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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77화 (277/342)

Chapter 277 - 단란한 가족.(4)

나에게 있어서 마족이란 무엇일까.

언젠가, 마왕을 향한 증오를 내려두었을 때부터 쭉 하던 생각이었다.

정말 이 세상에는 착한 마족도 있는 걸까.

지금까지 자신이 만난 마족들만 그렇게 군 것인 걸까?

머리가 복잡하고, 또 어지러웠다.

"엘리, 마족과 인간 사이의 관계 개선은 잘 되고 있어?"

"생각보다는요? 아무래도 성녀인 경력 덕분에 사람들이 말을 잘 경청해주는 것 같아요."

"마족들은?"

"마족들은 뭐..."

제 머리 위에 솟아오른 뿔을 톡톡 두드린 엘리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아무리 전직 성녀라고는 하지만 머리 위에 자신들과 같은 뿔이 솟아오른 이상 동족으로 인식하는 듯 싶었다.

확실히, 듣던 것과 다르게 동족애 하나는 대단했지.

언젠가 보았던 광경을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마족들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건가요? 평소에는 신경도 쓰시지 않으셨으면서."

"...그냥. 이제는 슬슬 알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조금은 이르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증오를 버려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증오를 버려낸 것이 용서를 했다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용서하려고 하는 건 다름 아닌 아리엘 때문이었다.

여리고 인자한 나의 어머니.

동시에, 마족들의 왕인 존재.

"그런 아리엘이 왕을 할 정도면, 사실은 착한 녀석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확실히, 마냥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기는 하죠. 대부분 호전적인 성향인 건 사실이기도 하고요."

신체가 튼튼해서 그런지 서로 몸으로 부딪히는걸 선호하는 모양인 것 같더라고요.

이어붙이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지간한 충격에도 아무렇지 않은 몸뚱이를 가지고 있다면 조금 격하게 몸을 부딪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자신에게는 절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게 그 마음이었지만.

"한 번 보러 갈래요?"

"...지금?"

"네. 이런 건 미루면 미룰 수록 계속 미루게 되는 법이랍니다."

조금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엘리의 말이 맞았다.

미루기만 해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가 슬쩍 손을 뻗어왔다.

"자, 가시죠."

"이렇게 낮은 시점에서 네 손을 잡는 건 또 처음이네."

"그렇네요. 그래도 뭐, 나쁘지 않죠?"

새삼스러움에 짧은 중얼거림을 내뱉자, 상대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새겨졌다.

...어디서 많이 본 미소인데.

익숙한 기시감에 생각하기를 잠시.

그것이 아리엘이 보여주던 것과 꼭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빙긋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정말이지, 아리엘을 엄청나게 좋아하는구나."

"티 났나요?"

"티는 항상 났지. 뭐, 이 정도로 닮아졌을 줄 은 몰랐지만."

"...닮았나요? 저랑 아리엘 씨가?"

색의 조합만 따진다면 아리엘보다 아서 쪽에 더 가깝겠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나 인상을 보자면 아리엘 쪽을 훨씬 닮아있는 상태였다.

상대를 보며 희미하게 웃어보이는 모습이라던지, 대하는 태도라던지 등등.

타박타박 걸으며 그런 것들을 짚어주자, 엘리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이곳이에요."

"..."

그리고 그렇게 걷기를 잠시.

어느새 마을 어귀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에 도착해,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건가 싶었지만, 건물 안쪽에서 희미하게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족의 기척이 이 정도로 희미하게 느껴질 줄이야.

아무래도 대륙 이곳 저곳을 끌려다니며 여러모로 고생을 조금 한 듯 싶었다.

똑똑.

"저 왔어요, 다들."

겁도 없이 문을 두드리는 엘리의 행동에 조금 기겁했지만, 착한 마족들이라는 말을 떠올리고는 도망치려는 걸음을 가까스로 멈춰냈다.

믿어야지, 어쩌겠어.

어차피 다 끝난 마당에 또 싸워도 의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테고.

아무튼,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엘리 님 오셨습ㅡ 인간...!"

"진정, 진정하세요!"

엘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잠시, 내 얼굴을 보자마자 기겁하는 마족의 모습에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애초에 인간인 이상 환영 받을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이건 나를 혐오해서 나오는 표정이 아니라ㅡ'

마치 나를 두려워하는 듯한, 그런ㅡ

"착한 아이니까 너무 겁먹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역시 이런 작은 아이까지 나쁜 인간이지는 않겠죠?"

"애초에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니까요. 마족 중에서도 나쁜 마족만 있는게 아닌 것처럼요."

그제서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마족들 또한 인간과 별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낄 이유도 없었겠지.

