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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화 〉#21 빌런과 히어로 사이에는 음모와 모략이 판을 친다(5) (104/271)



〈 104화 〉#21 빌런과 히어로 사이에는 음모와 모략이 판을 친다(5)

“콜록, 콜록... 연기가 맵데이....”

체크는 뿌연 연기를 걷어내며 중얼거렸다.

하늘에는 쏟아져내리는 폭탄, 아래에서는 마찬가지로 그녀를 노리고 새로 만들어진 폭탄.

양 쪽에 끼어서 한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체크는 마력을 다리에 집중에 단번에 폭탄의 투하지점에서 이탈했다. 축지(縮地)라고도 불리는 만큼 재빠른 이동으로 폭탄은 무사히 피했지만....


“사라졌네....”


단순한 폭탄치고도 이상하리만치 대량으로 터져나온 연기를 뚫고 살펴보니, 조금 전까지 붙잡아 놓았던 빌런이 사라져있었다. 연막 사이에 숨어서 도망친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혈을 틀어막아 놨으니, 혼자서는 꼼짝도 못했을 테고.. 아마도 동료가 데리고 도망친 거겠지.

‘생각보다 싱겁게 돌아갔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역량차를 보고 빨리 포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체크는 느긋하게 기지 안으로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3번대의 대장인 메르가 라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메르의 손에는 적지만 피가 흐르고 있다.


“오메, 메르 대장, 다쳤소?”


“아, 체크잖아?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 ......아~아, 방심한 사이에 암살자 같은 녀석한테 푹, 하고 찔렸지 뭐야.”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흔들 흔들어보이는 메르. 입술이 부루퉁한게, 뭔가 상당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허를 찔린 게 그렇게 분했던 걸까.


“잠깐 경계하는 사이에 붙잡아 놨던 다른 빌런들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아마 공간이동계 능력자가 있는 것 같네~. 귀한 이 몸에 흠집도 나고, 조금 열 받아.”

씁쓸한 얼굴로 말하는 메르. 대장급이나 되어서 허를 찔렸단 점에서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애초에 은밀에 특화된 능력이니만큼  알아챈 것이 분할 일은 없지만....

“근데 너무 싱겁게 돌아갔는걸... 내부에 침입한 빌런들은?”

메르가 묻자 라헤는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스페이드와 아리아한테 들키자마자 바로 도망쳤대요.”


“포로로 잡은 녀석은 한 명도 없는 거구나... 대장씩이나 돼서 부끄러워지려 그래, 나.”

“저도 13호한테 신경 쓰느라... 아뇨, 아무 일도 없었습지만요....”


어쩐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젓는 라헤를, 메르는 수상하게 쳐다보았다.

그건 그렇고 굳이 오늘밤 습격한 이유는 뭘까? 대장이 둘이나 있는 지부에 이 정도 허접한 인원으로 쳐들어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대장이 그렇게 얕보였나?

“생각해봐야  수도 없으니... 그렇게 됐는데 라헤, 티타임은 계속 할 거니?”

“오늘은 이만 잘까요. 메르도 조그만 상처지만 치료해야할 테고. 차도 다 식었을 테고요.”

“그러지 뭐. ...그런데  고풍스런 취미네. 매일 같이 티타임이라니.”


“하루의 피로가 씻겨나가거든요. 그래도 시작한지 얼마 안 되긴 했는데....”

라헤는 뺨에 손을 대고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언제부터 시작했더라... 티타임.”

* *



“좋아요, 무사히 도망쳤네요♥”

애플의 추종자이자 【시궁쥐】의 멤버, 그리고 조금 전 7번대 지부를 습격한 에이는, 공중에 둥둥  채 어두운 골목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에이의 밑, 아무 것도 없을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으, 무거워. 아직 못 움직여?”


“손가락 끝은 조금 움직이는 정도예요.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것 같은데....”


“아우! 더는 못 가!”


“꺄아!”

에이의 몸이 바닥에 털푸덕 떨어졌다.

“아이 참, 놀랐잖아요 ‘씨씨’.”

“이만큼 도망쳤으면 됐잖아. 히어로들도 더 쫓아오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고, 여기서 ‘디디’를 기다리자고.”

디디는 공간이동계 능력자다. 제한이 많아서 직접 발로 닿아 저장한 장소 밖에는 이동할 수 없지만, 퇴각하는 데에는 유용하다.

두 사람의 좌표는 GPS로 실시간 공유되고 있으므로, 당장 급한 이들의 이송이 끝나면 자신들을 데리러 와줄 것이다.


“애플님이 명령하신 건 다 됐나요?”


