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2 - IF : 마왕님만 기억이 없는 리트라이.(6)
"...입에는 맞느냐? 오랜만에 하는 음식이라서 조금 실수가 있기는 했다만ㅡ"
"맛있어요! 엄청 맛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열심히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엘리를 보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성녀가 마왕이 만든 밥을 먹고 있잖아...
그런데 왜 아무도 말리지 않는 건데?
설마 독이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여신의 신성력인지 뭔지로 회복해낼 자신감이 있다는 걸까.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정작 독은 한 방울도 넣지 않았지만서도.
"아리엘."
"..응? 왜 그러느냐. 혹시 아직도 의심된다면 나도 한 입 먹어ㅡ"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나도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
아무리 생각해도 이 용사 일행은 이상하다.
성녀는 그렇다고 해도, 마법사까지 이런다고?
아니, 엘프도 드워프도 전부 다 이상했지.
그나마 정상이라고 할 반응을 보여준 건 그나마 용사 뿐이었더랬다.
"마음껏 먹거라, 에밀리."
"정말?! 잘 먹을게, 아리엘!"
"...그, 그래."
...역시 이상해.
분명 오랜만에 만든 음식이었고, 내가 먹었을 때는 딱 평범한 정도의 음식이었건만 저들은 무슨 극상의 식사라도 되는 듯 열정적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있었다.
설마 인간과 마족의 미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던지 그런 건가?
아니면 이 정도의 요리 실력도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일류 셰프가 만든 것에 비견된다던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분명 그럴 리가 없는데 그 믿음에 대한 의심이 불쑥 고개를 들 것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깜짝 놀라며 박수를 칠 것 같은 녀석들이랄까.
이제는 어떤 반응을 보여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을 것 같았다.
"흑, 흐으... 흐하아아..."
"?!"
...그래도 설마 울기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우, 울지 말거라! 역시 맛이 없던게 맞았구나. 맛이 없으면 그만 먹어도 되는 것을ㅡ 그, 물이라도 마셔서 씻어내거라. 앞으로 요리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ㅡ"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하는 에밀리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맛 없던게 맞았어!
서둘러 컵에 물을 따라내고는 상대의 앞에 내려놓자, 훌쩍거리면서도 다시 한 번 숟가락을 놀려 제 입 안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ㅡ
"...아리엘의 맛, 너무, 맛있어... 흐, 그리웠, 어... 흐으으..."
그러고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대체 아리엘의 맛이라는게 대체 무슨 말인데.
그리고, 그걸 대체 왜 그리워하는 건데?
절대 어우러질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비정상 중에서 그나마 정상이던 에밀리의 인식이 저 아래까지 곤두박질치는 순간이었다.
'엘리보다는 에밀리가 더 비정상이로구나.'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조심하도록 하자, 랄까.
음식에 눈물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데 잘도 먹는구나.
뭔가 가만히 놓아두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소매로 눈가를 슥슥 닦아주니 뭔가 눈물이 더 많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내가 숨만 쉬어도 울 것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에밀리 씨도 참, 밥 먹는데 우시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꼭, 꼭ㅡ 흑..."
"엘리까지..."
"죄, 죄송해요, 아리엘 씨. 밥상머리 앞에서 울면 안 되는 건데... 읏..."
아주 눈물 바다가 되어버린 식탁 위의 풍경에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울 정도로 맛이 있던 걸까, 아니면 울 정도로 맛이 없던 걸까.
결국 에밀리의 눈물에 이어서 엘리의 눈물까지 닦아주게 되어버린 스스로의 신세가 참으로 우스워졌다.
뭐냐, 아리엘. 이 정도면 마왕이 아니라 요리사를 하는 편이 더 맞지 않았느냐?
웃기지도 않는 자아 성찰이었다.
"음, 혹시 무슨 일인지 들어봐도 되겠나?"
"아, 그게ㅡ 뭐랄까, 갑자기 내 음식을 먹더니 다들 울기 시작해서 말이다..."
"그렇군. 그럴 수 있지. 눈물이 많은 녀석들이니까."
아니, 아무리 눈물이 많아도 그러지 겨우 음식 따위로 이런ㅡ
랄까, 대체 이 녀석은 언제 온 건지 모르겠구나.
눈치챌 새도 없이 나타난 엘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니, 멋드러진 미소가 그 얼굴에 걸렸다.
정말이지, 같은 여성이 봐도 멋지다고 느낄 정도의 미소는 반칙이지 않느냐.
"그보다, 에밀리와 엘리를 이름으로 부른 것 같던데."
"...그렇지."
