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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07화 (307/342)

Chapter 307 - IF : 마왕님만 기억이 없는 리트라이.(1)

언젠가는 이런 끝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인간들이 마족들의 아이를 소환하여 살해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대규모 침공은 있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마왕이란 곧 마족들의 총의.

모든 마족들이 그렇게 하고자 원한다면, 그 뜻에 맞춰서 따라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의 인간들을 몰살하는 것으로 희생된 이들의 넋이 달래진다면ㅡ

"마왕님, 용사 일행들이 마왕성 바로 앞까지 당도했습니다."

"...그런가. 그렇구나. 여기까지, 와버렸구나."

피투성이가 된 부관이 황송하다는 듯 무릎을 꿇었다.

무엇이 황송하느냐. 이것은 전부 그대들을 말리지 않은 내 부덕일 텐데.

용사 일행들이 마왕성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게 마지막 역할이었다는 듯,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부관은 숨을 멈췄다.

전투 능력이 뒤떨어지는 시녀나 시종들은 이미 대피시킨지 오래.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

"왕은 생각하지 않는다. 왕은 의지하지 않는다. 왕은 도망치지 않는다ㅡ"

그 최후가 무엇이 되었건, 필사적으로 살아갈 뿐.

마지막의 마지막이 검은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모든 것은, 동족들을 위해.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구나, 용사. 그리고 그 일행들이여."

"..."

"미안하지만, 이 목은 그렇게 쉽게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러니, 피로써 증명해라."

긴 말을 필요 없었다.

대화 따위를 나눌 생각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내뱉은 말도, 내 목소리를 상대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그리 했던 것 뿐.

죽거나 죽일 상대의 목소리조차 모른다면, 조금 한이 될지도 모르니까.

"먼저 오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ㅡ"

이쪽이 먼저 간다.

"고르돌 씨!"

"알고 있네!"

인간, 엘프, 드워프.

하나하나는 마족ㅡ 마왕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 모두가 모이면 이야기가 달랐다.

정면에서 오는 공격을 드워프가 방패로 받아치고, 측면에서 오는 공격은 마법사가 방해한다.

원거리 공격은 정령이 담긴 화살로 인해 무용지물.

틈을 노리려고 해도ㅡ

'이 녀석이 용사인가.'

ㅡ여신의 축복을 받은 용사의 검에, 전부 다 막혀버린다.

하지만 그 정도였다.

방어는 하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그들의 격차가 보이고 있었다.

틈을 노리는 것이라면 유감이다.

지금건 그저 전초전에 불과했으니까.

"막기만 해서는 내 목을 가져갈 수 없을 거다."

머리 위로 솟아오른 뿔에서부터 마기가 흩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죽은 동족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남긴 염원의 힘.

인간들을 불길한 힘이라며 꺼려했지만, 애초에 그것이 불길한 힘이 된 건 그들이 초래한 일이었다.

흑마법사들이 마족의 아이를 사용하여 실험을 하여 악한 일에 사용했으니, 당연히 그렇게 느끼겠지.

'실패하게 된다면, 기꺼이 너희들의 뒤를 따르마.'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의 상실을 겪었기에,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이 세상에 남아있는 동족들의 안위.

만약 내가 승리한다고 해도 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 한 조각의 생각이, 망설임을 불러왔다.

"...아."

얼마나 전투를 지속했을까.

하루? 이틀? 아니면 사흘?

최소한 해가 몇 번 뜨고, 몇 번 졌다는 것 정도는 기억이 났다.

...결국 내가 패배했다는 것 또한.

'끝이구나.'

피투성이가 된 손아귀를 내려다 보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머리를 들어올릴 힘조차 없어, 나를 쓰러뜨린 용사와 그의 일행들을 치하하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힘을 숭상하는 마족들의 왕을 쓰러뜨렸는데 최소한 그 노고를 인정 받아야 할 테니까.

"...축하한다. 큭, 콜록, 콜록!"

단 한 마디를 내뱉고는 눈을 감았다.

시야가 흐릿해서, 계속해서 눈을 뜨고 있다가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래, 이 정도면 되겠지.

충분히 최선을 다했으니까,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내 목숨을 가져가는 대신, 남아있는 동족들을 너무 핍박하지는 말아다오. 그들은 그저 나를 따른 죄 밖에 없으니."

"..."

애초에 누구 하나 죽이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까지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죽어서도 잠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부탁하마.

남아있는 내 동족들을 죽이지 말아다오.

'......어머니.'

저는, 아무래도 좋은 마왕이 될 수 없었나 봅니다.

그 생각을 끝으로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

다시금 눈을 떴을 때는, 창문 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사후 세계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걸까.

