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10 히어로들의 아지트 탈출기(3)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다구!
“클럽, 가만히 서있지마!”
“아, 스페이드 씨.......”
빙글빙글 웃는 13호의 얼굴을 뒤로 한 채, 다시 한번 뒤의 복도를 달려나간다. 이건 말도 안 된다. 가도 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다니...!
“아, 금방 왔네. 그렇게 전력으로 달리면 슬슬 체력이 떨어질텐데.”
“쓸데 없는 발버둥 그만하고 항복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가씨들.”
다시 클럽의 팔을 끌고, 뒤로 달려나간다.
이건 뭘까. 미로도 아니고, 이 심플한 구조의 복도를 몇 번이나 헤맨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마치 물리법칙을 뛰어넘고 복도의 이쪽과 저쪽이 연결된 것 같다.
몇 번째인지 모를 복도를 돌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두 사람이 능글맞게 웃으며 서있었다.
“능력...... 뭔가 능력을 쓴 거야...?”
“아니, 전혀. 그냥 너희가 되돌아오는 거야.”
“무슨 개소리야! 우린 분명히 현관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고!”
“그렇게 믿고 싶은 거라면 상관없는데, 어쨌든 실제로는 멋대로 발을 돌려서 되돌아오고 있는 거니까.”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세뇌는... 풀었을 텐데요....”
클럽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아라 양. 무슨 근거로 세뇌를 풀었다고 얘기하는 거죠?”
“우리 둘 다... 녹음 했으니까요. 당신들이 우리를 세뇌할 때 쓰는 ‘키워드’를 녹음해서... 그걸로 우리한테 걸린 세뇌를 풀었는데.......”
“그 녹음이라고 하는 걸 저희가 조작했다는 건 생각 안하십니까?”
조작...?
두 사람은 요령 나쁜 학생을 가르치듯 정중하게 설명하는 참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작이라니, 녹음을? 하지만 어떻게...?
“아라 양의 낌새가 이상하길래, 조교하는 도중에 이것저것 물어봤을 뿐입니다. 제 질문에 조금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말씀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죠.”
클럽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 뒤로는 별 거 없어요. 도망칠 계획을 짜신다고 하니, 일단 녹음기의 내용을 조금 덮어씌우고 조작하고, 놀려드리기 위해 파수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행동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머진 예정대로.
참모가 조작해서 녹음한 녹음기를, 클럽은 스페이드에게 건넸다. 두 사람이 세뇌 암시를 해제하려 했을 때 스페이드가 먼저 나선 것도 녹음기를 통한 참모의 암시 때문이었다. 스페이드가 클럽에게 ‘암시를 해제하지 않도록’ 암시를 걸고, 암시에 걸린 클럽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스페이드의 암시를 ‘해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암시의 영향으로,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털썩,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클럽은 바닥에 주저앉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더 이상 일어날 기력이 없다. 육체적인 피로 따위가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완전히 K.O.였다.
모든 것이 다, 저 빌런들의 손바닥 위였다.
“......이잇! 일어서 클럽! 아직이야! 세뇌 따위, 근성과 정신력으로 뛰어넘으면 돼!”
“스페이드 씨....”
“저런, 저런. 아무래도 스페이드 양에게는 암시가 잘 안 걸렸나 봅니다. 역시 상당한 정신력이네요. 하지만 아라 양은 더 이상 안 되겠지요. 포기하시는 게 좋아요.”
“개소리 마!”
“개소리가 아닙니다. 저는 녹음기를 통해 스페이드 양에게, 스페이드 양은 암시된 대로 클럽 양에게 전달했을 테니까요.”
우와아... 악당 얼굴. 스페이드가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참모는 느물느물하게 웃을 뿐이었다.
모든 건 참모의 계획 속, 모든 것은 이날을 위한 밑준비였다. 첫 클럽의 포획부터 시작해 자신이 패배를 맞이하는 것, 클럽이 세뇌가 느슨해진 틈을 타 도망을 계획하는 것도, 전부 다.
