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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79화 (279/342)

Chapter 279 - 사라지지 않는 것들.(1)

마법을 잃은 에밀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서고에 있는 책 읽기, 책 개정하기, 책 쓰기, 포션 제조 등이 전부였다.

자그마한 몸으로 어찌나 분주하게 움직이던지 가끔씩 서고에 찾아오는 이들이 깜짝깜짝 놀랐지만, 그녀는 딱히 자신의 생활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만큼 더욱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해야 할 일을 끝마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만든 포션은 뭔가요?"

옆에서 고개를 슬쩍 들이미는 린에 에밀리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솔직히 하루의 일과를 일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했지만, 취미라고 한다면 하루 종일 취미 생활만 하는 한량 같은 인간 같으니 일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지.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제 스승이 지금 만든 포션이 무엇인지 물었다는 것이었다.

"어려지는 포션이에요, 스승님."

"그런가요. 그런데, 저희 중에서는 딱히 어려질만한 사람이 없잖아요?"

무표정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어찬 표정.

확실히 그건 그렇지.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전부 아리엘이 낳은 아이들 뿐인데, 자신을 포함해서 전부 다 어렸으니까.

물론 굳이 찾는다면 있기는 있었다.

엘리라던지, 아서라던지, 메이아라는 이름의 마족 메이드라던지.

에반젤린 여왕 같은 경우에는 뭐,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아니면 아리엘이라던지."

"..."

솔직히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비록 옆에 여신이라는 좋은 본보기가 있었지만, 그 녀석은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리엘의 모습을 한 채로 그런 빌어먹을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짜증날 지경이었다.

꼴에 여신이라고 기억을 되찾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고나 할까...

'그딴 기억 따위 차라리 되찾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영원히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그저 작은 아리엘 정도로 생각했을 텐데, 쓸데 없이 기억을 되찾아서는 신경 쓸게 또 늘어버렸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스승님도 보고 싶지 않으세요? 아리엘의 어린 모습."

"...조금 정도는요."

최근 들어서 감정 표현이 다채로워진 제 스승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게 어찌나 귀엽던지.

스스로의 불경함에 입술을 꾹 깨물면서도, 스승님을 이렇게 변화시켜준 아리엘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녀의 사랑을 잔뜩 들이마신 결과가 바로 지금의 귀여움이었으니까.

"하지만, 속이거나 몰래 마시게 하는 건 절대 안 돼요. 무조건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승낙한 다음이여야 해요."

"네, 스승님."

애초에 속인다거나, 혹은 몰래 마시게 한다거나 그런 건 제 성미에 맞지 않았다.

...아리엘이라면 아무런 의심이나 걱정 없이 자신의 포션을 마셔줄 것 같다는 확신도 있었고.

그 녀석은 조금이라도 남을 의심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물론 초면인 사람을 덥썩 덥썩 믿어버릴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지만, 제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관해하다는게 문제였다.

그 증거로 제 배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칼이 찔리거나 갈비뼈가 부러져도 전부 용서했고 말이지.

"음, 그러면 가실까요?"

살짝 손을 뻗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붙잡아 온다.

마족보다는 따뜻하지만 인간보다는 서늘한 체온을 잔뜩 만끽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아마도 방에 있겠지.

분명 그ㅡ 빌어먹을ㅡ 여신ㅡ 이랑 같이.

똑똑.

"아리엘, 들어가도 돼?"

"들어오거라."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대로 방 문을 열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황금빛 눈동자가 두 쌍.

그리고 금빛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가 하나.

아리엘이라고 부를지 엄마라고 부를지 아주 약간 정도 고민했었는데, 아무래도 좋은 선택이었던 듯 싶었다.

만약에라도 엄마라고 불렀다면 아서 녀석이 뭐라고 말했을지...

"서고 밖으로 나오는 건 또 오랜만이로구나."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밖에도 안 나오는 방구석 외톨이라는 뜻 같잖아."

"뭐,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나도 방구석 외톨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방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

본인 말로는 조금 쌀쌀해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쌀쌀하면 차라리 세계수가 있는 곳 근처에 자리를 잡는 편이 어떤가 싶었다.

뭐, 본인 말로는 아이들이 여기에 있으니 자신 또한 여기에 있는 거라고 하지만ㅡ

아무래도 자신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다른 녀석들 또한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듯 싶었다.

"그래서, 어쩐 일로 왔느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올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뭐어, 이번에는 일이 있어서 온 거지만."

여신의 손을 붙잡고 손장난을 치는 아리엘의 모습에 작은 한숨이 입 안에 맴돌았다.

대체 저것의 무엇이 그리 좋아서 저렇게 붙잡고 있는 걸까.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 떼어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그녀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었기에 가까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지금은 저 녀석을 떼어내려고 온게 아니라 포션을 권유하려고 온 거니까 말이지.

"그건..."

"어려지는 약이야. 이번에 만들게 됐는데, 어려진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여기서 오직 너 뿐이라서."

단 둘만 있었다면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을 텐데, 짜증나는 녀석이 둘이나 있어서 그런지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기는 했지만, 역시 조금 미안하기는 했다.

...이런 성격을 고쳐야 할 텐데 말이지, 진심으로.

"내 어린 모습이라고 한다면 여기에도 한 명 있지 않느냐."

"그 녀석은 성격이 더럽잖아. 무엇보다 안에 들어있는게 그런 거여서야..."

"...그런 거라니, 무슨 의미인가요, 그거."

방금 직전까지는 자신이 왔는데도 없던 것처럼 굴었으면서 제 험담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기민하게 반응해댄다.

