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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76화 (276/342)

Chapter 276 - 단란한 가족.(3)

마족들ㅡ 내 동족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인간들을 향한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있을까?

아니면 체념한 채 살아가고 있을까.

기대라기 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아직까지 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여기구나."

마을의 어귀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

낡았다거나 열악해 보이지 않는 건물의 모습에 동족들이 그렇게 박한 대우를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내가 들어가도 되는 걸까."

"마왕인데 못 들어갈 필요가 있나요?"

작은 중얼거림에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듯이 말하는 모습에 조금 자신감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염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잊고 있던ㅡ 정확히 말하자면 버려두고 있던 내가 어떻게 감히.

하지만 이대로 멈춰만 있기에는 내가 저지른 무관심이 너무도 컸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해.

나의 동족들을 위한 일들을.

똑똑.

"혹시, 들어가도 되겠느냐?"

마족들을 모아둔 곳이라서 감시라도 있을 줄 았았지만, 딱히 감시 같은 건 없었다.

건물 안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인기척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냥 인간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집이라고 만 생각했을 터였다.

"누구시죠?"

"나는, 그..."

문을 두드리고 잠시,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말을 더듬었다.

나를 무어라고 소개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는게 그 이유였다.

마왕이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동족? 아니면 이름을 말해야 하나?

그렇게 머뭇거리기를 잠시, 결국 먼저 열지 못한 내 앞으로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

"...만나서 반갑다고 해야할지, 모르겠구나. 그, 으음."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여인.

한쪽 뿔이 잘려있는 마족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슬쩍 고개를 피해버리고 말았다.

...눈을 못 마주치겠어.

나는 인간들에게 있어서도 죄인이었지만, 동족들에게 있어서도 죄인이었으니까.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전부 들어줄 각오가 있었다.

"...마왕님?"

"..."

"마왕님!"

마왕님? 마왕님이라고? 마왕님께서 오셨다고?

마족 여자의 외침과 함께, 건물 안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혹감, 혹은 감격.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잔뜩 섞인 음성에 아이와 맞잡은 손에 힘을 꾹 주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아이의 속삭임에 무어라 답하기 직전.

순식간에 늘어난 눈동자에 반사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눈에 하나 같이 눈물이 맺혀있다는게 문제였지.

"다, 다들 왜 그런 표정을ㅡ"

"마왕님, 무사하셔서 다행이십니다."

"마왕님께서 변이라도 당하신 줄 알고 저희는..."

훌쩍임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해, 결국 눈물 바다가 되었다.

이래서야 내가 울린거나 다름이 없구나.

아니, 그냥 내가 울린게 맞겠지.

어느새 대성통곡하기 시작하는 동족들을 놓아둘 수가 없어서, 가장 앞에 있는 순서대로 한 번씩 꽉 안아주었다.

"다들 고생하고 있었을 텐데 나 혼자면 편히 지낸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구나."

"괜찮, 괜찮습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애초에 저희가 마왕님의 말씀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 따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마왕님께서 그런 수모를 겪지 않으셔도 되셨을 텐데..."

"..."

한 순간이지만,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니까 방금 말은 대체ㅡ

읏, 제길.

"마왕님?!"

"...미안하구나. 잠시, 잠시 현기증이 나서..."

뿔이 잘려나간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잊고 있던 기억이 갑작스럽게 떠올라서 그런 것 뿐이었지.

'...내가, 저들의 마법을 막지 않고 가만히 두어야 하는가?'

'동족들의 뜻입니다, 마왕이시여. 아이들이 살해당한 일을 더 이상은 가만히 둘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대들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구나.'

우리들은, 싸우지 않을 수 있었다.

인간들이 시전하는 대규모의 소환 마법은 내 손으로 충분히 차단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족들의 반대와 간청으로 인해 그러지 않았다.

마왕이란 마족들 위에 군림하는 자였지만, 동시에 그들의 뜻을 헤아리는 자.

동족들의 총의가 인간들을 향한 복수였기에 그 부름에 응했던 것 뿐이었다.

"내가 끝까지 말렸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전부 저희의 잘못입니다, 마왕님. 부디 저희들에게 엄벌을ㅡ"

"벌이라면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받지 않았느냐. 애초에 그것마저도 받지 않았어야할 벌이었지만 말이다."

바닥에 머리를 들이박는 이들을 서둘어 일으켜 세웠다.

