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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19화 (319/342)

Chapter 319 - IF : 마왕님만 기억이 없는 리트라이.(13)

신의 심장이 멈춘 이유는 그 심장을 움직이는 힘이 전부 떨어졌기 때문일 터였다.

만약 진정한 의미로 죽었다면, 이렇게 시체가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소멸했을 터.

그렇다면 희망은 있다.

자신을 이용해먹은 빌어먹을 신이기는 하지만ㅡ 제 친우의 핏줄이기도 했으니까.

"네 녀석, 나에게 빚 하나 지는 게다. 알겠느냐?"

혀를 쯧쯧 차며 천천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리엘이나 다른 녀석들은 이미 문 밖으로 내보낸 채.

혹여 내가 허튼 짓을 할지 걱정하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기억이 있는데 막을 이유가 없을 테지만서도.

"뭐, 좋아. 까짓거, 해주마."

아리엘이 제 품에 가득 안고는 헤헤 웃던 모습이 눈에 훤했다.

기껏 아홉개나 되는 극상의 꼬리를 되찾았더니 다시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라...

조금 슬퍼지려고 했지만, 한 번 맛 보여줬으면 충분하겠지.

이깟 꼬리보다는 아리엘이 기억을 되찾는게 먼저였으니까.

꾸득ㅡ

"...큿."

힘을 주어 잡자, 귀가 뒤집혀 천장을 바라본다.

그저 강하게 움켜쥐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거절할 정도의 고통.

이를 악물고 조금 더 힘을 주자,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황금빛의 꼬리가 그대로 뽑혀져 나왔다.

...아프구나.

언젠가 아서 녀석이 잘라냈을 때보다 훨씬 아팠다.

"여덟 개 이상으로 먹어치우면 용서하지 않을 테다. 하나 정도는 남겨줘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겠느냐?"

"..."

"...쯧, 빌어먹게 손이 가기는."

하지만 이렇게나 아리엘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라면 못해줄 것도 없었다.

하나, 둘, 셋ㅡ

피가 쏟아지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시야가 흐려진다.

점점 엘이 가깝게 보이고, 손이 작아지고, 힘이 흩어져ㅡ

'...정신 차리자.'

이대로 정신을 잃어봐야 얻을게 없었다.

아아, 바보 같기는. 애초에 신이라는 것은 신앙을 얻는 것만으로도 다시 되살아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서 되살리려는 걸까.

"...아리엘."

언젠가부터 제 마음속에 들어온 이.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둘도 없는 원수였을 텐데, 마지막의 그 광경에서는 누구보다 믿을 수 있고 돌봐주고 싶은 친우가 되었더랬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에 한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더랬지.

...하필 딱 밥을 다시 먹기 시작하려고 할 때 시간이 되돌려지기는 했지만서도.

"망할 여신 같으니. 내 꼬리를 그렇게나 쳐먹고도 잠이 안 깨는 게냐? 어이, 일어나거라! 엘! 이 빌어먹을 잠꾸러기야!"

"..."

이제 둘만 남은 꼬리로 엘의 뺨을 투닥투닥 내려쳤다.

...역시 안되는 건가.

충분히 노력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대로 실패하면 자신 있게 소리친 보람이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되살리고 말겠어.

마지막과 같이 꼬리 하나가 되는 한이 있어도ㅡ 아니, 꼬리 전부를 잃는 한이 있어도.

꾸드득ㅡ

"흐, 흐아아아악......!!"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꼬리가 그대로 뽑혀져 나간다.

벌써 여덟번째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고통이 덜했다.

전신의 신경이 마비된 걸까, 아니면 더 이상 고통을 느낄 힘조차 없는 걸까.

손에 들려있는 마지막 직전의 꼬리를 내려다 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일어나거라, 엘."

"..."

"..."

여덟번째 꼬리가 사라지고 잠시.

주변을 채우는 정적에 가쁜 숨을 토해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역시 여덟 개로는 모자라다는 뜻인가.

마지막 남은 꼬리가 절대 떨어지기 싫다는 것처럼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렇지만, 해야 돼.

"...미코."

하지만, 마지막 꼬리 만큼은 겨우 지켜낼 수 있었다.

잔뜩 쉰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는 황금빛 눈동자에, 겨우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늦었다고, 바보야.

느리게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떨구자, 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미코?!"

"바보 같으니... 너무 늦지 않았느냐..."

"저, 정신 차리세요!"

깜빡거리며 흐려지는 시야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뭐, 엘이 깨어났으니 내 역할은 이걸로 끝일 테니까.

