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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화 〉#36 빌런은 겁도 없이 배신한 과학자에게 도전한다(2) (160/271)



〈 160화 〉#36 빌런은 겁도 없이 배신한 과학자에게 도전한다(2)

어비스의 아지트, 그 로비에 돌입한  히어로들은 사전에 정해둔 루트로 각자 찢어졌다.


무력에 가장 자신이 있는 체크는 정중앙을 통해 일직선으로 돌파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사이드의 계단을 이용해 돌아서 들어가는 느낌의 루트다. 도로시의 손에 요새화가 되어있는 만큼, 예상치 못한 트랩으로 한 번에 전원 리타이어 되는 일이 없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모든 동향을 감시 카메라와 추적용 나노머신, 클럽의 원격시(遠隔視) 능력까지 이용해 모니터링하고 있는 도로시는 곧바로 그데 걸맞은 요격 인원을 보냈다.

“우, 오아아아아아앗?!”

퍼버버버버벙!


쥐불놀이처럼 연달아서 요란하게 터지는 장난감 같은 폭탄을, 아리아는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통로 저편에는 폭탄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시궁쥐】의 빌런 에이가 메이드복 차림으로 아리아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아지트가 넓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화력을 조절하는지, 폭탄은 크게 다칠 정도의 화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 자유자재로 생겨나는 폭탄은, 무력에 약한 아리아로서는 뚫고지나가기 영 껄끄러웠다.


“으응~~~~~  잘해서 오빠님한테 칭찬 듣고 싶은데!”


철벽과도 같이 우뚝 선 메이드복 차림의 빌런을 앞에 두고, 아리아는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굴렀다.



* * *




그리고 정면 계단을 통해 뛰어올라가던 체크는, 의아함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너무 순순히 보내주는 거 아녀?’


벌써 최상층에 다 와 가는데,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멀리서 폭발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으로 봐선 아리아나 메이벨 쪽으론 무언가 방해가 있는 게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자신은 그냥 오픈 티켓을 들려준 것처럼 너무도 수월하게 올라왔다.


“써틴. 써틴! 응답하레이.”

[여... 치직... 크... 직... 치지지지직...!]

“안 되긌네. 역시 통신은 방해받는 기가.”

아무리 연결해봐야 잡음만 나는 통신용 단말기는 꺼버렸다. 어차피 통신이 방해받을 건 예상했던바다.

체크는 속도를 늦추고 신중하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서 어떤 함정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법이다.

‘이래서야 따로 세웠던 계획도 필요 없을지도?’


13호가 준비해 둔 비장의 수가 있었지만, 이대로 체크 자신이 도로시에게 도달한다면, 그대로 그녀를 제압해버리면 굳이 잔재주 같은 걸 쓸 필요는 없다. 알고 있는 정보대로면 현재 이 아지트에 체크를 이길 수 있는 전력은 없다.

조금 맥이 빠지는 결말이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멍하니 생각하는 사이 어느샌가 최상층에 도착했다.

“음...?”

그리고 최상층의 계단 앞에는,

“안녕, 체크.”

“안녕하신가요, 체크 씨.”


 가운을 입은 도로시와 클럽이 나란히 서서 그녀를 반겨주었다.




* * *



“하여간, 맘에  든당께......!”


어비스 돌입 요원   명이자 4번대의 히어로인 메이벨은, 현재 혀를 차며 도로시가 보내온 요격 인원을 상대하고 있다.

콰-앙!

메이벨이 투덜거리며 펄쩍 뛰며 앞으로 구르자, 그녀가 있던 자리에 묵직해보이는 대걸레가 날아와 꽂혔다.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벽이 갈라지며 구멍이 뚫렸다.


“쥐새끼를 발견했습니다. 청소하겠습니다.”


“누구보고 쥐새끼래, 이 정신나간 메이드가.”

왼쪽 사이드 계단을 이용해 최상층에 있을 도로시의 연구실로 향하려던 메이벨이 조우한 건, 아슬아슬한 메이드 차림의 스페이드였다.

아무래도 정신의 뿌리부터 완전히 저쪽에 넘어간 모양인지, 공격에 한치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휘릿- 착.


등에 멘 커다란 붓을 빙글 돌리며 꺼내들고, 메이벨은 정면을 응시했다. 그녀가 아는 대로면 스페이드의 능력은 단순하고 심플한 강화계. 그러나 잔재주를 뺀 순순한 파워 쪽이 메이벨에게 있어선  더 성가셨다.

‘하아, 술 한잔 쭈욱 들이키고 싶당께.’


13호 녀석에게 첫 키스를 빼앗긴 충격으로 얼이 빠져있었다. 몰래 틈을 타서 술을 꽁쳐놨어야되는데.


