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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39화 (339/342)

Chapter 339 - IF : 만약 그녀가 용사였더라면. (13)

동족들은 언제나 복수를 원해왔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언제나 하나였더랬다.

다른 모두와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마족의 아이들이 인간들에게 소환되어 실험을 당한다던지, 노예로 부려지거나 살해당한다던지 하는 일이 분노를 느끼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마족들 중 그 누구보다도 분노했다는게 맞는 것이겠지.

그래, 분명 처음에는 나 또한 분노에 눈이 멀어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자는 입장이었더랬다.

하지만ㅡ

"아, 아이 만큼은 살려주세요. 제발... 아이는 아무런 죄도 없잖아요, 흑..."

"..."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무력한 인간. 자그마한 인간. 도망치는 인간. 지키려는 인간.

우리들이 하려는 건 동족들을 납치해서 이용한 인간들을 향한 복수인 건가, 아니면 그저 모든 인간들을 위한 화풀이인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생각이 있느냐?"

"저는, 무조건적으로 마왕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내 뜻을 따라주는 동족이 하나라도 있다면, 분명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더랬다.

그렇게 새롭게 생겨난 목표는 다음 아닌 용사의 성검을 빼앗는 것.

동족들 중 하나가 '마왕님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물건이라면 분명 마계로 돌아갈 통로를 여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기에 나와 동족들은 용사를 쫒기 시작했고, 동족들은 용사를 쫒으며 마주하게 된 인간들을 전부 죽였다.

말리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말렸냐고 묻는다면 또 그렇지만도 않았더랬다.

"당신의 그 유유부단함 때문에, 동족들이 얼마나 불안에 떨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런가."

차라리 하려면 한 쪽을 제대로 선택해야만 했다.

강경파들을 짓누르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음과 동시에 인간들을 죽이지 않던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 세계에 있는 인간들을 싸그리 죽여버리거나.

하지만 둘 중 그 무엇도 확실하게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겠지.

그래. 믿음을 주지 못한 지도자는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처리 당하는 법이었으니 결국 이런 결말이 될 것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예상했어야 됐었다.

"동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당해온 것들에 대한 복수를 원하지."

"내가, 동족들의 뜻을 알지 못한 죄로구나."

몸을 꿰뚫은 성검이 빠져나옴과 동시에 입에서 검붉은 색의 피가 터져나왔다.

치명상.

보통의 경우에는 절대 상처 입지 않을 정도의 육체였지만, 성검에 만큼은 마치 소 잡는 칼 앞의 두부와도 같은 신세였다.

그저 단순히 찔러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쉽게 꿰뚫릴 줄이야.

...즉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건가.

"이만 사라져 주시죠, 마왕님."

"..."

이대로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기 싫다고 느끼는 건 대체 왜일까.

이런 나라도, 살고 싶다는 욕망 만큼은 가지고 있다는 뜻인가?

그게 아니라면ㅡ

"차라리 용사라도 죽이시지 그러셨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동족들이 당신에게 돌아서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를, 죽일 건가? 하지만, 죽이지 않기로 약속했는, 데."

"그건 당신과 한 약속이지, 저와 한 약속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건 나와 한 약속이었었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처를 꾹 짓누르고는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이 정도의 부상을 입어봤던 적이 있었던가?

등 뒤에 닿는 차가운 벽의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뜨거운 숨이 터져나왔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해왔던 걸까.

쨍그랑ㅡ

"도망치세요, 마왕님! 어서!"

"...할리벨?!"

"빨리요!"

죽음을 각오했다.

아니,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녀가ㅡ 할리벨이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그 자리에서 죽었을 터였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목숨의 연장.

그건, 끝까지 나를 믿고 있던 동족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학, 하윽, 하아..."

상처를 치료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왕의 몸뚱이는 마왕의 몸뚱이라는 걸까.

숨이 붙어있는 이상은 절대 쉽게 죽어줄 수 없다는 것처럼, 신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 수준의 부상을 입어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나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던 변화였다.

"몸은 멀쩡해졌ㅡ 음, 이건 멀쩡해졌다고 보기에도 애매하구나."

성검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곳은 완전히 채워진 상태였지만, 몸의 크기가 문제였다.

