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09화 (309/342)

Chapter 309 - IF : 마왕님만 기억이 없는 리트라이.(3)

과거ㅡ 아니, 지금은 미래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까.

그 날도 언제나와 같이 평화로운 날이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요, 용사님! 아, 아리엘 씨가! 아리엘, 씨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에서 나오는 안도감?

아니면, 몸이 둔해지니 운동이라도 좀 하라며 타박했던 아리엘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스스로의 어리석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친절한 아리엘의 상냥한 마음일까.

"..."

"...너무, 늦었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 한 마디가,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대체 왜.

대체 왜.

대체,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분노보다는 당황이 앞섰다.

그야, 어제까지만 해도ㅡ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이가 이토록 참혹하게 죽어있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장난 치고는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조용히 누워있는 아리엘을 나무라기도 해봤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오로지 침묵 뿐.

"...마을에 내려갔다가, 습격을 당한 것 같아. 정확한 건, 잘 모르겠지만."

"......"

마을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서 부담스럽다며 어색하게 웃어보이던 얼굴이 시야 한 켠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말도 했었지.

어제는, 과일 가게의 사람과 통성명을 했다고 기뻐하기까지 했었더랬다.

...그런데 뭐? 죽어? 그것도, 마을에서?

"범인은, 어떻게 됐는데?"

"자살했어. 아리엘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그저 지독한 악몽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지금 나는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너무도 지독해서, 깨어날 수 없는, 그런 꿈을.

"...아리엘이 그렇게 가버릴 줄은 몰랐건만."

"..."

"미안하구나. 나라도 옆에 계속 붙어 있었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새하얀 수의를 입은 아리엘의 옆에서, 자그맣고 사과를 전해오는 미코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이라는게 생생히 느껴졌다.

죽었구나.

아리엘이, 영영 나를 떠나버렸구나.

손에 잡히지 않는 온기가 심장을 차갑게 물들였다.

마음의 죽음이었다.

"세계수는, 세계수는 대체 뭘ㅡ"

"아무리 세계수라도, 죽은 이를 되살리지는 못해."

"..."

"...아리엘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발견했을 때는 시기가 너무 늦었어."

담담하게 고하는 레이나에 결국 고개를 떨궜다.

어떻게 그리 무덤덤할 수가 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세계수 주변에 시들어있는 꽃과 죽어버린 풀들을 보니 차마 따질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

가족들이 죽고, 한때 아리엘을 원망하던 순간이 차라리 마음 편했던 때라는 것을 문득 깨닫고 말았다.

지금의 나는 원망할 수 있는 이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내 탓이야.'

결국은 거슬러 올라가고야 만다.

가장 큰 죄를 지은 자가 죽었으니, 남은 건 그 다음으로 죄를 지은 자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것 뿐.

그리고, 아리엘을 죽인 이 다음으로 그녀에게 죄를 지은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가 뿔을 자르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녀의 몸이 약해지지도 않았을 터였다.

평범한 인간의 칼 따위는 웃으며 넘어갈 정도였겠지.

...나는 대체 누구를 원망하려고 했던 거야.

조금 전까지 분노하던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해, 입술 틈을 비집고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흐, 흐하하... 아, 하하하하하하하하!!!!!"

세상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리고, 세상이 사라져라 울어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ㅡ

눈물샘에서 눈물이 전부 마르고, 눈물 대신 피가 나올 때까지 울고, 울고, 울고, 또 울었더랬다.

아리엘, 아리엘, 사랑하는 나의 아리엘.

이미 죽어버린 그녀는 생기를 잃었음에도 아름다웠고, 또한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될 정도로.

"그래, 여신이라면ㅡ 엘이라면, 아리엘을 다시 되살려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절박한 마음에 닿은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려온 여신ㅡ 엘이라면, 분명 아리엘을 되살릴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은 엘을 찾는게 우선이었다.

찾아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되살리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ㅡ

"..."

아리엘과 엘이 같이 지내는 방 안에 들어간 순간,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방 안이 엉망이 되어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안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얼마 전에 보았던 아리엘의 모습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똑같이 생겼지만, 이건 마치ㅡ

ㅡ영혼이, 죽은 것 같지 않은가.

"이봐."

"..."

"여신."

"..."

"엘."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리엘과 함께 웃고, 앉고, 자던 침대 위에 앉은 엘의 얼굴에는 그 어떠한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형처럼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뿐.

아아, 그래. 사랑하는 아이를 두 번이나 잃어봤다고 했지.