뭐, 지나간 일에 후회하고 늘어지는 것도 풍류가 없는 짓이다.

“【세상살이 큰 꿈과 같아, 어찌 그 삶을 피곤하게 할까. 이것이 종일토록 취하는 까닭이네】.”

“......능력을 쓰게 두지는 않습니다!”

주문과 함께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에, 스페이드는 자세를 잡고 메이벨을 향해 한줄기 화살처럼 달려나갔다. 그러나 메이벨은 바닥에 붓질을 하며 미끄러지듯 스페이드의 사선에서 벗어났다.


“에헤이, 허이, 쓸데 없이 진지하게 왜 그러실까. 좀 더 느긋하게 즐기장께. ...【홀연히  기둥에 누웠다가, 깨어나 뜰 앞을 곁눈질해 보니 한 마리 새가 꽃 사이에 운다】.”


메이벨의 주문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바닥에 남은, 메이벨의 붓을 따라 남은 검은 먹물의 길에서 새카만 촉수가 나와 스페이드의 몸을  붙들었다.

“이까짓 거!”


그러나 붙든 것도 잠시, 스페이드가 몸을 크게 뒤틀자 먹물의 촉수는 순식간에 떨어져나갔다.

“【지금이 어느 때냐고 물어보며, 봄바람이 나는 새와 이야기한다】.”

메이벨이 붓을 원을 그리듯 크게 휘두르자, 이번에는 통로 한중간에 먹의 선이 그어지고, 그 선에서 새로운 선이 나타나 넘실넘실 통로를 덮어가기 시작했다.

통로를 따라 이어지는 먹물의 선이 사방팔방에서 스페이드를 향해 쏘아지며, 그녀를 구속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흡!”

콰득!


그러나 스페이드는 허리를 돌리며 주먹을 벽에 꽂아 넣더니, 완력으로 통로의 벽을 뜯어버렸다!

“놓치지 않겠습니다.”

“【술을 보니 또다시 술을 기울이네】... 하하, 맙소사. 진짜 괴물이랑께. 히어로란 것들은.”


뜯어낸 벽을 방패 삼고는, 스페이드는 한번 거리를 벌렸던 메이벨에게 다시금 달려들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메이벨의 붓이 밀어내듯이 닿았다.

“【곡이 끝나자, 그 마음 이미 잊어버린다】... 좀, 진정하랑께, 아이야.”



“【춘일취기언지(春日醉氣言志)】.”


메이벨은 마지막 주문의 말을 읊조렸다.

* * *



화아아아아아아아-----


메이벨이 읊조리는 것과 동시에, 스페이드는 낯선 부유감을 느꼈다. 동시에 마치 통로 위에 새로운 그림을 덧그리듯, 먹과 물감이 벽이며 천장을 따라 타고 흘렀다.

살랑, 하고 꽃잎이 그녀의 코끝에 내려앉았다.

“......?”

여긴 어디지?


스페이드는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보이는 풍경은 조금 전까지 있던 익숙한 아지트의 통로가 아니었다.


꽃향기를 품은 바람이 불어와서 기분이 좋았다. 뭔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든다.


“어......?”


“음? 정신이  드나? ...아닌가? 몰겠네~☆”

나무가 있고,  정취가 느껴지는 초가집이 있고, 멀리서는 평화로운 웃음소리며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는 풍경 속에서, 어느 정자 아래에 한복을 헐렁하게 입은 메이벨이 어느샌가 느긋태평하게 앉아있었다.

“그보다 이리 오랑께, 아그야. 환상이긴 하지만 술도 주전부리도 있응께.”


“......도로시님께 해를 가하려는 쥐들은 처리해야합니다.”

“세뇌 때문인지 꽉 막혔네. 은근히 복장에 어울리는 말투지만... 하하.”

메이벨은 손에 든 술잔을 가볍게 기울였다. 어깨를 드러낸 채, 목울대를 꼴깍 울리며 술을 마시는 그 요염한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느긋하게 누운 자태도, 어깨를 드러낸 채 무방비하게 입은 한복도, 머리에 반짝이는 풍성한 머리장식도, 한 손에 든 술잔도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아....’


스페이드는 세뇌된 상태인데도, 그 모습을 잠시 넋을 잃고 쳐다봤다.


“마, 걱정하지 말랑께. 어차피 한동안은 니도 나님도 여기서 나갈 수가 없으니. 애초에 나는 그 도로시인가 하는 여자한테 손댈 생각도 없으니.”


“......?”


“마, 그런  있다. 그건 됐고 어여 와서 앉그라. 혼자 마시는 술도 좋지만, 누군가 같이 있는 편이 맛있는 법이니. 잠시 다 잊고 느긋하게 기다리장께.”


