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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13화 (313/342)

Chapter 313 - IF : 마왕님만 기억이 없는 리트라이.(7)

"...그래, 그렇구나."

이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엘리, 에밀리, 레이나와 내가 어떤 사이였는지.

어떻게 지내왔는지, 어떤 일상을 보내왔는지.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상처를 겪지 않은 채로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상처를 겪었음에도 결국 이겨내고 행복해질 수 있었다니.

"나는, 행복하게 지냈었구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 감이, 내 영혼이 그들의 말 하나하나 전부 진실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무슨 이유 때문에 기억을 잃고, 처음으로 돌아오게 된 걸까.

천천히 고민 해봤지만, 떠오르는게 있을 리가 없었다.

"...미안하구나.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떠오르는게 없어."

"괜찮아요, 그건 아리엘 씨의 잘못이 아니니까."

"곧바로 친근하게 대할 수도 없을 것 같구나. 나라는 마족은 의심이 많은 마족이라서, 분명 마음은 그렇다고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

"그만큼 저희가 더 믿음 을 주면 되는 일이예요."

미안한 감정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의심이 계속해서 고개를 들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으니 의심하는 건 당연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이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모순적인 상태.

이대로 가다가는 정신적으로 무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혹시, 용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느냐?"

"..."

나의 질문에, 엘리는 답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우려하듯 바라보는 그 눈빛에 나는 그녀가 용사에 대해서 숨기는 것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고 보니, 용사와 사이가 좋았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었지.

어떻게 친했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친했다고 말하는 그가 어째서 나에게 그리 데면데면하게 구는지를 알고 싶었다.

"용사님은 아마 아리엘 씨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예요. 그, 아리엘 씨를 싫어한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여러, 이유가 있어서..."

"왜, 혹시 내가 죽기라도 한 건가?"

"...!!"

"반응을 보니 맞는 것 같구나."

그런 거라면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자신과 가장 친밀하던 존재가 죽음에서 다시 돌아왔는데 기억이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충격일 터였다.

물론 그렇게 가정하더라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ㅡ

그건 직접 만나보는 걸로 해결하는 수밖에.

"알려주지 않는다면 직접 찾아보마."

"그, 알려드릴게요! 아마, 아마 정원 구석 쪽에 계실 거예요."

"고맙구나, 엘리."

엘리를 향해 빙긋 웃어보이자, 살짝 벌어졌던 입술이 굳게 닫혔다.

너희들이 기억하는 난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 가장 알고 싶은 건, 바로 그것이었다.

***

마왕성의 뒷뜰ㅡ 아니, 마왕성이 되기 이전부터 있던 정원 구석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있었다.

숲이라기에는 작고, 그저 나무 몇을 심어놨다고 하기는 수가 많은 장소.

그곳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바람의 흐름이 뒤바뀌고 있었다.

그것도 마법이 아닌 물리적인 힘으로.

"젠장, 제길...!!"

"..."

나무가 잘려나가지 않게 힘을 조절하며 검을 휘두르는 모습에 짧게 감탄했다.

감정에 집어먹혔는데도 이 정도의 자제력이라니.

그런 부분에서는 자신보다 윗줄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아니지. 지금은 이런 쪽으로 감탄할 때가 아니잖아.

"용사."

"...마왕."

검의 움직임이 멈추고, 상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리움과 슬픔을 가득 담고 있는 녹색의 눈동자.

어째서일까. 어째서 너는 그 안에 그 정도의 슬픔을 담고 있는 거지?

겨우 친구의 죽음이라고 하기에, 상대의 감정은 훨씬 더 질척하고 끈적거리고, 동시에 애틋했다.

...딱히 짐작이 가는 관계는 없는데 말이지.

"여기는 무슨 일로 찾아왔지? 딱히 나를 찾을 이유 따위는 없을 텐데 말이야."

"그건,"

이유라, 이걸 제대로 된 이유라고 볼 수 있을까.

너와 내 사이에 있던 과거의 일을 알고 싶어서 왔어.

용사와 마왕일 터인 우리들이, 과연 어떤 관계였는지 알고 싶어서 왔어.

입 안에 맴도는 말은 꽤나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이 밖에 꺼내놓지는 못했다.

누가 봐도 미친 사람의 말이지 않느냐, 그런 건.

상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은 감히 대화의 주제로 올릴 수 없을 법한 내용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믿어줄 텐가?"

"아니."

단호하구나.

