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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58화 (258/342)

Chapter 258 - 아리엘.(1)

불행 끝 행복 시작.

이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리엘ㅡ 아니, 엘리야와 내가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했던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한다면ㅡ

"아, 아, 아아아아아!!!!"

"진정, 진정하려무나. 아가, 제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쁜 얼굴로 웃어보이던 아이를 꽉 껴안았다.

발작을 일으키고, 비명을 지르면서 입에는 흰 거품을 문 모습이 너무도 무서웠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그게 나 때문이라면?

심장이 쾅쾅 뛰어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더더욱 힘을 주는 것 뿐이었다.

"아으, 아아아아악!!!!"

"아가, 제발. 제발, 제발..."

대체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조차 없어서 더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무언가 병이라도 걸린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왜?

아이의 심장이 너무도 빨리 뛰었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속도에 이를 악물며 애타게 아이를 불렀더랬다.

"아가, 제발..."

"흐, 흐윽... 흐그... 으..."

반쯤 벌려진 입에서 투명한 실 한 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순간적으로 그것이 칠흑과도 같은 검정색으로 보였다면 거짓말일까.

어느새 내 가슴팍에 이마를 기댄 채로 숨을 고르는 엘리야에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유 모를 불안감이 내 심장을 움켜쥐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자면 그 불안은ㅡ

"...어떻게."

"..."

"어떻게, 용서할 수 있죠?"

ㅡ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

"..."

"그딴 짓을 한 자식을, 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대체, 어떻게?!"

아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내장이 난도질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런 말이 아니었어!

심장을 향해 쏘아지는 탄환에 검게 죽은 피가 뚝뚝 터져나왔다.

전부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그 더러운 흑색에 당황한 건, 대체 무엇 때문일까.

"단순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아픈데."

"...읏."

아이의 목덜미가 울긋불긋했다.

다른 누군가가 쥐어서 그런 것이 아닌,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새겨지는 강렬한 흔적.

당시의 기억이 머릿속을 때려대기에, 반사적으로 신음이 터져나왔다.

...이런 생각 따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정신 차려요, 제발!"

"..."

정신을 차려야 할 건 너야.

그런 말을 내뱉기에는, 그 눈동자에 담긴 선명한 이성이 마음에 걸렸다.

아아, 그래.

잘못된 건 나일지도 몰라.

아이의 최후를 되새겼다.

엘리아ㅡ 아서의 소꿉친구인 아리엘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 상에 남아있는 광경으로 천천히 떠올렸다.

'마족에게 강제로 발정되어, 억지로 범해진 끝에ㅡ'

그 쾌락과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다.

설마 죽음의 그 순간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을 줄은.

그 기억을 억지로 저 밑에 묻어두고 있다가, 내가 묻어둔 기억을 파내는 것과 동시에 떠올릴 줄이야.

"당신은, 당신은 복수해야만 했어."

선명한 이성에 한 줄기의 혼란이 섞여들었다.

그 혼란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분노, 증오, 절망, 슬픔, 그리고ㅡ

ㅡ그리고, 나에 대한 연민.

하나이자 하나가 아니고, 같지만 같지 않은 존재들.

아리엘과 엘리야.

기억을 묻어내 용서한 사람과 기억을 파내 증오하는 사람.

"인정 못해."

"하지만 아가, 그건 이미 지난 일ㅡ"

"지난 일? 지난 일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요."

자신의 일이 아닌데 무슨 참견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내 일인 것과 동시에 아이의 일이기도 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엘리야가 내 기억을 떠올려낼 수도 없었을 터였다.

괜히 입안이 썼다.

"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생각하자꾸나.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이렇게 떨고 있는데도요?"

"...그래."

내가 떨고 있는게 그때의 기억 때문이 아니라면 거짓말일 터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서를 향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이 기억으로 하여금 엘리야가 아서를 증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나오는 두려움이었지.

내가 아서를 다시금 증오한다는 건,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일단은, 알겠어요."

엘리야가 잔뜩 지친 표정으로 답했다.

대화를 나누느라 추가적으로 체력을 소모한 아이의 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절여져 있는 상태였다.

저대로 가만히 두면 감기에 걸릴 텐데.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덜덜 떨기 시작하는 자그마한 몸을 천천히 안아들었다.

'부디, 일시적인 증오로 끝나기를.'

작은 중얼거림이 마음 전체로 퍼져나갔다.

***

마왕과 용사와의 사랑이라니, 얼마나 애뜻하고 아슬아슬했을까.

아리엘ㅡ 아니, 엘리야가 상상했던 두 사람의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분명 아서가 먼저 사랑 고백을 했겠지.

