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3화 〉#25 그리고 빌런은 마왕에게 반역한다(4) (123/271)



〈 123화 〉#25 그리고 빌런은 마왕에게 반역한다(4)

아앗, 힛, 하으으으으으으....


애플이 한차례 절정을 맞이한 뒤로도, 13호는 계속해서 애플을 범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애플. 이래서야 완전히 천박한 암퇘지 잖냐.”


“잇, 이힛, 아, 아앗, 가요, 가요오오옷...!”

처음의 절정으로 13호에게 패배하고 굴복한 애플에게선,  이상 지적인 빛은 보이지 않았다. 타락한 암캐다운 음란한 허덕임과 함께 13호의 페니스가 출입하는 걸 마음 깊이 기뻐하며, 허덕인다....

“하앗, 핫, 으....”


13호가 페니스를 그녀의 소중한 균열에서 빼내자, 즈벅......거리는 점액과 점액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비어버린 꽃잎을 손가락으로 벌리자, 안에 모여있던 정액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아. 애플.  때문에 내 자지가 완전히 더러워졌잖아. 사랑스런 입으로 청소해줄래?”

“네, 헤... 13호님의 자지를... 청소해드리겠슘니다... 웁....”

애플이 13호의 자지에 달라붙어 입으로 깨끗이 청소하는 사이, 스페이드는  뒤에서 애플의 보지를 핥고 빨며 안에 든 정액을 깨끗이 비워나갔다. 13호의 자지를 문 채로, 애플은 풀어진 얼굴로 허리를 비틀며 스페이드의 혀가 움직이는 대로 뜨거운 열락의 신음을 흘렸다.

“자, 애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음미하고, 네 마음에, 네 영혼에 새겨 넣도록 해――”

애플의 몸을 마음껏 음미한 후, 적당히 무르익었다고 생각됐을 무렵, 13호는 애플의 머리를 끌어안고, 그 귓가에 ‘예속의 암시’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애플은 몽롱한 눈을 한 채, 13호의 말에 멍하니  기울였다.


“하나, 지금부터 너는 내 노예다. 나의 것이다. 나만을 네 주인으로 인식하고, 내가 말하는 것이면 그게 어떤 것이든 따라라.”


13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으로 자극이 되는지, 애플은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너의 몸은 나의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허락하지 않는 곳에서의 절정을 금한다. 내 자지가 아니면 너는  수 없다. 스스로 자위를 하거나, 도구를 이용하거나, 다른 자지로는 절대로 절정을 가지지 못해. 느끼지만,  수는 없고 오로지 달아오르기만 할 뿐이다....”

“네....”

“하나, 내 정액은 너에의 사랑의 증표다. 내 사랑을 네 몸 깊은 곳에 받으면, 너는 더욱 더 특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알겠지?”

애플은 상상만으로 즐거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뻐끔히 열린 꽃잎에서 애액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너는 나를 사랑해라. 내 사랑을 바라고,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가라. 내 사랑이 없으면   없고, 내 사랑이 없으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워 하고... 하지만 내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총애를 듬뿍 받으면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뻐해라....”

“네, 네에헤... 13호님...!”

“잘했다, 애플. 절대로 네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거다. 평생을 내 육노예로서, 고기인형으로서 사랑해줄테니....”


애액을 쏟아내며 기쁨에 겨워 부르르 몸을 떠는 애플에게, 13호는 수차례 암시를 반복해서 읊조리게 하고, 마무리로 세뇌 ‘키워드’를 주입한 후 애플을 잠재웠다.

세뇌약의 효과로, 지금 주입시킨 암시는 잠든 사이에도 끝없이 반복해, 애플의 마음을 더욱 물들여갈 것이다....

* * *



“......푸하. 정말이지, 아슬아슬했다.”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로 옆에는 애플이 새근새근 잠들어있다.

잠시 그 얼굴을 내려다보다, 그녀의 살짝  눈꺼풀을 매만졌다. 이어서 눈꺼풀에서 코, 뺨 등 하나하나  끝으로 만져봤다.

조금 차분해진 기분으로 애플의 얼굴을 살핀다. 확실히 안경을 벗고 나서, 다섯배는 더 예뻐보였다.

