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15 히어로 아리아는 누구인가(1)
“이거 풀라, 이 육갑들아! 당장 와서 안 푸냐-앗?!”
【어비스】 아지트의 지하. 체크는 양 손이 구속된 채 방에 갇혀 있었다.
기존에 있던 아지트의 ‘고문실’이나 ‘조교실’과는 달리, 지금 그녀가 있는 방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분위기에다, 한층 차가워 보이는 인테리어가 대놓고 경각심을 조성하는 무서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썩어도 7번대의 2인자. 체크는 그런 방에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 있으면서도 조금도 겁먹지 않은 채 열심히 바닥과 벽을 차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다만 빌런 조직 아지트에 어울리는 깊은 지하였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소리치고 아우성쳐도 바깥에 소리가 전해질 일은 없었다.
다만 문 너머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시끄럽게 소리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동료인 코코의 목소리였지만, 목소리가 너무 멀어 체크는 알아듣지 못했다. 두 사람은 따로 수감되어 있다.
‘......근데 여기, 진짜 밥은 맛있네.’
당장에라도 고문할 것 같은 분위기에, 처음 체크가 잠에서 깼을 때는 솔직히 조금 쫄리는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고문은커녕 별다른 움직임도 없고, 심문을 하거나 자백제를 먹이는 것도 아니고, 밥 때가 되면 참모가 찾아와,
――‘조금만 더 기다려 줄래요? 아, 혹시 심심하지 않나요? USIM 칩을 빼 놓은 폰이라도 드릴까요? 원하는 책도 있다면 가져다드릴 수 있답니다. ......아, 혹시 말 못할 행위를 하고 있다면 거기 도구들을 가져다 뒀으니 언제든 마음 편하게 기쁨을 누려도 괜찮습니다. 얼마든지요. 그보다 이 옷 입어주시지 않을래요? 기장이 짧은 치파오를 비싼 돈 주고 샀거든요. 그 만두머리랑 어울릴 것 같은데――’
쓸데없는 잡소리와 함께 쓸데없이 맛있는 밥을 놓고 간다. 말이 많아, 그 남자.
그나저나 팔이 이래서야 제대로 운동도 못 하고, 이대로 붙잡혀 있으면 언젠가 뒤룩뒤룩 살이 쪄 돼지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밥이 쓸데없이 맛있잖아! 포로의 밥이란 건 콩밥이라거나 돼지밥 같은 거나 정액투성이 빵이란 게 국룰이잖아!
“......어, 그런 게 먹고 싶었던 겁니까. 다만 위생적으로 좀....”
“끼얏?!”
순간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참모.
노, 노크 안하냐 문디야?! 그보다 내 지금 생각한 게 말로 나온겨?!
“벌써 밥 시간 이가...? 그보다 어서 이거 풀래이. 후환이 두렵지 않으면.”
“아하하하, 유해지정 맹수는 거리에 풀어두는게 아니니까요.”
“누가 맹수가, 누가!”
“그보다 제가 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식사 시간은 아직 멀었으니 기대해주시길. ......그런데 체크 양, 혹시 좋아하는 음식 있으신가요.”
왜 그런 걸 물어보지?
“에...... 마늘쫑이 들어간 잡채요리... 좋아하는데. 아, 그리고 부추를 잔뜩 넣은 만두도.”
“호오, 호오. 뭔가 중국식이군요. 알겠습니다.”
“해줄끼가? 왜?”
“......그게....”
참모가 난처한 듯 시선을 피했다.
“그게, 오늘부터 체크 양을 세뇌하기 위해 조교를 시작할 텐데요.”
“앙? 세뇌? 조교? 지금 날 먹을 거로 낚겠다는 게냐? 내가 그렇게 단순한 인간으로 보여?!”
“아뇨. 그럴 생각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해드리는 건 단지... 그게...... 당신을 조교하는 게 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듯 손목에서 이어진 사슬의 한계까지 참모에게 다가가 난동을 부리려던 체크였지만, 참모의 이상한 낌새에 그만두기로 했다.
뭔가 굉장히 미안한 듯, 말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를 풍기는데, 뭐지?
그리고 그 답은 금방 두 사람의 눈 앞에 찾아왔다.
“와서 뭐하고 있냐, 참모 이 머저리야.”
“아, 도로시 양. 왔군요.”
체크가 있는 방에 새로운 인물이 찾아왔다. 부스스한 머리에 다크서클, 그리고 흰 가운이 인상적인 여성.
