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9 - IF : 전부 다 낳은 뒤에 지구로 보내졌다면.(5)
평범한 생활... 과연 편의점 아르바이르를 하는 걸 평범한 생활이라고 할 수 있나?
아니, 물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사, 사람이 너무 많이 오는 것 같은데요, 언니?!"
"...그러게 말이다. 원래 편의점이라는 곳이 이렇게나 사람이 몰리는 곳이었던가?"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손에는 자그마한 주전부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과자, 사탕, 소시지, 음료수, 기타 등등.
웃는 얼굴로 계산을 하는 혜린에게 카드를 건네고는 이쪽을 흘끔흘끔 바라보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아르바이트는 내가 아니라 저쪽이니까 저쪽을 보라고.
"저기, 혹시ㅡ"
"왜 그러지? 뭔가 문제라도 있나?"
"아니,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왜 사과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를 하길래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줬다.
만약 이 한 사람만 그랬다면 '아, 오늘은 특별한 경험을 했구나.'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겠지만, 나를 찾아오는 사람마다 이런 반응이니 기분이 꽤나 묘했다.
심지어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까지.
혹시 모를 진상 손님에게서 혜린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온 것이었는데, 이래서야 그녀에게 일을 더 주게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혜린, 그냥 앞으로는 찾아오지 않는 편이 좋겠구나."
"...언니랑 떨어져야 하는 건 조금 아쉽지만, 일단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겨우 바코드 찍고 물건 담아주는 일인데 죽을 뻔 했다니까요? 이건 고문이야, 고문..."
교대 시간이 되어서 자리에 일어난 혜린이 몸을 축 늘어뜨리며 잔뜩 울상을 지어댔다.
미안, 미안하구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슬슬 내가 가려는 것을 알았는지 주변 사람들이 다들 실망했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 정도인 건가, 나라는 인간은.
물론 자화자찬의 의미는 아니었다.
다시는 편의점에 오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보다, 이것 좀 봐요 언니!"
"...응? 이게 뭐지?"
그렇게 편의점 밖으로 나온 직후.
나를 향해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는 혜린에 고개를 돌려 액정 속의 글자들을 천천히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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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늘 편의점에서 여신님 영접했다.]
[(흑발에 금안의 미녀가 편의점 카운터 안 쪽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진.jpg) 오늘 간식거리 사러 편의점 갔는데 진짜 여신이 카운터에 앉아있더라. 카드 꺼내는 것도 까먹고 멍하니 서있으니까 알바 분이 계산 도와주겠다며 말 걸었는데, 솔직히 그때도 여신님 보고 있었음 ㅋㅋ]
ㄴ[이게 진짜라고? 합성이 아니고?] ㄴ[합성 아니고 진짜임. 애초에 이런 얼굴을 합성해서 만들 수 있겠음?] ㄴ[자연에서는 만들 수 있고? ㅋㅋ] ㄴ[몰라, 아무튼 내가 직접 봤으니까 진짜임.] ㄴ[어딘데? 일단 내가 직접 확인해봄 ㅇㅇ] ㄴ[여기 역 앞 사거리에 있는 편의점임. 최근에 새로 연 곳.] ㄴ[ㅇㅋ 확인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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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어냐?"
"아무래도, 언니 얼굴을 몰래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있는 모양이에요."
"뭐, 그건 딱히 상관 없지만 여신이니 뭐니 하는 말들이 뭔지 궁금하다는 뜻이다."
얼굴이야 뭐, 돌아가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잊혀질 요소일 뿐이었다.
중요한 건 어째서 내가 여신이라는 소리르 듣는가.
한 가지 짚이는 게 있기는 했지만, 그걸 내가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언니가 엄청 예쁘니까 그러죠. 원래 예쁜 사람들은 여신이라고 부르는 법이라구요?"
"...예쁘다니."
"어때요, 이제 조금 자각을 하시겠어요?"
"...조금 정도는. 아니, 그보다ㅡ"
뭔가 조금 이상한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쥐락펴락 했다.
평소와 비슷한데 미묘하게 다른 느낌.
조금 더 건강해졌다고 할지, 힘이 난다고 해야 할지...
"왜요? 어디 이상이라도 있어요? 아니면 오늘 온 사람들 중에 무례한 사람이 있었다던지? 그런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 지금 당장 제 품에 안기고 싶다던지?"
"그런 건 아니니까 쓸데 없는 기대하지 말거라."
그리고 말이지, 여기서 껴안으면 분명 또 사진 찍혀서 돌아다닐게 뻔하니까.
물론 나야 딱히 상관 없었지만, 혹시나 혜린의 얼굴이 팔리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이 인간의 표적이 되는 것과 마족이 인간의 표적이 되는 건 꽤 다르더랬다.
"에에에... 아, 잠시만요? 으, 으엑?"
"...왜 그러느냐?"