이러면 마치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것 같지 않느냐.

하지만 외형만 그러했지, 지금의 내 상태는 유년기 시절의 나와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신체는 허약해진 상태. 단순히 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고, 겨우 이 정도의 이동에 발바닥이 전부 까졌으며, 몸을 때리는 칼바람에 피부가 벌겋게 올라올 정도였다.

이 정도면, 평범한 인간 아이와 비교했을 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겠지.

'...한심한 꼴이구나.'

나는, 이렇게 되어서까지 살아남고 싶었던 건가?

나무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다가도, 용사의 위치를 천천히 가늠하기 시작했다.

용사가 지니고 있는 힘과 성검의 힘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기에, 성검의 힘과 동일한 힘을 추적한다면 그곳이 바로 용사가 있는 곳일 터였다.

과연 동족들보다 먼저 용사에게 도착할 수 있을까.

점점 차가워지는 몸뚱이를 보면, 아무래도 용사에게 향하는 것에 대한 것보다 얼어죽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을 하는게 더 맞아보였다.

"...춥구나."

싸늘한 바람이 몸을 스치자, 자그맣게 변한 몸뚱이가 사시나무 떨려오듯 경련해댔다.

...이러다가는 정말 얼어죽는게 더 먼저일지도 모르겠구나.

슬쩍 몸을 움직여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반대에 자리를 잡고는 엉덩이를 땅에 붙였다.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서럽다.

울컥이는 감정에 입술을 꾹 깨무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을 텐데."

그렇게 한참이고 청승을 떨다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용사를 만나도 스스로가 뭘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되기는 했지만, 일단은 그녀와 만난다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다.

그러면, 슬슬 출발 해볼까.

흘러내린 옷을 대충 묶어내고는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걸음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ㅡ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

"켁, 케헥, 큿ㅡ"

"..."

내 밑에 깔려 켁켁거리는 소녀를 보며 이를 갈았다.

마왕, 마왕이라고? 이 녀석이, 마왕이라고?

이렇게나 자그맣고, 하찮고, 연약한 녀석이?

만약 머리에 자라난 뿔이 아니었다면 눈앞의 존재가 마족이라는 것조차 믿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 말투. 이 외모. 머리 위의 뿔까지.

몸속에 있는 모든 감각들이, 눈앞의 존재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대체 왜 찾아온 거죠. 저를, 놀리기라도 할 생각이셨나요?"

죽여야 할 대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상상 이상으로 김 빠지는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감정이 격해졌었는데, 정작 이런 한심한 꼴을 보니까 곧바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마왕을 죽인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약 죽인다고 한들, 수녀님과 에반젤린 씨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래, 어쩌면 그냥 죽이는 것보다 죽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바스락ㅡ 바스락ㅡ

"...흐, 흐으, 으."

숨을 고르며 엎어져 있는 마왕을 그대로 놓아두고는, 천천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수녀님과 에반젤린 씨를 차가운 땅 위에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최소한의 무덤 정도는 있어야 두 분도 편하게 잠드실 수 있겠지.

맨손으로 파는 건 조금 고된 일이겠지만, 마음의 고통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염치 없고 무례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도와주마."

바스락ㅡ 바스락ㅡ

순간 욱 했지만, 결국은 반응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무덤에 마왕의 손이 닿게 했다는 사실을 신경쓰기에, 나는 너무도 지쳐있었다.

차가운 바람 때문에 굳어버린 대지를 맨손으로 파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나도 마왕도 자그마한 신음 하나 없이 열심히 땅을 파냈다.

물론 이쪽은 여신의 가호로 인해 상처가 회복되었지만서도.

"...정말, 마왕이 맞는 건가요?"

"그래. 너에게서 성검을 내려놓으라고 말했던 그 마족이 바로 나다."

손톱이 전부 빠지고, 그 작은 손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왕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저 해야했을 일을 했다는 것처럼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원망할 마음조차 들게 하지 않을 정도로 태연한 태도구나.

"너를 찾아온 건ㅡ 그래. 원래는 내 동족들이 너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이미 너무 늦은 것 같구나."

전부 내 책임이야. 하며, 고개를 숙여보이는 마왕에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는 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유를 찾기에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았다.

지금은 그냥, 조금 쉬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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