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297화 (297/342)

Chapter 297 - IF : 전부 다 낳은 뒤에 지구로 보내졌다면.(3)

교회에 가도 딱히 무언가가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도망쳐 왔을 뿐이지.

왜 이렇게 빨리 왔냐는 혜린의 물음에 얼버무리며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밧줄은 치웠구나.

...다행이네. 누구 하나가 사용할 때까지는 없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는 드렸나요?"

"드리기는 드렸지. 딱히 별 말씀은 없으셨지만."

"에이, 첫 기도에 바로 답하면 언니가 무슨 예수님이게요?"

그런가? 기도의 횟수가 적어서 응답을 안 한 건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자니, 혜린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왜 웃는 거야. 내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이었는데.

"뭔가 언니 같은 사람이 진지하게 하나님의 음성 같은 걸 들으려고 하니까 신기하네요. 보통 종교에 빠지는 건 가진 거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나도 가진 거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가진 거 없으니까 저랑 지내는 거 아니에요?"

"..."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잘도 상처를 후벼판다.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지구에서의 나는 아무것도 가진 거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마왕일 뿐이었으니까.

가족도, 친구도, 하물며 아이들이 선물한 꽃반지 하나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은ㅡ

"아."

"?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는 않구나. 하나 만큼은 제대로 가졌어."

움켜쥐고 있던 왼손을 천천히 펼쳐, 약지에 위치하고 있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내 눈동자와 같은 색으로 빛나는 보석이 박힌 반지.

아서와 나를 이어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와아, 애인이 있었어요? 사귄지 며칠이나 됐는데요?"

"...꽤 오래 됐지."

"역시 미인들은 전부 다 임자가 있는 건가... 언니라면 분명 평생 혼자 살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왜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언니라고 불릴 정도의 나이는 아니다만."

인간의 나이로 따지고 보면 할머니라고 부르는게 맞지 않을까?

아무리 잘 쳐줘도 아줌마 정도가 맞았고.

언니라고 불리는 게 싫다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듣기에는 어색함이 있는 단어였으니까.

"에, 설마 동갑이라던지? 저는 스물다섯인데, 언니는 몇 살이에요? 분위기가 엄청 성숙하셔서 무조건 연상인 줄 알았는데."

"...흐음."

진짜 나이를 말했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겠지.

아니, 그냥 이 자리에서 미친 사람 확정이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렇다고 언니 소리를 듣기에는 또 양심이 찔리는데...

어쩔 수 없이, 대충 나이를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만 말해주기로 했다.

"애가 있다."

"...네?"

"첫째가 이제 열살 정도 됐지."

".....네?"

첫째라고 한다면 린을 말하는 거였다.

내 아이들 중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아이니까 첫째.

외형은 아무리 잘 쳐줘도 열 정도니까 나이는 대충 열.

케이도 신체 만큼은 성인의 그것에 가까웠지만, 그렇게 큰 자식이 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이런 외모로 성인인 딸이 있다고 한다면 무슨 취급을 받을지 모르니까.'

미성년일 때 애를 낳은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뭐, 지금 혜린의 표정만 봐도 이미 나를 미성년일 때 아이를 낳은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서도.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진짜 나이가 어떻게 되는 건데요? 막, 학생 때 몹쓸 짓을 당해서 낳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딱히 그런 건 아니다만."

뭐, 몹쓸 짓을 당해서 낳은 아이기는 하지.

굳이 그 사실까지 말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내 얼굴과 왼손의 반지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혜린에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뭔가 엄청나게 말이 안 되는 장면을 본 사람 같이 구는구나.

"아니, 평범한 사람이 아닐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쪽으로 평범하지 않을 줄은 몰랐는데..."

"이런 쪽으로 평범하다니, 무슨 뜻이지? 나이가 찬 여성이 아이를 가지는 것 쯤은 자주 있는 일 아니더냐."

"그게 아니라ㅡ 하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에 손을 얹어댄다.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물론 증거를 보여주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서도.

"진짜 너무하시네요. 언니는 이 세상 모든 유부녀에게 사과를 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사과라니, 무슨 사과?"

"10살이나 되는 애가 있는데도 이런 미모! 이런 몸매! 이 정도면 그냥 범죄! 아니, 신의 축복 수준이라구요?! 아, 그래서 교회에 가신 건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려고?"

끼워맞추기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었다.

말이 많은 걸 보니까 어디 가서 책 읽어주는 사람을 해도 잘 할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원래 세계로 데리고 가서 아이들의 말동무라도 싶은 기분이었다.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우선이었지만 말이다.