***

마신ㅡ 아니, 엘이 피투성이가 된 미코를 껴안고 나온 것을 보고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작아진 미코는 원래 모습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그 자그마한 몸에 핏덩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처음에는 엘이 범인인 줄 알았더랬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해친 자의 눈동자가 저토록 서글플 리 없을 터.

"에, 엘리! 도와주세요! 피를,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진정하세요, 엘 씨. 잠시 잠든 것 뿐이니까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하는 엘에게 엘리가 조곤조곤 말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얼굴로 저렇게 우니 느낌이 조금 이상하구나.

심지어 그것이 철천지원수였던 마신이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역시 기억이 없으니 불편하구나.

"그나저나, 이 모습이 더 익숙한 건 기분 탓인가?"

"기분 탓이 아닐 거예요. 어떻게 보자면 이 모습으로 아리엘 씨를 가장 많이 만났으니까요."

"...그렇구나."

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아홉 꼬리를 그렇게나 자랑하더라니.

물론 싫었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지.

몸 주변에 묻은 핏덩이를 살살 떼어내며 그 자그마한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엘의 말을 들어보면 제 꼬리들을 떼어내서 자신을 소생시키는데 사용했다고 했었나.

'얼마나 아팠을까...'

꼬리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족들 중 꼬리가 있는 자들의 경우를 보면 꼬리가 잘렸을 때의 고통은 상상 이상일 터였다.

심지어 이 정도로 커다랗고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ㅡ 큼, 그런 꼬리라면 더더욱 아팠겠지.

거기에 아홉 개 중에서 여덟 개를 뽑아내다니.

그것도 제 손으로.

"엘, 이제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구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너희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이야기를 듣고 싶다만."

"...정말 들어야 하나요? 차라리 기억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그정도로 심각한 일이더냐? 내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 정도로."

"......딱히 일부러 되살린 건 아니었어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반쯤은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았다.

하긴,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 따위는 그저 끔찍하기만 할 뿐일 테니까.

...잠깐, 뭐라고?

'마왕, 마왕, 마왕... 네, 네가 죽인 내 가족들의 복수야... 흐, 흐하하하하...!!'

'...죽었어? 진짜 죽었어? 마왕이, 내 손에 죽었다고? 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는데?!'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죽었었나?

아니, 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들었나?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조금 전의 기억은 대체ㅡ

"큭..."

"아리엘 씨?"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아니지. 이런 걸 숨겨봤자 의미 없겠군."

머릿속에 떠오른 내용을 말하니, 엘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동요였다.

그래, 나는 그렇게 죽었구나.

하지만 어떤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를 끝마친 상태였다.

애초에 용사 일행들과 전투를 시작한 이상 죽음은 받아들인 바였으니, 내가 죽었던 상황이 떠올랐어도 무덤덤할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괜찮다. 그저 겪었던 일에 대한 기억이지 않느냐.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무섭다는 것이 아니라 걱정된다는 감정이 더 크고."

"아리엘 씨..."

아마 그 걱정은 이들을 향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아직은 마지막의 기억만 떠올라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말고 다른 이들을 걱정하는 경우는 상상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엘 씨, 이렇게 다시 살아난 김에 한 마디만 할게요."

"...무슨 한 마디?"

"대체 왜 혼자서 그런 결정을 하신 건가요?"

"..."

따지듯이 묻는 엘리에 엘의 입이 꾹 다물렸다.

시간을 돌리기 전에 따로 무슨 짓을 했구나.

그리고 그건 엘리가, 혹은 다른 모두가 바라지 않는 방향의 일이었을 테고.

우물쭈물 나와 엘리의 눈치를 보던 엘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저희에게도 말해주실 수 있었잖아요. 그랬다면, 같이 그 짐을 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그건."

무어라 말을 하려던 엘이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또 나와 관련 있는 것 같구나.

여기서 말하기에는 내가 걸려서 그런 거겠지.

"나는 나가 있으마. 천천히 대화 나누거라."

그러니 여기서는 내가 빠져주는 편이 맞을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떠오른 기억을 되짚고 싶은 차였으니까 말이지.

나를 붙잡으려는 두 사람을 부드럽게 뿌리치고는 그대로 방 밖으로 나왔다.

건물 안에 있으니 뭔가 답답하구나.

"...대체 어떤 생활을 해왔던 걸까, 나는."

요리를 하는 것이 익숙하고, 저들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질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너무도 달라서 조금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마치 마왕이 아니라 그냥 아리엘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아리엘로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했다.

"기억을 되찾지 못했는데도 이정도인데 기억을 되찾게 된다면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른 이들은 내가 기억을 되찾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지만서도.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기억을 전부 되찾는다면, 저들을 훨씬 더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어쩌면,기억을 잃기 전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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