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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05화 (305/342)

Chapter 305 - IF : 전부 다 낳은 뒤에 지구로 보내졌다면.(10)

"생각보다 감기가 오래 가는구나."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제나와 같이 골골대는 나를 보며 말해오는 언니에, 양심이 쿡쿡 찔려왔다.

차라리 언니가 이유를 물어준다면 조금 후련해질 수 있을까.

내가 어째서 죽으려고 했는지 언니가 알게 된다면ㅡ

"...언니."

"응, 말해보거라. 일단 편의점에는 오늘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손 한 번만 주세요."

결국 오늘도 망설이고 마는 것이었다.

눈치가 빠르면서 둔한 언니는 눈치채지 못한 것.

엄마가 걸린 희귀병이, 자그마치 유전이 된다는 사실을 지금껏 숨겨왔었더랬다.

괜히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자신의 최후에 보게 될 언니의 표정이 너무나 궁금해서.

'...죽어가는 와중에도 참 악취미적인 생각이지만ㅡ'

죽기 직전에 언니가 우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었다.

보통의 사람은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는데, 이미 언니의 웃는 얼굴은 충분할 정도로 많이 본 상태였다.

그러니까, 최후에는 그냥 처음 보는 표정을 보고 싶어.

나를 보며 슬퍼하는 그 얼굴을ㅡ

엄마의 마지막과 똑같은, 그 눈물을ㅡ

"언니."

"응, 혜린."

"저 죽으면 울어줄 거예요?"

"...감기가 심한 것 같구나. 이런 헛소리도 하고."

"...안 울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근질근질한 눈 위에 부드러운 손바닥이 얹어졌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한 제스쳐려나.

그럼에도 튀어나간 한 마디에 아차,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안 울어요?'라니, 무슨 '안 울어요?'야.

무슨 따지는 것도 아니고.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당연히 의심하잖아, 바보.'

죽음이라는 건 쉽게 말을 꺼낼 법한 단어가 아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신중함을 가지고 입에 담아야 할 말.

누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바로 삶인 법이었으니까.

"당연히 울지. 아마 100년 정도는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푸흐, 100년이라니... 그 정도면 쭈그렁 할망구가 되어있을 거라구요?"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

"말만이라도 고맙네요."

나를 끝까지 기억해준다고 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슬퍼할 수 있을까.

언니 같은 사람에게 평생 기억되는 건, 분명 평생의 행운일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ㅡ

'무서워하지 말자. 죽는 건, 무섭지 않아.'

방 한 구석에 밧줄을 매달아두고, 그 싸늘한 고리 안에 머리를 집어넣을지 말지 어찌나 고민을 했던가.

집구석에서 천천히 죽어갈 것이냐, 혹은 병원에서 다른 이들의 동정을 받으며 죽어갈 것인가.

...뭐, 병원에 끝까지 입원해 있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서도.

"...언니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

한두 번이면 또 모를까, 매일 밤마다 그렇게 자리를 비우면 눈치채고 싶지 않아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내 것보다 더 차가운 체온을 가진 언니였지만, 지금은 서로 비슷한 온도가 되어버렸다보니 내 품에서 떨어지면 종종 잠에서 깨고는 했더랬다.

자다가 깨면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무어라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기는 했지만ㅡ

그 서늘한 온기가 사라졌다는 것 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그래. 그래도, 앞으로 곧이다."

그 목소리에 약간의 씁쓸함이 담겨있다고 느낀 건, 어째서일까.

***

혜린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진즉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무리 독한 감기에 걸렸다고 해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체온이 떨어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지금 혜린이 겪는 증상은 죽어가는 이 특유의 증상이었다.

눈동자에서 점점 생기가 사라지고, 눈밑이 검게 물들고, 피부가 창백해지고, 입술이 갈라진다.

최근 들어서는 배고프다는 말도 잘 하지 않는데, 어떻게든 억지로 먹여보겠다고 낑낑거려야 겨우 먹는 수준.

"...내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티 나게 밖을 돌아다녔다고 생각하는 거냐."

"..."

내 무릎 위에 누워서 곤히 잠든 혜린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밤마다 나가서, 왜인지 나를 숭배하기 시작한 이들과 함께 다른 이들을 공포로 지배한다.

물론 다른 선량한 이들을 겁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휘하에 있는 이들과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만 겁박했을 뿐이지.

"혜린."

"..."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다, 혜린."

천천히 어깨를 두들겨, 혜린을 깨웠다.

잠을 자고 있는 그녀는 종종, 최근 들어서는 꽤나 자주 불안해 보여서 가만히 놓아둘 수가 없었다.