그저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 끌림을 느껴, 상대가 마왕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끈질기게 구혼을 했을 터였다.

'...어쩔 수 없는 용사로구나.'

사람들이 생각하던 마왕과는 거리가 먼 아리엘이 몇 번 거절하다가 결국 고백을 받아들여 그대로 결혼에 도착하는ㅡ

그런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사랑을 가장 먼저 떠올렸더랬다.

실상은.

'아파, 아파, 아파, 아아아아아악!!!!!'

전혀.

'씨발, 죽어, 죽어버려, 이 빌어먹을 창녀가!!!'

달랐지만.

"우, 우웨에에엑..."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광경에 반사적으로 구역질이 터져나왔다.

저녁에 먹은ㅡ 아니, 아침에 먹은 것마저도 게워낼 정도로 충격적인 광경.

방금 본게, 대체 뭐였지?

악몽이라도 꾼 건가 싶었지만, 생생함의 정도가 겨우 꿈으로 치부할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전부 내 불안감에서 나오는 악몽일 뿐이니까."

'아리엘, 이제 돌아가자.'

나를 향해 상냥한 얼굴로 손을 뻗어대던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까스로 숨을 골랐다.

그래, 아서가 그럴 리가 없지.

방금 전의 그건 전부 지독한 악몽이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진정하자 아리엘.

아니, 엘리야.

"후우, 흐으... 흣?!"

하지만 그 순간.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이 흑색 머리카락에 황금빛 눈동자와 같아진 그 순간ㅡ

불신하면서도, 결국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광경은 실제로 일어났었던 일이라고.

"조금만, 조금만 자자. 자고 일어나면, 전부 괜찮아질 거야."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직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아서는 천절하고, 쑥스러움이 많은 소년이었으니까.

그런 소년이 자신과 같은 이름을 지닌 여인에게 조금 전의 끔찍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선택한 것이 숙면을 통한 도피.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쓰고는 몸을 바짝 웅크렸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어내면 그 괴물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던 아서의 얼굴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잠시만, 잠시만 자고 일어나는 거야.'

악몽이 사라질 때까지만.

...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악몽은 잠을 자고 있을 때만 꾼다는 점일까.

엘리야가 다시 깨어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니,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게 과연 맞는 말일까?

꿈속에서의 그녀는 '거의 모든 것'을 겪었는데.

"헉, 흐으, 흐아아악..."

발작은 그 뒤에 시작되었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과 더불어, 죽기 직전에 겪었던 일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서도 결국 그 놈과 다르지 않았어.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며 나를 범한 마족과, 마족에게 복수하겠다며 마왕을 범한 용사.

"아아아아아아!!!!"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몸을 뒤틀고, 긁고, 꼬집고, 조르고,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꺾어내고, 거품을 물며 경련하는ㅡ

직접 겪지 않았지만, 직접 겪은 것처럼 생생한 감각들이 몸 전체를 마구잡이로 두들겨 왔다.

그 소리를 복도 밖에서 듣고 달려온 아리엘이 아니었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평범한 사람들보다 서늘한 피부였지만, 지금은 식은땀으로 인해 한기를 느껴서 그런지 오히려 마족의 체온이 더 따뜻할 정도였다.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많아도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하겠지.

까무룩 정신을 놓아버릴까, 하는 충동이 마구 치솟았다.

하지만 방금 전과 같은 끔찍한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참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 보고 싶어."

"..."

나를 쓰다듬던 그 부드러움.

나를 보며 웃어주던 그 희미한 미소.

그리고 온기.

그 모든 것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엄마, 엄마, 엄마...

그렇게 한참이고 헐떡이니, 귓가로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여기 있단다, 아가."

"...흑, 흐으."

창백한 온기가 이마에 내려앉았다.

얼굴 전체를 물들은 식은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순수한 애정에, 엘리야가 다시금 깨달았다.

이 사람은, 정말 친절하구나. 하고.

"자, 옷 벗자꾸나."

"...으."

"씻고 자지 않으면 분명 감기에 걸릴 테니까, 조금만 참거라."

몸이 무거웠다.

안 쑤시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아프기도 했고.

자신의 옷을 벗기는 아리엘 씨의 표정만 봐도 스스로의 상태가 얼마나 심한지 정도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분명 엉망진창이겠지, 나.

"추워도 조금만 참거라. 곧 따뜻해질 테니까."

"...네."

부드러운 목소리에 어떻게든 입을 열었지만, 튀어나오는 건 잔뜩 쉰 목소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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