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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화 〉#33 빌런은 양아치 화가를 만났습니다(2) (151/271)



〈 151화 〉#33 빌런은 양아치 화가를 만났습니다(2)

“오늘은 날씨가 따끈따끈해서 좋습니다... 거리도 활기차고.”


“어머나, 그렇지? 이런 날 이런 분위기에는 시원한 맥주가 함께 하면 좋당께. 그러니까 잠깐 사가지고 오겠시유~.”

“안 됩니다, 벨. 순찰 중이니까.”


“그래? 그치만 저기 도넛가게도 있는데?”


“도넛......! 맙소사! 이거 봐요! 기본 베이스인 글레이즈드에 제가 완전 사랑하는 카카오허니딥이 같이! 거기다 반짝반짝 빛나는 폰 링까지! 거기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도넛까지 완전 구비! 완전 쩌는구만! 빨리 갑시다, 벨!”


“순찰은?”


“.......음................일단 먹고나서 생각합시다! 이상!”

“엔데는 도넛과 관련되면 나사 하나 빠지는  너무 좋당께.”

벨은 깔깔깔 웃어젖히며 엔데를 쫓았다.

4번대의 엔데와 메이벨. 엔데는 평소와 다름없이 빈틈없는 제복 차림이라면, 메이벨은 마찬가지로 평소와 다름없는 개조 한복에 제복 상의만 대충 걸쳐 간신히 히어로임을 어필하는 차림이었다. 거기에 등에는 자신의 키만한 커다란 붓을 매달고 있다.

4번대의 주력 멤버인 두 사람이 있는 곳은,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K시의 외곽에 위치한 <국제거리(International Street)>. 오늘은 마침 일주일간 이어질 축제날이라, ‘국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다양한 인종, 다양한 복장의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보이고, 눈을 휘둥그레 뜨게 하는 신묘하고 신선한 이벤트들이 그득그득하다.


‘아이고, 보는 것만으로 즐겁구낭~’이라며 벨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맥주캔의 폴캡을 땄다.


“저기저기 벨. 아무리 생각해도 임무 중에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이는 건 이미지상  좋은 것 같습니다.”


“괜찮당께, 엔데. 다들 즐거워하는 축제 한복판에서 우리가 딱딱하게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마음껏 즐기지는 못할 거랑께.”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도 마음껏 도넛을 즐기겠습니다!”


아아, 도넛의 산이 순식간에 사라져간다....


번화하고 시끌벅적한 거리, 왁자지껄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메이벨은 꼴깍 술을 들이켰다. 음냐~ 역시 일하는 중에 마시는 술이야 말로 최고다. 배덕감이 찌릿찌릿하게 뇌를 적시는 기분이다.

하지만,


“(엔데, 주변 감시카메라는 전부 확인하고 있는 거지?)”


“(...확신은   없지만, 저희와 일정거리를 유지하고 계속해서 따라붙은 사람들이 몇 명 있는 것 같습니다.)”

“(좋아, 계속 감시해 줘.)”


한껏 풀어진 분위기를 가장했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 또는 4번대 특유의 암호문을 이용해 소통하며, 두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주변을 경계했다.


풀어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두 사람이 히어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오늘은 어쩐지 감이 안 좋으니께...”

주의하라며, 메이벨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최근 K시에서의 빌런 범죄사건이 많아서 4번대의 히어로들은 거의 과로에 가까울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빌런 범죄가 갑작스레 뚝 끊겨버린  나흘 전의 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이 국제거리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뭔가 감이 왔심더~~~~! 내일 축제에서 뭔가 있을  같은 그런 느낌이 듬시롱~!’


라는 메이벨의 발언을 대장인 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용해줬다.

말투는 한 없이 가볍지만, 메이벨의 직감은 믿을만하다는 게 실의 평가였다.

“(일단 제 연산예측으로 테러에 이용될 듯한 포인트들을 체크해뒀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기에는 너무 넓지만....)”


