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2 - 아리엘.(5)
등 뒤에 무언가를 숨겼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찌르기 위한 날붙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나 살기를 풀풀 풍기면서 오는데 설마 모를까봐.
그래, 피할 수 있는데 왜 피하지 않았을까.
도망칠 수 있었는데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무서워서?'
아니, 무서울 리가.
목숨의 위협은 이미 수 없이 겪어왔다.
겨우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날붙이 따위를 무서워할 만큼 신경이 예민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어째서일까.
그 아이가 휘두르른 칼날을 그대로 받아들인건ㅡ
"...엄마."
미안해.
그런 짓을 해서 미안해.
나 같은 건, 사랑 받을 가치 따위 존재하지 않는데.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뽑아내 자조했다.
가히 자기파괴적인 중얼거림.
스스로의 가치를 땅에 내버리는 듯한 한탄이 길게 이어져, 세계수의 안을 가득 물들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절대 그런 선택 따위 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증오에 눈이 멀었다고 한들, 그런 식으로 되갚을 생각 따위는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서였다.
아이ㅡ 아리엘의 칼날에 그대로 몸을 맡긴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용서하지 않는게 당연한 거였어."
같은 존재라고는 하지만, 기억이 다른 이상 엄연한 타인.
타인이 아리엘의 기억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를 향해 복수의 손길을 뻗을 정도라면, 대체 자신이 어느 정도의 일을 저지른 건지 조차 감이 안 잡힐 정도였다.
우습구나, 에밀리.
천재 마법사라는 녀석이 이제는 천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니라니.
내 자존심을, 내 모든 것을 이루고 있던 것들은 전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채였다.
"아리엘..."
어쩌면, 반쯤 포기하고 있던 걸지도 몰랐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그리고 미래를.
파도가 몰아치면 몰아치는대로 휘말려 살아가는 것을 은연 중에 바라고 있던 것이었다.
"에밀리, 지금은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레이나."
"지금은 회복에만 신경 써라. 어머니께서 걱정 하시니."
그래, 그렇지.
예전에 보아왔던 말투로 돌아온 레이나를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분명 깊게 찔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살아있구나.
천천히 스며드는 생명력의 격류에 상처가 점점 아물기 시작했다.
하긴, 몸 상태가 그 지경이 된 아리엘을 되살려낼 정도였으니 이 정도 쯤은 쉽겠지.
"그 아이를 원망하나?"
"...나한테도 귀여운 말투 써주면 말해줄게."
"...원망해?"
아무래도 존댓말까지는 무리인 듯 싶었다.
하긴, 저렇게 생겼어도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수백 살 산 녀석이니까.
"아얏..."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질문에나 대답해."
머리를 쥐어박혔다.
저 자그마한 주먹이 어찌나 매운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그러니까, 질문이 뭐였더라.
그 아이ㅡ 아리엘을 원망하느냐고?
"원망 안 해."
"그렇구나."
"..."
"..."
짧은 문답 뒤에는 그저 침묵만이 오갔다.
딱히 불편하지만도 않은 것이, 애초에 여정을 같이 떠날 때도 단 둘이 있으면 이런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편안한 침묵이라는 느낌일까.
...레이나가 내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고 있다는게 조금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서도.
"많이 변했네. 너도, 나도."
"전부 변했지."
아리엘, 그녀를 만나고 많은 것들이 변화했더랬다.
그것을 과연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부를까.
나도, 레이나도, 엘리도, 스승님도 전부 아리엘의 영향을 받았지.
가장 힘들었을 존재가, 자신을 힘들게 만든 이들을 변화시킨다.
다른 의미로 왕의 자질을 지닌 존재였다. 그녀의 어머니라는 사람은.
"그나저나 너, 그 나이 먹고 마마~ 같은 소리나 하는거 부끄럽지 않아?"
"조용히 해, 에밀리."
"솔직히 귀엽기는 했어."
"..."
"...뭐야 그 표정?"
기껏 사람이 칭찬 해줬는데 그런 썩은 표정이나 지어보이고!
아, 왜 그러는지 알겠다.
분명 '귀엽다는 말을 듣기에는 한참이나 지난 나이인데.' 같은 생각이나 했겠지.
그래도 뭐, 딱히 거짓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옛날보다 훨씬 더 귀염성 있어진 것도 사실이고.
"미안한데, 너는 내 취향이 아니야."
"...취향이 아니라니ㅡ"
"..."
