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5 - IF : 마왕님만 기억이 없는 리트라이 - 후일담. (5)
"퉁명스러운 표정 풀어주세요~"
"..."
"마마한테 그러면 못 쓰는거 알아요, 몰라요?"
"..."
지금이 무슨 상황이냐고 묻는다면, 엘리가 케이 추정ㅡ 아니, 확정의 아이를 제 무릎에 앉힌 채 아이의 손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떤 아이가 나올지 걱정하던 엘리였는데, 출산의 고통을 겪으니 아주 모성애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지금의 엘리는 처녀였지... 큼, 처녀였었지.
엘리의 말로는 '케이 씨가 제 처녀를 가져갔으니, 저도 케이 씨의 어른으로써의 존엄성을 가져가겠어요!' 라고 했었나.
"케이, 이번에도 아리엘 씨에게서 태어나지 않은게 싫었던 건가요? 그래도, 처음에는 엄청 기뻐서 울기까지 했잖아요?"
"...그건 태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운 거야."
"앗, 드디어 말했다! 케이, 하마터면 아직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줄 알았잖아요? 왜 말 안하고 있었나요? 뭐라고 하려는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케이를 껴안고 있는 엘리와, 그런 엘리에게 안겨서는 새삼 귀찮고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까지.
그 기묘한 광경에 머리가 아픈 건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내 옆에 앉은 에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나저나 의외네. 에밀리라면 분명 저런 케이의 모습을 보고 잔뜩 놀려줄줄 알았는데.
뭐... 내가 봐도 조금 과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나쁜 쪽으로 과한 건 아니었으니까 상관 없으려나.
"저, 케이 낳으면서 엄청나게 고생했다구요? 아프기는 얼마나 아픈지, 진짜 배가 찢어지고 내장이 뒤틀리는줄 알았어요. 물론, 아기가 나온다고 하니까 힘내서 낳았지만요!"
"..."
"자아, 마마~ 라고 불러보세요. 저 진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네? 네에에에?"
"...읏."
정수리를 쓰다듬고, 볼을 비비고, 꼭 껴안는다.
케이도 싫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정도가 너무 과하지 않아서 그런지 떨쳐내지 못하는 상태인 듯 싶었다.
어느 하나 기분 나쁜게 걸리면 바로 떨쳐낼 것 같은 표정이랄까.
그래도 말이지...
"사이 좋아보여서 좋구나."
"어디가!!"
"맞아요! 사이 엄청 좋아요! 그렇죠, 케이? 으응, 귀여운 케이~"
"이것 좀 놔줘! 얘 이상하단 말이야! 갑자기 뭐냐고! 있지도 않던 모성애가 폭발해서는!!"
"있지도 않던 모성애가 생긴 건 맞지만, 생긴게 잘못된 건가요? 이렇게 보여도 아이를 낳았다구요!"
확실히 아이를 낳기는 했지. 그 아이가 케이기는 했지만.
심지어 처녀 수태로 낳은 아이.
...어라, 성녀가 처녀 수태를 해서 낳은 아이니까 케이는 성인이 되는 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쓸데없는 깨달음에 새삼스러운 얼굴로 케이를 바라봤다.
여전히 변함없이 짜증 가득 찬 표정이 꽤 안쓰러웠다.
"너무 괴롭히지 말거라.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울 텐데. 자, 이리 오려무나."
"앗..."
"...읏."
엘리의 품에 안겨있던 케이를 부드럽게 들어올리니 엘리와 케이가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태어난 것과 낳은 것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었으니, 지금껏 붙어있던 온기가 사라지니 조금 아쉬울 법도 했다.
이런 반응을 하니 조금 미안하기는 하구나.
"케이, 오랜만이구나."
"...응, 오랜만이야."
과거로 돌아오며 다시 죽은 것이 된 케이는 과연 죽어있는 동안의 기억이 있었을까.
엘의 말을 들어보면 사후 세계가 있다는데, 그걸 생각하면 뭔가 죽어있는 동안에도 지금까지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었을 터였다.
내가 죽고 나서의 너는 어땠을까.
엄청나게 아파했을까? 하루 종일 눈물을 멈추지 못했을까? 나를 죽인 사람에 대한 저주의 말을 쏟아냈을까?
...차라리 아무렇지 않았다면 좋았을지도.
"미안하구나. 그때 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그냥, 너를 죽인 녀석의 잘못이었지."'
"...후훗, 그렇느냐?"
케이를 꼭 껴안으니, 인간 아이 특유의 후끈후끈한 체온이 잔뜩 느껴졌다.
변함 없이 따뜻하구나. 이 느낌을 느끼지 못한지 꽤 된 걸로 알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보았던 케이는 지금의 모습보다는 훨씬 더 큰 상태였더랬다.
그리웠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서 기쁘다고나 할까.
아무튼.
"엘리에게 너무 매정하게 굴지 마려무나. 그만큼 너를 많이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야."
"..."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엘리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제 옷가락을 꾹 붙잡았다.
