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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86화 (286/342)

Chapter 286 - 사랑을 가장 닮은 그대에게.(2)

"...이러니까 진짜 가족 같구나."

"가족이 맞으니까요."

손가락 끝에 감기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작게 숨을 토해냈다.

내가 마왕과, 아리엘과 이런 모습으로 지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이런 아이를 어째서 무서워 했을까.

이런 아이를 어째서 아프게 만들었지?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리엘."

"...응?"

"미안해요."

잘려나간 뿔의 단면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꽤나 무뎌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문지를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는게 확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아프겠지.

그리고, 아팠겠지.

잘려나간 뿔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 법이었다.

앞으로, 영원히.

"미안하다니, 뭐가 말이니?"

"전부 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 전부 다요."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겪은 고통이었다.

지금까지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만큼 끔찍한 짓거리는 없겠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 아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더라.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리엘은 전부 기억하고 있겠지.

'전부 기억하고 있는데도, 나를 용서한 걸테고.'

뭐가 신이란 말인가.

신이란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라고? 웃기는 소리.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였다면, 혼자 존재한다는 외로움을 느끼지도 못했을 터였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존재를 창조했다.

겨우 그런 이야기.

"어쩌면, 저는 신이 아닌 걸지도 몰라요.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으니까..."

전지하지 못했다.

여태껏 모든 이들의 감정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전능하지 못했다.

복수도, 사랑도, 그 무엇 하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끝마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애초부터 저는 그냥 저였을 뿐인데, 신이니 뭐니... 푸핫."

"...엘."

내가 처음 이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신'이라고 불렀었던가?

아니, 그러지 않았지.

그저 다른 이들이 부르는 '신'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대체 뭐가 신이라는 거야.

다른 이들의 공포 위에 올라서서, 오랫동안 살아오면 그게 신이라는 건가?

그럴 리가 없지. 그런 건, 신이 아니니까.

영원하지도, 불멸하지도 않는 자신이 신일 리가 없었다.

"그래요. 차라리, 신보다는 엘로써 사는게 더 좋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열감 섞인 목소리에 내 심장 또한 뜨거워졌다.

내 허벅지 위에 머리를 뉘이고 있던 아리엘이 몸을 틀어, 내 몸통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표정을 볼 수가 없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놓아두는 편이 좋겠지.

웃음이면 웃음인 것 그대로, 울음이면 울음인 것 그대로 놓아두는게 좋을 테니.

"언젠가는 당신의 아이를 꼭 보고 싶네요."

"...그래?"

"당신을 낳고 기뻐하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기억나니까요."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데.

내가 보았던 아이의 얼굴이, 언젠가의 내 얼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만약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그 얼굴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을 텐데.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지만, 상실을 채워넣을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리엘."

"......"

"아리엘?"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아리엘!"

그때와 같이ㅡ

***

엘리가 고개를 돌린 건, 대수롭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무언가 따끔거리는게 느껴진다.

단순히 그 뿐.

무언가 벌레라도 문 걸까, 하면서 고개를 까딱거린 엘리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아리엘을ㅡ 아니, 엘을 맞이한 건 그 순간이었다.

"성녀!"

"...여신?"

"도, 도와주세요! 아리엘이, 아리엘이!!"

눈물로 엉망이 된 눈으로 옷자락을 붙잡고는 엉망진창 매달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가 여신이 중얼거리는 세글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아리엘 씨.

바깥 나들이를 간다고 얼핏 이야기는 들었던 것 같은데...

"어서 가죠. 아리엘 씨는 어디에 계시나요?"

"방에, 방에 있어요. 어서, 빨리..."

여신이 큼지막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은 꽤나 진귀한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아리엘 씨를 봐야 해.

최근 들어 약해졌던 몸이 어느 정도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된 수준까지는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리엘 씨!"

"..."

그렇게 달리고 달려 방으로 도착해 엘리가 본 것은 조용히 자리에 누워있는 아리엘의 모습이었다.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조용히 누워있는 광경은 마치 잘 조형된 인형 같아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리엘 씨.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뻗어,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하아."

"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죠? 어디가 안 좋다던지, 그런 건 아니겠죠?"