그야, 이 정도 크기의 어린아이라면 마족의 손으로 쉽게 목을 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음, 안녕."

"케이."

"...왜?"

"인사를 할 때는 공손하게 해야죠. 그게 기본적인 예의라구요?"

"도적에게 예의를 찾는 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금까지 예의라고는 밥상 앞에서 보여주는 예의 밖에 없었는데.

속으로 불퉁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이 마족의 얼굴을 봐서라도 넘어가 주는 거야.

같은 인간이었다면 모를까, 초면인 마족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면 예의를 지키는 편이 낫겠지.

"안녕하세요."

"...그래, 만나서 반갑구나."

반쯤 억지로 한 인사 치고는 제대로 된 반응이 돌아왔다.

머리라도 쥐어박지 않으려나 했는데 의외로 정상적이구나.

아니, 애초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뒤틀려 있는 걸까.

안쪽으로 들어서는 엘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마족들이 잔뜩 있었다.

"...아."

뿔이 잘리고, 부러지고, 찢기고, 망가진, 그런 마족들이.

상태가 좋지 못할 것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이곳에 모여있는 마족들은 빈말로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멀쩡한 마족은 하나도 없고, 전부가 환자인 상태.

이래서야 이곳까지 오며 걱정하던 것들이 전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거나 다름 없었다.

"다들, 괜찮아?"

"괜찮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윽."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질문에, 뾰족한 답변이 돌아왔다.

역시 그렇구나.

상대의 반응에 대해 무어라 할 마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당연한 걸 물은 내 잘못이었으니까.

마왕이던 아리엘조차 세계수에게 제대로 치료 받기 전까지는 언제나 아슬아슬 했었더랬다.

일반적인 마족들은 어떻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터였다.

"...미안."

"미안하면, 조금만 쓰다듬게 해주렴."

"그걸로 용서가 된다면 얼마든지."

겨우 그 정도 조건이라면 몇 번이고 해줄 수 있었다.

언제나 아리엘이 만지던 정수리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는게 조금 껄끄럽기는 했지만, 애초에 아리엘만 만지게 하겠다며 못 받아둔 것도 아니었으니 나는 딱히 상관 없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채우지 못했던 쓰다듬을 채울 수 있는 기회이니 이쪽이 더 기분 좋은 거래라고나 할까.

천천히 손을 뻗어오는 마족 여인에 눈을 잔뜩 깜빡였다.

"머리 터뜨리면 안 돼?"

"...절대 안 그럴 거란다, 아가."

"그런거 치고는 너무 떨고 있잖아."

손바닥은 커녕 손가락 끝조차 닿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내 쪽에서 먼저 머리를 들이밀었다.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시원하고 꺼끌꺼끌한 감촉과 함께 작은 탄식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이들은, 다 똑같군요. 엘리 님."

"그렇죠? 그리고 어쩌면, 마족과 인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몰라요."

"...정말, 그렇네요."

나를 쓰다듬는 마족 여인의 표정은 꽤나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혹시, 하는 생각이지만 아이를 잃었거나 했던 걸까.

그렇다면 조금 안쓰럽기는 했다.

인간이든 마족이든 아이를 잃었을 때의 슬픔은 전부 똑같이 고통스러울 테니 말이다.

"너무 아파하지마."

"위로해주는 거니? 고맙구나."

생긋 웃으며 마지막으로 두 번 정도 토닥인다.

여인이 숙였던 허리를 일으키자 그제서야 주변의 마족들이 보였는데, 뭔가 다들 내쪽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뭘까, 저 감정들은.

마치 나를 마구 쓰다듬고 싶다고 말하는 듯한ㅡ

"다들 당신을 좋아하네요, 케이."

"이건 그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일 뿐이잖아."

"당신이 어른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시기의 문제일 뿐이지 분명 친해질 수 있었을 거예요."

"...그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뭐, 호의를 받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마족의 호의니 인간의 호의니 다 같은 호의니까 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같은 인간들에게도 딱히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으니까.

그냥, 인간보다 마족이 더 미워서 마족을 증오한 것 뿐이었다.

만약 마족이 없었다면 인간 불신에 걸렸을지도, 응.

"오늘 하루라면 딱히 신경 안 쓸 테니까, 마음대로 해."

"..."

"..."

선언 아닌 선언을 하고는 허리 위에 양손을 척, 하고 올려두었다.

이상한 짓을 하는게 아니라면 크게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쓰다듬든 껴안든 마음대로 하라고?

그런 의미를 담아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머뭇거리면서도 착실하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대체 이런 몸뚱이의 어디가 좋다고 그러는지...

'뭐,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러는 건 절대 아니겠지만.'

어쩌면, 여인과 같은 이유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반응이란 대개 비슷한 법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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