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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28화 (328/342)

Chapter 328 - IF : 만약 그녀가 용사였더라면. (2)

"좋은 이름이구나."

"...감사합니다."

이름을 칭찬 받은 건 또 처음이었다.

아, 이름 같은 걸로 칭찬을 받을 수도 있구나.

처음 알아낸 사실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니면 그냥 눈앞의 여왕님이 칭찬을 잘 하는 스타일이라던지?

북부의 사람들은 북부의 날씨에 걸맞지 않게 따뜻하구나.

...북부가 추워서 사람들이라도 따뜻해야 하는 걸지도.

"무얼, 좋은 이름에 좋은 이름이라고 말했을 뿐이다만."

"아..."

천천히 뻗어진 손이, 그대로 정수리 위에 내려앉았다.

순간 때리려는 건 줄 알고 잔뜩 움츠러 있었지만, 상대의 행동에 그 어떠한 위협도 들어있지 않은 것을 느끼고는 이내 긴장을 풀어냈다.

뭘 하려는 걸까.

머리에 손을 올리는 건 마족의 머리통을 터뜨리려고 할 때 뿐이었는데.

스윽ㅡ 스윽ㅡ

"부모는 있나?"

"..."

"음, 내뱉고 나니까 너무 무례하게 들리는군. 그냥,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여서 말이다. 아, 이것도 실례였나?"

"딱히, 실례는 아니에요..."

부모 같은 건 있어본 적도 없었고, 사랑이라는게 정확히 무엇인지도 잘 몰랐더랬다.

몸을 섞어서 기분이 좋아지는걸 사랑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교단에서 본 그것들은 분명 내 머릿속에 들어있었지만, 내가 지금까지 상상한 사랑은 그런 쾌락만을 쫒는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훨씬 더 숭고하고, 아름답고, 나 따위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그런ㅡ

'ㅡ아아...'

어쩌면, 나는 나 따위가 사랑 받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혐오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야, 나 같은 인간이 사랑을 받게 된다면 분명 사랑의 가치가 떨어질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예쁜 얼굴에 상처가 많구나. 마족들과 싸우다가 다친 건가?"

"...그냥, 그, 반반이에요."

사실 마족들과 전투를 벌이다가 얼굴을 다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마족에게 머리를 공격 당하는 건 그 자체로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머리를 스쳐나간 공격 정도로도 의식이 날아가게 만들 수 있을 법한 신체 능력을 가진게 바로 마족들이었다.

마족과 싸우다가 얼굴에 상처가 날 일은 절대라고 할 정도로 없었다.

그러면 이 상처들이 대체 어떻게 생겼냐고 한다면ㅡ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때려서..."

용사라고 환호를 받는 것도 처음에나 그랬지, 어느 순간부터 그 환호가 증오로 바뀌었더랬다.

어서 꺼지라며 돌을 던지고, 다가와서는 뺨을 때리고, 주먹질을 하고.

맞기 싫어서 마을 안에서 머물지 않게 된 것이 얼마나 됐더라.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마을보다 숲이나 들에 있는 걸 더 좋아하게 된지는 꽤 오래 되었더랬다.

"...고생했구나, 지금까지."

"..."

"자, 이리 오거라. 사람이란 제때 위로 받지 않으면 망가지는 법이니 말이다."

"...아."

나 같은게 위로를 받아도 되는 걸까?

용사 주제에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내가, 위로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차오르는 자기 혐오에 몸이 덜덜 떨려왔다.

죄송해요. 지키지 못해서 죄송해요. 제가 늦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하지만ㅡ

"저, 노력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힘들고, 죽고 싶은데도 아무도 눈치채주지 않아서...!"

"...그랬구나."

"왜, 왜 저 같은게 용사가 됐을까요? 저보다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대체 왜...!"

쌓여있던 감정이 터져나온다.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 슬픔, 증오,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쏟아내지 못하고 전부 삼켜냈던 것까지 전부.

목구멍 너머로 터져나오는 거대한 감정의 격류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 이 정도로 힘들었었구나.

"여기서는 괜찮다. 앞으로 무리하지 않아도 좋아. 이곳은 북부이니, 북부인의 손으로 지키겠다. 그러니까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푹 쉬거라."

"...그렇지만, 용사는ㅡ"

"지금은 용사가 아니라 엘리지 않느냐. 나는 분명 너에게서 이름을 들었으니, 지금은 너를 용사가 아닌 엘리로 대할 생각이다만."

"..."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취급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여왕님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그 따스한 한 마디 때문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 그치고 싶은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울자, 여왕님의 품이 그대로 내 위를 덮었다.

"울지 말거라. 그대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칭송 받아 마땅한 길인데, 그렇게 울면 안 되지 않겠느냐."

"...여왕, 님."

"에반젤린이라고 부르거라. 권위를 내세우는 건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 말이다."

그 말과 함께 떠오르는 미소가 어찌나 예쁘던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쿵 뛰어댔다.

