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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08화 (308/342)

Chapter 308 - IF : 마왕님만 기억이 없는 리트라이.(2)

용사 일행은 참 이상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침대 위에서 생활하며 느낀 건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죽일 듯이 싸운 이들 치고 나에게 너무나도 살가웠다.

처음에는 익숙한 타인을 대하듯이 말을 걸다가, 이제는 아주 친구를 대하듯ㅡ 아니, 가족을 대하듯이 대한다.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니, 애초에 그들이 내 환심을 살 이유도 없었다.

나는 패배했고, 그들은 승리했으니, 이제 모든 것들은 그들의 뜻대로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노리개로 쓰러면 쓰고, 노예로 부리려면 부리고, 혹은 마왕의 뿔이 어느 정도로 단단한지 시험해봐도 좋을 터였다.

"하아... 정말, 속을 알 수가 없구나. 자신이 알 수 없는 존재가 가장 무섭다고 하더니..."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못할 짓들을 할 뿐.

성녀가 푸른색 사과를 가져다줬을 때는 어찌나 놀랐던지.

독이라도 들어있는 건가 싶어서 잔뜩 의심했지만, 조금 먹어보니 엄청 맛있는 사과였다.

달지만 새콤한 맛이 강한, 그런 맛.

"마왕, 밥 다 했으니까 나와. 설마 안 먹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무슨ㅡ"

꼬르륵ㅡ

"..."

"푸흐, 귀엽네. 어서 와, 그렇게나 오래 싸웠으니 배가 소리를 내는거 아니야."

특히 이 마법사.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이제 아주 살가운 것을 넘어서 친근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뭐지. 뭘까. 대체 무슨 목적일까, 이 녀석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답에, 결국 생각을 포기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읏ㅡ"

"조심해야지. 너무 침대에만 있다보니까 걷는 법을 까먹기라도 한 거야?"

분명 비꼬는 듯한 말이었지만, 목소리에는 비꼬는 듯한 느낌이 하나도 없어서 조금 신기했다.

아무튼, 바닥에 넘어지려는 나를 붙잡아둔 손길에 작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실 일으켜주는 쪽 보다는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동안 침대 위에만 있었다보니 걷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더랬다.

몇 걸음 가지 않아서 금방 적응했지만서도.

"아, 오셨네요! 여기에 앉으세요, 자리는 맡아뒀으니까."

"그, 음ㅡ 고맙구나."

누가 봐도 상석.

가장 가운데 자리에 나를 앉히는 성녀에 잠시 표정을 찡그렸다.

의자까지 꺼내주다니, 매너가 너무 좋잖아.

이 친절이 전부 허상이면 어쩌지ㅡ 하고 불안감이 치솟았지만, 이들의 태도가 거짓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자, 마왕 씨가 좋아하는 버섯 크림 스프예요."

"...내가 버섯 크림 스프를 좋아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앗, 차ㅡ 음, 그냥 그럴거 같았어요."

"..."

역시 수상해.

동족들 중 하나가 나에 대한 정보를 발설했나?

아니, 그럴 리도 없을 뿐더러 말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 같은 걸 말할 리가ㅡ

꼬르륵ㅡ

"어머, 많이 배가 고프셨나보다. 일단 먼저 드시고 계세요. 다른 음식들도 가지고 올 테니까."

"잠시만ㅡ"

"에이, 거절하지 마시고 편하게 드세요! 바로 올 테니까요!"

"ㅡ기다리거라......"

가버렸구나.

문을 닫고 사라지는 성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코를 파고드는 향긋한 냄새에 고개가 푹 숙여졌다.

...누가 만든 건지는 몰라도 참 잘 만들었구나.

짧은 감상을 끝으로 옆에 놓인 숟가락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설마 독이라도 타놓은 건 아니겠지.

'아니, 음식 가지고 장난을 치는 부류들로는 보이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 버섯 크림 스프는 절대적으로 안전할 것이 분명했다.

뭔가 정신이 식욕에 지배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ㅡ

뭐 어때.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 굳이 이해하려 머리 아프지 말고 그냥 포기 하는 편이 더 나을 것만 같았다.

응, 그러니까 먹자. 일단 먹고나서 생각하는 거야.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거라."

"흣?!"

짧은 인사와 함께 음식을 먹으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니며 내가 못 느낀 걸지도 모르겠구나...

떨림으로 인한 심장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싱그러운 녹색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 금색에 이어서 이번에는 녹색이구나.'

지금 보니까 참 머리카락 색이 다채롭구나, 싶었다.

이래서야 헷갈리고 싶어도 헷갈릴 수가 없겠구나.

하나가 가니 하나가 오는 상황을 내가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왜, 별로 입맛이 없나? 에밀리가 직접 만든 것이니 맛에는 이상이 없을 텐데..."

"...뭔가 내가 이걸 먹기를 바라는 눈치구나."