하지만 나를 굴복시키겠다면서, ‘마왕’으로서의 면목을 보이던 그녀는 냉혹하고 무서워 보였는데... 이렇게 얌전히 잠든 모습을 보면, 앳된 실루엣도 보였다.

애초에 애플의 나이는 스페이드와 같거나 어릴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라헤를 제외한 7번대의 멤버는 전부  정도 나잇대라고 알고 있다. 아리아와 클럽이 동갑으로 제일 어리고, 아마  다음이 애플인가 스페이드였을 텐데....


이렇게 어린 여자가, 세상을 짊어지겠다니.

이렇게 어린 여자애가, 고독한 ‘마왕’이 되겠다니.

이렇게나 사랑에 굶주린 여자가, 혼자 모든 죄를 짊어지려 한다니.

조금...... 가엾다는, 생각이.


‘들 리가 없잖아!’

그래봐야 히어로! 그리고 나는 몹쓸 악당인 빌런!


그리고 이 여자는 나를 괴롭히고 돼지로 만들려 했던 몹쓸 여자다!


그런 주제에 져버렸으니, 이제는 하루하루 야한 일만 생각하면서 살게 해주겠다. 쓸데없는 내일 일에 대한 고민과 고독보다는, 오늘 하루하루를 바보처럼 사랑과 기쁨에 겨워 보지를 적시게 해주마!

 소망도 숭고한 각오도 철저하게 짓밟아주겠어!

“큭큭큭... 역시  극악무도한 악당이야... 고민 따윈 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주겠어... 나를 괴롭힌 벌을 받아라, 애플....”

홀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니,

“(빤~~~히).......”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스페이드의 시선이 따가웠다.

혼자 웃고 혼자 중얼거리고,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으려나.

“......왜 그렇게 봐?”


스페이드는  던지듯 물었다.

“역시 13호는, 가슴이 좋아?”


“뭐....”


스페이드의 속 깊은 질문에 나는 찰나간에 고민했다.

왜 갑자기 이 녀석이 그런 걸 물었는가는 그렇다 치고, 질문의 내용이 문제다.
가슴이 좋아, 라니.

그런 어마어마한 주제를 ‘오늘 아침은 뭐 먹었어?’ 같이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다니, 이 여자는 가슴에 대해 경애를 표할 마음이 없는 걸까. 그러니까 고작해야 B컵 밖에  되는 것이다. 모양은 예쁘지만. 모양은 예쁘지만!

“엣, 내 가슴을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변태 자식.”


“오해하지 마. 스페이드 네 가슴을  건 맞지만 우주의 진리에 필적하는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민하다보니 어쩔  없이 눈이 간 것 뿐이니까.”


“......그렇게 어려운 질문이었나?”


“가슴도(道)를 얕보지 마!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상에 가슴을 싫어하는 남자는 없겠지만, 그러나 문제는 ‘그게 어떤 가슴을 좋아하느냐’라는 부분에서 발생한다고! 그냥 ‘가슴이 좋다’  마디로 끝낼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단 말이다! 남자라면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들춰내고 분해해서 면밀히 들여다 볼 시간을 들이고 나서야 답을 찾아낼 수 있는 법이라고!”


“그냥 닥쳐 줘 제발....”


스페이드가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마음에  드나 보다.


“그런데 그런 건 갑자기  물어보는 거야?”


“......다른 게 아니라... 나도 옆에 있는데... 애플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응? 뭐야 그 이유.  나 좋아하냐?”

“무, 누, 누가?!  같은  엄청 싫거든!”

스페이드가 화난 듯 침대를 쾅쾅 두드렸다. 아, 안다고... 나처럼 최저인 남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는 것 쯤은... 마구 세뇌하고 범하고, 거의  원수 같은 사람일테고...

“그치만, 나도 지금 몸이, 좀, 뜨겁고... 거기도, 간질간질하고... 내 앞에서 둘이서만 즐겼으니까... 좀 신경 써줘도 되잖아.......”

스페이드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부끄러운 듯 몸을 움츠리면서, 스커트 자락을 슬쩍 들어올렸다.


드러난 것은 익숙한 밝은 느낌의 민트색 팬티. 그리고 그 끝에, 그녀의 꽃잎을 가리고 있을 부분이... 살짝 젖어있었다.