“1차 계획은 실패. 2차는 성공.”

1차 계획은 몰래 무미무취의 독을 설치해 7번대 히어로들을 전원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독 살포를 담당한 동료가 히어로에게 들켜버렸다. 결국 그 동료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미끼가 되었고, 능력으로 모습과 기척을 감추고 있던 씨씨는 2차 계획을 이어간 것이다.


“히어로 라헤의 머리카락이랑 메르의 피... 그 외에 다른 히어로들의 물건들을 훔쳐왔어.”

씨씨는 보여주듯 주머니에서 투명한 케이스와 허벅지에  나이프를 꺼내 보여주었다. 각각 머리카락 같은 것이 들어가있고, 나이프에는 피가 묻어있다.

독을 푸는 것이 1차 계획이었고, 이를 실패할 시 히어로들에게 연관된 물건을 몰래 훔쳐온다.


이게 바로 2차 계획이었다.


훔쳐온 물건들은 아지트에서 대기 중인 주술계 능력자가 사용해, 원격으로 그들을 약체화 시킬 것이다.


“잘 됐네요♥ 잘 했어요♥”


“너 따위한테 칭찬받아봐야 의미 없거든. ...애플 님, 칭찬해주시겠지?”

“틀림 없이요. 실패하더라도 애플 님은 저흴 내치시지 않겠지만요. 아아, 애플 님은 신이에요...♥”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황홀경에 빠진 채 애플을 찬미하고 있었다. 무슨 방식을 쓴 것인지, 애플에게 단단하게 세뇌된 결과였다.

씨씨도 그녀만큼 드러나지는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애플을 향한 열의라면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지금의 【시궁쥐】는 대부분 애플에게 완전히 빠져든 채다. 개 중 아직 애플에게 빠져들지 않은, 보스를 포함한 소수의 ‘반역자’들은 아지트 지하에 감금된  고문과 세뇌를 반복하고 있다.

“......근데 뭐야, GPS가 안 먹는데. 고장난 건가?”

어쩐지 이동요원인 디디의 도착이 늦는다 했더니, GPS기계에 빨간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배터리가 없거나 고장이 났거나 어쨌든 모종의 이유로 작동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야, 에이.  GPS는 작동 돼?”


“제건 예전에 폭발로 날아가버렸는데요.”


“......맞다. 넌 비싼 장비는 휴대하면 안 되는 애지.”


에이의 능력으로 만들어 낸 폭탄은 그녀 자신은 상처입히지 않지만, 그녀가 휴대한 물건은 망가트릴 수 있다. 지금도 지근거리에서 폭탄을 몇 번이나 터뜨린 덕분에 옷이 상당히 펑키한 상태다.

GPS가 안 되면 자력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차림새의 에이를 그대로 데려가는 건 좀... 택시를 탄다면 괜찮겠지만, 아지트의 위치가 드러난다는  문제다. 이런 차림새의 여자라면 인상도 깊게 남을 테고, 만에 하나의 사태는 피하고 싶다.

그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GPS는 고장난 게 아니라, 단순히 재밍에 걸린 것 뿐이니까요.”


느닷없이 아무 것도 없던 장소에서, 사람이 불쑥 솟아났다. 마치 그림자에서 솟아난 것 같은 광경이었다.


‘히어로?!’

씨씨는 경계하며 모습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목에 푹, 하고 주사기가 꽂혔다.


“씨씨!”

에이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씨씨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인형처럼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뒤에는 주사기를 손에 든, 건방진 느낌의 여성이 서있었다.


“무슨 일이야... 당신들 뭐야!”


에이가 매섭게 외치자,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안경 쓴 남자가 히죽 웃었다.


“저는 【어비스】의 빌런입니다. 참모라는 직함을 맡고 있지요.”

“뭐...... 어비스?”


에이는 한순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째서 어비스의 빌런이 여기 있는 거지? 그들의 표적은 7번대의 히어로지, 빌런이 아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빌런이 이런 데 끼어드는 거지?


“저희 조직의 선봉장님이 말이죠, 지금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거든요. 히어로에게 보스는 인질로 잡히고, 보스를 인질로 잡힌 13호님은 히어로들이 괴롭히는 대로 괴롭힘 당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입니다. 매일 같이 밟히고, 차이고, 욕을 먹고, 바닥을 기고...... 상상만으로도 부러운, 실례, 고통스러운 경험을 매일 같이 하고 계십니다.”

