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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64화 (264/342)

Chapter 264 - 그냥, 미움 받고 싶지 않아서.(1)

아리엘에게서 아리엘이ㅡ 아니, 엘리야가 태어났을 때 느꼈던 감정은 기쁨보다는 오히려 당혹스러움에 가까웠다.

어째서 그렇게 놀랐던 걸까.

무언가 콕 집어낼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다.

나에게 있어서 아리엘이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엘리야는 어떤 존재인가.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

결국 자신이 선택한 건 아리엘이었다. 엘리야가 아니라.

만약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이 드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심지어 아리엘과 이어진 과정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 불안감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그런 거야?"

그리고 그 입에서 원망의 목소리가 튀어나올 즈음에는 더더욱.

아니, 그때는 불안보다는 포기를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설마 엘리야가 아리엘의 기억을 떠올리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엘리야는, 아리엘이기도 하니까.'

말이 조금 이상했지만, 엘리야는 엘리야이면서 아리엘이기도 했다.

그녀가 나를 증오한다면 아리엘이 증오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렇기에 오롯이 자신이 전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원한다면, 그 목숨을 내놓아도 좋을 정도로.

"...미안해."

"내가 듣고 싶은 건 사과가 아니라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야."

그런 직접적인 물음에도 차마 답할 수 없었다.

여신의 간섭으로 인해 그런 행동을 했어.

그녀에게 어떻게 그딴 망언을 지껄일 수 있을까.

하물며 타인의 입으로 전달되는 것도 아닌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한다고?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분명 어처구니 없는 변명 따위에 그칠 터였다.

"아서, 어서 말해줘."

"미안,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솔직히 말하자면, 아리엘과 이런 관계로 발전한 것만으로도 일종의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자신이 아리엘이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아니, 버티는 것을 넘어서 용서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니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너무 쓰레기 같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일어나 볼게, 아리엘. 아니, 엘리야."

"..."

결국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건 자신이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대체 어떻게 자기 변호를 한단 말인가.

그런 일 따위,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는 이상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엘리야의 표정을 보는 것이 두려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제 자신의 곁에 남은 건 북부 특유의 차가운 공기와, 끝을 알 수 없는 고독감 뿐이었다.

"자네, 아주 표정이 죽상이로구만."

"...고르돌 씨."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북부의 차가운 바람에 머릿속이 꽝꽝 얼어버리기 직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르돌.

언젠가 별안간 북부에 찾아와서는 아내, 그리고 딸과 함께 정착한 드워프이자 자신의 동료였던 이였다.

"자, 이럴 때는 술이지 술!"

때를 잘 맞췄다고 해야 할까.

제 등을 두드리며 술병을 꺼내드는 고르돌에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잘 마시지는 않지만, 권해오는 술을 거절하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그것이 기분이 울적할 때 들어가는 술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나?"

"...고르돌 씨는 무슨 일이 있으셨는데요?"

"나야 뭐ㅡ 음, 그렇지. 아내에게 혼났지."

허허로이 웃으며 말하는 그의 뺨은 지금 보니 조금 부풀어 오른 것 같기도 했다.

설마 맞으신 건가?

그러고 보면 고르돌 씨의 아내 분은 지금 신체 나이가 어떻게ㅡ

음, 역시 어머니는 강한 법이구나.

"그래, 세계수의 아래에서 마시는 건 어떤가? 그곳이 가장 따뜻하기도 하고, 운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리엘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녀도 끼워서 마시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

정말 영문을 모른다는 듯이 묻는다.

그래, 그랬지.

고르돌 씨는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모르시겠구나.

작게 한숨을 토해내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세계수에 아리엘이 있다면ㅡ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거겠지.

"아리엘과 싸웠나?"

"그건 아닙니다만..."

"그러면 뺄 필요가 뭐 있나? 어서 가지."

사정을 설명해야 할까 싶었지만 관뒀다.

이야기 정도는 술을 마시며 해도 되겠지.

어차피 알게 될 내용이라면 차라리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걷기를 잠시.

"뭐야, 네가 여기는 왜 왔어?"

"...에밀리?"

"너야말로 여기에 왜 있냐는 듯한 표정이네, 기분 나쁘게."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은 에밀리가 자신을 반겨주었다.

세계수에 등을 기댄 채로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딱 읽기 좋은 부분에서 자신들이 나타난 듯 싶었다.

어쩌면 그냥 본인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기도 했고.

"나는 그, 뭐야. 아리엘이 우겨서 여기에 있는 거야. 아직 몸이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얼마나 성화던지..."