"진정하세요. 그저 잠든 것일 뿐이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에 옆에서 옷소매를 꾹꾹 잡아당겨온다.

그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조심스럽게 말리며, 아리엘이 누워있는 침대에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붙였다.

원래도 아슬아슬하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어버리니 더더욱 약해보였다.

자신이 생각하던 상황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아무래도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네요. 이렇게나 곤히 잠드는 걸 보는 건 또 처음인데."

심지어 이번에는 할리벨이 곁에 없는데도 곤히 잠든 채였다.

딱히 악몽을 꾸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 말을 듣고는 잔뜩 안심하는 여신의 모습이 조금 이질적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없는 사이에 여신 또한 갱생시켰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리엘 씨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사람이 지금껏 마왕이라고 불렸다니, 정말이지.

"다행, 다행이다... 다행, 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리엘 씨 옆에 있어주세요.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명이라도 같이 있는 편이 나을 테니까."

"당신은, 같이 있지 않을 건가요?"

"저는 노예로 잡혀 있던 마족들의 치료를 해야 해서요. 물론 아리엘 씨가 1순위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저 잠든 것일 뿐이니까 당신에게 맡기는 거랍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신은 엘리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자신을 붙잡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에 잠시 몸을 낮추자, 자그마한 입술을 오물거리면 여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저를 믿죠? 아리엘이 잠든게 저 때문이었으면요? 만약 당신이 간 다음에 제가 잠든 아리엘을 공격하면 어쩌려고요? 대체 저의 어디를 믿고 아리엘과 단 둘이 두는 건가요?"

"..."

절박함을 가득 담은 말이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 특유의 질문.

불안감에 어깨를 떨며 몸을 웅크리는 여신의 모습을 보며, 엘리가 후우ㅡ 하고, 숨을 내뱉었다.

"저런 편안한 얼굴로 잠들게 만들었다면, 언제나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리고, 당신의 어디를 믿어서 아리엘 씨와 단 둘이 두냐고요? 그건, 질문 자체부터 잘못 되었답니다."

"그게, 무슨 뜻ㅡ"

"당신을 믿고 있는게 아니라, 당신을 믿고 있는 아리엘 씨를 믿고 있는 거예요. 아리엘 씨가 잘못된 선택을 할 리가 없으니까. 그런 아리엘 씨가 하신 선택이니, 저는 그저 믿고 따르는 거고요."

"..."

당신이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 행동.

만약 조금의 의심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여신과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서 잠들거나 하지는 않으셨겠지.

아니, 애초에 아리엘 씨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의심을 하실까 의문이기는 했지만서도.

'그래도 뭐ㅡ'

"이제부터라도 착한 아이가 되세요. 스스로가 한 짓에 대한 자각이 있다면, 고쳐나가면 되는 거니까. 저희들 중에서 아리엘 씨에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으니 너무 기죽어 있지도 말고요."

"..."

천천히, 천천히 그 탐스러운 정수리를 쓸어내린다.

아리엘 씨를 쏙 빼닮은 외모.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눈앞에 아리엘 씨가 둘이 있는 걸로만 보일 지경이었다.

만약 아리엘 씨가 깨어 계셨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아리엘 씨는 잠들어 계신 상태였으니.

"...안해요."

"네?"

그렇게 여신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절대 듣지 못했을 정도의 목소리.

하지만 마족의 몸은 그 희미한 중얼거림마저 전부 포착해냈다.

여신의 말을 되물은 건 그저, 자신이 잘못들었나 의문이 들었기에 되물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 전부, 미안해요. 제가, 잘못 했어요... 성녀ㅡ 아니, 엘리."

"..."

여신ㅡ 엘의 진심이 담긴 사과에, 엘리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기보다는, 진실된 사죄의 목소리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드디어 그들이 진정한 식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괜찮답니다, 엘."

"...아."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일게요."

눈앞의 아이가 사과해야할 이들은 아직 산더미처럼 남아있었다.

남아 있는 감정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지만, 그 첫걸음을 가로막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더욱 컸다.

그러니까, 용서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 증오보다는 사랑하는 편이 더 좋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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