완전히, 라고 할 수는 없다. 미래를 예지하지 않는 한 사람이 어느 순간 어떤 선택을 할지는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몇 백 가지 경우의 수를 산정하고, 예측하고, 상황에 맞춰 최적의 수를 고르는 정도는 가능하다.
“저는 스페이드 양을 통해 이런 암시를 전달했습니다――‘패배하는 순간, 마음이 무너진다’는 암시를. 아쉽게도 긍정적인 마인드의 스페이드 양은 암시가 잘 걸리지 않았나 보네요.”
참모와의 다툼에서 몇 번이나 패배를, 몇 번이나 승리를 맞은 클럽은, 그 암시가 남다르게 와닿았다.
승(勝)과 패(敗). 중간에 선을 가르고 흑과 백을 확실히 가리려 했던 클럽에게는, 그 암시가 너무도 확실하게 와닿아서...... 지나치게 효과적이었다.
우드득, 하고. 마음 속에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클럽은 저항할 의지를 잃었다.
“그럼, 스페이드. 남은 건 너 뿐이네.”
13호의 눈빛이, 그녀에게 체념을 강요한다.
그러나 그 눈빛에 맞서, 스페이드는 눈을 부릅떴다.
“......따위.”
“응?”
“세뇌 따위, 정신력으로 이겨주겠어...!”
“그래? 그럼 한번 시도해 볼까... 스페이드, 일단 옷을 벗어줄래.”
벗을까보냐!
그렇게 생각하고 일갈을 날리려던 스페이드 였지만,
툭,
“어...?”
깨닫고 보니, 입고 있던 사이즈가 큰 와이셔츠가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조금 더 천천히 벗어. 그렇지, 잘 보고 감상할 수 있게.”
명령대로, 천천히 손을 움직여 느릿하게 바지를 벗는다. 이제 남은 건 다홍색 속옷과 브라 뿐이다.
스페이드의 앞에 다가온 13호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 채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 참모는 옆에서 휴대폰으로 스페이드의 자태를 연신 찰칵찰칵 찍어댔다.
브라의 후크를 풀어, 벗어버린다.
이 시점에서, 스페이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그렇구나. 역시... 아무리 큰 소리를 쳤어도.
이길 수, 없구나.......
“그럼 마지막으로 팬티까지 벗고 나면 우리 앞에서 자위하도록. 그냥 자위는 거부감이 적을 테니, 항문으로.”
13호가 재촉하듯 속옷 위로 스페이드의 엉덩이를 찰싹 두드렸다. 스페이드는 절망한 눈으로, 마지막 남은 속옷을 벗는다.......
* * *
우...... 웅....... 흐읍........
어두운 고문실 안. 고문과 조교를 위한 각종 도구들이 늘어선 방의 한 켠에, 스페이드가 구속되어 있었다.
쇠와 나무로 만들어진 목마 위에 알몸으로 앉혀진 스페이드는, 목마에서 돋아난 딜도에 보지와 항문을 꿰뚫린 채 꿰여져있다. 목에는 목줄이 걸려있고, 양 팔은 등 뒤로 돌려 가죽 같은 것으로 구속되어 천장에서 늘어진 사슬로 한 번 더 묶였다. 벽에서 이어진 관 같은 것이 모양 좋은 가슴의 정점에 선 유두를 꼭 죄고 있어, 이따금 안에 내장된 브러시와 빨판이 움직여 자극을 주면, 몸이 퍼득퍼득 튀어오른다.
눈은 가죽 안대로 가려져 있고, 귀는 밀폐형 헤드폰으로 막혀있다. 헤드폰에서는 도로시의 최면음파와, 13호가 녹음한 암시가 끊임없이 들려와, 스페이드의 뇌를 헤집고 어지럽혔다. 입에는 볼개그를 물고 있어, 이따금 신음소리와 함께 그 사이로 침이 질질 흘렀다.
