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4 - IF : 마왕님만 기억이 없는 리트라이.(8)
되찾은 행복이 과거의 행복보다 덜할지언정, 덜 소중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것이 슬픔과 고난을 이겨낸 끝에 얻어낸 행복이라면 더더욱.
그래, 언제부터였을까.
나에게 있어서 아리엘이라는 존재가 이토록 거대해진게,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나가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내 마음 속에 들어차 있는 아리엘에 대한 사랑은 시작된 시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게 들어차 있었다.
"아리엘... 당신이라면, 이런 저를 용서해줄 수 있겠죠?"
당신의 어머니를 죽인 것조차 용서 해주었으니, 이 정도 쯤이라면 분명 용서해줄게 분명하니까.
그러니까 저는ㅡ
"아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던 아리엘의 마지막 모습이, 내 손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어져 내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차라리 내가 죽었다면 좋았을 텐데.
오늘 만큼은 마을에 내려가지 말라고 말했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아리엘이나 나에게 뿔이 있었다면ㅡ
으드득, 으적 으적, 찌이익ㅡ 와드득ㅡ
살을 찢고, 피부를 씹고, 뼈를 부순다.
아리엘, 아리엘, 사랑하는 나의 아리엘.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되살리고야 말겠어요.
설령 그것이 당신을 찢고, 부수고, 먹어치우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아."
"대체 이게 무슨ㅡ"
"아하하... 다행이다..."
그리고 그 반드시는 이루어졌다.
나에게 뿔이 없다면, 그 뿔을 먹어치운 아리엘을 먹어치우는 것으로 힘을 되찾으면 될 뿐.
그런 단순한 일 따위, 자신에게 있어서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쉬운 일이었었나? 잘 모르겠네.
"아리엘... 다시 볼 수 있으니, 콜록ㅡ 좋네요."
"마신, 네가 대체 왜ㅡ"
"이제는, 이름으로 불러주시지 않는 건가요?"
입 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맛에 아하하, 하고 웃음을 토해냈다.
이미 죽은 이를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기억까지 가지고 있기를 바란 거야?
욕심쟁이구나, 엘.
"저를,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나는, 네 이름이 뭔지 모른다만."
"...그렇네요. 기억하지 못하셨죠, 읏... 콜록, 콜록 콜록!!"
그렇지 않아도 차가운 몸이 더더욱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죽어갈 때의 감각이구나...
오래간만에 느끼는 죽음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대체,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왜 아무도 나에게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거야!"
"...차라리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아리엘, 나의 아리엘.
당신이 우리들과 행복했던 기억을 되찾는 것보다, 당신이 우리들로 인해 고통 받았던 기억이 없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할지도 몰라요.
아아, 어쩌면 이것 또한 행운일지도...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잔뜩 당황한 듯한 황금색 눈동자가 비쳤다.
...마지막으로 보는게 이런 예쁜 황금빛이라니, 오히려 좋네.
"......언젠가 기억을 되찾게 되어도ㅡ"
"...마신?"
"ㅡ당신의 탓이 아니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나의 사랑하는 아리엘.
***
원수, 증오하는 이.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존재. 용납할 수 없는 자. 마신.
마신이지만, 마족들을 배신한 존재. 동시에, 마족들에게 배신당한 존재.
절대로, 자신과 어울릴 수 없는 존재.
그런 존재의 죽음에 웃을 수 없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아리엘 씨."
"..."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맑았는데, 지금은 아주 우중충하니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지금의 내 기분도 저것과 같으려나.
후련해야 할 텐데, 그러지가 않았다.
너무 허무하게 죽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내 손으로 끝내지 못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많았지만, 그것 하나하나가 전부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대체 뭘 원하던 걸까... 너희와 나ㅡ 그리고, 마신은 대체 무슨 관계였지?"
"...그건,"
"아니, 지금은 답하지 말아다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와 네가 대체 무슨 사이였는지는 내 스스로가 떠올릴 테니까."
땅에 묻지 않는 이유가 뭘까.
나와 똑같이 생긴 마신을 바라보며, 길고 긴 숨을 토해냈다.
떠올리고 싶은데, 떠오르는게 없어.
내가 겪었지만, 동시에 겪지 않은 일을 대체 어떻게 떠올리라는 건데?
"...마신. 대체 나를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본 거지?"
"..."
"...이미 죽은 녀석에게 물어도 소용은 없겠지."
그렇다면 살아있는 이에게 묻는다면 어떨까.
내가 만났던 이들 중 가장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 동시에 가장 격한 반응을 보였던 이.
그리고, 나와 가장 깊은 관계를 맺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이.
아아, 분명 마신이 나타났을 때 엄청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그리고 그 당황에 섞인 증오와 분노, 슬픔까지 나는 전부 읽어냈었더랬다.
