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2 - 꿈에서 찾아온 그대.(2)
작은 할리벨을 더 오래 보고 싶다고 빌어서 그런지, 할리벨은 그다지 자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기인 채.
처음에 생각했던 하루 이틀 정도보다 훨씬 긴 순간이었다.
...이렇게 되면 전부 자라는데까지 꽤나 걸릴 것 같은 걸.
"자, 엄마 보자꾸나."
"꺄아, 꺄하!!"
"...후흐."
진심으로 신이 나서 이런 소리를 내는 건지, 아니면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ㅡ
응, 확실히 기쁘기는 하네.
진짜 아기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로 아기의 모습을 오랫동안 하던 아이는 없었으니 말이지.
"아리엘, 들어가도 되겠느냐?"
"들어 오렴, 미코."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금색 털뭉치가 총총 걸어왔다.
생각 해보면 미코도 하나도 안 자랐지.
어쩌면 저게 다 자란 걸지도 몰랐다.
여신의 힘을 받아서 몸이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었던거지, 실제로는 저게 진짜 성인 모습ㅡ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전혀 아니란다."
"뭐, 한 번 정도는 그냥 지나가 주도록 하마."
역시 수인의 감은 엄청나다니까.
갸오, 하는 느낌으로 조금 위협해대는 미코의 정수리를 슥슥 쓸어줬다.
이런 말을 하면 비교하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역시 아이들 중에서는 최고인걸~
물론 랴뇨리가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미코의 머리카락이 너무 과도할 정도로 훌륭했을 뿐이지.
"그나저나, 아이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내가 마음에 든게 아니라, 이 녀석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거다."
미코의 커다란 꼬리에 들러붙은 아이를 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딱히 떨어지지 않는걸 보면 여신이 미코를 좋아했나 싶기도 하고.
언젠가 다시 의식이 돌아온다면 한번 더 물어보는 걸로 할까.
아무튼, 미코가 이곳으로 온 건 따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예를 들자면ㅡ
"대체 어디를 가시는 건가요!"
"뭣, 어떻게 따라온 게냐?!"
"어차피 당신이 갈 곳은 정해져 있지 않나요?"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자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문 안으로 툭 들어왔다.
엘리야.
최근 들어서 미코나 여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엘리야는 감시라는 명목으로 하루 종일 아이를 따라다녔다.
물론 아이는 언제나 미코에게 붙어있는 채라서,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미코 또한 따라다니게 되었다.
물론 미코는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은 엘리야에게 스토킹 당한다는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싶었지만서도.
"미코, 엘리야도 나쁜 목적으로 너를 따라다니는게 아니니 조금 이해 해주거라."
"아무리 나쁜 목적이 아니라고는 해도, 내 정신 상태에 좋지 않단 말이다! 자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보면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확실히 그런 거라면 깜짝 놀랄 법도 하겠네.
"...엘리야?"
"그, 그건..."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자, 더듬거리며 내 시선을 슬쩍 피한다.
본인도 잘못한 건 알고 있는 모양인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딱히 혼내려고 이름을 부른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진정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귀여워서 그만."
"그렇다는구나."
"..."
미코의 표정은 딱 그거였다.
너무도 어처구니 없어서 무어라 입을 열 수 없다는 듯한, 그런.
확실히 조금 예상치 못한 답변이기는 했다.
여신과 계속 붙어있어서 사실은 여신의 편인 줄 알았다느니 하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사실은 너무 귀여워서 계속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니.
"그, 그렇지만 귀나 꼬리 같은 건 함부로 만지는게 아니잖아요?"
"...이 녀석 때문에 나를 따라다닌 건 맞는 거지?"
"맞아요! 맞지만! 그거랑 그거는 다른 거라구요?"
열성적으로 답변하는 엘리야의 눈에는 기묘한 열기가 잠들어 있었다.
비록 자신이 여신의 감시를 위해 미코를 따라다니고는 있다고 해도, 미코를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의사 표명.
간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에 슬쩍 미코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 이렇게나 너를 좋아하는 아이를 피해다니다니. 조금 너무하지 않나?"
"이런 관심은 필요 없다!"
미코가 화를 내자 탐스러운 황금빛 꼬리가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에 미코의 꼬리에 매달려 있던 아이 또한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용케 떨어지지 않고 버텨내었다.
이렇게 보면 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가만히 미코의 꼬리를 붙잡고 있는 아이를 유심히 지켜봤지만, 저번과 같은 느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너와 같은 이유 때문에 따라다니는거니 너무 나무라지는 말고."
"...밤에 몰래 지켜보지만 않는다면 상관 없다."
"앞으로 들키지 않고 따라다닐게요!"
"그런 뜻이 아니지 않느냐!!"