“(아그들이 많으니까 그쪽으로 보내랑께. 엔데는 카메라로 계속 주시해주고. 나는――)”

맥주를 마시며 풀어진 듯한 메이벨의 눈이, 인파를 뚫고 그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차이나드레스의 미인과 한푸를 입은 남자 커플을 향했다.


“(어째 근질근질하게 감이 오는 저짝이나 가볼깜시롱~?)”




* * *


――‘도로시 언니를, 부디 조심해주세요.’


무슨 말이야.


그게 무슨 뜻?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리아가 태연하게 입을 손가락으로 가로막는 바람에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나요?”


그리고 현재.

4번대의 담당 구역인 K시, 그 한복판에 있는 유명한 국제거리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내 바로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차이나드레스의 귀부인 같은 여성이 말을 걸었다.


“.......”

“왜 그렇게 쳐다보시나요?”

“.......”

“마, 마! 그만 좀 쳐다보그래이! 무신 그런 눈으로 보는기가?”


체크가 당황한 표정으로 소곤소곤 말했다.


응. 지금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애초에 말투를 좀 바꿔달라고 요청한 건 나였지만.

지금 체크의 차림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수가 들어간 차이나드레스에 팔꿈치까지 오는 장갑, 그리고 전통식 우산을 손에 들고 있다. 저번에 체크를 곯려주려고 입혔던 양아치 같은 야한 치파오가 아니라, 척 보기에도 비싸보이는 데다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옷은 걸쳐 입은 것만으로 체크의 외모를 한층 돋보이게하는 느낌이었다.


나와 체크는 현재 4번대를 감시하기 위한 암행에 나와있었다. 이런 눈에 띄는 차림새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화려하고 완성된 복장이며 분위기가 이 축제로 들뜬 거리에 잘 녹아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쨌든 네가 7번대의 히어로 체크란 건 들키면 안 되니까, 말투는 특히 조심해 줘. 들으면 단박에 알 거야.”


“마, 사투리 쓰는 사람은 많지 않나?”

“말투.”

“...사투리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요.”


목소리 톤까지 달라져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체크가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네.


“어쨌든 네 말투는 독특하니까.”

그 외에도 화장으로 인상을 살짝 바꾸기도 했고, 체크 스스로도 마력과 기를 이용해 기척을 조절한다니 뭐니 하긴 했는데, 솔직히 이쪽은 전혀 감이 안 잡혀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과연 무술의 고수인 체크 답다고 할까.

“하아, 지친대이. 그보다 둘이 있을 때는 상관없지 않으야.”


“어디서 어떻게 우리 대화를 듣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거기다 미행까지 있다며. 그러니까 버텨. 그러면 나중에 포상해줄게.”

“...그 포상이란기... 이상한 거잖여....”


“말투.”


“............어차피 이상한  하시려는 거죠, 13호님은?”


당연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저번에 도로시한테 개조된 부분, 아직 다 즐기지 못했다고. 바쁘지만 않았으면 24시간 내내 붙잡아 놓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탐색했을 거야.”


“으엑... 진짜 싫으야....”


체크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전 라헤를 떨어뜨리기 위한 과정으로 있었던 도로시의 즐거운 신체개조 때에, 체크는 자진해서 라헤에게 주어질 개조의 절반을 자신이 대신 받았다.

라헤의 몸은 거의 철저하다시피 맛보면서 어디가 어떻게 개조되었는지 파악했지만, 체크가 개조되고 개발된 부분은 문면으로만 확인했을 뿐, 아직 잘 모른다.  더 만져보고 싶다. 좀 더 주물주물하고 싶다.


아니, 정신차리자.

지금은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잖아.


지금은 일단 이 거리 어딘가에 있을 히어로를 찾아야한다. 이 정도 축제라면 분명 순찰하는 히어로도 있을 테고, 애플의 조사로 오늘 4번대가 이쪽 구역을 집중적으로 돌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목표는 【매드몬스터】 메이벨.’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몬스터’라는 별명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녀 또한 엔데와 마찬가지로 4번대의 핵심 멤버이자 대장인 실의 측근이다.