"당연하지. 네가 건강해야ㅡ"

"건강해야?"

"...우리가 좋으니까 말이야."

무엇이 좋은 건지는 듣지 못했지만, 충분히 수상한 단어였다.

...뭐가 수상한지는 모르겠지만.

"숟가락 들 힘도 없다면, 내가 직접 들어줄 수도 있다."

"아, 아니ㅡ 그 정도의 친절은 괜찮다. 그, 부담스러우니까."

"그래, 그러면ㅡ"

피식, 하고 웃으며 의자를 끌어와서는 내 옆에 앉는다.

엘프 특유의 자연 향기가 흘러나와, 뭔가 머릿속이 환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할 때는 혼자가 좋은데 말이지.

하지만 그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 그냥 숟가락을 들어올렸다.

겨우 첫 술을 뜨는데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이야.

"맛있나?"

"...맛있구나."

장난스럽게 물어오는 엘프의 말에 멍청히 대답했다.

설마 이 정도 수준의 음식일 줄이야.

마치 주방장이 직접 만든 것 같은ㅡ 아니, 그 이상으로 맛있는 스프였다.

한 입 먹자마자 무심결에 감탄을 토해냈을 정도로.

"자, 아무리 맛있어서 입가에 묻히고 먹으면 안 되지."

"...읏."

"완벽할 줄 알았는데, 천하의 마왕도 그리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런 내 모습을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어째 내 주변에 있던 동족들보다 용사 일행들이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은 건 거짓말일까.

내 입가에 묻은 스프를 닦아내주는 행동에 든 친절함이 너무 따뜻했다.

마족인 내 몸이 달아오를 정도로.

끼익ㅡ

"잘 먹고 있어?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않았으니까 잘 먹을 수 있게 최대한 열심히 만들어왔어."

"...고맙, 구나."

그리고 다시 마법사.

스프를 다 먹을 때 즈음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분홍색 하트 모양이 그려진 앞치마를 하고, 한 손에는 국자를 들고 있었다.

설마 이곳에서 저런 모습을 한 인간을 보게 될 줄이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일이 실시간으로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될 건지 모르겠구나, 진심으로.

"자자, 그러면 들어와."

"음, 간만에 맛있는 음식들로 배를 채우겠구만."

"..."

트레이를 끌고 들어오는 드워프와 용사.

키가 작은 드워프가 제 키보다 조금 작은 트레이를 끌고 오는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차라리 성녀나 마법사가 끌고 오는게 더 모양새가 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용사는ㅡ 뭐랄까, 아무런 말도 없이 과묵했다.

나와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고.

'원래는 용사 같은 반응이 정상인데 말이지...'

아니, 따지고 보자면 용사 같은 반응도 내가 상상하던 반응은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건 증오를 쏟아내고, 분노하는 광경 뿐이었으니까.

심지어 최소치 또한 그 정도라서 저런 식으로 무관심한 모습을 보일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더랬다.

"역시 배가 고플 때는 고기를 먹는 편이 좋지. 그리고 고기에는ㅡ 술이 있어야 하고 말이야!"

"..."

"뭐야, 다들 표정이 왜 그런 겐가? 원래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에는 술 한 잔 하는 거라고!"

"고르돌 씨, 아무리 그래도 술은 조금..."

성녀가 용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래, 내 생각도 성녀와 같다. 그러니까 손에 들고 있는 술병은 조금 집어넣는 편이 좋을 것 같군.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자 드워프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슬쩍 구석으로 치워냈다.

완전히 치우지는 않았기에 어느 정도 미련이 남아있는 듯 보였지만서도.

"자, 그러면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성녀가 운을 띄운 직후, 용사 일행들이 짤막하게 식전 인사를 했다.

...이 광경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내가 유일한 건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세뇌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동족이 이들을 세뇌하는데 성공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좋겠구나...'

그게 아니라면 내가 미쳤거나 저들이 미쳤거나 둘 중 하나라는 뜻이었으니까.

스스로의 뺨이라도 때려볼까, 하는 충동이 마구 들기는 했지만 식사 자리 앞에서 그런 추태를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그 식사자리에 마족은 없고 전부 인간 뿐이기는 했지만서도.

마왕과 용사 일행이 화목하게 같이 식사를 하는 건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입에 들어가는 음식들은 엄청 맛있었다.

"어때, 맛있어? 자신작인데 말이야."

"...맛있구나. 내 입맛에 놀라울 정도로 쏙 맞아."

"흐응, 다행이네. 감이 죽었을까봐 조금 걱정했었는데."

그런 말을 하며 앞치마를 벗어내는 마법사에 손에 쥔 숟가락을 식탁 위에 슬쩍 내려두었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

목구멍에서부터 두드러기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건, 그저 지독한 악몽일 뿐이야.

있을 수 없는 풍경을 보여주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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