엘리야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미코의 반응을 보고 즐기는 것 같았다.
설마 이런 면까지 닮을 줄이야.
미코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었지만, 아무래도 미코를 놀릴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난 듯 싶었다.
잔뜩 열 받은 여우 수인의 머리카락이 퐁퐁 솟아났다.
물론 그 귀여운 위협을 받고 무서워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지만서도.
"자, 그러지 말고 다들 이리 오려무나."
서로 서이좋게 지내는 모습은 좋았지만, 지금은 조용히 하는 편이 좋았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내 품 안에 안긴 아기ㅡ 할리벨 때문이었다.
아무리 정신은 성인이라고 해도 신체가 아기라서 그런지 그녀는 하루 종일 내 품에 안겨서 자고 깨기를 반복했다.
다행인 점은 깬 다음 앙앙 울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기의 모습을 가장 오랫동안 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아기답지 않은 아기였다.
물론 배가 고프다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잔뜩 칭얼거렸지만 말이다.
"귀엽구나. 몽마는 어렸을 때도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 있는 건가?"
"아니, 그냥 할리벨이 특출나게 귀여울 뿐이다."
"...팔불출 같으니."
그렇지만, 이렇게 귀여운 아기가 있으면 팔불출이 될 수밖에 없잖아?
꾹 감겨있는 자그마한 눈, 그리고 통통하게 솟아오른 볼까지.
사랑해주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존재였다.
'어쩌면 미코 말대로 몽마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이들을 홀리는 능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귀여움이 솟아오른다고나 할까.
내 부름에 슬쩍 다가온 엘리야가 품에 안긴 할리벨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때, 귀엽지 않니?"
"엄청 귀여워요..."
"칭찬 고맙구나. 아기도 들으면 정말 기뻐했을 거야."
신기한 듯 아기를 바라보다가도, 손가락을 꼼질거린다.
혹시 만져보고 싶은 걸까.
아무래도 이렇게나 아기를 보는 건 또 처음인 듯 싶었다.
으응, 확실히 엘리야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이 정도로 작은 아기는 본 적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이면 괜찮을 거야."
"네엣..."
조심조심.
혹시라도 아기가 깰까봐 아주 느린 속도로 팔을 뻗는 모습이 꽤나 깜찍했다.
어라, 이렇게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칭찬하는게 되는 건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우후후, 웃음을 짓자 엘리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저도 아이를 가지고 싶어졌어요."
"아직은 어리니까 천천히 하려무나. 그리고, 아기라면 얼마든지 볼 수 있을 테니까."
"...네, 아리엘 씨."
그렇게 한참이고 할리벨을 바라보던 엘리야가 작게 하품을 했다.
미코의 이야기로는 며칠 동안 쉴 틈 없이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서 피로가 쌓인 듯 싶었다.
마침 나도 잘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같이 자도록 할까.
"같이 자지 않으련?"
"조금만, 요."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는 내 곁의 자리를 토닥토닥 두들기자, 아이가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그대로 몸을 뉘였다.
그런 우리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미코에게도 마찬가지로 손을 흔드니, 한숨을 폭 내쉬면서도 이쪽으로 슬쩍 다가왔다.
겉으로는 싫은 척 하면서도 몸은 욕망에 솔직하구나.
왼쪽에 엘리야, 오른쪽에 미코와 아이를 둔 채로 누우니 양쪽에서 뜨끈한 온기가 느껴졌다.
"따뜻하구나."
"아리엘 씨는 시원하시네요."
"춥지는 않고?"
"네, 딱 기분 좋은 만큼의 시원함이에요."
그렇게 말해준다면 고마웠다.
이 몸뚱이의 낮은 체온이 다른 사람들에게 온기가 아닌 한기를 주지 않을까 매일마다 걱정하고 있었는데, 기분 좋을 정도의 시원함을 준다는 말을 들으니 한시름 놓은 것만 같았다.
솔직히 내 체온이 기분 좋다는 말은 아서가 매일 해주는데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고나 할까.
"으응, 확실히 아리엘을 안고 자면 시원하지."
"수인은 체온이 높으니까 특히 더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익숙한 움직임으로 내 옆구리를 차지한 미코가 제 꼬리를 슬쩍 움직여 우리 위로 이불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셋이 자는 건 처음이구나.
정확히 말하자면 할리벨까지 넷ㅡ 아니, 아이까지 합하면 다섯이네.
아무튼, 잠을 자는 것도 함께 자니 더더욱 행복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다들 잘 자려무나."
"아리엘 씨도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거라, 아리엘. 스토커 꼬마도."
"......스토커 아니거든요."
마지막에 조금의 말다툼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은 모두 다 같이 한 침대 안에서 잠들 수 있었다.
부디, 좋은 꿈 꿀 수 있기를.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