"엄마 말을 잘 듣는 딸이로구만."

"...닥쳐 난쟁이."

"지금은 네 키도 만만치 않게 작다만."

고르돌 씨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을 받아주는 사람처럼 그저 껄껄 웃을 뿐이었지.

그런 취급을 에밀리도 깨달았는지 이를 득득 갈며 노려봤지만, 어린 아이의 외형으로 노려봐도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어서 자라서 원래의 키를 되찾겠다고 했지만, 최근 그녀의 성장 속도를 보면 거의 멈췄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기에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지 싶기도 했다.

"아무튼, 시끄럽게 하지 말고 꺼져. 책 읽어야 하니까."

"미안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은 쉽게 비켜줄 수가 없을 것 같거든."

고르돌 씨가 신경질을 부리는 에밀리의 눈앞에 술병을 달랑달랑 흔들어 보였다.

누가 봐도 놀리는 모양새였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많은 심력을 소모해서 그런지 지금은 술을 잔뜩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미안, 에밀리.

"...하아, 정말이지. 진짜 마음에 안 드는 드워프라니까."

"뭐, 원한다면 자네 몫도 줄 수 있네만."

"내가 환자인 건 잊은 거야?"

"그래서, 안 마실 건가?"

"..."

어린애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하지 마시라고요, 고르돌 씨.

반사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갈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에밀리는 어린애가 아니었지.

또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입을 놀리다가 큰일 날뻔 했다.

"줘."

"하하,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지!"

들고 있던 책을 덮고는 슬쩍 다가오는 에밀리에 고르돌 씨가 껄껄 웃어보였다.

이러니까 옛날 생각이 나네.

그때도 고르돌 씨가 먼저 도발을 해서 에밀리가 같이 술을 마시는 모양새였는데.

고르돌 씨는 원래부터 주량이 강했고, 에밀리는 마법으로 체내의 알코올을 해독하면서 먹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마법을 못 쓰지 않나?'

심지어 몸도 어린 아이인 채고.

머릿속에 잠시 그런 의문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이내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최근 들어서 에밀리의 이미지가 작은 소녀로 바뀌기는 했지만, 이렇게 술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옛날의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진짜 애도 아니고 알아서 조절할 테니 상관 없겠지.

"자, 그러면 마셔 보자고! 첫 잔은 한번에 다 마시는거 다들 알고 있지?"

"하, 당연하지."

술잔 가득 따라진 투명한 액체를 순식간에 들이킨다.

도수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의 뜨거움만 놓고 보자면 그 정도가 상당했다.0

어디서 또 이런 독한 술을 가지고 오신 거지.

텅 빈 술잔을 잠시 내려다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은 생각 같은 건 접어두자.

"켁, 콜록, 헥...?! 대, 대체 무슨 술을 가져온 거야, 이 미친 수염쟁이가!!"

"자네도 예전에 마셔본 술인데? 이런, 몸이 어려져서 그런지 아무래도 속에서 술이 잘 받지 않는 모양이로구만!"

"큿! 아니, 거든?! 우윽..."

반쯤 남은 술을 마구 노려보다가 결국 전부 마셔버리는 에밀리에 아주 약간이지만 걱정이 들었다.

저러다가 진짜 상처가 덧나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에밀리를 향한 직접적인 걱정이 아닌, 에밀리가 잘못 되면 돌아올 아리엘의 타박이 더 우선이었지만서도.

'뭐, 세계수ㅡ 님도 계시니까 상관 없겠지.'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곳이 세계수의 바로 밑인 이상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마시고 보자.

"자자, 더 따라줄 테니 마시게, 마셔!"

"...나는, 조금만 쉬었다가 마실게."

에밀리는 아무래도 한 잔이 한계인 듯 싶었다.

어떻게든 술을 삼키려고 노력하지만, 도수가 상당해서 그런지 몸이 제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고르돌 씨와 술잔을 짠, 하고 맞대고는 그대로 술잔을 비웠다.

에밀리는 그런 우리를 보며 이를 잔뜩 갈아댔지만, 그런다고 들어가지 않는 술이 더 들어가게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말 안 해줄 건가? 이 정도 들어갔으면 말해줄 때도 된 것 같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이러는지."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스로도 잘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스스로가 아리엘을 저버리게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이 들었더랬다.

그 다음에는 엘리야가 자신에게 뿜어내는 증오 때문에 불안해 했고.

지금은ㅡ 지금은?

"아무래도, 아리엘에게 미움 받을까봐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너를? 푸하,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네."

나름 진지하게 말했는데, 옆에서 잔뜩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연하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은 에밀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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