"...아니, 이게 무슨..."
[입금 : 100,000 원]
"원래 일당을 바로 주지는 않는 걸로 아는데요."
"그렇지."
"...그런데 왜?"
멍하니 핸드폰에 찍혀있는 숫자를 보고 있던 혜린이 곧 이어 전송된 문자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내용이냐고 하면, 뭐라고 할까.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고생 했다고, 정확한 건 얼마나 매출이 나왔는지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만 대충 먼저 돈을 보내놓는다는 내용이었다.
겨우 그런 주전부리를 사간 걸로 얼마나 매출이 나올런지느 모르겠지만ㅡ
[친구 분 말인데, 편히 계셔도 좋으니까 계속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구나.]
"..."
마지막 한 줄의 내용에, 혜린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대체 뭐가 그렇게 기분 나쁜 거야. 계속 찾아와도 괜찮다고 허락을 받았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어쩌면 손님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혜린이 겨우 힘든 일 때문에 이런 표정을 지어보일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대체 왜 그러느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게냐?"
"언니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시는 거예요? 언니를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거잖아요, 지금!"
"인간이 인간을 이용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더냐. 내가 이곳에 마음대로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정도는 해주는 게 맞다고 본다만."
"제가 안 돼요, 제가! 시선 쏠리니까 여기 모자 쓰시고, 집에 가죠!"
본인이 쓰고 있던 야구 모자를 내 머리에 꾹 씌우더니, 손을 붙잡고는 쭉 걸어간다.
조금만 힘을 주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물론 여전히 혜린이 왜 화가 났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서도.
그러니까 그 이유를 알 때까지만 혜린의 기분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혜린, 다른 누군가를 우상으로 여기게 하려면 어떤 직업을 가지는 편이 낫다고 보느냐?"
"...우상? 우상이요?"
이상한 말을 들은 혜린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아니, 뭐라고 할까... 뭔가 방법을 찾은 것 같다고나 할지.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라서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내 몸 속에 맴돌고 있는 힘은 다름 아닌 신성력이었다.
엘의 것도,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의 것.
'...어째서 내 몸에 신성력이 생길 수 있게 된지는 모르겠지만ㅡ'
ㅡ신성력을 충분히 모은다면, 엘이 했던 것처럼 다른 세계로 향하거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건 다른 이들의 신앙이었다.
그것도 나를 향한 신앙.
하지만 지구의 인간들은 신을 그다지 신앙하지 않는 편이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전부 교회 쪽의 인간이기까지 했고.
"아이돌이라던지, 가수 같은 거요?"
"아니, 그런 의미의 우상 말고. 말 그대로, 음ㅡ 네가 보여주었던 글에서 나온 '여신' 취급을 받는 것 말이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혜린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조금이라도 사이가 안 좋았다면 '이 사람 미친 건가?' 같은 소리를 내뱉을 것 같은 표정이랄까.
물론 혜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말이지...
아무튼, 혜린은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지구의 인간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엘에게 신성력을 모으는 방법 같은 걸 물어볼 걸 그랬네.'
내가 엘의 핏줄을 타고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엘의 뿔을 먹어치워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능성이 생겼으니 무엇이든 시도하는 편이 좋겠지.
"인지도를 올리시려는 거라면, SNS를 하시거나 음ㅡ 요즘에는 인터넷 방송 같은 걸 자주 하기도 하던데요? 분명 언니라면 사람들도 엄청나게 볼 거예요! 별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아니, 애초에 인터넷 방송 같은 건 요즘이 아니라 옛날에도 있지 않았느냐. 그리고, 애초에 그런 걸 할 생각 따위는 없다."
얼굴을 드러내고 방송을 한다니, 대체 얼마나 낯가죽이 두꺼워야 그런 덜 할 수 있는 건데.
애초에 마왕이라는 직책으로 인해 별로 티가 나지 않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꽤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그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굴을 드러내고 무어라 무어라 말을 하는 일 따위를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 일단은 못 들은 걸로 하거라. 아무래도 생각이 더 필요할 듯 싶으니."
"그보다 아리엘 씨."
"...응? 왜 그러느냐?"
"첫 출근 기념으로 맥주 한 잔 할까요?"
맥주? 맥주라...
최근 마셨던 술이라고 한다면 고르돌이 만든 특제 드워프주였지.
이 세계의 맥주가 그것보다 맛있을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정도라면 충분할 터였다.
이렇게나 기대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데 안 마시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보다, 맥주를 살 거라면 편의점에 있을 때 사지 그랬느냐?"
"거기는 사람이 많아서 싫어요. 아니면, 인터넷에 '맥주 사는 여신님' 같은 글이라도 올라오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
그건 아니지만ㅡ 아니, 아니다. 그냥 다른 곳에서 사지 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으니, 혜린이 싱긋 미소지었다.
정말이지,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