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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90화 (290/342)

Chapter 290 - 겨울이 지난 다음에는.(2)

그러니까, 미코는 조금 컸나?

"...왜 그렇게 보는 게냐."

"아니, 조금 컸나 싶어서 그랬지."

"컸다! 꼬리가 한 개일 때보다는 훨씬 컸다!"

"훨씬?"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그제서야 이실직고 말한다.

꼬리가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난 건 좋지만, 크기는 거의 비슷해서 실망한 것 같달까.

확실히, 꼬리가 아홉 개일 때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니까 말이지.

물론 내 입장에서는 자라지 않는 편이 훨씬 좋았지만서도.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구나."

"아, 아니... 그런 뜻은 아니지만."

아하하,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최근 들어서 다들 그런단 말이지.

언제나 이유를 찾는 것이 버릇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이유를 물었는데, 다들 하나 같이 이유가 있어야만 찾아올 수 있냐고 말했더랬다.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이유가 없는데 나를 찾아온다는게 조금은 신기하다고나 할까.

아직까지 적응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 건.

"뭐, 농담이다."

"..."

"그래도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건, 꼭 이유가 없어도 너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그것이 순수한 호의나 사랑 때문이라는 것도 조금 알아두고."

미코의 말대로였다.

지금의 나는 지금껏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지만, 다른 이의 호의나 사랑에는 조금 무감각한 편이었으니까.

음, 마왕이라서 그런가?

기억이 돌아오면 돌아올수록 조금 감정이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서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미코."

"음, 그나저나 말투는 그대로 하기로 한 게냐? 확실히 더 친근감 있고 좋기는 하다만..."

"뭐... 그렇지?"

솔직히 반반이기는 했지만, 슬슬 굳혀나갈 때가 되기는 했다.

굳이 이런 말투로 교정을 한 이유라고 한다면 마왕일 적의 기억이 떠올라서, 랄까.

점점 감정이 마모되는 것이 느껴져서 불안하다고나 할까.

분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데도 불구하고 그 체감이 점점 무뎌지니 절로 불안해졌다.

"그러면 미코도, 말투를 고칠 생각은 없는 거야? 아이처럼 '마마~' 하고 부른다던지."

"마, 마마는 무슨! 그리고 애초에, 나는 네 배에서 태어난 적도 없다!"

"아, 그랬지."

"그랬지는 무슨 그랬지야!"

잔뜩 화가 난 미코의 귀가 위쪽을 향해 퐁퐁 솟아올랐다.

여전히 작은 채라서 계속 햇갈린단 말이지...

그래, 그랬었지. 미코는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였잖아.

그래도 뭐, 이 정도 지냈으면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게 아닐까?

"우으, 또 아이 대하듯이 쓰다듬기나 하고..."

"미코가 귀엽지 않게 된다면 쓰다듬지 않을게."

"..."

"자기 자신이 귀엽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구나."

놀리듯이 말하는 한 마디에 이번에는 꼬리가 마구 움직여댔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 모습마저도 귀여울 뿐이었다.

꼬리가 두 개가 되어서 그런지 귀여움도 두 배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

"으으, 뭐어... 일단 오늘 찾아온 건 네가 걱정되서 찾아온 것이느니리라."

"걱정되다니, 뭐가?"

"네 배. 불러오는데도 오래걸렸고, 불러온 다음에도 도통 태어날 생각을 하지 않지 않느냐."

확실히 미코의 말대로 이번에는 그 시기가 꽤나 길었다.

처음에는 임신하지 않은 줄 알고 깜짝 놀랐었지.

하지만 엘리의 진찰을 받고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즈음에는 기분이 이상했었더랬다.

임신하고 며칠 안에 배가 부르지 않은 건 또 처음이었으니까.

"지금도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되는데 멋대로 혼자 나온 게지?"

"...그냥, 기분 전환할 겸."

아이가 뱃속에 오래 있으니 그만큼 거동이 불편한 시간이 늘어났고, 아서와 관계를 가지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몸은 쑤시고 아프고 뻣뻣하고...

홀몸이 아니라며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가끔씩은 혼자서 돌아다니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었다.

물론 옆에 누군가가 있어주면 더 좋았겠지만서도.

"그 뭐야, 매일마다 네 옆에 붙어있던 녀석은 어디로 간 게냐. 평소에는 마치 껌딱지처럼 붙어다니더니만."

"뭐어... 휴가야. 동족들과 밥이라도 한 끼 한다고 하는데 안 보내줄 이유도 없잖아, 안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마족들의 불만을 잠재우러 간거겠지만.

가지 말라고, 엘리에게 모두 맡기라고 몇 번이고 말했는데 자신이 꼭 가야 한다면서 휑하니 떠나버렸다.

...부디 아무런 일도 없었으면 좋겠지만서도.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최근 마족들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다. 또 다시 전쟁을 원하고 있다느니, 그런 것들."

