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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94화 (294/342)

Chapter 294 - IF : 신혼여행.

"그러고 보니까, 아서."

"응?"

"우리, 신혼 여행 안 가지 않았나?"

"신혼 여행?"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서에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했다.

신혼 여행이 뭔지 모른단 말이야?

...아니, 모를 수도 있나.

혹시나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아무래도 이 세계에는 신혼 여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듯 싶었다.

'하긴, 나라와 나라 사이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간다는 건 그만큼 일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결혼을 한 뒤에 여행을 가는 경우는 귀족들이 유일했고, 그런 귀족들조차도 '신혼 여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 듯 싶었다.

그래서 아서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고.

"여행을 가고 싶다면 어디든지 따라가줄 수 있어. 혹시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는 거야?"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뭐랄까, 아서와 단 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를 담아서 손을 살짝 붙잡으니, 아서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를 위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아리엘, 가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한 번 가볼래?"

"...좋아."

진지하게 말하는 아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어디를 간다고 해도 거절할 생각 따위 없었어.

네가 어디를 간다고 하면, 나는 언제나 네 옆에 있을 테니까.

내가 널 혼자 보낼 리가 없잖아?

"대신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하고 가자. 걱정할지도 모르니까."

딱히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신혼 여행의 시작이 그렇게 막을 올렸다.

으음, 어디를 가는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서도.

"용사 하나로 충분할 것 같나? 마음 같아서는 호위라도 몇 붙여주고 싶은게 내 마음이지만 말이다..."

"아서 혼자면 충분해. 마음은 고맙지만, 호위는 괜찮은 것 같구나."

"몸 조심하고, 아리엘."

"안전하게 다녀오도록 하마."

에반젤린 같은 경우에는 아주 깔끔하게 허락해줬다.

애초에 그런 걸 자신의 허락을 왜 받으러 오냐는 듯한 말까지 했으니, 사실상 완벽한 허락이라고 봐도 되겠지.

오히려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기까지 해줘서, 혹시라도 안 된다고 할까 불안해 하던 스스로가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잘 다녀오세요, 아리엘 씨."

뭐랄까, 그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잔뜩 허락을 맡으려 돌아다녔지만 모두들 흔쾌히 허락해주는 모양새였다.

엘리도 잘 다녀오라며 마중해줬고, 에밀리 같은 경우에는 몸조리 잘 하라면서 여러가지 영양제를 챙겨주었다.

레이나는 내가 세계수 근처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 조금 불안한 모양이었지만, 최근 내 건강 상태가 꽤 좋아졌기에 순순히 보내주려는 것 같았다.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들 쉽게 허락 해주는구나..."

"그만큼 저택에만 있었으니까. 이제 슬슬 다른 곳을 돌아봐도 된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그런 거려나."

막상 떠난다고 하니 조금 마음이 불편했지만, 영원히 떠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출발 할까?"

"응, 아서."

나에게 손을 내미는 아서의 모습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처음의 신혼 여행.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그 끝에 행복이 있으리라는 것 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

"두 사람, 부부인감? 엄청나게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말여."

"맞아요, 부부예요."

목적지를 향하기 전에 들린 마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라, 아서. 우리, 다른 사람들이 부부로 볼 정도인가봐.

그 사실이 괜히 기분이 좋아, 아서의 팔을 꼭 껴안았다.

...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 것 같기도 하지만 기분 탓이겠지, 응.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려. 다음에 또 와, 예쁜 아가씨!"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는 근처에 잡아두었던 여관 안으로 들어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서가 주변의 사람들을 경계하며 걷던 것을 떠올리며 살짝 팔을 잡아당겼다.

대체 왜 그랬던 건데, 아서.

"그냥, 다른 녀석들이 너만 쳐다보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는데?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주변 여자들이나 홀리고 말이야..."

아름다운 존재에게 시선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북부에 있을 때도 가끔 인간 마을에서 겪던 일이라 대충 눈치 채기는 했지만, 아서의 경우에는 조금 둔하다고나 할까...

조금 전에 다른 여자들이 아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는게 어찌나 꼴 보기가 싫던지.

물론 질투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누가 뭐래도 아서는 내 것이었으니까.

"뭐, 일단 그런 사소한 것보다는 어디로 가는지부터 이야기 해보자."

"..."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는게 아니야, 아서?"

아서와 눈을 마주하며 묻자,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망설이고 있구나, 아서.