진짜 잘못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내 손을 잡고 있는 아이 쪽이겠지만, 이미 용서한 마당에 또 잘못을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나에게 용서 받은 것과 동족들에게 용서 받는 건 또 다른 일이겠지.

물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었지만.

"엘리 님이나 메이아에게는 가끔씩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왕님."

"하지만 이렇게까지 약해지셨을 줄은..."

지금의 나는 평범한 인간만도 못하니까.

하지만 과거에 가지고 있던 강함은 딱히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힘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으니 후회하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영원토록 이어질지도 몰랐던 증오의 고리를 끊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었느냐. 여전히 인간들을 증오하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 게."

"응? 왜 그러느냐?"

슬쩍 슬쩍 내 눈치를 보는 마족들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 반응은 여전히 인간들을 증오하고 있어서 나오는 반응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동족들의 무리가 주루룩 갈라졌다.

"...안에 누가 있느냐?"

"따, 딱히 잡아두거나 한 건 아닙니다."

"누구를?"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못 알아듣는데.

아무래도 내가 눈치가 별로 없어서 말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난 길을 주욱 따라 걸으니, 단정하게 정리된 방 안에 여러가지 주전부리들이 잔뜩 쌓여있는 방이 나왔다.

"안녕 마마."

"...케이?"

그리고 그 방 안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케이.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들다 했는데 설마 여기에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한 얼굴의 등장에 잔뜩 당황하자, 푹신한 방석 위에 앉아있던 케이가 읏차,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있었구나."

"응, 마족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서 왔어."

"...장하구나."

"그렇지? 그렇지?"

가깝게 다가온 아이의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었다.

장하다, 장해.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케이가 내 몸을 꽉 안아왔다.

인간 아이 특유의 뜻뜻한 체온에 몸이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족들과 함께 있는 건, 괜찮니?"

"괜찮아. 다들 좋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오히려 나한테 쩔쩔 매더라니까?"

아무래도 외형이 애라서 그런 것 같아.

속삭이듯이 덧붙여지는 한 마디에 조금 이해가 갔다.

확실히, 어린 아이들에게 약할 수밖에 없겠지.

저들이 복수를 결심한 것도 결국 마족 아이들이 인간들에게 소환되어 살해된 것 때문이었으니.

"...아무래도, 내가 마족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구나."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절대 용서하지 안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케이가 이렇게까지 변화한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 이렇게 만난 김에 산책이라도 같이 할까.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케이는 최근 들어 별로 보지 못했으니 말이야.

"귀여워라~"

"마왕님을 쏙 빼닮았네~"

"이름이 어떻게 되니? 나이는?"

"이곳에서 낳으신 것 같으니까 나이는 얼마 안 될 텐데..."

그렇게 케이와 함께 방 밖으로 나오니, 엘이 다른 마족들에게 둘러쌓여서는 아주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지고, 볼을 붙잡히고, 잔뜩 귀여움을 받고.

당황했다는 표정이 여실히 드러난 채였지만 딱히 손길을 피하거나 쳐내지는 않고 있었다.

착하네, 착해.

"아리엘!"

"그래, 아가."

"저를 혼자 두고 가지 말라구요!"

내가 보이자마자 도도도 달려와 안기는데, 그 모습이 참 외형 그대로의 어린아이처럼 보여서 베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딱히 나쁜 짓을 당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봐, 오히려 잔뜩 귀여움 받았는데?

조금 헝크러져 있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단정히 정리해주니, 입술을 비죽 내밀어왔다.

"어때, 좋은 마족들이지 않느냐."

네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그런 내 말에 아이가 입을 오물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지금은 참겠다는 제스쳐에, 그 자그마한 볼에 살짝 뽀뽀를 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나와 엘과 케이. 그리고 동족들.

"그러면, 다음에 또 찾아오도록 하마."

"부디 건강하게 지내시길."

"만수무강 하옵소서, 마왕님."

"만수무강 하옵소서..."

만날 때는 눈물이었지만, 헤어질 때는 웃음으로 마무리 되었다.

내 품에 안긴 엘을 보며 꼭 다시 찾아오라고 말하는게 어찌나 귀엽던지.

엘도 마찬가지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마족들과의 만남이 생각보다는 별로 나쁘지 않은 듯 싶었다.

"뭐야, 기억을 되찾은 거였어?"

"..."

...케이와의 만남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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