어젯밤, 탈출하려다 붙잡힌 뒤로 스페이드는 줄곧 이 상태로 구속된 채다. 이미 몇시간이나 지났는지 알 수도 없었다.
“으으으읍......?!”
위잉,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목마에서 돋아난 딜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물꾸물 떨리나 싶더니, 인정사정없이 위아래로 피스톤질을 한다. 동시에 스페이드의 코앞에 고정된 기계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는 약품이 뿜어져 나온다.
‘아, 안 돼...... 맡으면.......’
아마도 세뇌약에 미약 성분이 섞여있는 것 같다. 이 향을 맡을 때마다 머리가 멍해지고, 몸이 달아오른다.
그러나 뜨거운 하복부를 연신 자극하는 피스톤질은 숨을 참는 것도 허락하지 않아서,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달콤한 기체를 흡입하게 되었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철그렁-
천장에서 늘어진 사슬은 길이가 살짝 짧은지 팽팽해서, 스페이드의 몸에서 힘이 빠져도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주었다.
그게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별안간 딜도의 피스톤질이 멈췄다. 아직 멈출 시간이 아닐 텐데...?
“후우........ 후우우우우우.......”
“많이 지쳐보이네, 스페이드.”
줄곧 뇌를 어지럽히는 음파와 목소리를 전해주던 헤드폰이 벗겨지자, 해방감이 몰려왔다.
이 목소리...... 13호?
“읏...!”
볼개그도 빼내어졌다. 간신히 해방된 입으로 거친 숨을 토했다. 13호가 그 입에 페트병을 대어, 물을 흘려 넣어주자 스페이드는 다급하게 꼴깍꼴깍 마셨다. 중간에 사레가 들려 콜록 콜록 기침을 해댄다.
“절대 지지 않겠다고 선언하자마자 이렇게 되버린 소감은 어때?”
“크...... 우...... 우으.......”
“응? 제대로 말해줄래?”
13호가 귀를 가까이 가져다대자, 스페이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반사적으로 13호가 피하자, 사슬 때문에 이 이상 몸을 기울일 수 없는 스페이드가 분한 듯 씩씩거렸다.
눈도 안 보이는데, 감만으로 달려든 건가. 13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 꺾이지 않았나보네. 저쪽은 벌써 거의 끝난 것 같던데.”
“클럽?! 클럽이 왜?! 그 애 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가만 안 둘 줄 알아 너네들!!”
“어이쿠, 무서워라.”
13호는 다시 스페이드의 입에 볼개그를 물려주고, 헤드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리고 스위치를 조작해 딜도를 움직이자, 스페이드는 금방 다시 파들파들 떨기 시작했다.
“자, 네가 무너지기까지 얼마나 걸리려나....”
무방비하게 드러난 그녀의 배를, 옆구리를 어루만지자 스페이드의 떨림이 한층 심해졌다. 보지와 딜도의 접합부와 허벅지는 애액으로 번들번들해져 있다. 벌써 몇 번이나 간 건지 스페이드 본인도 알 수가 없다. 적어도 열은 훨씬 넘었다.
후우으으으으...! 후우......! 후웅......!
무방비한 새하얀 엉덩이를 13호가 찰싹찰싹 두드려 주니, 스페이드의 숨결이 흐트러졌다. 그 타이밍을 노리듯, 그녀의 코 앞에 있던 기계가 뽀얀 기체를 사출했다. 세뇌약과 미약을 적절히 조합해 만든 약이다.
쾌락에 젖은 콧소리를 내며 몸을 비트는 스페이드를, 13호가 침을 삼키며 쳐다보고 있자니, 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겠습니다.”
고문실의 문이 열리고 참모가 들어왔다.
철그렁-
참모가 손에 든 쇠사슬을 당기자, 그에 이끌리듯 따라 들어온 것은 쇠사슬이 목줄에 연결된 클럽이었다. 밤새도록 참모의 손에 시달렸는지, 다크서클이 주욱 내려와 있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항상 단정했던 흑발도, 지금은 흐트러진 데다 푸석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