설마 자신도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라는 건ㅡ
"그렇다면 나도 이름으로 불러다오."
"...그래."
ㅡ맞구나, 응.
그래,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으로 다가오니 당황스럽네.
이 정도면 진정으로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벙법이 마왕에게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뭐, 정작 나를 쓰러뜨릴 방법은 차고 넘쳤지만서도.
"그러니까, 이름이ㅡ"
"레이나, 레이나다."
"음, 레이나."
이름을 부르니 뾰족하게 솟아오른 귀가 총총거리며 위아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저거, 기분 좋다는 뜻의 제스쳐는 아니겠지?
아니, 상식적으로 마왕이 이름을 불러준다고 엘프가 기뻐할 리 없잖아.
그렇지만 이 반응은 그냥 기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으으음......
"기쁘구나, 진심으로."
"에..."
"당황한 얼굴은 귀엽고 말이야."
"..."
아무래도 용사 일행들은 동성애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이런 반응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 분명 동성애를 추구하는 녀석들인게 분명해.
용사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에, 드워프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이는 상태.
그런데 다른 여성 일행들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역시 위험할지도.
"다른 이상한 짓을 하려고 이렇게 대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할 뿐이야."
"...그걸 어떻게 믿지? 나와 너희는 적일 뿐더러ㅡ 만난지 얼마 되지 않는 사이기까지 하지 않느냐."
"칼을 맞대고 싸운 자들끼리의 우정ㅡ 이라고 치면 안 되는 건가?"
"...싸움을 좋아하는 마족들도 아니고, 재미있구나."
그리고, 애초에 성녀에 마법사에 엘프가 싸움에서 우정을 느끼는 건 말도 안 되잖아.
뭔가 내가 납득 못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더더욱 어처구니 없는 이유를 말하는데, 이야기를 들으면 나를 놀리려고 하는 소리인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됐다.
얼굴에 웃음기라도 있으면 또 몰라, 왜 하나 같이 다들 진지한 표정인 건데?
패배한 입장이기는 했지만, 의문이 생기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그래, 납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 진실인 건, 여기에 있는 모두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
단어의 나열이 이상하잖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무엇하려고.
설마 마왕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 인간의 생식은 마족의 생식과 똑같다고 알고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일 따위는 절대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유라고 한다면, 그래. 잠깐만 이리로."
"대체 무엇 때문에ㅡ 흐앗...?!"
"...좋구나, 정말로."
갑작스럽게 나를 껴안는 엘프에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코에 맴도는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
부드러운 피부.
맞닿는 흉부와 숨결.
그리고 따스한 햇살과도 같은 온기까지.
'어째서일까...'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그녀들과 함께 있으면, 나 자신이 이상해지는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다.
무언가를 잊고 있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
그럼에도 계속해서 떠올리고 싶은 마음까지 더해지니 가슴 쪽이 계속해서 먹먹해지는 것이었다.
"...너희들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내 자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구나."
"후후, 그래?"
"......그래도, 이 감각이 나쁘지는 않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희를ㅡ"
너희를?
이 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잊고 있는 것. 떠올려야 하는 것.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것. 바로 앞에 있는데도 붙잡을 수 없는 것.
이 감정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리움? 애뜻함?
정의내릴 수 없는 복잡한 무언가에 천천히 숨을 골랐다.
엘리, 에밀리, 레이나ㅡ
"...아서."
"...지금, 뭐라고ㅡ"
아서가 누구지?
불현듯 떠오른 이름을 되새기며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머릿속에 남는 건 오로지 아서라는 두 글자 뿐이었다.
그 두 글자를 듣고 깜짝 놀란 듯한 레이나의 얼굴에 그녀가 무언가 알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에 대해서 딱히 묻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네, 응.
"설마, 기억이 돌아온 건가?"
"기억이 돌아오다니... 마치 내가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처럼 들리는구나. 하지만, 나는 너희를 이번에 처음 보았다만. 아니, 애초에 마족과 인간이 어디에선가 만나봤을 리 없잖느냐."
"...이번 세계의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구나."
천천히 몸을 떨어뜨리는 레이나와 눈을 마주하며 쿡쿡 웃어보였다.
그래, 너희들은 무언가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여전히 울고 있는 에밀리와 엘리의 팔을 부드럽게 끌어당겨, 둘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쳤다.
이런 행동에서마저 익숙함을 느낀다면, 이건 그저 기분 탓인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
"에밀리, 엘리, 레이나."
"...네, 아리엘 씨."
"이야기를 들려다오. 나는 모르고 있지만, 너희들은 알고 있는 그 이야기를ㅡ"
ㅡ부디, 나에게 가르쳐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