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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06화 (306/342)

Chapter 306 - IF : 전부 다 낳은 뒤에 지구로 보내졌다면.(完)

끝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아니, 애초에 이 정도로 버틴 것이 기적이라고 봐도 되겠지.

숨을 토해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균형이 무너진 순간부터 빠르게 붕괴하는 신체.

점점 차가워지는 체온은 이미 아리엘의 것보다 싸늘해진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버티는 이유.

그럼에도 살아있는 이유는 아마ㅡ

'언니...'

언니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살아간 나 대신, 그 목적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자면 자기 만족.

어떻게 보자면 마지막으로 남은 미련.

나는 어째서 남인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걸까.

'오늘 하루는 여기서 자고 가.'

그 자그마한 친절.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겨우 도망쳐 나왔을 때, 나에게 보내준 자그마한 친절 한 조각.

조금 늦기는 했지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말을 건 언니의 모습은, 그때의 내 모습과 비슷했노라고.

삶의 의미를 잃어서,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던 그 때의 자신과ㅡ

"...언니, 오늘은 조금, 늦으시네."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곁에 남아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언니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마지막일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붙잡을 걸 그랬어.

사실, 마지막으로 언니의 얼굴을 보는게 내 진짜 소원이었는데.

그랬는데ㅡ

"언니, 언니ㅡ 아리엘, 언니..."

그래서일까.

괜히,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마구 솟아올랐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내 마지막은 언니와 함께하고 말 테야.

어린 아이 같은 치기였다.

그리고 어린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야 성이 차는 이들이었고.

"윽, 콜록! 콜록, 콜록!"

마른 기침 사이에 끈적한 선혈이 들러붙었다.

아아, 정말이지...

이 정도까지 망가져 있었구나, 나는.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것 또한 엄마와 내가 닮았다는 증거였으니까.

"...옷이, 그러니까ㅡ 으, 으으 추워어어어..."

분명 봄일 텐데, 폐부에 스며드는 호흡 한 모금 한 모금이 차가웠다.

이러다가 얼어죽는거 아닐지 몰라.

실실 웃으며 겉옷을 두르고는, 느릿느릿 집을 나섰다.

언니, 지금 찾으러 갈게요.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로 가야 하지..."

집 안보다는 집 밖에 훨씬 따스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만끽하니 조금이나마 살아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불꽃이라는 것을.

"언니이이... 저 진짜 죽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는다는게 문제였다.

...전화라도 해볼까.

목소리,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을까 모르겠네.

느릿느릿 핸드폰을 꺼내들고는, 화면을 꾹꾹 눌렀다.

어디서 만들어 온 건지 모를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며 무슨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연락하라며 말했더랬지.

뚜르르ㅡ

[여보세요.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언니."

전화기 너머로 들으니까 목소리 뭔가 이상하다.

에헤헤, 웃으며 색다른 언니의 모습을 즐겼다.

물어봐야 하는데.

언니에게,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물어봐야 하는데ㅡ

'안 돼.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만족 해버리려고 해.'

몸이, 정신이, 내 영혼이ㅡ

그 한 조각, 어떠한 것도 남김 없이 지금 이 상황을 사랑하는, 그런ㅡ

파멸.

...인가?

아, 모르겠어, 이제는.

***

"혜린? 혜린!"

[......]

핸드폰이 바닥으로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끝났다.

설마, 설마, 설마ㅡ

이제야 가닥을 잡았는데.

이제야,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ㅡ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네 녀석이 알아서 하도록."

"여신님, 드디어 천국으로 가시는 겁니까?"

"천국이라... 그렇지."

"부디, 그 길에 영광있기를."

미친 놈이기는 했지만 끝까지 나를 따라준 녀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몸 안에 충만한 신성력.

뒷골목ㅡ 아니 ,뒷골목을 넘어서 뒷세계 넘어까지 뻗어나간 나의 모습이 결국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누구든지 황금빛 눈동자의 여신을 보면 두려워하고 무릎 꿇으라고.

지구에서 신 취급을 받으니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지만, 원하는 바를 이뤘으니 딱히 후회가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ㅡ'

어서 빨리 혜린에게로 가야만 했다.

빠르고, 빠르고, 더욱 빠르게.

순식간에 지나치는 풍경들을 보니 주변의 인간들이 잔뜩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확실히, 지구에서 이 정도 속도로 뛰어다니는 인간은 없으니까.

원래라면 다른 이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딱히 상관 없었다.

"혜린!"