"그런거 아니거든?! 흑..."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가 곧바로 후회했다.
찌, 찔린 곳이 아파...
콜록콜록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상처 부위를 붙잡고 있으니 머리 위에서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는 장난도 거의 안 치던 녀석이 갑자기 무슨 일이래.
무어라 한마디 하려다가, 꺄르르 웃어대는 모습을 보니 그럴 마음이 쏙 사라졌다.
"제대로 낫지도 않았으면서 흥분하기는..."
"...너 때문이잖아, 망할 엘프."
한숨을 푹 내쉬며 몸에 들어가 있는 힘을 쭉 풀어냈다.
일단은 쉬자.
갑작스럽게 몸이 회복되어서 그런지 졸음이 잔뜩 쏟아졌다.
굳이 정신을 붙잡고 있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그대로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다.
'믿고 있을게, 엄마.'
당신이라면 분명, 그 아이를 용서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으니까.
***
"찾았다."
나와 시선을 마주한 아이가 곧바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내가 붙잡는 쪽이 훨씬 더 빨랐다.
역시 소꿉친구여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 어디로 갔을지를 잘 알고 있구나.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서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지었다.
여전히 미묘한 눈빛이기는 했지만, 딱히 나쁜 감정을 가지거나 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문제라고 한다면 엘리야 쪽인데ㅡ'
"아가, 고개 들어보렴."
엘리야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분명 자기 스스로도 잘못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 거라면 상관 없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건 말로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아가."
"...왜, 저를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건가요?"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딸을 찔렀는데.
아, 혹시 살아남았나요?
멍하니 중얼거리는 모습이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야, 엘리야.
나는 너를 포기할 생각이 없단다.
"내 몸에서 태어난, 내 아이니까. 그리고, 충분히 반성하고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요."
아이의 말에는 묘한 고집마저 잠들어 있는 채였다.
그렇지만 얼마 전에 보았던 그 독기나 살의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당장은 용서하지 않아도 좋단다. 나도 그랬으니까. 응, 당연하지."
"..."
아이를 찔렀으니 이제 용서 해주렴,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에밀리를 용서하는데 걸린 시간이 있으니, 최소한 그 시간 만큼은 엘리야에게 여유로 주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다지 마음이 넓지 않아서 에밀리를 용서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에 내 잘못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미안하구나, 엘리야."
"왜, 아리엘 씨가 사과를ㅡ"
"내가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더라면, 네가 그런 나쁜 기억들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
아서나 다른 일행들과 좋은 시작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는 아이를 탓할 수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결국 전부 내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내가 가진 기억 때문에 이렇게 된거니, 일정 부분은 책임을 져야겠지.
"미안하구나."
"사과, 하지 마세요. 잘못한 건 저인데 왜 아리엘 씨가 사과하시는 건데요?"
"네 잘못으로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단순한 이유였다.
엘리야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원래 아이의 잘못은 부모의 잘못인 법이라고 했다.
조금 특이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내 딸이니 분명 내 잘못도 있었다.
"자, 이리로 오려무나. 집으로 돌아가야지."
"...네."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다행이다. 이 이상으로 엇나가지 않아서.
'하지만ㅡ'
의문이 드는게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엘리야가 태어난 것도, 엘리야와 내가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것도 그렇다고 치는데, 대체 어떻게 이정도로 기억을 빨리 되찾은 걸까.
아니, 이걸 기억을 되찾았다고 볼 수가 있나?
'기억을 되찾은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
물론 '아리엘'이라는 존재 자체가 특별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기는 했다.
그저, 이 기묘한 불안감 때문에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는 것일 뿐이었지.
그리고, 이런 간섭이 가능한 이는 이 세상에 있어서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여신.
나의 숙적이자, 지금은 기억을 잃고 아이가 된 존재.
그런데 그런 존재가 사실은 기억을 되찾은 상태라면?
여전히 기억을 잃은 척, 우리들을 속이고 있었던 거라면?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막 아이를 의심하거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추측.
마음 같아서는 별일 아니라며 그냥 넘어가고 싶었지만, 완전히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가 사고를 당한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될 테니까.
"아서, 엘리야도 찾았으니 일단 돌아가자꾸나."
"...그래."
"너무 기 죽어있지 말고. 나는 전부 용서 했으니 말이다."
"..."
뭐, 그래도 일단은 의기소침해진 아서를 위로하는 쪽이 더 우선이었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