...내가, 왜 이러지.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숨을 참아봤지만, 한 번 뛰기 시작한 심장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마 어디가 아프거나 그런 걸까. 확실히, 지금까지 밖에서 지내왔으니 감기 같은게 걸릴 법도 했지만ㅡ

'...아.'

어쩌면 이건, 감기 같은 하찮은게 아닐지도 몰랐다.

***

"용사님, 어떠셨나요? 엄청 멋있으셨죠? 아아~ 저도 여왕님과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엄청, 멋있으셨어요."

"그렇죠? 랄까, 왕국에서 오신 용사님을 위해서 특별히 따뜻한 음식으로 가져왔다구요?"

"...고마워요."

딱히 차가운 음식이라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따뜻한 음식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고 보는 편이 좋겠지. 거의 먹어본 적이 없어서 조금 가물가물하기는 했지만서도.

"빵이 딱딱아니까 여기 스프에 푹 찍어서 눅눅하게 만들어서 드세요. 북부에서는 보통 이렇게 먹는다구요?"

"네에."

"으흥, 뭔가 동생을 가르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제 동생도 뭔가를 가르치면 '네에~' 하면서 대답했거든요!"

따뜻하게 데워진 스프 위로 살짝 손을 뻗자, 스프에서부터 올라오는 김이 내 손바닥을 따스하게 감싸왔다.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위협적이지 않은 수다를 들으며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다니.

사실 이 모든게 꿈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내 몸은 북부의 눈밭에 파묻혀서 행복한 환상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만약 환상이라면, 절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지막의 마지막 정도는 최소한 행복한 채로 죽고 싶으니까.

...

나쁜 생각을 하니까 괜히 더 울적해지네, 이제 그만 생각하자.

"용사님, 혹시 옆에서 보고 있어도 되나요?"

"...딱히 재미는 없을 텐데요. 애초에 서툴기도 하고요."

"서툴다니, 어떤게요?"

"그냥, 여러가지로..."

빵을 찍어서 스프에 찍어먹는 건 또 처음이었으니까.

애초에 빵이란 건 너무 딱딱해서 침으로 녹여먹을 정도만 되어도 허겁지겁 먹어치울 정도였더랬다.

심지어 땅바닥에 버려졌거나 가루가 되기 직전의 조각들만 먹어봤지만서도.

교단에서는 뭐랄까, 거의 초식을 했었으니 말이다.

"흐응... 잘 못 드실 것 같으면 말씀 해주세요. 그때는 제가 사랑을 담아서 먹여드릴 테니까!"

"콜록, 콜록콜록, 콜록!!"

"서투른게 너무 빨라!?"

"죄, 죄송... 콜록!"

스프는 또 처음이라서 순간 사레가 들려버렸다.

입 안에 머금어지는 것과 그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는 감각이 너무 생소했다고나 할까.

심지어 따뜻한 스프라서 뜻뜻한 김이 목구멍을 주욱 쓸어내리기까지 해서 더더욱 기침이 터져나왔다.

...아, 기껏 해주신 음식인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나는.

"죄송할게 아니라ㅡ 저, 괜찮으세요?"

"콜록, 콜록콜록!!"

"너무 급하게 드시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급하게 드시지 않으셔도 된다구요? 애초에 북부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마족들의 침공을 막아낸 전적이 있으니까 말이에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대륙 내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도 될 정도니까요!"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는 사용인의 손길에 맞춰서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이제 조금 괜찮아진 것 같기도.

음식 같은 건 언제나 제대로 씹지도 않은 채 꿀떡꿀떡 삼켰다 보니 더더욱 이런 실수를 하게 된 것 같기도 했다.

이미 저지른 이상 전부 변명이 되겠지만 말이다.

"치우는 건 제가ㅡ"

"이런 일에 용사님의 손을 빌릴 수는 없죠! 애초에, 더러워진 바닥을 닦는 건 사용인인 제 역할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용사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손님의 성향을 알아차리지 못한 제 잘못이지!"

"..."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

그런 말을 하며 방 밖으로 나서는 사용인의 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뭘까, 저 사람은.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한 바닥을 이렇게나 더럽혔는데도 화 한번 내지 않다니.

이렇게 보니까 내가 너무 더러워 보였다.

마음이나 정신 상태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신체 자체가 전반적으로 불결하달까.

'...갑자기 부끄러워졌어.'

머리카락은 떡지고, 옷은 먼지와 피가 섞인 상태에, 손은 거뭇거뭇하고 신발을 너무 낡아서 두꺼웠던 가족이 얇은 피막 하나만 남긴 채 달랑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엉망진창이구나, 나.

여왕님ㅡ 아니, 에반젤린이 처음 나를 보자마자 쫒아내지 않았다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용사라고 말하는 걸 대체 어떻게 믿은 건지 모르겠네.

"자, 보세요. 엄청 빨리 왔죠?"

그렇네요.

순식간에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사용인으로 보며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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