그리고, 그렇게 달리기를 한참.

낡은 아파트의 복도에 쓰러져 있는 혜린을 발견하고 서둘러 몸을 날렸다.

설마, 설마, 설마!

쿵쿵 뛰어대는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거짓말이지?

"...혜린."

싸늘하게 식어있는 몸.

그리고 더 이상 뛰지 않는 심장.

숨이 거칠어졌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혜린을 데리고 다닐까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그러지 않기로 한 건 나였더랬다.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래서, 그래서ㅡ

"...미안하구나. 내가 너무 늦었어. 그런데, 기다리다 지칠 정도였다면 미리 말해주지 그랬느냐."

"..."

품 안에 안긴 혜린은 나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래, 그랬지.

이미 죽어버린 이는, 답할 수 없는 거였지.

바보 같게도, 그 간단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심장이 멈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살며시 떠진 검은 눈동자에서, 희미하지만 생기를 느꼈다.

내 체온을 흡수해서 약간이지만 삶을 되찾은 혜린의 흔적이, 조금이지만 느껴졌다.

"가자꾸나, 혜린. 내갸 왔던 세계로."

천천히 숨을 고르고, 정신을 집중했다.

두근, 하고 뛰기 시작하는 심장의 고동을 집어삼키며 천천히 신성력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상상하는 것은 문, 원하는 것은 고향으로의 복귀.

자, 그러면 이걸로ㅡ

하나, 둘ㅡ

셋.

***

내가 다시 눈을 뜬 곳은 온통 빛으로 가득 차있는 곳이었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와, 그 주변을 꽉 채운 풀들.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와 함께 몸을 푸근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온기까지.

영혼의 존재를 믿지는 않았지만, 영혼의 끝자락까지 회복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설마, 여기가 천국인 걸까.

"...나는 지옥으로 떨어질 줄 알았는데."

천사 같은 언니를 슬프게 만들었으니까, 분명 지옥행일 줄 았았건만.

죽어서 그런가 몸이 생각보다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얼마 전까지 골골거리던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지금의 몸은 건강한 상태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천사님?"

"천사님이라는 말은 또 처음 들어보는 말이네요. 요정님까지는 들어본 적 있는데."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리니, 커다란 나무의 이파리와 똑같은 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한 천사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천사라고 하기에는 머리 위에 고리라던지 날개는 없었지만, 일단 생긴게 천사니까 천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역시 천사님이라 그런지 웃음 소리도 엄청 예쁘구나.

마치 자그마한 종을 울리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여기는 천국인가요?"

"아니요, 천국은 아니예요."

"...설마 지옥? 그러면 천사님은 천사가 아닌 악마ㅡ 아니, 악마님?"

멍청히 되묻자 이번에도 종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있으신 인간 분이시네요.

어, 그러니까ㅡ 그러니까ㅡ

꿈인가?

천국은 아닌데 천사가 있고, 천사가 있는데 천국은 아니고.

"곧 있으면 어머니께서 오실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원래라면 당신이 깨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계셨을 텐데, 다른 사람들이 워낙 성화라서요."

"어머니? 천사님도 어머니가 계세요?"

천사는 자연 발생하는 존재가 아니었던 건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런지 머릿속에 멍청한 생각만 가득 찼다.

그나저나, 저렇게 예쁜 아이의 엄마라면 분명 세상에서 가장 예쁘겠지?

예를 들자면 아리엘 언니처럼.

...아리엘 언니?

'아니, 머리카락이랑 눈동자 색이 다르잖아.'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엄청나게 미형이라는 것 정도인데 말이지.

"아, 저기 오시네요."

"...진짜요?"

"네, 당신에게는 보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보인답니다."

살풋 웃어보인 천사님이 아, 하고 탄성을 지르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동안, 어머니를 돌봐주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게 무슨ㅡ"

ㅡ뜻이죠, 라고 말하려던 입이 꾹 다물렸다.

제 눈에 비친 풍경.

오로지 녹빛으로 물든 지평선 너머에서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하나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마지막 순간,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니까.

"언니, 언니, 언니...!"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몸이, 빠른 속도로 달음박칠쳤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리를 혹사시켰지만, 몸은 지칠 줄을 몰랐다.

오히려 달리면 달릴수록 지치기는 커녕 더더욱 빨라지기만 했지.

그리고 그렇게 가까워지고, 내가 알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고, 마침내 그 품에 안기는 순간ㅡ

"혜린."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토록 찾아 해매던 행복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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