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망설이게 하는지 모르겠지만ㅡ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 이상으로 가고 싶은 곳이라는 거겠지?

"도착하기 전에 꼭, 말해줄게."

"응"

믿고 있어, 아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그렇게 잠시 진지했던 순간이 지나고,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분명 북부에서 얼마 멀어지지 않은 것 같았는데 파는 음식이라던지 옷가지들의 양식이라던지가 조금씩 다른게 꽤나 신기했달까.

돈 같은 경우에는 에반젤린이 생각보다 많이 줘서 부족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오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

그리고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를 한참.

언젠가 보았던 광경에 작게 중얼거렸다.

왕도에 오기 전에 들렀던 마을.

'여기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

에밀리에게 납치 당하고, 그런 나를 레이나가 구하러 오고, 결국은 타 죽었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지만, 지금 와서는 그저 과거의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찾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또 왜일까.

오랜만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걷고, 걷고, 또 걷고ㅡ

"아리엘, 잠시만! 어디로 가는지는 말해줘야지!"

"까먹은 거야, 아서? 너도 알고 있잖아."

수풀 틈을 지나,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한 줄기의 햇빛이 자그마한 둔덕 위를 비추었다.

나무로 된 묘비.

그 뒤에 있을 무덤 위에 자그마한 나무가 자라있었다.

예쁜 나무구나.

[레이나의 묘.]

"그러고 보니까, 엘프는 죽은 다음 나무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언젠가 레이나가 해준 이야기였다.

엘프의 시체는 자연의 것임과 동시에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죽은 뒤에 나무로 환생하게 된다고.

그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 레이나의 무덤은 더 이상 무덤이라고 볼 수 없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장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구해줘서 고마웠어, 레이나. 정말, 고마웠어."

"..."

"아, 너무 주책이었나? 레이나는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말이야."

뭔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서에 아무것도 아니라며 빙긋 웃어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때의 일은 이제 전부 가슴 속에 묻어두자.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자, 가자. 아서."

이 다음은,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거야.

***

"와아아아...!"

넓게 이어진 평야.

끝 없이 이어진 지평선.

비록 그곳을 채운 것이 황금빛은 아니었지만, 녹색이여도 충분히 운치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금빛과 녹색이 반반씩 섞여있는 모양새였지만서도.

"어디인지 알고 있어. 아니, 알 수밖에 없지. 여기는, 여기는ㅡ"

"아리엘."

"...정말이지, 아름다워."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에서, 희미한 흙내음이 맡아졌다.

엘리야에게서 맡을 수 있던, 따스한 향기.

동시에 하늘에서부터 내리쬐는 빛줄기까지.

천천히 팔을 벌리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가, 아서가 살던 곳이구나."

"..."

"내가, 아서와 함께 살던, 고향이었어."

기억을 가진 것만으로는 동일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겠지만, 지금 만큼은 아서와 함께하던 아리엘로 있고 싶었다.

이 정도로 기억이 선명하다면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다녀왔어요, 다들."

"아리엘..."

"늦게 와서, 정말 죄송해요..."

어쩌면 이건, 아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두근거리는 심장을 꼭 붙잡고는 아서에게 몸을 기댔다.

네가 울 걸 대신 울어준 거라고 생각해.

살짝 고개를 들어올려, 빙긋 웃어보였다.

신혼 여행을 고향으로 올 줄은 몰랐는데ㅡ 그래도, 나쁘지 않네.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응."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서가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명ㅡ

"...어머니, 아버지."

"..."

"저, 돌아왔어요. 잠시 뿐이지만, 그래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무덤에는 여러 풀들이 잔뜩 자라있는 채였다.

묘비조차 없는 언덕 둘.

잘게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은 아서가 천천히 두 사람의 무덤 위에 손을 얹었다.

오랜 시간 끝에 돌아온 고향.

이곳은 그에게 있어서 상처일까, 혹은 추억일까.

"언제나 아리엘과 결혼하라고 말하셨는데, 결국 그렇게 됐네요.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두 분 다."

인사는 짧았고, 마무리는 간결했다.

무어라 인사라도 할까 싶었지만, 면목이 없어서 차마 입을 열지는 못했다.

...언젠가, 언젠가 스스로에게 완전히 당당해질 수 있을 때 인사 드리러 올게요.

꾸벅, 하고 허리를 숙이고는 아서의 손을 붙잡았다.

안녕히 계세요. 어머님,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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