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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02화 (302/342)

Chapter 302 - IF : 전부 다 낳은 뒤에 지구로 보내졌다면.(7)

누군가에게 믿음을 얻는 방법은,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가령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 그 목숨을 살려준다던지,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에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던지.

얼굴이 팔리는 건 싫어서 어두운 밤 중에 움직였지만, 아무래도 소문이 나기는 나는 모양이었다.

"요즘에는 참 밤길이 안전해진 것 같다니까~ 처자도 들었어? 골목길 쏘다니는 양아치들을 누가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서 경찰서 앞에 버려놨다는 이야기 말이야!"

"...잘 모르겠군ㅡ 아니, 잘 모르겠어요."

"그럴 수도 있지. 아! 내가 특별히 더 크고 싱싱한 놈으로 넣었으니까 맛있게 많이 먹어. 알겠지?"

"감사합니아, 아주머니."

아무리 나이가 많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내 나이에 비하면 어린아이나 다름 없었다.

아서 같은 경우에는 뭐... 예외로 치도록 하고.

아무튼, 다른 인간들에게 존대를 사용한다는 것이 꽤나 고역이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적당히 자연스러워진 것 같기도 해서 만족이었다.

"그러면 또 와, 예쁜 처자~"

"네, 다음에 또 올게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손에 들린 봉투를 들고 타박타박 걸음을 옮겼다.

역시 편의점보다는 시장이 더 편하네.

시장 같은 곳은 젊은 인간들이 오지 않아서 그런지 소문이 나거나 사진이 찍히거나 하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나마 다닐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최근이는 꽤 자주 나오고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랬다.

"오늘도 나왔네? 예쁜 아가씨. 좋은 과일이 잔뜩 들어왔는데 조금 사가지고 가~"

"과일은 다음에 와서 살게요."

"에잉, 간만에 좋은 게 들어왔는데 아깝게시리... 자! 그러면 이거 줄 테니까 다음에 많이 사가던지!"

"...감사합니다."

시장에 오는 젊은 외형의 사람이 오직 나 뿐이라서 그런 건가, 생각보다 다들 친절했다.

...이러니까 뭔가 속이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말이지.

다음에 올 때는 꼭 많이 사자고 생각하면서, 서둘러 시장을 빠져나왔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나눔 경쟁에 불이 붙은 다른 상인들에게 꽤 오랫 동안 붙들려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응?"

그렇게 낡은 아파트에 도착하기를 잠시.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신성력이 늘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걸까.

피부를 찌르는 듯한 감각.

정확히는,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ㅡ

"나와라. 날 노리고 있다면 어차치 모습을 드러내야 할 텐데?"

"..."

"몸을 숨겼다고 기척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만. 심지어 그렇게 살기를 흩뿌리고 있으면서, 내가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이 느낌, 이 감각.

지금까지 느껴왔던 것에 비하면 정도가 약했지만, 지금 느껴지는 것은 명백한 살기였다.

설마 지구에서 살기 같은 걸 느낄 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한둘도 아니고 여럿이기까지.

"아가씨가 참 눈치가 빠르네~"

첫 인상은 그거였다. 문신 양아치.

언젠가 혜린이 보여주었던 조폭 영화에서 나올 법한 모습의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덩어리로구나. 저 몸을 검이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한심한 몸매야.

손에 들려있는 망치를 보면 둔기 정도는 휘두를 수 있는 모양이었지만서도.

"그나저나, 오랜만이로구나. 내가 분명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을 터인데."

"하, 돈도 못 받았는데 찾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이렇게 늦게 온 건 이 녀석들을 불러모으려고 그런 거였나? 웃기지도 않는군."

손에 들린 비닐봉투를 복도 구석에 내려두고는 덩어리들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공격하는 건 별로 선호하지 않았지만, 그건 내가 있던 세계의 인간들 뿐이었다.

지구의 인간들은, 나와 아무런 연이 없는 존재들.

자비라는게 존재할 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마. 지금 당장 돌아가서,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면 아무 짓도 하지 않으마."

"무슨 개소리야, 미친 년이!!"

"...그렇군. 대답은 들었다."

나를 직접 상대해본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달려들다니, 설마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걸까.

그렇다면 조금 불쌍하게 여기는 수밖에.

물론, 그 손속에 자비는 없겠지만서도.

"컥...?!"

"케헥?!"

저쪽 세계의 인간도 아니고, 인간 세계의 인간이라고 한다면 한낱 파리 정도에 불과했다.

네 몸집만한 대검을 들고다니는 인간도 있는 곳이 저쪽 세계인데, 마족들은 대부분 그런 인간들보다 신체적인 조건이 좋았더랬다.

하물며 이쪽은 마왕이기까지.

아무리 뿔이 부러졌다고는 해도 겨우 지구의 인간들 따위에 패배할 정도로 나약한 몸은 아니었다.