"너희들이 나에게 말하지 않은 건 전부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 말해주지 않는 걸 알고 싶구나."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미 죽어버린 이를 계속 보고 있는 것으로는 그 어떠한 방법도 생기지 않을 터였다.
용사, 그 남자를 만나야만 했다.
그라면 분명 무언가를 말해주겠지. 이 혼란 가득찬 머릿속을 깨끗하게 만들어줄 그런 한 마디를ㅡ
"아리엘."
"...용사. 오늘은 이름으로 부르는구나."
다시 만난 용사는 얼굴에 서려있던 독기가 잔뜩 빠진 상태였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마신의 죽음이?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스스로 깨달음을 찾아서 번뇌를 해결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뭐랄까ㅡ
가장 불안해하던 요소가 사라져서 안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신이 죽어서 기뻐하고 있구나, 용사여."
"..."
"물론 나도 기뻐해야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유 모를 슬픔이 가득 들어차고 있더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의 출처를 알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게 아닐까.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는 용사의 바로 앞에 서자, 그의 녹색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예쁜 녹색이로구나. 정말이지, 질투가 날 정도로 예쁜 녹색이야.
짧은 감상 뒤에 남는 건 검은 칼날이었다.
"이번에도 말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듣겠다. 저번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겠지?"
"...아리엘."
"가끔씩은 알지 않는게 좋은 일들이 있는 법이지만ㅡ 그런 건 스스로가 정하는 거지, 다른 누군가가 정해주는게 아니야."
"..."
용사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힘이 풀렸다는 듯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전투인가, 혹은 대화인가.
먼저 칼날을 뽑아든 입장에서는 조금 미안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가 대화를 선택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전투 같은 건 이제 지긋지긋했으니까.
"...말 해줄게."
"그렇군. 이번에는 대화를 선택했구나, 용사."
"아서."
"..."
"그게 내 이름이야."
아서, 아서라...
'사랑해, 아서.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
"...아리엘?"
아니, 조금 전에 무언가가 떠오를 것 같기도ㅡ 기분 탓이려나.
지끈거리를 머리를 부여잡으며, 손에 쥐여져 있던 칼날을 흩뜨러뜨렸다.
아서. 그 이름이 무어라고 이렇게나 머리가 아픈 걸까.
그 정도로 애틋한 이름이었나? 그게 아니라면, 그 정도로 나에게 상처가 되는 이름이라서?
...제대로 된 건 일단 들어봐야 알겠지.
"그래, 일단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게 좋을까... 네가 납득할 수 있을지,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ㅡ"
"믿으마. 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반드시 믿으마."
"...그래."
몇 번이고 망설인 용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을까ㅡ
"처음의 우리는 싸우지 않았어. 정확히 말하자면, 네 쪽에서 항복을 해왔지."
가장 첫 마디부터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의 나열이었지만, 일단은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더랬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가 마신ㅡ 여신의 강림일 때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확실히, 성검에 내 피가 닿자 마신이 튀어나왔지.
마신과 여신이 같은 존재라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ㅡ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너희들에게?"
"......그래."
용사의 모습은 마치, 신에게 그 죄를 고하는 살인자의 것과도 같았다.
아아, 그래서 다들 말하기 싫었던 것이로구나.
이해가 되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의문점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런 짓을 한 녀석들을 용서하고, 사이좋게 지냈다니. 과거의 나는 대체 얼마나 좋은 녀석이었던 걸까.
"그나저나, 너와 내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구나. 뭔가 다른 일이 있었지? 직접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만."
"..."
"말해다오. 내가 비록 네가 기억하는 아리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ㅡ"
"이걸, 기억해?"
용사, 아서가 나에게 내민 것은 다름 아닌 황금빛의 반지였다.
마왕성의 제물 창고에서 꺼낸 걸까.
마치 내 눈동자나 용사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그런ㅡ
'이러면, 서로가 서로를 가졌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겠구나.'
'아서,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내가 없어도, 슬퍼하지 말아야 할 텐데.'
'......아서.'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풍경에 몸을 잔뜩 웅크렸다.
이건, 이 기억은... 큭.
아서를 바라보며 웃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며 웃는 아서.
그건 마치 가장 친한 친구를 바라볼 때의ㅡ 아니, 마치 연인을 바라볼 때와 같은 시선이었다.
...연인이라, 연인이라고?
"아서."
"..."
"너를 용서하마. 과거의 내가 그러했듯이, 나 또한 너를 용서하마. 뭐, 애초에 지금의 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지만..."
상대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을 보며, 입꼬리를 비죽 끌어올렸다.
그런 식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놀리고 싶어지지 않느냐, 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