그렇게 말하며 메이벨은 스페이드를 향해 술잔을 내밀었다.


찰랑-


도기 술잔 안의 맑고 투명한 액체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보다 니,  좋아하나?”

스페이드는 그 술잔을 앞에 두고 고민했다.

스페이드 본래의 인격, 13호가 심어둔 세뇌 암시를 묻기 위해 급조한 세뇌인격으로는 유연한 판단을 할  없었다.

‘눈 앞의 여자는 도로시님께 손 댈 생각이 없다고 하고, 그렇다면....’


이대로 계속 힘으로 밀어붙이며 싸우는 것도 가능은하지만, 어쩐지 본능적인 부분이 그것을 거부했다.

이런 공간에서 싸우는 건, 뭐랄까... ‘풍류’가 없다.


‘뭔가 나태해지는 기분이 들어.’

봄날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싸움의 의지를 빼앗는 것. 그게 지금 이 공간의 능력이지만, 그걸 알리 없는 스페이드는 순순히 메이벨의 술잔을 받아들었다.


‘...마, 스페이드를 붙잡아두는 건 대강 되었시롱☆’

메이벨은 스페이드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조용히 생각했다.

이대로 이 공간에 갇혀 있으면 도로시한테 닿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목적 자체가 ‘적의 전력을 붙들어 놓는 것’ 뿐이었으니까.


아리아와 체크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결과는 그녀가 적을 쓰러뜨리고 도로시를 직접 붙잡는 거겠지만, 히어로인 그녀가 빌런의 내부 사정에 굳이 열을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뭐랄까, 성격에도 맞지 않고, 풍류가 없다.

‘굳이 부탁받은  이상의 일을 하는 것도 좀. 나머지는 13호한테 맡기면 되겠제~.’


굳이 세사람이 정면에서 침입한 것도, 거기서 찢어져서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도, 전부 다 비장의 한 수를 위한 떡밥일 뿐이다.

이곳에서 적당히 술을 들이키며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면 결과만 보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수는 13호.


'그러니 나머진 맡긴당께. 알아서 잘 하랑께, 13호 변태아그야.'

그가 직접 도로시를 제압할 것이다.

* * *

[...틴...치직...치지지지직...!]


“체크, 체크. 여긴 써틴. 들려? 안 들려? 체크 바~보~. 멍청~이~. ...진짜 안 들리나 보네.”

‘역시 통신은 안 되는 거려나.’


드문드문 목소리와 함께 잡음만이 들려오는 단말기를 끄고,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슬슬 때가 되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아지트와 밀접한  폐건물 안이었다. 손만 뻗으면 아지트에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후후, 도로시는 모르겠지.”


그리고 지금, 나는 창문이 있어야  뻥 뚫린 구멍 너머로 몸을 내민 채, 아지트의 창문을 끼이익 열고 있었다.

【어비스】의 아지트, 그 모든 창문은 도로시가 만든 AI 프로그램이 감시하고 있다. 원격으로 개폐 조작도 마음대로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입구를 제외하고는  아지트에 몰래 숨어드는 건 불가능하다. 도로시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을 터다.

하지만 이 창문만은 프로그램의 감시하에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고장냈거든.


"정말이지 부득이한 사고였지, 그건."


도로시의 발명품인 <전자기기 파괴군 1호>를 시험해보다가, 실수로 근처에 있던 창문의 시스템 박스를 망가뜨려 버렸다.

하아, 정말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마음이 아프다.


히어로들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멋대로 꺼내왔던 거기도 하고, <전자기기 파괴군 1호>는 대상 기기를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파괴하는 모양이라 들키면 진짜 무지막지하게 혼날 것 같아서 조용히 입 다물고 묻어갔으니, 도로시는 아직까지 모를 것이다.


비바, 실험 정신. 비바, 과거의 나.

거기다 마침 이 창문은 도로시의 연구실이 있는 최상층에 있다. 거리도 가깝다. 이대로 창문을 폴짝 뛰어넘어 침입해, 조마조마 두근두근하며 돌입조의 세사람을 요격하고 있을 도로시를 제압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내 비장의 수다.

그러나 체크며 아리아의 마력을 나눠받았다곤 해도 두 명 이상의 각성자를 상대하는 건 영 불안하므로, 돌입조에겐 가능한 상대의 전력을 붙잡아 두라고 했다.

이길 필요는 없이, 도로시의 위기 상황에 달려오지 못하도록만 해두면 되는 것이다.

‘통신불량이라 어디까지 성공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영 찜찜하지만.’

