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9 빌런과 히어로의 두근두근♥ 데이트(4)
야야야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남아있는 마력을 몽땅 쏟아부은 회심의 일격인데 노데미지라니, 부조리한 것도 정도가 있다.
입에 먼지가 들어갔는지, 체크가 예의 없이 침을 탁, 뱉었다.
“스페이드, 일 할 때는 언니가 아니라 씨를 붙이라고 했지?”
“아, 그렇죠....”
“혼내는 건 아냐. 주의를 준 것뿐이니까 풀 죽지 마라, 가시나야. ...그리고 너, 빌런.”
“나......?”
체크는 무표정한 얼굴로, 양손에 새카만 장갑을 끼웠다.
“덕분에 좀, 빡쳤다. 이 꽉 깨물어라.”
터져나오는 무시무시한 살기. 그녀가 무릎을 굽혔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체크는 13호의 눈앞에 와있었다.
가히 공간이동이라 해도 좋을 도약, 혹은 축지.
“뒈져라, 빌런.”
그대로 번개 같은 속도로 내질러진 주먹은――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퐁당-하는 물소리와 함께, 13호와 스페이드가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체크가 서둘러 손을 뻗어 13호를 붙잡으려 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반응이 늦었다. 이미 두 사람이 사라져버린 바닥을 긁고, 헛손질을 한다.
“......썩을.”
엉망진창으로 뒤집어진 골목길에 홀로 남은 체크는, 씁쓸하게 혀를 찼다.
“괜찮으신가요, 13호님?”
“..............................죽는 줄 알았어.”
익숙한 아지트의 풍경. 생글생글 웃는 참모에게, 13호는 내던지듯 내뱉었다.
체크의 주먹이 일직선으로 날아왔을 때는, 정말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다. 그 순간 중력이 사라진다 싶더니,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았다면 분명 그 자리에서 두개골이 터져버렸을 거다.
“체크 언니... 그렇게 쎘구나.......”
바로 밑에 깔린 스페이드가, 13호의 몸을 꾸욱꾸욱 밀면서 중얼거렸다.
“뭐야, 너도 그 여자가 싸우는 거 처음 봐?”
“몇 번 보기야 했지. 근데 대부분 빌런들은 다 잔챙이들이니까... 저 정도일 줄은.”
“진짜, 참모 없었으면 죽었겠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무사히 살아남았다. 지금은 그 사실을 만끽해야지.
“그나저나 재앙이었네요, 설마 데이트하다 우연히 히어로를 만나실 줄은.”
“7번대에 이상한 레이더라도 달린 거 아냐? 그러고 보면 저번에 도로시랑 쇼핑하러 갔을 때도 클럽을 만났었지.”
“아무튼 큰일 날 뻔 했네요. 내일만 되면 체크 양도 손쉽게 함락시킬 텐데, 그 전에 당해버리면 우스갯소리도 안 되잖아요?”
참모와 13호는 서로를 마주 보며 너스레 떨 듯 웃었다.
“둘 다, 무슨...... 소리야?”
그리고 함께 있던 스페이드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이 바보들은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걸까. 특히 13호는 지금 체크의 무서움을 똑똑히 봤으면서.
13호가 무슨 짓을 하든 저 괴물 같은 히어로는 이길 수 없다. 스페이드는 그렇게 믿어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두 사람은 무슨 수가 있다는 듯이 얘기를 하는 걸까.
“뭐야. 스페이드, 궁금해? 우리가 어떻게 할지.”
“어라, 말해도 되나요, 13호님?”
“괜찮겠지. 알아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고.”
13호는 거드름피우듯 오만하게 말했다.
“벌써 떡밥은 다 깔아놨거든. 저 괴물 같은 여자도, 너네 대장도 이대로면 손쉽게 함락시킬 수 있다 이 말씀이야.”
* * *
밤. 예정했던 대로 스페이드와 클럽, 두 사람의 히어로는 스페이드의 방에 모였다.
“스페이드 씨, 준비는 다 됐나요?”
“응. ...이거, 녹음기.”
스페이드는 멍한 표정으로 클럽에게 분필 크기의 녹음기를 건넸다.
