마 아빠의 기억이 떠올라서 조금이지만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는 이 상황.
하지만 자세하게는 모른다는 점에서 완전히 같지만은 않다는게 느껴졌다.
"음, 어렸을 때의 아서는 어땠니? 내가 알고 있는 건 다 커버린 아서 밖에 없어서 말이야."
"어렸을 때의 아서는ㅡ"
쑥쓰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었지만, 줄곧 자신 앞에서는 한 없이 어려지던 그런 사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분명 본인이 이길 수 있던 순간에도 언제나 져주는 사람.
...으응, 너무 좋은 소리만 한 걸까.
"그러면, 이제는 아리엘 씨가 알고 있는 아서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내가 알고 있는 아서?"
낯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라 어서 주제를 돌렸다.
아니, 주제를 돌렸다기에는 여전히 아서가 주제이기는 했지만서도...
아무튼, 그런 자신의 질문에 상대는 조금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언가 불편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조금씩 기억이 있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기에 조금 답답하기는 했다.
"...좋은 남자지. 좋은 남편이기도 하고."
"..."
"괜히 빼앗은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왼손 약지를 만지작거리는 아리엘 씨에 조금이지만 심장이 저릿했다.
그렇구나.
아서는 이 사람과 결혼했구나.
하긴, 나는 죽었으니까.
죽은 사람과는 이어질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겠지.
'아니, 아리엘 씨도 나라고 할 수 있으니까 결론적으로 빼앗긴 건 아니려나?'
무의식적으로 빼앗겼다고 생각한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조금은 떨림이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나도 아리엘 씨도 같은 아리엘이니까 결국 다른 사람은 아니었잖아?
...그리고, 알고 있었잖아.
그게 아니고서야 아서에게 자신이 마왕이면 어떻겠냐느니 마왕의 딸이면 어떻겠냐는 하는 소리를 하지 않았겠지.
"괜찮아요. 결국 아리엘 씨도 저니까, 어떻게 보자면 저랑 이어진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자그마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대가 뻔뻔하게 나오거나 놀려왔다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 나오니 차마 무어라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감히 어떻게 화를 내겠어. 이런 사람에게.
그리고 동시에 안심하고야 말았다.
아서가 좋은 짝을 만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어렸을 때는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결국 마왕의 딸이 되어버렸네요."
"...그렇니?"
"뿔이나 날개는 없는 것 같은데, 인간 맞죠?"
"그래, 그렇게 보이는구나."
조금은 아쉽다고 해야 하나?
기왕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이 아니라 마족으로 태어나도 꽤 괜찮았을 것 같았는데.
다시금 정수리를 쓰다듬어 오는 아리엘 씨의 손길을 받으니 괜히 웃음이 비죽비죽 튀어나왔다.
전부 끝났다는 말이 조금은 체감이 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제는 분명 행복해질 일만 남은거겠지.
"그나저나, 이름이 둘 다 같으니까 조금 부르기가 어렵네요."
"원한다면 네가ㅡ"
"괜찮아요. 딱히 아리엘이라고 불리지 않아도."
다시 태어난 김에 새로운 삶을 사는 것 또한 나쁘지 않겠지.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할까.
아리엘을 뒤집으면ㅡ 으응...
"엘리?"
"엘리는 음, 성녀의 이름이란다."
"성녀님이요?"
"그래."
슬쩍 시선을 피했다.
스스로의 작명 센스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그럴듯 한 걸로 내뱉어 봤는데 아뿔사, 설마 성녀님의 성함이었다니!
성녀님의 성함을 내가 멋대로 사용할 수는 없지, 응.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엘리야, 라던지."
아리엘이라는 이름을 뒤집은 뒤 획 하나만 추가한 것 뿐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리엘이면서 아리엘이 아닌 자신에게 딱 맞는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