마치 영영 깨어나지 않을 사람처럼 보인달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무서워서 자주 깨우는 것도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만약에라도 혜린이 죽는다면 그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지구의 인간에게 이 정도로 정을 주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어쩌면 내 혼에 지구에서 온 인간들의 혼이 잔뜩 섞여있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있었다거나.

그렇기에 더더욱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만약 혜린이 계속 지구에 남아있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면 또 몰랐지만, 내가 어디로 가던지 반드시 따라오겠다고 말했으니까.

...물론 제대로 된 설명은 해야겠지만서도.

"혜린, 혜린, 일어나거라. 너에게 해줄 말이 있다."

"..."

"...혜린?"

하지만 그것도, 혜린이 내 말을 들을 수 있을 때가 가능한 일이었다.

천천히 혜린의 어깨를 돌리자, 싸늘하게 식은 혜린의 체온이 느껴졌다.

...나보다 차가워.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키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설마, 설마, 설마ㅡ

"...하아."

"..."

아니, 아직이야. 희미하지만, 숨은 쉬고 있어.

마족의 신체로 느껴야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희미함이기는 했지만서도, 일단은 살아있다는게 가잘 중요했다.

...가능할까.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신앙을 모아서, 혜린이 죽기 전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

가능할 것 같기는 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나가서 신앙을 얻고 싶지만ㅡ"

"..."

"잠시라도 자리를 비웠다가는 네가 사라질 것 같아서 불안하구나."

그녀를 붙잡고 있는게 나는 아닐까 싶어서, 잠시라도 떠날 수가 없었다.

자의식 과잉인가.

아니면, 정말로ㅡ

"...으응, 언니?"

"혜린."

"...저, 얼마나 자고 있었어요?"

멍하니 내 얼굴을 올려다 보는 혜린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너는 편해지고 싶었던게 아닐까. 내 욕심 때문에 네가 떠나고 있는 게 아닐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사실에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말해야만 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조금 밖에 자지 않았다."

"그래요? 엄청 오래 자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것보다는,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진지한 얼굴로 말하니, 혜린의 표정 또한 덩달아 진지해졌다.

아니, 무언가 불안해 하고 있다는게 더 맞는 말이겠지.

...어째서 불안해 하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야."

"..."

"만약 나를 따라가게 된다면,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따라가겠느냐?"

"...뭐예요. 그 이야기 하시려고 그렇게나 진지한 표정을 하신 거였어요?"

"..."

"당연히 따라가요. 애초에, 이곳에 대한 미련 같은 건 단 한 줌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혜린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마음을 정했구나, 혜린.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조금. 그 조금만 채우게 된다면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하면 진짜 천사라거나 그런 건가요?"

"...딱히 천사 같은 건 아니다만."

내 어느 부분을 보고 천사를 떠올린 건지 모르겠지만, 정 따지고 보면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깝지는 했다.

머리에 뿔고 있고, 꼬리도 있고, 날개도 있는 종족의 왕이니 말이지.

물론 모두가 꼬리나 날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뿔은 기본적인 요소였으니까.

"어쨌거나, 당분간은 몸조리 좀 잘 하도록 하거라. 나와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으니,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

"...네. 으흐, 설마 눈치채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

"누구라도 눈치챈다, 그 정도면."

본인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눈치챘다는 사실에 혜린이 쓰게 웃었다.

정말이지, 겨우 감기 같은 거에 인간의 몸이 그토록 망가질 리가 없잖아?

힘을 못 쓰는 혜린의 등을 받혀, 천천히 일으켜줬다.

낑낑거리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자연스럽게 등을 슥슥 쓸어내렸다.

"그래서, 왜 그렇게 나를 따라오려고 한 거지? 내가 대체 어디로 갈 줄 알고."

"...으응, 그냥 언니랑 계속 같이 있고 싶었던 것도 있고ㅡ"

"그리고?"

"ㅡ언니 딸들도 보고 싶었어요. 그야, 그렇잖아요? 이런 미인이 낳은 딸들인데, 또 얼마나 예쁠지 궁금한게 당연하죠."

"...정말이지."

너 다운 대답이구나, 혜린.

피식 웃으니, 혜린 또한 나와 함께 마주웃었다.

"실망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느냐?"

"제가 실망할 일은 없어요. 절대로."

그렇게 말해준다면 다행이지만ㅡ

그 아이들 중 다섯 명이 나랑 닮지 않은 걸 보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네.

나를 전혀 닮지 않은 아이들을 보며 설마 입양? 같은 이야기를 할지도 몰랐지만, 전부 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었다.

뭐, 그때가 기다려지기는 하네.

"아, 배고프다... 너무 자서 그런가?"

"뭐라도 차려줄 테니 조금 기다리거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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