과연, 그런 뜻이구만.


“나랑 애플이 즐기는  보고 발정했단거구나. 히어로 주제에 밝히네, 스페이드.”


“다 너 때문이잖아! 나, 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처녀였다고...?”

스페이드가 고운 눈썹을 세우며, 날카롭게 눈을 치떴다.

“책임져! 너 때문에 이렇게 금방 느끼는 몸이... 됐으니까!”

수치로 얼굴을 붉히고는 있었지만, 스페이드는 여전히 그녀다운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나는 스페이드의 예쁜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픽, 돌렸다.

“싫어.”

“뭐――”

거절당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스페이드가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그런 스페이드에게 유쾌하게 웃어주었다.

“네 녀석, 애플한테 세뇌되어서 나랑 라헤랑 붙잡히게 했잖냐. 애초에 최초에 애플을 놓친 것도 너고, 이 한심녀야. ”

“하, 한심...!”

“거기다 애플한테 재촉받아서 나를 매도하면서 괴롭혔던 거, 잊지 않았거든? 그 때 네가  말 하나도 잊지 않을 거거든? 네 경멸의 눈초리라던가 나를 비웃고 깔보던 거 절대 용서 안  거거든?”

“그, 어쩔 수 없잖아! 그게 내 본심인 걸!”


“세뇌 탓으로 돌릴 생각도 없는 거냐!”

에라이 나쁜 년! 그런데 내가 널 만족시켜줄 것 같냐?!

“후하하하! 이미 네 세뇌 ‘키워드’도 내 말에 복종하는 암시도 전부 되살려 놨지! 지금부터 명령한다 스페이드! 지금부터 내가 허락할 때가지 ‘일절 절정하는 것을 금한다’!”


“뭐.......”

“그리고 네 손으로 성감대를 자극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어! 보지에도 가슴에도 손대지 말 것! 이건 명령이다! 암시 때문에 따를 수 밖에 없을 걸?!”

“뭣――!”

“추가로 명령한다! ‘항상 발정할 것’! 24시간 내내 발정해라, 스페이드! 그리고 ‘네  몸은 평소보다 10배 민감해진다’! 옷깃만 스쳐도 느껴버리는 상황에서 잘 버텨보라고!”


“이 자시이이이이이이이익!”

연달아 이어진 내 터무니없는 명령에, 스페이드가 눈꼬리에 살짝 눈물까지 맺힌 채 내게 달려들었다.





스페이드와의 짧은 공방이 지나갔다. 암시가 부활한 지금 스페이드는 내게 해를 입힐  없었지만, 나를 붙잡는 정도는 가능해서 그대로 나를 붙든  내 허벅지며 손을 이용해 자신의 음부를 자극하려 했다.


복수의 불길이 몸 안에 타오르던 나는 스페이드의 손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계속해서 골려줬다. 이따금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에는 “정지!” 명령으로 스페이드를 멈춰 세우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이, 자식...!”


“후후. 스페이드. 일부러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주는  모르겠어? 아슬아슬한 순간에 놓치는 것으로 네 절망을 즐기고 있는 거라고.”


“악취미 자식! 더러운 악당 녀석! 변태 빌런!”


“후하하하하! 더,  말해봐라! 전부 지금의 나에겐 칭찬이니까!”

“......뭐 하는 거야 너넨?”


““히익?!””

정말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나와 스페이드는 깜짝 놀라 기성을 질렀다.

조금 전까지 방문은 닫혀있었고, 누군가 들어오는 기미는 없었다.


그러나 정말이지 한 순간, 눈치 채고 보니 문은 완전히 부서져있었고, 넓은 스위트룸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바라보며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있었다.

대장을 뜻하는 새하얀 전투복을 입은 여성.


옷깃에는 4번대를 뜻하는 히어로협회 전용마크가 수놓아져 있었다.


 여자는....

“실 대장님?!”


스페이드가 경악하며 외쳤고, 나는 경계하며 그녀를 노려봤다.

4번대의 대장, 메르와 라헤와 함께 이번 작전에 참가한 대장   명. 【시간조작】이라는 치트 능력을 가진 시간 능력자.