"교회에 가려는 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니까."

"여기 온 건, 옆집 사시는 분이 돌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건가요? 그런데 그 사람은 돌아가셨고?"

"...뭐, 비슷하다고 해두마."

신이니 뭐니, 그런게 진짜로 존재한다고 하면 믿는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그 신이라는 존재가 나와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면 더더욱.

"대체 어느 나라에 사시길래 돌아가려면 교회를 가야 하는 건데요..."

"...그건."

"아! 알 것 같아요! 제가 한 번 맞춰볼 테니까 잠시만 말하지 말아보실래요?"

대체 뭘 맞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혹시 몰라, 그럴싸한 대답이 튀어나올지?

음ㅡ 하는 신음과 함께 생각에 빠져는 혜린을 잠시 바라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원래 이런 식으로 앉아있을 때는 아이들 중 한 명이 꼭 붙어있었는데.

뭔가 손이 노는 듯한 느낌이라서 그 공백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달까...

"혜린, 손 한 번 줘보거라."

"? 손이요? 손은 왜ㅡ 아, 드릴 테니까 시무룩해지 마세요. 언니 정도의 미인을 울렸다가는 천벌 받을 것 같으니까."

마치 협박하는 모양새로 손을 내밀자 손바닥 위에 제 손을 척, 하고 올려둔다.

이러니까 마치 강아지 같네.

정수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상대가 별로 기뻐하지 않을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하지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ㅡ

"...언니? 그, 저기..."

조물조물

"느낌이, 뭔가 이상, 흐익... 언니?!"

"왜 그러느냐? 그냥 손을 만지고 있을 뿐인데."

얼굴이 잔뜩 붉어진 혜린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애들은 손을 만져주면 좋아하던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혹시 너무 만졌나? 성인과 아이가 느끼는 감촉에 차이가 있다던지?

조금만 더 만지만 비명이라도 지를 것 같아서 슬쩍 손을 놓았다.

"에에..."

"싫어하는 것 같아서 놓았더니 또 아깝다는 표정을 짓는구나."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싫은 쪽보다는 좋은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요."

좋으면 대체 왜 그런 건데?

대답을 들으니 더 아리송해졌다.

내 기억 상에 있는 지구와 다른 지구로 떨어진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아무튼! 답을 알 것 같아요! 언니의 고향이 어디인지!"

"말해보거라."

"하늘나라, 맞죠?"

"...하늘나라?"

"아니, 나쁜 뜻으로 이야기한 건 아니에요!"

표정을 보니까 그런 것 같기는 하네.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본인의 단어 선택에 대해서 찔리는 게 많았는지 허둥거리기 시작한다.

하긴, 보통 하늘나라라고 한다면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으니 당황할 법도 하지.

물론 본인은 그런 뜻으로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언니가 천사여서 원래 사는 곳이 하늘나라고, 그래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서 고향에 돌아간다는 그런 이야기ㅡ"

"푸흣, 얼굴에 금칠 한 번 제대로 시켜주는구나. 말 뿐인 칭찬이라도, 덕분에 웃었어."

"딱히 말 뿐인 건 아니지만! 그, 그래도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정도로 감사할 필요까지야."

인사성이 꽤 밝구나. 고개를 숙여서까지 감사 인사를 표할 정도면.

어째 처음 봤을 때와 분위기가 꽤 달라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면 물론 지금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지만ㅡ

음, 그래도 갑자기 느낌이 달라지니까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네.

"마족은 천사보다 악마에 더 가까운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네?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혼잣말이었어."

마족이니 뭐니,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자중하자. 지금 있는 곳이 지구인 사실을 잊지 않는 거야.

"그래서, 오늘은 무언가 수확이 있었나요?"

"딱히. 그냥 평범한 교회였다."

"...하시는 말씀만 들어보면 뭔가 특별한 교회를 찾으시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뭐, 집을 돌아갈 방법이 있는 교회니까 특별한 교회는 맞지."

정말 교회에 방법이 있는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말이다.

"만약, 모든 교회를 다 둘러봐도 집에 돌아갈 방법이 나오지 않으면요? 그때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때는ㅡ"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럴 경우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만약 교회가 정답이 아니었고, 그 헛된 정답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ㅡ

"우윽..."

"언니?! 괘, 괜찮으세요?!"

"...괜찮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지만, 일단은 괜찮다고 답했다.

괜찮지 않다고 답하면 곧바로 무너질 것 같아서, 잔뜩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하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