“......스페이드 씨?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멍해 보이는데.”
“그래......?”
멍한 것도 어쩔 수 없다. 아까 전에 13호에게 들었던 얘기, 그들의 계획은 스페이드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으니까.
――‘체크와 라헤. 둘 다 무력으로 따지자면 지금의 우리로선 어떻게할 수가 없어. 눈이 마주치자마자 초살, 그뿐이겠지. 하지만 자신들의 홈에서, 동료에 의해 당한다는 건 생각도 못 했을걸?’
트로이의 목마 같지? 라며 13호는 웃었다.
“클럽, 어쩌지.......”
“스페이드 씨...? 말씀해보세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스페이드는 새파란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13호는 자세한 계획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한가지, 체크메이트에 이를 수 있는 한 수를 알려줬을 뿐이다.
“애플이...... 이미 세뇌당했대.”
애플. 그녀들의 든든한 동료가 세뇌당했다. 어비스의 수족으로서 일하고 있다.
클럽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그녀에게, 스페이드는 13호에게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래봐야 상세한 계획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전달할 것도 얼마 없었지만.
하지만 애플이 세뇌당했다는 그 한마디만으로도 위력은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돌파법이 하나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라면 대장과 체크에게 몰래 독을 먹이는 것도 가능하고, 은밀한 스파이로서 7번대의 정보를 흘릴 수도 있다. 어쩌면 저번 백화점 테러 소동 때도, 7번대에 가용한 전투원이 클럽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서 저지른 걸지도 모른다.
클럽은 놀라움에 입을 뻐끔거렸지만, 금방 표정을 다 잡았다.
“괜찮아요, 스페이드 씨. 지금은 탈출만 생각하면 되잖아요. 애플 씨의 건은 확실히 충격이지만, 오히려 그걸 알게 된 게 다행인걸요. 이대로 되돌아가서, 사실을 대장님께 전달해요. 그러면 분명 무슨 수든 써주시겠죠.”
확인이 담긴 목소리로, 클럽은 단호하게 말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번 탈출,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이유가 또 늘었네.”
“실패한 시점에서 뒤는 없지만요.”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다짐하고, 클럽은 녹음기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각자의 ‘키워드’를 알아내고 나서 다시 합류하는 것이다.
‘......언제 키워드를 말했는지는 모르는 거지....’
이따금 ‘키워드’를 이용해 암시를 걸었다는, 미묘한 위화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정말 미묘한 수준이라, 정확히 언제 어떻게 암시를 걸렸는지는 전혀 기억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스페이드도 어젯밤 13호와의 행위 내내 녹음기를 틀어놨었다. 행위 도중 뭔가 암시를 걸었다는 건 느꼈으니, 언제인지는 몰라도 ‘키워드’ 자체는 똑똑히 녹음 되었으리라.
[아앗...... 하앗......!]
녹음기의 재생버튼을 누르자, 난데없이 큰소리가 흘러나와 황급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볼륨을 낮췄다. 소리가 새어나가면 끝장이다...!
[아라 양, 여기가 좋습니까? 아니면 여기?]
[하앙, 흑..... 거, 거기, 지금... 더, 더어 뭔해요오......]
[조르는 모습이 귀엽네요, 아라 양.]
[히잇...... 아흣.......]
아라? 누구더라?
멍하니 스페이드는 생각을 거듭했다. 아, 맞다. 클럽의 본명이다.
[하앗...... 히읏...... 하읏.......]
[아라 양. 작은 가슴이지만 귀엽네요. 맛도...... 이렇게 꿀처럼 달고.]
[히으으응......!]
추접한 물소리, 핥는 듯한 소리, 음탕한 숨소리,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도저히 옷 안에 넣어둔 녹음기로 녹음한 것 같지 않다. 얼마나 성능이 좋은 거람.
소리만으로 클럽과 참모 두 사람이 음란하게 얽혀있는 장면이 똑똑히 상상이 된다.
스페이드는 무의식적으로 허벅지를 비볐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한 움직임.
‘............아직, 멀었으려나.’