아무래도 내 품에 안겨있는 케이를 받아오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그러지 못하니 제 옷자락을 붙잡은 듯 싶었다.
...이렇게 보니 내가 엄마에게서 아이를 빼앗은 모양새가 되어버렸구나.
그 마음이 어떤지 십분 이해하고 있었기에, 케이를 다시 엘리의 품 안에 안겨주었다.
케이는 조금 불만인 표정이었지만,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있을 때가 가장 예쁜 법이었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아쉽구나. 케이의 엄마여서 행복했었는데."
"아리엘 씨..."
"지금 정했다. 앞으로 아이는 전부 내가 낳는 걸로 하는 걸로. 어떻느냐?"
"..."
지금 느끼는 사실이지만, 나는 사실 독점욕이 상당한 편인 것 같았다.
케이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데, 어째서 케이를 낳지 못했다는 것이 이렇게나 얽매여 있는 걸까.
예전에는 느낄 수 있었던 그 애틋함이라던지, 혹은 핏줄로 이어진 희미한 인연 같은게 지금은 아예 사라진 채여서 그런걸지도 몰랐다.
...이기적인 여자구나, 나는.
"뭘 그렇게 시무룩해 있는 거야."
"...티 났느냐?"
그렇게 방 밖으로 나오자, 내 뒤를 따라온 에밀리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시무룩해 있다라... 확실히 그 말이 맞지.
지금의 나는 엄청나게 시무룩한 상태였으니까.
내가 직접 낳았다는 연결이 전부 사라진 상태여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 텅텅 빈 것 같은 기분잉었다.
"정말이지, 마왕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마음이 여려서야..."
"그냥 이기적인 거다."
"그러면 마음이 여리고 이기적인 거네."
자박자박, 하고 복도를 걷는 소리가 한동안 주변에 퍼져나갔다.
나는 나를 죽인 이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찮게 죽어버린 스스로에 자괴감을 가져야 하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죽지 말걸.
물론 그게 내 마음대로 될 일은 아니었지만서도.
"너는 너무 걱정이 많아, 아리엘. 조금 마음 편히 살아도 좋을 텐데."
"..."
"자, 밥이나 하러 가자. 아까 보니까 애들이 배고프다며 계속 칭얼거리더라."
그래, 이런 걸로 계속 고민하고 있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다시 돌아온 시간이니만큼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게 더더욱 옳을 터였다.
마음속에 얹혀진 응어리를 짓누르며, 스스로에게 응원의 말을 던졌다.
할 수 있어 아리엘, 하고.
***
"그래서, 정말로 마마~ 라고 불러주지 않을 생각인 건가요?"
"..."
기억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있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의식이 뚜렷하지가 않았었더랬다.
분명 아리엘의 뱃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태어나고 보니까 엘리가 나를 안고 있었지.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엘리가 나를 어떻게 임신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설마 아서 그 녀석이 엘리와 몸을 섞기라도 한 걸까?
천박하고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었지만, 내 머리로 떠올릴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한계였다.
...그런 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서도.
"케이~ 저 진짜 노력했다구요?"
알고 있다. 그건 엘리의 뱃속에서 태어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힘을 줬는지, 얼마나 많은 비명을 질렀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또한 전부 알고 있었기에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불퉁거리고는 있지만 막상 밀어내지는 못하는, 그런.
물론 엘리가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아리엘에게서만 느끼던 그 따스함이 이제는 엘리에게서 느껴지니 혼란스러울 뿐이었지.
"...왜 그렇게 그 호칭에 집착하는 거야?"
"집착이 아니라, 당연한 거라구요?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마마~ 라고 불리는게 뭐가 나쁜데요?"
정말 순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 때문에 조금이지만 자괴감이 들었다.
이거, 내가 미안해야하는 거려나.
차갑게 대하려고 해도, 처음으로 보았던 눈물 젖은 얼굴이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않아서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아, 그냥 차라리 눈을 감고 있을걸!
후회는 빨라도 늦다고, 그런 생각을 해봤자 이미 늦은 채였다.
'...앞으로도 나는 그 광경을 잊지 못하겠지.'
그리고, 그 광경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엘리의 온기를 찾게 되겠지.
...내가 엘리를 진심으로 싫어했다면 억지로라도 정을 떼어냈겠지만, 싫어하기는 커녕 호감을 가지고 있는 쪽이라는게 문제였다.
이쪽에서 가지고 있는 '좋아'가 수십 배는 더 증폭된 느낌.
아니, 이 정도면 '좋아'가 아니라ㅡ
"...사랑해ㅡ"
"앗,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사랑한다고 한거 맞죠? 그렇죠? 흐응, 역시 그럴 줄 알았다구요! 저도 사랑해요, 케이! 엄청 사랑해요! 아리엘 씨 다음으로 사랑해요!!"
"으, 으왓...?!"
...역시 싫어. 역시 부담스러워. 누가 이 녀석 좀 나한테서 떨어뜨려줘!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결국 그렇게 식사 준비가 될 때까지 마구 붙잡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