“늦어서 미안해... 스페이드였지?  능력은 본격적으로 쓰려면 마력을 너무 많이 잡아먹거든.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네... 고생했어.”


“실 대장이 여기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은.”

“히어로들은 전원 구출해냈지. 일단 이 호텔 전체의 시간을 멈춰서, 그 사이에 붙잡힌 사람들을 구하고 빌런들은 보이는 대로 제압하고... 뭐, 그랬어. 남은 두 대장들도 금방  거야.”


그렇게 말하며 실은 치마를 슬쩍 들춰, 허벅지의 벨트로 고정된 칼집에서 작은 사이즈의 나이프를 뽑아 쥐었다. 송곳 같은 느낌의 나이프는, 아무리 봐도 피로 보이는 새빨간 얼룩으로 더러워져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빌런들의 피겠지.


오로지 그녀만이 움직이는 정지된 세상에서, 그녀는 홀로 몇십명이나 되는 빌런들을 죽인 걸까.

‘......설마, 참모 녀석도....’

실은  사실에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스페이드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그게 이 빌런 조직의 우두머리지? 수고했어. 스페이드는 생각 이상으로 유능한 히어로였구나?”

“아, 아하, 하....”


“정말 유능해. 적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침투한데다, 거기 있는  빌런까지 ‘이용’해서 편리하게 다루다니.  년 뒤가 기대되네. 분명 유능한 대장이 될 거야.”

실은 나이프를 손에 든 채 짝짝 박수를 쳤다. 그리고는 휙, 하니 나이프를 스페이드에게 던졌다. 스페이드는 엉겁결에 그 나이프를 공중에서 받아들었다.


“어, 에......?  대장...?”

“자, 네게 공적을 양보할게. ――그 여자를 찔러, 스페이드.”


실의 말에, 스페이드는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자, 잠시만요, 대장님. 지금은....”


“응? 빌런을 죽이는 건 처음이야?”

“......그건, 아니지만요.”

“다행이야. 처음이면 힘들겠지만 이미 경험이 있다니까 문제 없잖아? ......그것도 아니면, 뭔가 문제라도 있어?”

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말 설마 싶지만――못 찌르겠다, 같은 한심한 말을 지껄이진 않겠지?”


일순, 분위기가 변했다.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간 것만 같고, 갑자기 냉동고 속에 집어쳐넣어진 것만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물리적인 한기가 아니다. 실의 목소리가, 분위기가, 압박감이 만들어낸 착각에... 스페이드가 굳는 게 느껴졌다.

스페이드는 어쩔 줄 모른 채 눈을 굴리며 나이프를, 나를, 그리고 애플을 돌아보았다.

“히어로 스페이드? 똑바로 안 해?!”


“히익?!”

스페이드가 창백한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히어로가 되어서 빌런을 죽이는  마다하겠다는 거야?! 그 여자는 원래 히어로였고, 동료였다는 이유로?! 똑바로 해! 어중간한 각오로 설거면 전장에 서지마! 그딴 한심한 모습으로 히어로임을 자처하지 마!”


“아, 아아, 으....”


스페이드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 당돌한 여자가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지금 실의 위압감과 살기는 무시무시했다.

“......이봐, 대장 나리. 그만하지? 애가 겁 먹었잖아.”

나는 그런 스페이드를 등으로 가리듯 앞에 섰다.

“뭐야, 빌런. 히어로끼리 하는 얘기니까 넌 빠져. 라헤 때문에 그냥 두는 거지만, 일만 일단락되면 넌 전신을 칼로 쑤셔줄 테니까. 그것도 아니면 시간을 멈춰서 영원히 박제로 만들어 길거리에 세워줄 수도 있어. ...조금이라도 인도적인 죽음을 바란다면 빌런 따위가 우리 일에 끼어들지마.”

이야, 정말 난폭한 여자네.


발끈해서 화를 내고 싶었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그녀에게 반항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도망칠 방법은....’ 하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눈을 굴리는데,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우리 애를 겁먹게 하지 말아주겠어요, 실.”

“흥. 라헤. 그리고 메르도. 드디어 왔구나.”


“으음... 몸이 어쩐지 말 같지가 않아서 말야~.”


부서진 문 너머로, 라헤와 메르가 또각또각 힐을 울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대장이 셋... 망했군.’