'만약 세계수가 회복시켜주기 전이었다면 또 달랐겠지만ㅡ'

지금의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평범한 마족의 수준 정도는 된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녀석들에게 절대 질 일 따위는 없다는 뜻이었다.

"미친..."

"내가 분명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 남자는 죽었대도? 녀석을 그렇게 닦달해서 죽였으면 돈 받을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지. 그걸 나한테 받겠다고?"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년이 나온 거야."

바닥에 쓰러져 바르작거리는 남자 앞에 쭈그려 앉자, 이를 악물며 신음을 토해낸다.

죽을 리가 없으니까 엄살 부리지 말거라. 겨우 그 정도로는 죽지도 않아.

대체 왜 이정도까지 해서 돈을 받으려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를 별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마, 다시는 찾아오지 말거라. 만약 찾아오면ㅡ"

"크흐, 너는 몰라도! 너랑 같이 사는 그 여자는?"

"..."

"그 여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ㅡ"

퍼석!

"...이런."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머리통이 사라진 시체를 내려다봤다.

미안하구나. 그렇지만, 먼저 죽을 짓은 한 건 네 쪽이다.

발 밑에 퍼져나가는 피웅덩이를 잠시 내려다 보고 있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른 인간들은 또 어떠려나.

"힉, 괴, 괴물...!"

"괴물이라...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게 괴물이라서 안타깝게 됐구나."

"사, 살려주세요! 무, 뭐든지 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히익...!"

"뭐든지 하겠다라..."

이 세상에서 가장 하면 안 되는 말이 뭐든지 하겠다는 말인 걸 모르는 걸까.

속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양아치들을 한 번 주욱 훑어보았다.

공포, 절망, 그리고 죽음.

거기에 더해 그 사이에 퍼져있는 피와 전투의 냄새까지.

'나 자신이 마족이라는 사실을 이 정도로 선명하게 자각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하거라. 그리고, 이 녀석이 소속된 곳이라던지 알 수 있겠느냐? 아니면, 너희가 이 녀석이 속한 곳의 일원들이더냐?"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돈을 준다고 해서 따라온 것 뿐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절대 모릅니다! 애초에 처음 보는 사이였습니다! 믿어주십쇼!"

물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ㅡ 뭐, 상관 없나.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내게 얽혀있는 귀찮은 고리들을 싸그리 제거하는 것이었다.

나 혼자만 있었다면 찾아오는 순간순간 처리하면 됐지만, 혜린까지 위험해 지는 건 또 이야기가 달랐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죽기 전에 혜린의 이야기를 했었지.

"거기, 핸드폰 한 번만 다오."

"여, 여, 여, 여기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었나.

남자에게 받아든 핸드폰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혜린의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고는 통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ㅡ

"...흐음."

낮은 콧소리를 흘리자 몸을 움찔거리는 녀석들의 모습이 꽤나 유쾌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혜린의 행방이 가장 중요했다.

허세를 부리려 일부러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니면 진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서도.

하지만 만에 하나 진짜로 혜린에게 손을 댔다면ㅡ

뿌득.

"히익..."

"이런..."

손아귀에서 구겨지는 핸드폰에 한숨을 토해냈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게 과연 아르바이트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일까.

혀를 차며 혜린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문인식이라, 요즘 핸드폰은 참 잘 만들었어."

옛날 핸드폰이었다면 비밀번호를 눌러서 풀어야 하니 절대 열지 못했겠지만, 요즘 핸드폰은 전부 지문인식이 가능했더랬다.

그 말은 즉슨, 머리통이 작살이 나서 뇌수를 철철 흘리는 상태가 된 녀석의 핸드폰까지도 열어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죽은 녀석의 핸드폰을 마음대로 여는 것이니 영 찝찝하기만 했지만, 혜린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띠리리링ㅡ 딸깍.

[그래, 네가 말했던 그 년은 잡았냐? 지금 확인 해봤는데 얼굴이 엄청 반반하더만? 어디 사창가에라도 팔면 그 병신이 빌린 돈 이상으로 벌 수 있겠어!]

"..."

[아 뭐, 그래. 그 년이랑 같이 살고 있다던 그 다른 년은 지금 애들 보내놨으니까ㅡ]

뚝.

아직 늦지 않았구나. 아직 늦지 않았어.

만약 혜린이 잡혀갔다면 또 몰라, 지금이라면ㅡ

ㅡ녀석들을 전부 처리하고, 전화를 받은 놈까지 처리할 수 있어.

"거기 너."

"네, 네, 아가씨!"

"이건 제대로 처리 해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똑같은 꼴로 만들어 줄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희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 남자를 잠시 흘겼다가, 한 발 물러서서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 일단 협박할 거리는 있어야겠지.

제목은ㅡ '양아치들의 집단 린치 살인 사건' 정도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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