엔데에 대해선 조치가 되었으니, 이번에는 이쪽을 공략할 차례다.

가장 가까운 곳의 측근이 적으로 변해버린다면, 그렇게 해서 평소에 마시는 차나 커피에 약을 타는 것으로도 무시무시한 【시간조작】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애플의 말로는 메이벨을 가장 주의하라던데.’

그녀야말로 가장 위험한, 요주의 인물이라며 몇 번이나 당부했었다. ‘감이 좋다’라면서.

그래도 도대체 뭐가 그렇게 위험하다는 건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가늠할 수가 없으니... 별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시간이, 그러니까....”


“곧 14시가 되네요. 지정된 시간까지.”

내가 혼자 중얼거리자 체크가 바로 받아주었다.

......?

그런데 이 여자, 시계도 안 보고 어떻게 시간을 아는 거지?


“체내 시계라고 해서, 초단위로 계속 시간을 세는 거예요. 오차는 10시간에 플러스 마이너스 5초 정도.”


“......아, 그래....”

“그런데 13호님. 그거 아시나요?”

“뭔데?”

“미행당하고 있는 거.”


“.......”


그런 건 좀 빨리 말해!


“진짜...?”

“오호호. 그럼 가짜인 것 같나요. 저를 믿지도 못하시는 군요. 도롱이 벌레 같은 것이 머리에 그득히 들어차있지는 않나 저는 심히 걱정되는데요. 후후, 머리는 괜찮으신가요.”

바뀐 말투로 아주 산뜻하게 욕한다.

여러모로 내게 불만인 모양이다. 사투리를 못 쓰게 하는 게 스트레스가 심한가.... 세뇌로도 어떻게  수 없던 사투리였으니....

“그래서 체크, 미행이라니――”


“안녕하실랑가~?”

언제인지 알 수도 없이.

어느샌가, 눈앞에 그녀가 서있었다.


“히어로입니다~ 데이트 중에 방해해서 참말로 미안합니다~. 그치만 잠깐 확인할  있어서 어쩔 수가 없음시롱~.”


종잡을  없는 경박한 말투로 깔깔 웃으며 나타난 것은, 개조한 한복 위에 히어로제복 상의를 대충 걸친 히어로.


4번대의... 메이벨.

“어~째서 빌런들이, 여기에 있는지... 같은 거 말이랑께♪”

메이벨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마치 벌벌 떠는 개구리를 앞에 둔 뱀처럼, 오만하고 경박하고 느긋하게, 살기를 뿌렸다.

* * *


“참모, 뭐하고 있어?”

“도로시 양인가요? 잠깐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비스】의 아지트.


13호가 4번대를 감시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참모는 자료실에 틀어박혀 과거의 자료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한가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빌런이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바쁜 법이다. 스폰서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빌런으로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어떤 이익을 만들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하며 앞으로의 활동 계획서 같은 것도 만들어야 하고....

뭐, 그래봐야 지금 하고 있는 건 그런  아니지만.

“‘닥터’라는 인물에 대해 13호님이 조사를 맡기셔서요.”


“닥터?”


“네. 【시궁쥐】 때 처음 윤곽을 드러낸 사람이죠. 누군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요. 도로시도 그 사람의 ‘벌레’를 조사해준 적 있었죠.”

“그러고 보면 그랬던 기억도 있네.”

일전, 과격파 빌런 조직 【시궁쥐】에서 스페이드를 납치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신체강화계 능력을 가진 히어로들을 납치해 실험대로 쓰고, ‘비각성자를 각성화시키는’ 약을 개발하려 했었고, 실제로 개발하기까지 했었다.