도로시가 방으로 들어오자, 세련된 디자인의 인간형 로봇이 어떤 박스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 정교한 로봇의 등장에 체크는 놀라움으로 눈을 크게 떴다.
“네가 체크지?”
“어...... 이 기지배는...?”
“맞나보네.”
도로시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 손목에 감긴 팔찌 같은 것을 슥- 문질렀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륵-!
그러자 그게 신호가 된 듯, 체크의 손목을 구속하던 팔찌와 이어진 쇠사슬이 움직여, 체크의 양 손을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에......?”
다행히 땅에 발은 닿아있지만, 온 몸이 완전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럼 저는 가서 장을 봐오도록 하지요. ...체크 양, 그럼 무사한 모습으로 다시 뵙길.”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빨리 꺼져, 참모.”
“이크!”
엉덩이를 발로 뻥 까인 참모가 서둘러 방 밖으로 나갔다.
도로시는 로봇에게 체크의 앞에 박스를 내려놓게 시키고, 그 안을 뒤졌다.
“13호가 올 때까지, 나랑 이 머저리가 네 조교를 실시할 거야.”
“조교라니, 누가 그딴――”
“파수군 4호, 목걸이.”
[파수군 4호, 알겠습니다.]
인간형 로봇은 체크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에 들린 동그란 원형의 물체를 체크의 목에 가져다 댔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그녀의 목에 은빛의 초커가 씌어졌다.
“어머, 잘 어울리는 개목걸이지? 이참에 왕, 왕, 울어보는 건 어때?”
“너, 이 문디가.......”
“그럼 일단 말버릇부터 조교할까?”
도로시가 팔을 들어 손목에 걸린 은색 팔찌를 슥- 문지르자,
“꺄아아아아아아아앗?!”
체크가 온 몸을 경직시키며 비명을 질렀다.
“어때? 전기가 흐르는 목걸이야. 멋지지? 능력제어 수갑에 기능을 몇 가지 더 붙여놨어. 그리고 외부에서의 마력의 흐름도 차단하니 이상한 능력으로 벗겨내지도 못해. 완전히 디지털화되어있으니 열쇠는 없고, 지정된 코드를 입력해야만 풀 수 있어. ......더이상 똑같은 꼴은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스페이드의 수갑이 어떻게 풀렸는지는 CCTV 영상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대상자의 능력을 봉한다는 생각만 하는 바람에, 외부에서의 간섭에 취약할지 모른다는 걸 생각 못했다.
이번에 만든 목걸이는 그런 기능들을 보완한 것이다.
“하여간 쓰레기 13호도, 머저리 참모도 물러. 계집들을 세뇌한다고 해놓고 언제까지 상대를 배려할 셈이야? 세뇌 수순도 틀려먹었어. 완전히 꽝이라고. 수준 떨어져서 보는 것만으로 열이 뻗칠 지경이야... 하긴, 여자의 몸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밥통들이니 어쩌겠어.”
그렇게 말하며, 도로시는 박스 안에서 주섬주섬 도구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하나는 수상한 약물이 들어있는 주사기였다.
하나는 수상한 향을 토하는 향로였다.
하나는 파직, 파직, 공포스런 소리를 내는 도구였다.
하나는......
“그러니까, 여자의 몸을 아주 잘~ 아는 내가, 너를 제대로 조교해줄게. 히어로니까, 이 정돈 버텨주겠지?”
테이블 위에 도구들을 잔뜩 늘어놓고, 흉흉하게 웃으며 어떤 도구를 사용할지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악의 과학자 그 자체였다.
“......질까... 보냐아.......”
그녀의 온몸을 저릿하게 자극한 전기충격에 몸을 떨던 체크는, 그럼에도 굳센 눈으로 도로시를 노려봤다.
* * *
하읏... 흣......!
나와 보스가 7번대의 아지트에 머무른지 사흘째다. 그 사이 가끔 메르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리아라는 히어로의 예지에서, 이번 시궁쥐 소탕 작전에 나는 없어선 안 되는 요소라는 것 같아서... 덕분에 라헤도 나만은 신중히 취급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내가 중요한 요소라는 걸까.
그 예지라는 것 자체가 참으로 알송달쏭하다. ‘상세한 내용은 모른다. 그러나 13호는 꼭 필요하다’. 이런 식의 예지가 있었던 걸까. 그거 나한테 너무 편한 예지 아냐?
......뭐, 혼자 생각해봐야 알 수 있는 건 없다.
“그래서 물어보러 왔는데, 어때, 스페이드?”