만약 살아있다면, 어째서 자신을 살려둔 걸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내 의견을 묵살하고 동족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아니면 동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이 두 눈으로 보여주려고?

전부 다 그럴 수 있었다.

내 눈으로 본 인간들의 추악함은 정도를 넘어선지 오래였으니.

"아, 일어나셨네요. 아리ㅡ 큼, 아니, 마왕님."

"...마왕님?"

"마왕 씨?"

"..."

"..."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다른 아닌 성녀였다.

몸 속에서 느껴지는 힘을 보니 아무래도 나를 치료한 건 그녀인 듯 싶었다.

...왜 그랬는지 의중을 알 수는 없었지만서도.

"어째서 나를 살려뒀지? 심지어 구속조차 하지 않고 말이다."

"그건ㅡ"

"물론 패배한 이상 날뛸 생각은 없다만, 대답 여하에 따라서 다시금 전투를 벌어야 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너희들의 목적이 뭐지? 무슨 이유 때문에 나를 살려둔 거냐.

죽음으로써 도망치려고 했던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그것보다는 어째서 저런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가 더더욱 궁금했지만서도.

"아, 따로 마족들을 억압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답니다. 그냥, 지금은 마왕 씨와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예요."

"...대화? 나와 말인가?"

"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너무 지치시면 안 된다구요?"

부드럽게 말한 성녀가 천천히 손을 뻗어, 내 손을 감싸쥐었다.

따뜻해. 아니, 뜨거워.

인간의 체온은 마족들의 것보다 더 뜨거웠지만, 성녀의 것은 다른 인간들의 것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마치 체온 안에 다른 무언가를 숨겨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신성력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내가 만약 네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한다면 어떻게 하려고 손을 대느냐."

"당신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그리 확실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ㅡ"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른 이의 목숨줄을 쥐고 협박하는 건 취향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그런 치졸한 짓을 할 만큼 몰렸던 적이 없던 것도 있었지만.

"자, 너무 무리하신 것 같은데 조금 쉬세요. 이제 다른 사람이 들어올 테니까."

"...쉬는 시간도 주는 건가? 친절하구나. 역시 성녀라고 해야 할지ㅡ"

"엘리, 엘리라고 불러주세요. 성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보다는 이름으로 불리는 편이 더 좋아요."

마왕에게 본인의 이름을 서슴 없이 알려줘도 되는 거야?

눈앞의 성녀의 거리감에 어색해 죽을 지경이었다.

분명 며칠 동안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싸웠던 사이인데 이렇게나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다니.

역시 성녀는 성녀라는 걸까.

비록 인간이기는 했지만, 그 마음 속에 담긴 건 진정한 신의 마음이었다.

"드디어 일어났네. 며칠 동안 우리를 고생시키더니 말이야."

"에밀리."

"상태가 멀쩡한 걸 보니까 잘 돌보고 있던 것 같기는 한데ㅡ 엘리."

"네, 에밀리."

"...무슨 이상한 짓을 했다던지 그런 건 아니지?"

"제가 아리ㅡ 큼, 마왕 씨에게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다음에 들어온 건 마법사였는데, 왜인지는 몰라도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성녀와 기싸움을 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내 처우를 두고 꽤나 다툰 모양인 것 같구나.

성녀 쪽은 살리자는 입장이고 마법사 쪽은 죽이자는 입장이려나.

아니, 그런 것 치고는 마법사 쪽에서 살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데 말이지...

"왜 그렇게 봐?"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우리 중에서 너를 해칠 사람은 없으니까."

여상한 목소리로 말하는 마법사에 속으로 잔뜩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왜? 대체 왜 나를 가만히 놓아두는 거지?

아니, 가만히 놓아두는 것을 넘어서 치료를 하고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었지.

심지어 두 사람의 눈동자 속에는 그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나에 대해 어떤 악감정도 없다는 듯이.

"마왕."

"...왜 그러지?"

"사실 살고 싶었던 거잖아. 소원이 이뤄졌으니까 조금 정도는 기뻐하는게 어때?"

"......"

겨우 인간 마법사 따위에게 속마음이 꿰뚫리다니, 마왕도 별 것 없구나.

스스로의 한심함을 자책하며 살짝 시선을 돌렸다.

지금 보니 해가 지고 있는게 아니었구나.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더 높아진 태양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곧 찾아올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건만, 사실은 삶이었을 줄이야.

"고맙구나."

"좋아, 그 정도 감사 인사 정도면 됐어."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혀라도 깨물까 싶었지만, 입으로는 이미 감사 인사가 튀어나간 뒤였다.

나도 멀었구나, 멀었어.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인 마법사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설마 정말 내가 깨어났는지 확인만 하려고 온 걸까.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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