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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17화 (317/342)

Chapter 317 - IF : 마왕님만 기억이 없는 리트라이.(11)

"...할리벨."

"네, 마왕님. 저 여기 있어요."

"...다행이구나."

할리벨의 품 안에 안겨서, 묵힌 숨을 토해냈다.

완벽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대충 그녀가 나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 정도는 기억해낼 수 있었다고나 할까.

...내가 처음으로 구한, 나의 구원자.

나와 똑같은 체온을 천천히 받아들이자, 응어리가 져있던 마음이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키스를ㅡ"

"미안하구나."

"큿..."

내 입술을 향해 직전하는 할리벨을 막아세우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미안하지만, 그것만큼은 하게 두지 말라고 마음 속 무언가가 외치고 있어서 말이야.

설마 과거에도 계속 그랬다던지?

한두 번 정도로는 이런 반응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뭔가 몸이 커다래서 그런지 조금 부담스럽구나."

"...역시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위해서아면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ㅡ"

"그런 극단적인 방법까지 사용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

무언가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린 할리벨에 잔뜩 당황하고 말았다.

솔직히 작을 때라면 몰라도 다 큰 마족이 엉겨붙는 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으음, 솔직히 말하자면 기억이 애매해서 뭔가 다 큰 몸에서 어린 아이 모습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달까.

뭐, 상싱적으로 회춘이라던지 어려진다던지 하는 일이 벌어질 일은 없겠지만서도.

"으으, 마왕님의 품이 그리워요..."

"...안기는 것 정도는 상관 없다만."

"그러면 하루 종일 안겨있을래요!"

다시금 와락 달려드는 할리벨을 받아들고는 작게 숨을 토해낸다.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이래서야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겠어.

엘리도 그러려니 하는 얼굴인 걸 보니까, 나를 만나서 반가운 것을 제외하더라도 원래 이런 성격인 듯 싶었다.

"으응, 역시 작은 몸일 때가 훨씬 안겨있기 편했ㅡ 음... 엘리, 혹시 에밀리 어디 있는지 알아?"

"에밀리 씨라면 지금 쯤이면 지하 서고 쪽에 계시지 않을까요?"

"그러면 잠시만 다녀올게!"

나를 향해 눈물을 글썽거리던건 언제고, 갑자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멍하니 할리벨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원래 저런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뭔가 엄청 폭풍 같은 마족이로구나.

"그래도, 어느 정도 기억을 하실 기미가 보이기는 해서 다행이네요."

"언젠가는 너도, 다른 이들 또한 완벽하게 기억해낼 수 있겠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을 기억해내는게 이제 내 숙제가 되었다.

물론 내 마음대로 떠올릴 수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안타깝기는 했지만서도.

그래도, 나를 기억하는 이들을 하나 둘 만나다보면 언젠가는 전부 떠올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저 돌아왔어요, 마마!"

"...마마, 라니."

하지만 그런 감성적인 감상은 그다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갑자기 뛰쳐나간 것처럼 갑자기 뛰쳐들어온 할리벨ㅡ 아니, 할리벨을 축소시킨 듯한 아이가 그대로 내 품을 향해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몸집이 작아서 받아들기는 편했지만, 당황스러운 감정 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할지, 뭐라고 할지...

그보다, 몸 크기를 그렇게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던 거였나?

"흐응, 이정도 크기면 딱 좋지 않나요? 그러니까 그런 의미로 사랑의 키스, 츄우~ ♡"

쪽, 하고 닿는 입술에 어린 아이 특유의 분내가 잔뜩 맡아졌다.

...진짜 어려졌구나. 그것도 엄청나게 빨리.

에밀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던 것을 보니, 아무래도 에밀리가 할리벨을 작아지게 만든 것 같은데ㅡ 음, 그냥 알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잘못 했다가는 나까지 할리벨처럼 만들 가능성도 있었으니.

"역시 기억은 없어도 몸이 기억하고 있네요."

"몸이 기억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보세요. 엄청 자연스럽게 안고 있잖아요?"

세상 편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안긴 할리벨이 내 팔을 탁탁 내려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아이를 안아본 적이라고 하면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을 텐데, 지금은 무슨 한참이고 아이를 키운 적 있는 유부녀처럼 아주 안정적으로 할리벨을 안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스스로가 봐도 정말 신기하구나.

과거의 나는 아이를 돌보는데에 일가견이 있었던 건가?

"할리벨 씨, 그렇게 아리엘 씨를 계속 괴롭히면 안 된다구요?"

"흥, 마마를 무시하지 마!"

"...유아퇴행이라도 하신 건가요?"

"아아, 할리벨은 그런거 몰라~ 할리벨은 아가인걸~"

분명 멀쩡히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앙탈을 부리는 할리벨.

그런 할리벨을 끔찍하다는 듯 바라보는 엘리까지.

딱 세 명이 있는데 이렇게나 북적거릴 수가 있을까.

내 품에서 방방 뛰기 시작하는 할리벨을 달래면서, 엘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 인사를 건넸다.