겨우 한 마디 뿐인데도 순식간에 의지가 꺾여나갔다.

아무래도 나와 대화를 할 생각 자체가 없어보이는구나.

생각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반응인 것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처가 큰 것 같았다.

상대의 상처를 파고드는 한이 있어도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아느냐, 아니면 이대로 묻어두고 시간에 맡길 것인가.

...무엇 하나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네.

"...그러면, 어쩔 수 없구나."

"...!"

"ㅡ마족식으로, 물어보는 수밖에."

오른손의 마기가 뭉쳐, 칠흑의 칼날이 되었다.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살기에 상대의 살기가 맞부딪히고,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대화가 시작되지 않을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나.

솔직히, 한 번 겨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일행들을 전부 제외하고 용사와 단 둘이 하는 1대 1 결투.

마족으로써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이렇게 단 둘이서 처음인 모양이로구나?"

"..."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도 별로 익숙하지 않아보였었지. 설마, 전에는 이렇게 싸우지 않았던 건가?"

칼날과 칼날이 부딪히는 살벌한 소리 사이에, 용사의 얼굴이 보였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

나와 검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프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대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즐겁구나. 이 정도로 즐거운 적이 또 있었던가?

마족들 중에서도 적수가 없었는데, 설마 이토록 즐거운 싸움을 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다가는 순식간에 목이 날아갈 터다."

"...살기 하나 담겨있지 않는 검을 휘두르는 주제에."

"살기는 담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진심이다만."

다시 한 번 위에서 아래로 훑고 지나가는 검격을 빠른 속도로 받아친다.

아무리 여신의 축복을 받았다고는 해도, 설마 마왕의 육체에 따라올 줄이야!

처음 만났을 때의 전투는 진심이 아니었다는 듯,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렬해지는 검격에 반사적으로 감탄이 터져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대로 쭉 밀릴 생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겨서, 대답을 들어주마.'

그래,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는데ㅡ

"큿ㅡ?!"

"...아리엘?!"

너무 신을 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방심을 했던 걸까.

내 뺨을 스쳐지나가는 칼날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순간이지만 검이 휘둘러지는 모습을 놓쳤다고...?

성검이 스치고 간 자리를 손바닥으로 꾹 찍어누르니, 붉은색 피가 살짝 묻어져 나왔다.

"이제야 조금 흥분되는ㅡ 음? 표정이 왜 그러느냐?"

"..."

"용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용사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상대는 답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제 손에 들린 성검을ㅡ 정확히는 성검에 묻은 내 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상처입었다는게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ㅡ

"아리엘ㅡ"

이번의 목소리는 에밀리도, 엘리도, 레이나도, 용사의 것도 아니었다.

분명 들어봤지만, 들릴 리 없는 목소리.

용사 일행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상태임에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목소리.

이 목소리는 분명, 분명ㅡ

"...마신."

"ㅡ아아, 내 아가. 불쌍한 아가.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은혜로운지. 얼마나 감사한지, 당신도 알아주면 좋을 텐데..."

내 품을 파고드는 차가운 온기에 반사적으로 입술을 짓이겼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 증오스러운 존재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아니, 애초에 이곳에는 어떻게 나타난 거지?

"아리엘, 아리엘, 아리엘, 아리엘..."

"...당신이 나를 그토록 애틋하게 생각하는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우후, 우후후후... 그렇네요, 아리엘. 당신은 기억이 없으니까, 그럴 수 있어요."

나와 똑같이 생긴 황금빛의 눈동자가, 멍하니 내 모습을 그 안에 담았다.

분명 빛나고 있었지만 생기라고는 단 한 조각도 포함되어 있지 않는 눈.

이건, 적의인가? 아니면 살의?

아니, 아니야. 마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적의나 살의라면, 이 이렇게나 심장이 뛸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

"저를, 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아리엘, 사랑하는 내 아리엘. 제발, 제발 저를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아리엘."

싸늘한 한 마디 뒤에 남는 건 오직 눈물 뿐이었다.

살다살다 마신이 우는 꼴을 다 볼 줄은 몰랐는데.

냉정한 반응에도 내 허리를 두른 손을 풀지 않는 상대에, 단호히 손을 움직였다.

네가 놓지 않는다면, 내가 뿌리치겠다.

그리고, 그렇게 뻗어진 손이 마신의 팔을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케흑..."

"?!"

나를 껴안고 있던 마신의 입에서 검붉은 핏덩이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죽음의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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