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정말이지 진퇴양난, 사면초가, 그리고 절체절명이다.

“13호. 훌륭해요.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어쨌든 적의 수괴인 애플...을 붙잡았군요.”


“라헤... 돌아왔군. 저주는 풀렸나?”

방에 들어온 라헤는 어린애가 아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의 체형에 맞춘 전투복을 여전히 걸치고 있어서, 여기저기 노출이 많은 상당히 민망한 차림새가 되어있었다.


“그렇죠. 당신에겐 아쉽겠네요. 도망칠 확률이 줄어들었으니. 하지만 안심하세요. 저는 ‘천칭자리’의 은혜를 입은 몸. 애플을 붙잡는 공적을 세웠으니, 조금 참작을 감안해서... 그렇네요. 팔이랑 다리를 하나씩 자르는 것으로, 오늘은 놓아드리겠어요. 괜찮지 않나요?”

“......사지 멀쩡히 돌려보내주면 안 될까?”


“그건 허락할 수 없네요.”

“아하하, 강아지. 꿈이 너무 큰  아냐? 빌런 주제에.”

라헤가 스릉- 검을 뽑고, 메르는 장갑을 낀 손을 들었다. 실은 어딘지 불만인 듯 손에 쥔 비어있는 모래시계를 들어올렸다.


정말 장관이다.


대장급 세명의 살기를 정면에서 받은 빌런은, 아마  나라에선 나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애플의 팔을 꼭 붙잡았다. 스페이드는 그런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눈물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도망. 어쩌지.


나는 눈을 감았다. 방법이 없다. 이 상황에서 무슨 수로 도망을 친다.

결국 포기의 한숨과 함께, 체념하려던 때였다.


“...................응?”


몸이, 쑥-하고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닌 그림자 속으로, 몸이 가라앉고 있다.

 능력은――참모?!

“도망칠  있을 것 같나요?!”


이쪽의 이변을 감지하고, 라헤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남은 두 사람도 능력을 쓰기 위해 마력을 끌어모으는 게 보였다.

그러나  순간,

쾅! 하고 방의 벽이 부서져 날아갔다.


“애플님, 도망치슈! 도망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런......?!”


갑작스런 등장에 라헤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고, 부서진 벽의 잔해에서 뻗어나온 기다란 촉수가 실의 손에 들린 모래시계를 쳐냈다.

“넌...!”

“내가 반한 가슴은 목숨 걸고 지킨다! 절대 안 지겠어 히어로놈들아아아아아아아!!!”

돌입해 들어온 건 전(前) 똘마니 페이스 빌런, 그리고 지금은 여체화 된 ‘천칭자리’의 빌런인 제이였다.

그녀는 무시무시한 파워로 벽  면을 거의 통째로 날려버리며 뛰어들었고, 그 기세 좋은 난입에 대장들은 한순간 틈을 보였다.


그 틈에 나는, 퐁당-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 *



"13호님, 13호님! 무사하십니까!"

그립고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참모냐. 무사했구나.

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가장 처음에 보인 것은, 알몸으로 개 귀 머리띠 밴드를 쓴 채 코코를 등에 태우고 엎드린 참모의 모습.

코코가 참모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자, 참모가 감격하며 "꾸울~!"하고 울었다.


......눈이 더러워졌다.


"살아남았네. 기껏 묘석도 준비해놨는데."


다음으로 말한 건 도로시였다. 언제나처럼 다크서클에 백의를 입은 모습이다. 다친 곳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다.

"Fuck. 돌아왔네요. 빌런 따위 어찌 되든 상관 없지만... 뭐... 다행이라고 해두죠."

이어진 건 클럽.

"하아... 이걸 우짠디야... 완전 망했데이...."

중얼중얼 한탄하는 체크.

"13호 오빠...! 무사했어...!"

그리고 환영해주는 아리아.

"......돌아왔구나, 13호."

마지막으로 보스까지.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의 뒤로 익숙한 아지트의 모습이 보였다.

'아아, 도망쳤구나, 살아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맥이 탁 풀리는 걸 느꼈다.


저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다녀왔어.... 그리고 보스, 건강해보여서 기쁘네요."

살짝 울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모두와, 그리고 보스에게 인삿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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