미안하구나, 엘리. 우리 아이가ㅡ 큼, 우리 동족이 조금 못나게 굴어서.

"갑자기 나타나서는 회춘 물약을 만들어 달라느니 뭐니... 쯧."

"...에밀, 리?"

"아리엘, 혹시 품에 안고 있는 짜증나는 녀석 한 번만 내려줄 수 있어? 내가 조금 짜증이 나서 말이야, 아무래도 화를 풀어야 할 것 같거든."

지하 서고에 있다던 에밀리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평범한 에밀리가 아니라 에밀리 소형 버전이 있었다.

...에밀리까지? 물론 할리벨처럼 마구 달려들지는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서도.

"그 녀석이 소란 피우면서 나갈 때 포션을 만든 항아리에 머리를 박았단 말이지... 하아, 원래는 이렇게 작아질 생각 따위 없었는데."

"흥, 계속 뻗대니까 벌 받은 거겠지! 사실 본심으로는 자기도 이렇게 작아져서 마왕님 품에 안기고 싶은 거면서!"

"..."

부정은 안 하는구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거리다가, 결국 머리에 씌워져 있는 모자의 챙을 꾹 내려 얼굴을 가려버린다.

분명 내용물은 어른의 에밀리인데 조금씩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묻어나오니 꽤 신기했다.

물론 언제까지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자, 나에게 안기는게 좋다면 이렇게 둘 다 안아주마."

"으앗...?!"

"싫다면 곧바로 바닥으로 내려줄 테니, 부디 싸우지만 말아다오."

어린아이의 몸으로 진득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 만큼 불균형한 일이 있을까.

에밀리와 할리벨을 둘 다 품에 안아들고는 그대로 어르고 달랬다.

안 쪽은 어른이지만 일단 겉은 애니까 부둥부둥 달래면 조금 풀리지 않으려나.

다행히 내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조금 시간이 지나니 두 사람 모두 조용해졌다.

...그래, 그렇게 서로 친하게 지내야지.

"아리엘 씨, 저도!"

"...미안하구나, 지금은 아이들을 안고 있으니 조금 있다가 따로 해주마."

"저는 상관 없어요. 어느 누구들이랑 다르게 저는 인내심이 넘쳐나는 사람이니까 말이죠?"

은근히 에밀리와 할리벨을 겨냥하는 듯한 말에 아하하, 하고 마른 웃음을 토해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에 가시가 있구나.

이제는 서로가 아닌 엘리를 째려보기 시작하는 아이들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다 같이 있다가는 어떻게든 싸움이 날 것 같으니 일단 재우고 생각하자.

"자자, 일단 같이 침대에 눕자꾸나."

"지금 자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아?"

"흥, 그러면 너는 따로 있던지."

침대에 앉히자마자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두사람 사이로 슬쩍 내려앉았다.

이러다가는 잠들기 전에 한바탕 크게 싸울 것 같단 말이지.

무슨 투견도 아니고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을 안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원래 딱히 잘 생각 같은 건 없었지만, 아이들이 싸우는 걸 보느니 그냥 다 같이 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마왕님 품 따뜻해."

"나는 너희들이 훨씬 따뜻하구나. 마치 인형 안에 따뜻한 물이 들어있는 듯한 느낌이야."

힘조절을 잘못하면 펑, 하고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것까지 상당히 똑같았다.

아무튼, 이대로 자기에는 아쉽다고 생각한 아이들도 막상 자리에 누우니 생각이 바뀐 듯 싶었다.

봐, 누운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이 깜빡깜빡 감기고 있잖아?

"졸리면 그냥 자도 된다. 지금 잠든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으응, 그러면 조금만 잘게요."

"...나는 잠들기 싫은데."

에밀리가 조금 더 고집을 부르기는 했지만, 심장 소리에 맞춰 몸을 토닥이자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아무래도 평소에 피곤이 꽤나 쌓여있었던 것 같구나.

몸이 변하자마자 이렇게 잠든 것을 보니, 아무래도 두 사람 모두 수면 부족이었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할리벨의 팔에는 흉터가 잔뜩 있었지.

예를 들자면 뾰족한 바늘 같은 것으로 마구 찌른 것 같은 묘한 상처라던지 그런 것들.

"......대체 얼마나 많이 고생을 했길래 몸이 이런 것이냐."

"..."

"분명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울지도 않고..."

잠들어 있는 할리벨의 탐스러운 분홍빛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두 사람 모두 머리카락 색이 분홍색이구나.

에밀리 쪽이 조금 더 붉은기가 돌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색을 따지고 보자면 거의 비슷한 수준이기는 했다.

할리벨의 머리에 있는 뿔만 아니었다면 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일 텐데 말이야...

물론 오밀조밀 따지고 들면 딱히 엄청 똑같다는 말을 들을 수준으로 닮지는 않았으니까, 뭐.

"잘 자려무나."

아무튼, 잠이 든 두 사람은 엄청나게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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