참모를 노려보는 에이의 죽일 듯한 시선을 시원스레 넘기며, 참모는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13호님은 고민하셨죠.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까. 그러다가 저한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참모의 손에 주사기가 들렸다. 조금 전 씨씨를 기절시킨 그것과 같은 종류의 액체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판을 뒤엎자.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자. 있는 대로 깽판을 치자. 상대가 히어로든 빌런이든, 전부 엿먹이고 우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여자들은 마음 가는대로 범하자.... 아아, 13호님의 제안은 언제나 제게 달콤한 꿈을 보여줍니다. 저는 평생 13호님을 따를 거예요.”

참모는 황홀경에 빠진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제는 에이에게 들려주는 것도 아닌, 그저 스스로의 말에 스스로 도취하고자 말을 꺼낸다.

13호를 향한 맹신과 선망.


터무니 없는 변태 같은 얼굴이었지만,  모습은 에이에게 극히 익숙한 것이었다. 그녀 본인도, 그녀의 주변에 있는 동료들도 비슷한 얼굴이었으니까.


마치 자신이 애플에게 빠진 것처럼, 눈 앞에 있는 빌런 또한 13호라는 인물에게 심취해 있다.

완벽한 동류의 냄새에, 에이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면서도, 쓰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참모가 주사기를 에이의 목에 꽂아넣었다. 그러자 에이는 눈 앞이 새카매지는 것을 느끼며, 금방 정신을 잃었다.

“그 녀석이 말한 대로 됐네.”


“13호 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가능한 존경을 담은 호칭으로 불러주시지 않겠습니까, 코코 양.”


“싫거든, 그런 대머리.”

“13호 님은 대머리가 아닙니다!?”

“흥.”


코코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자, 참모는 대수롭지 않다는  그녀의 스커트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잠...?!”

팬티 너머로 손가락을 꾸욱 누르자, 팬티의 천이 저항감 없이 그녀의 음순 안으로 파고들었다. 꽃잎이 살짝 젖어있었다.

“미, 미안해요...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것만으로 코코는 사죄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참모는 못 들은체하며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였다. 코코의 소중한 부분을 농락해간다. 그러나 코코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런 참모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흐읏...... 나쁜 새끼... 그만해....”


“당신, 많이 귀여워졌네요.”

“누구 때문인데...!”

영악한 그녀였지만, 거듭된 조교로 인해 의지가 많이 약해졌다. 지금도 주기적으로 세뇌가 불안정해지는 틈을 타 참모에게 반항하며 티격태격하고는 있지만,  빈도는 착실히 줄어가고 있었다.

참모는 만족할 때까지 그녀의 음부를, 질을 손가락으로 희롱했다. 중간에 코코가 조수를 뿜으며 가버렸지만, 아랑곳 않고 손가락으로 계속 쑤셨다. 조금 뒤 손가락을 빼내니, 질척한 애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럼 코코, 나머진 부탁드리겠습니다.”


상쾌하게 웃으며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던 수갑과 목걸이를 해제하는 참모를, 코코는 부루퉁하게 쳐다봤다. 열 받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의 자신은 참모의 명령에 거역할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까. 체념의 한숨과 함께 능력을 사용한다.

능력 【일루전】. 빛을 원하는 모습의 환각을 비추는 코코의 능력으로, 그녀의 외견이 한순간 쓰러진 빌런 씨씨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모습으로 잠입해있으면 되는 거지?”

“그래요. 당신의 능력이라면 이 아가씨의 능력도 모방할  있을테고요. 주기적인 통신 부탁드릴게요.”

“......정말 아리아의 능력엔 감탄 밖에 안 나오네. 이걸 전부 미리 알았다는 거지? 고년, 우리랑 같이 일할 때는 능력을 숨겼던 거구나.”

그녀가 아는한 이 정도로 정밀한 예지는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런 유능한 아가씨를 회유하신 13호님의 능력이 경탄스럽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반하도록 하세요.”

“흥.”


코코가 코웃음을 쳤다.


“됐으니 빨리 꺼져버려. 아리아도 유능하지만, 그 누구보다 유능하신 이 몸께서 네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일을 해줄테니까.”

“의욕이 넘쳐서 좋습니다. 유능한 당신의 활약을 기대하지요, 코코 양.”

참모는 신사적이게 허리를 숙이고는, 쓰러진 【어비스】의 빌런들과 함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이제 곧 GPS의 재밍이 풀리면, 그녀를 아지트로 데려가기 위한 이동요원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은 의심하지 않고 코코를 아지트로 데려갈 것이다.


모략과 음모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아무도 모르는 채 독처럼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 * *

다른  편, 자신의 방에서 라헤는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13호에게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책략을 짜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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