"하아..."

"처음 몇몇만 있을 때는 그러지 않은 모양이지만, 대륙 곳곳에서 모여들다 보니 과격하게 행동하는 녀석들도 늘어난 모양이야."

그들도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을 터였다.

인간들에게 고문 당하고, 희롱 당하고, 노예로써 부려지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그들에 대한 분노 또한 점점 커져갔겠지.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그들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이런 몸으로는 멀리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내주지도 않을 터였지만.

"뭐, 임산부를 앞에 두고 너무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를 한 것 같구나. 그렇다면 좋은 이야기만 하도록 할까?"

"좋은 이야기라니?"

"이번에 벨이 혼인을 올린다고 하더구나."

"벨이?!"

그 자그마한 아이가, 혼인을?

충격적인 말을 하는 미코를 멍하니 바라보자, 키득키득 웃으며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긴다.

"농담이다, 농담. 이런 단순한 거짓말에도 속아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구나!"

"...역시 농담이구나."

"그래도 최근 관심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있는 것 같던데."

"그것까지야 뭐,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지. 착한 아이니까 알아서 잘 만나지 않을까."

만약 진짜 결혼식이라도 한다고 했다면 조금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뭐랄까, 내가 주례를 서줄 수 없으니까?

"다른 아이들도 잘 지내고 있겠지?"

"나머지 고양이들도 잘 지내고 있지. 슬슬 어른스러워져도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랴뇨리 같은 경우에는 어느날 갑자기 자아 찾기 여행을 떠난다고 훌쩍 떠나버린 상태였다.

그 목적이 대륙에 흩어져 있는 동족들을 찾으러 간다는 것 쯤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셈 쳐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 어찌나 결연하던지.

확실히, 유쾌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고양이 수인은 랴뇨리가 유일했지.

"엘리야는?"

"엘리야야 뭐, 그 꼬마 몽마를 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그것 만큼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구나."

마지막에 보았을 때도 할리벨을 안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할리벨을 안고 다니고 있다니.

아니, 마지막이라고 해도 겨우 며칠 밖에 되지 않았지만서도...

"원한다면 엘리야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데, 갈 테냐?"

"으응, 오래간만에 얼굴이라도 볼까."

최근 우리들 중에서 인간 마을에 가장 자주 가는 사람이 누구냐고 한다면 바로 엘리야를 꼽을 수 있을 터였다.

미코의 말로는 저택과 마을 중간 정도에 있는 오두막을 수리해서 아지트로 삼고 있다나 뭐라나.

엘리야와 할리벨 둘만 지낸다는게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세계수의 뿌리가 닿아있는 곳이니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겠지.

"자, 이쪽으로 오거라. 걸음을 맞춰줄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친절하구나, 미코."

"원래 임산부에게는 친절해야 하는 법이다."

원래부터 친절했으면서.

슬쩍 내 손을 잡아오는 미코의 손길을 느끼며 푸스스 웃음을 토해냈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 있어서 제대로 모르겠지만, 뭔가 얼굴이 빨개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이지,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그게 바로 미코의 귀여운 점이기는 했지만.

***

"엘리야!"

"아리엘 씨!"

내 품에 와락 안겨드는 엘리야에 절로 입꼬리가 솟아올랐다.

이렇게 보니까 엘리야도 엄청 많이 컸구나.

미코보다 작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머리 하나 이상 커져서는...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 숨을 들이키자 갓 수확한 이삭 향기가 잔뜩 났다.

"할리벨은 어디 있니?"

"아, 할리벨이라면 저쪽 아기방에 있어요."

"아직도 걸어다니는 건 무리인가 보구나."

"무리라기보다는ㅡ"

슬쩍, 하고 할리벨이 있을 방 안을 흘겨본 엘리야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걸어다니는게 귀찮은 모양이에요."

"그렇구나..."

응, 그럴 수 있지.

언제나 안겨다니면 그럴 수 있어.

어른으로써의 자존심은 어디에 버려둔건지 모르겠지만ㅡ 응, 아기의 몸에 적응을 잘 해서 그런 거라고 친다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구?

"마앙님! 마앙ㅡ 칫, 마왕님!"

"할리벨?!"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를 잠시.

열린 문 틈 사이로 아장아장 걸어오는 익숙한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걸을 수 있었구나!

아직 발음이 완벽하지 않아서 반쯤 뭉게지듯 말하는 모습이 심장을 저릿하게 만들 정도로 귀여워서,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마왕, 님!"

"걷는 걸 보는 건 처음이구나, 할리벨."

"에헤헤..."

이제 엘리야가 불편하지 않게 걸어다니라는 뜻이었는데, 귀여운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하다니.

저것 좀 봐, 엘리야의 팔뚝이 뭔가 두꺼워졌잖니?

하지만 할리벨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럴 때만 아기인 척 하지 말란 말이야,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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