이런 점이 싫다는 거야.

처음부터 없는 사람 취급 했으면 여기서도 없는 사람 취급하지 그래?

아니면 옆에 있는 양아치 용사처럼 조용히라도 하고 있던지.

쯧, 하고 혀를 차며 손에 들린 병을 아리엘에게 건넸다.

"부작용, 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지만 행동이나 생각이 몸에 맞춰서 어려질 수도 있어."

"뭐,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구나. 여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몇몇 있으니."

그렇게 말하며 나와 여신 쪽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는데ㅡ 솔직히 저런 녀석과 같은 취급은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입술을 비죽이고 싶은 것을 억지로 꾹 참아내고는, 어떻게든 표정을 갈무리 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눈치 보는 건 또 처음인데 말이야.

"그냥 마시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응, 그냥 마시기만 해도 돼."

그런 내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포션 병을 열어 입으로 가져간다.

꼴깍, 꼴깍 하고 넘어가는 포션을 바라보기를 잠시.

뭔가 이상한 걸 마셨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아리엘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아니, 생각보다 맛있다 싶어서."

"포도 맛으로 만들었거든, 그거."

먹기 좋은 약이 효과도 좋다고 했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그런 이유도 있고... 뭔가 아리엘은 쓴 걸 싫어할 것 같아서 일부러 맛까지 신경 써서 만든 거지만 말이지.

아무튼, 한 방울도 남김 없이 비워진 포션 병을 받아들고는 잠시 상대의 변화를 살폈다.

'그러니까, 몸이 줄어들기 시작하는게ㅡ'

"오."

"...느낌이 조금, 이상한데."

소리가 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육안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아리엘의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키가 줄고, 커다란 흉부가 줄어들고, 유려하게 휘어 있는 곡선형 몸매가 어느 정도는 직선에 가까워진다.

그런 아리엘의 변화를 아서와 여신은 꽤나 놀랍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둘의 표정이 너무 닮아서 조금이지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서로 서로 싫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저런 면에서는 똑같네.

"작네."

"작네요."

그렇게 변화가 끝난 뒤의 아리엘은 직전에 보았던 풍만한 모습과는 정 반대로 엄청나게 자그마한 몸집을 하고 있었다.

그런 크기가 이렇게나 쪼그라들다니.

아니, 여기서는 이런 자그마한게 그런 식으로 커진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만.

"너, 아리엘에게 허튼 짓 할 생각하지마. 지금 상태에서 건들면 범죄다, 너?"

"...그런 건 나도 알고 있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

자그마한 정수리를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는 아서에게 혹시 몰라서 경고를 던져주었지만, 돌아오는 건 약간의 혐오가 담긴 답변이었다.

확실히, 그 어떤 사람이라도 이런 크기의 아이를 보고 이상한 상상을 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포션의 효과가 꽤나 잘 들어서 지금의 아리엘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작은 상태였다.

이른바 딱 쓰다듬기 좋은 위치에 정수리가 있다고나 할까.

언제나 쓰다듬 받는 입장이었던 내가 아리엘을 쓰다듬을 수 있게 되다니ㅡ 하는 생각을 하며 손을 뻗었다.

"너야말로 아리엘한테 손 대지 말지?"

"읏, 뭐 하는 짓이야?!"

아니,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곧바로 막혀버렸다.

가볍게 두들겨진 손등이 홧홧 달아오름과 동시에 고통이 느껴지고, 곧바로 아서를 향해 짜증을 냈다.

겨우 정수리 쓰다듬는걸 가지고 손 대라 말라 하기는...!

내가 한 말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거든?! 불만이면 너도 쓰다듬던가 멍청아!

으르렁거리며 아서를 노려보자, 아서 또한 눈을 날카롭게 뜨며 맞받아쳤다.

"어린애한테 진심을 다하다니, 한심해 보이는거 알고 있어?"

"하, 애초에 어린애도 아니면서 이럴 때만 어린애 취급을 받으려고 하다니."

"불만이면 너도 죽은 다음 다시 태어나던가."

아무튼, 네 얼굴 따위 전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저리 꺼기지나 해!

조금 가까워진 아서를 살짝 밀어내고는 다시금 아리엘의 앞에 섰다.

뭔가 앞에 서기만 해도 얼굴에 그림자가 지는데, 새삼스럽지만 아이가 된 아리엘의 크기가 어느 정도로 작은지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아, 그러면ㅡ 기분이 어때, 아리엘? 뭔가 작은 몸은 엄청나게 오랜만이지 않아?"

"..."

"아직 몸이 작아진 것에 대해서 적응을 못한 거려나..."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 아리엘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생각했던 반응이랑 다른 것 같은데.

원래라면 자신의 몸을 돌아보며 방긋 웃음 지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뭐라고 할까ㅡ

'무서워하고, 있어?'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약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제조는 완벽했고, 최근 들어 포션의 제조만 했던 자신이 이상한 실수를 했을 리가 없었으니까.

지금 말하는 잘못되었다는 건 어려지는 포션을 아리엘에게 먹였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이었다.

하면 안 되는 일을 해버렸다, 라는.

"...사ㅡ"

"..."

"ㅡ살려주세요."

그 말과 동시에 아, 하고 탄식이 터져나왔다.

자신을 올려다보는ㅡ 아니, 올려다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에게서는 더 이상 어른일 적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덜덜 떨고 있는.

내 눈앞에 있는 건 그저 한 없이 어리고 어린, 상처 입은 아이 뿐.

"제, 제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바들바들 떨던 다리가 꺾여 바닥에 주저앉을 즈음에는, 그 어떤 누구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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