【정보상】 로아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 현재 뒷세계에서는  약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으며, 다만 시간과 복용량에 따른 ‘여체화’라는 부작용 때문에 무턱대고 남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그 사람은 왜? 지금 13호의 목표는 4번대 아니었어?”


“13호님이 감이 안 좋다고 하는  같아서요.”

참모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서류를 모아 탁탁 책상에 두드려 정리했다.

“솔직히 수상하니까요. 【시궁쥐】에 연관이 있었던 저희에게 어떤 식으로 간섭하려 들지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몰라요. 그러면서도 과거 사건들을 되짚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수상한 움직임이 많이 보입니다. 최근 급증하는 빌런 범죄들도 ‘닥터’의 존재를 의식하면 의외로 거미줄처럼 엮인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아요. 억지스럽게 엮는 기분도 듭니다만....”

“흐응....”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하는 참모를, 도로시는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바라보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참모. 상담할 게 있는데, 부탁해도 될까?”


“저를  뒤에서 껴안고 앙증맞고 귀엽게 응석부려준다면 생각해보겠습니다. 가능한 애교와 비음을 섞은 한마디 또한 부탁드립니다. 끝에 ‘♡’가 붙을 만한 그런 느낌으로!”


“죽여줄까?”


“죽여도 좋으니까 당신의 그 다소곳하지만 의외로 부풀어 오른 가슴을 제 등에 딱 붙여주세요!”

“진짜.......”

도로시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참모의 요청대로  뒤에서 그를 껴안아주었다.

“도로시.”

“왜.”

“미쳤나요?”

“왜?!”

아니, 그도 그럴게 도로시는 이런 짓을 할만한 여자가 아니다. 그보다 항상 툴툴거리면서 마구 매도하고, 진심으로 죽이려드는 모습 말고는 상상도  가는 게 이 백의의 다크서클 과학자의 이미지다.


“맙소사. 맙소사맙소사. 도로시 양. 용돈이 필요한 건가요? 지금 당장 계좌이체로 제 전재산을 보내드릴  있습니다. 아아아아... 감동, 감동이에요...!”


“탐나긴 한데... 지금은 그런 것보다 상담이야.”


“상담....”

그 냉철한 과학자인 도로시가 이렇게 순순히, 그녀라면 혀를 깨물고 죽어도 하지 않을 이런 짓을 하다니. 자신을 껴안다니.

얼마나 어마어마한 상담거리가 있는 거야...!

‘아아, 가슴이, 가슴이 닿고 있어요...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살짝 단단한 브래지어 감촉과,  너머에 펼쳐지는 다소곳하면서도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이... 아아아아... 이럴 수가... 도로시 양의 가슴을 느껴볼  있는 날이 오다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13호님... 제가 먼저 도로시의 가슴을 즐기다니...!’

“...쯧. 다시는  해. 그래서 참모, 내 상담 들어줄거지?”

“아, 예. 물론이죠 도로시 양!”


아아,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설마설마했던 도로시가 엉겨 붙는다는 귀중한 체험을 시켜줬는데 상담 따위 몇 날 며칠이고 들어줄 자신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참모는 아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일단 그 손에 들린 주사기부터 치워주시지 않을래요?”





한순간.

단 한순간이었다.

쉭-! 하고, 도로시의 손에 들린 주사기의 반짝이는 침 끝이 참모의 목덜미를 정확히 향했다.


“...칫.”


그러나 침 끝이 닿기 전에, 참모의 몸이 슈룩 낮아지더니, 그대로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잠시 후,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참모의 몸이 나타났다.


“......이게 무슨 짓인지 물어도 될까요, 도로시 양?”

조금 전까지 바보처럼 풀어진 얼굴이 거짓말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안경 너머의 시야 끝에서,

“놓쳐버렸네. 아쉬워라....”


도로시는 냉철한 과학자의 얼굴도, 악에 젖은 빌런도 아닌, 다만 속을 알 수 없는 무정한 '배신자'의 얼굴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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