혹시라도 키워드를 놓칠까 싶어, 녹음기의 소리에 한층 더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추잡한 신음소리와 고기와 고기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들 뿐....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응.......”
깨닫고 보니, 스페이드는 자신의 음부에 손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아지트에 돌아오자마자 13호가 원래 입던 옷으로 갈아입게 했기 때문에, 지금은 사이즈가 큰 와이셔츠와 반바지 차림이었다. 반바지의 단추를 끌러, 안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팬티 위로 자신의 소중한 곳을 살살 자극한다.
‘......조금, 촉촉한 것 같아.’
살짝 손가락을 밀자, 천의 일부가 저항없이 꽃잎 안에 먹혀 들어갔다. 질의 입구가 천에 쓸리는 이 느낌이 기분 좋다....
“응.......”
천이 살짝 젖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게 성가셨다. 입고 있는 옷을 더럽히는 건 역시 거부감이 든다. 잠시 고민하던 스페이드는, 천천히 바지와 속옷을 허벅지 중간 부근까지 내렸다.
옷에 감싸여 있던 따뜻한 음부를, 자신의 손으로 조심스레 덮고, 주무르고 자극한다. 클럽이 오기 직전에 샤워를 했으니, 보송한 샴푸 냄새와 달콤한 땀 냄새가 섞인 묘한 향기가 그녀가 덮은 이불 안을 가득 메운다.
옷 아래로 남은 한 손을 미끄러트려, 브라의 후크를 풀었다. 브라 아래로 손을 넣어, 자신의 가슴을 원을 그리듯 주물렀다. 주무르는 그 손길도 방식도, 무의식적으로 13호의 그것을 연상하고 있었다.
[아앗, 참모, 가요, 간다, 또 가... 아, 아, 아아아아아앗......!]
녹음기 너머, 클럽의 목소리가 한층 더 흐트러졌다. 아아, 가버렸구나.......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지만, 아직 끝은 아니라는 듯 녹음기에서 다시금 음란하고 귀여운 교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페이드는 침을 꼴깍 삼키고, 가슴을 주무르던 손으로 이번엔 유륜을 쓰다듬고, 살짝 딱딱해진 유두를 손가락으로 조심조심 집었다. 음부를 만지던 손으로, 이번엔 클리토리스를 자극한다.
하으........
필사적으로 신음을 억누르려 했더니, 이상한 소리가 되었다.
녹음기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점점 머리가 멍해진다... 이래선 안 되는데.......
클럽의 신음소리가 흐트러질수록, 격한 숨을 내쉬며 귀여운 교성을 흘릴수록, 스페이드도 자위하는 손에 움직임을 더했다.
이제는 유두를 아플 정도로 꼬집고, 손바닥으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동시에 보지 안에는 손가락을 넣어 자신을 자극하고 있다. 이미 질 안에는 애액이 질척하게 흐르고 있어, 꽃잎 사이에서 흘러나와 허벅지를 희미하게 적시고 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이따금 찔걱... 하는 음탕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
그러다 한 순간, 이불을 입으로 꽉 깨물고, 몸을 가볍게 떨며 절정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쾌감에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아...... 갔다.’
소리만으로 음란한 기분이 들어, 자위를 해버리기 시작하다니. 부끄러웠다. 침대 옆의 테이블에 손을 뻗어 티슈를 가져와 미끈하게 흐른 애액을 닦아 낸다.
‘음......?’
절정의 여운에 휩싸여 가만히 누워있자니, 녹음기 너머의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클럽이 완전히 탈진한 것인지,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 다만 참모의 목소리만――
“이거다.”
스페이드는 놓칠세랴, 녹음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클럽, 끝났어?”
“자, 잠깐만요, 스페이드 씨.”
스페이드가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달빛이 비치는 어두운 방에서 클럽이 자신의 음부를 드러낸 채 티슈를 대고 있었다.
이 아이도 나랑 똑같았구나. 조금 안심해버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클럽의 얼굴은 민망함에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키워드’, 알아냈어?”
“물론이죠. 스페이드 씨도?”
“당근이지. ......준비, 끝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