그러면, 이번으로 세 번째구나.

하고, 멍청히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해댔다.

"지금은 가만히 두도록 하죠. 어제까지만 해도 죽으려 드는 걸 가까스로 말린 참이니까요."

"...린."

"슬퍼하는 건 당신 뿐만이 아니랍니다, 아서. 어머니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슬퍼하고 있어요. 경중을 나눌 수는 없겠지만, 엘은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편이고요."

조곤조곤 말해오는 린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엘을 말리느라 제대로 잠조차 자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슬퍼하고 있지만, 정작 그 슬픔을 터뜨릴 여유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결국, 내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어무것도 없었다.

***

그 뒤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리엘이 누워있는 관 앞에 서고, 앉고, 눕고, 울고, 웃고.

미친 사람처럼, 폐인이 되어버려서는 절대로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녀를 만날 수 없으니, 단 한순간이라도 그녀의 모습을 눈에서 떼어내고 싶지 않다는 것에서 나온 고집이었다.

"이보게, 아서. 마음이 아픈 건 알겠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술만 마시면 몸이 상해버린다네."

"...신경쓰지 마시죠."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절망적인 일상 사이에 술이 끼어들게 된 것은.

왕궁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술을 전부 끌어모아 들숨 대신 병나발을 분게 대체 얼마나 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술을 사랑하는 드워프조차 내 꼴을 보기 힘들었던지 술병을 집어들던 내 손을 붙잡고는 그렇게 말했더랬다.

...그럴 수 있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딱히 고르돌 씨에게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못하게 막는 건 참을 수 없어서, 그 손을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네 꼴이 어떤지 아는 건가? 아주 곧 죽을 사람 같다네. 가끔씩 밖에도 나가고 그래야지, 응? 이러다가는 진짜 죽어!"

"...죽으면, 아리엘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요?"

"아니, 자네는 지옥 갈 거야. 그러니까 죽지 말고 천국에 갈 수 있을 때까지 살아있게. 알겠나?"

혀를 쯧쯧 차며 말하는 고르돌 씨에 헛웃음을 토해냈다.

그의 말대로, 지금 죽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그래, 정신 차리자 아서.

최소한, 죽어서라도 다시 만나야 할 거 아니야. 그렇지?

"...드디어 일어날 생각이 든 건가?"

"...오늘 하루 만입니다."

그렇게 열흘 째.

겨우 아리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지도 모를 가능성이 생겼다.

그래,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는데ㅡ

"거기, 누구 있습니까?"

잠시 바람을 쐬어서 몸에 남아있는 술기운을 털어내고, 다시금 아리엘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었다.

어두컴컴한 홀 안, 창 밖에 비치는 달빛에 그림자 하나가 비쳐졌다.

처음에는 아리엘이 되살아난 줄 알고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이미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인 이상 저 그림자가 아리엘이 아니라는 것 쯤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저기에 있는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리엘의 관 근처도 아니고, 그녀의 관 안에 있는 자는 대체ㅡ

와득, 와드득, 까득ㅡ

"...!!"

찌이익ㅡ 드득, 드드득, 카드드득ㅡ

"...뭐, 하는, 짓이야ㅡ"

이 자리에서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내 뇌를 파고들었다.

살을 찢고, 뼈를 부수고, 그것을 입에 넣어 피를 마시는ㅡ 그런 끔찍한 소리.

죽은 아리엘의 시체를 먹어치우는 그림자의 주인은 바로ㅡ

"ㅡ엘."

"아하, 아하하... 흐, 하..."

그녀와 똑같이 생긴 손과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는, 황금빛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웃어댄다.

그 비상식적인 광경에 압도 되어버린 나는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뭐 하는 짓이야, 엘.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그 말을 계속해서 입 안에 머금으며,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ㅡ

"아리엘을 먹었어."

"...뭐?"

"아하, 맛 없네. 맛 없어서, 죽어버릴 것 같ㅡ 켁, 케헥, 흐헥ㅡ"

"...빌어먹을 년이."

ㅡ목을 졸랐다.

얇디 얇은 그 목을 조르고, 조르고, 조르고 또 졸라ㅡ

젠장, 그만 웃어.

그만 웃으라고.

아리엘을 먹어치우고는, 그녀가 살아있을 적의 모습을 끔찍하게 찢어놓고는, 대체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는 건데?!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

그렇게, 희미하게 들려오는 한 마디를 끝으로 내 기억은 끝이 났다.

너무도 희미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한 마디는 아마도ㅡ

"ㅡ처음부터 다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