“큿...... 다짜고짜 남의 방에 찾아와서... 흐아... 이런 짓을 하고선...... 뭐가 어때야, 멍청아!”
그렇게 나는 지금 스페이드의 방 안에서, 정보 수집 겸 심심풀이로 스페이드를 희롱하고 있었다.
침대 위에 걸터 앉은 스페이드의 치마를 걷고, 속옷을 끌어내리고, 그 안의 보지에 손가락을 집어넣거나 눈으로 관찰하거나, 때때로 핥거나 하고 있다.
내 명령에 따라 가만히 앉아서 견디는 스페이드는, 수치심으로 얼굴을 물들인 채 분한 듯 나를 노려볼 뿐이다.
“그래서 아리아라는 여자는... 어떤 여자야?”
스페이드의 꽃잎 위의 음핵을 할짝 핥으며 묻자, 스페이드는 원망스럽다는 듯 부들부들 떨었다.
“네가 아는 대로... 으...... 예지 능력을 가진 특수배속실의... 히어로야. 능력도... 뭔가 제한은 있다는 것 같은데... 흐응... 의욕인지 뭔지... 그치만... 히익... 나도 잘, 몰라....”
“정말 그 외에 뭔가 더 없어? 사소한 것도 좋아. 습관이라던가, 특이한 점이라던가.”
“그런 거...... 모른다니... 아.”
꽃잎 깊은 곳에 손가락을 넣고 휘젓는다.
스페이드는 어깨를 모으면서,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몇 차례 너를 확실하게 체포해야 한다고... 하응... 소탕작전 계획이, 나왔었는데... 아리아의 예지 때문에 취소된 적이... 몇 번 있었...을 걸? 그 아이의 예지는 대장의 명령권보다 우선이니...까.”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일이 있었다라... 하지만 이걸로는 뭔가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단순히 나랑 엮이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미래를 예지한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아리아라는 여자에게 모르는 새 꽤나 도움을 받은 모양새가 되었다. 실제로 라헤는 상상 이상으로 괴물 같이 강했고, 만약 마음먹고 대장들을 이끌고 나를 체포하러, 혹은 죽이러 왔다면....
‘어땠으려나.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나는 너랑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 으흣... 으니까. 너랑 싸우고 돌아오면... 이것저것 물었던 것도... 같아. 그 아이가.”
“아리아가?”
“히읏...!”
꽃잎 속에 꽂아 넣은 손가락을 크게 움직이며 묻자, 스페이드는 퍼득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 대해 물었다고? 이것저것?
엄청 수상한데.
‘보스도 어쩐지 그 여자에 대해선 말하기 꺼려하는 것 같고.’
――‘그 여자는 조심하도록 해, 13호.’
왠지 불편해 보이는 눈치로 그 말만 하고 가버렸다. 무슨 뜻인가요, 보스. 좀 더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요, 보스.
아무튼 그 여자는 위험하다. 능력을 잃고 책략 밖에 남지 않은 나에게, 예지라는 능력으로 내가 뭘 하든 폭로 당할 위험이 있는 현재 상황은 위험하다.
......일단 그 여자는 예의 주시하면서, 약점을 찾아봐야겠다.
메르만으로도 걱정이 태산인데, 아리아라는 여자까지 신경 써야하다니... 피곤하구만.
나는 한숨과 함께 스페이드의 꽃잎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여기까지 할까.”
“에......?”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스페이드의 시선을 무시하고,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보스가 뭣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거든. 보스는 일단 포로 신세니까 이 기지에서 떠날 수 없고, 별 수 없이 내가 나가야지.”
“어...... 그치만....”
스페이드는 어딘지 애가 타는 듯 허벅지를 비볐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그런 그녀를 못 본 척 한다.
“옷도 없으니까 이 참에 좀 사오라고 하더라. 근처에 백화점이 있던가?”
“있......지.”
“응? 왜 그래? 뭔가 불만인 게 있으면 제대로 말해주라고? 역시 끝까지 해주는 게 좋았어? 기분 좋았지? 스페이드는 야한 걸 좋아하는 변태니까.”
“누가! 누가 변태라는 건데! 전부 징그럽고 역겨울 뿐이거든?!”
“그래?”
나는 눈썹을 모은 스페이드의 머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이 시간 부로 자위하는 걸 금한다, 스페이드.”
“......뭐?”
“괜찮지? 스페이드는 변태가 아니니까. 이런 거 징그럽고 역겨운 거잖아.”
“아, 아니.......”
“그럼, 난 쇼핑하러 간다, 스페이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홰홰 저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