그래도 너무 늦어버리면 누군가 당해버릴지도 모른다. 희미하게 폭발음이 들려오는 걸 보면 싸우고 있는  분명할 테니, 지금 밖에 찬스가 없다.

창문은 안전을 위해 아래쪽만 살짝 열리는 타입이었으므로,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창문을 뜯어냈다.

“흡.”


탁-.

뜯어낸 창문을 통해 아지트 안으로 쉽사리 침입한다. ...아래에서 아직 폭발음이 들리고 있다.

신중하게, 신중하게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가는데,

“13호 드디어 왔구마?”

“응?!”

복도 저편에서, 뿅, 하고 고개를 내밀고 손을 젓는 인물이 있었다.


“체크?!”


어째서 그녀가 벌써 최상층에 도착한 거지?!

체크는 멎쩍은 듯 뺨을 긁으며 다가왔다.

“뭐시다냐... 어쩌다 보니 잽싸게 올라와서, 도로시를 제압해뿟다. 지금 실험실 안에 묶어놨데이.”

과연. 체크는 강하니까 발을 묶는 것 조차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어째 내는 가로막는 게 없었다고 할까, 클럽이 있긴 했는데 저짝이 실수한 거 같달까... 아무튼 그렇데이.”

아니, 하지만.


나는 다시   골똘히 생각했다.


"너... 진짜 체크냐?"


"응? 뭐시라꼬?"

"도로시가 멋대로 만들어 낸 가짜라거나 그런 거 아니야? 나를 속이려는!"

"......마, 그래서 어쩌라꼬."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체크를 쳐다봤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예의  치파오 의상이지만, 그녀가  옷을 입고 나갔다는 건 도로시도 알고 있을 터다.

하지만, 한가지 도로시가 절대 모를 점이 있다.


"체크, 이건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야.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알겠지?"

"...뭔디."

"가슴 만지게 해주라."

"미칬나."


체크가 이상한 놈을 보는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다.


"최근 체크 네 브라 사이즈가 한 컵 커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어. 도로시가 주관하던 신체측정은 한 달 전.  때의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 낸 가짜 체크라면, 가슴 사이즈가 옛날 그대로일게 분명해!"


"니 어떻게 내가 가슴 사이즈 바뀐 걸 아는 건디...."


체크는 한숨과 함께, "자."라며 흉부를 내밀며 나를 올려다봤다.


"만져보시게, 그럼."


"......아니, 반은 농담이었는데."

"만져봐야 믿을 수 있겠다며."

"......진짜루?"


"아따, 평소엔  안해도 억지로 만지던 문디 자슥이."

체크가 화를 내며 재촉하니, 나는 조심조심 손을 내밀어, 치파오 너머로 체크의 탄력있는 융기를 주물렀다.

"응...."


내 손길에 따라, 체크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요염한 한숨을 흘렸다.

오.


오오오오오오오......!


"놀라워...  안에 천국이 있어... 그리고 이 사이즈... 틀림 없이 체크가 맞네, 맞아. 틀림 없어. 분명해. 확신해."


"...만지는 것만으로 사이즈를 아는 기가. 니도 참 놀랍네."

참모에게서 배운 기술이다.


다른 한쪽 손은 습관적으로 그녀의 국부를 노리고, 치파오 아랫단을 향했지만 체크의 손이 제지했다.

"작전중이래이. 놀다가 도로시가 깨뿔면 어쩌누."

"...음. 잠깐 이성을 잃었어."

나는 아쉬운 마음을 삼키고 체크의 가슴에서 손을 뗐다.


“어쨌든 맥이 빠지네. 기껏 통수를 칠 계획을 짰던 건데.”

생각해보면 체크의 능력을 고려했을 때, 굳이 쓸데없이 빙빙 돌아가는 계획을 짜는  아니라 단번에 돌격해서 깨부수는 정면승부를 했어도 됐었다.


능력을 잃고 나서 하도 얍삽한 계획에만 의존하다보니, 정정당당히 승부 한다는 생각자체를 하지를 못했네.


도로시가 상식을 초월하는 발명품을 가지고 오는 거 아닐까 했지만, 그래봐야 체크의 순수한 무력 앞에 굴복해버린 모양이다.

"뭐, 좋은  좋은 거 아니긋나."


그것도 그렇다. 편하게 일이 진행되었다고 불평할 이유는 없었다.


“근데 체크.”

“와 그러노?”


"너, 어떻게 내가 여기로 올 거란 걸 안 거야?"


적어도 어디로 돌입할 지 알려준 적은 없었다.


아, 하지만 체크는 무술의 달인이니까. 뛰어난 오감으로  기척 같은  찾아냈다거나--


퍽.


.....................................응?

“크....헉......?!”

폐에서 숨이 빠져나간다. 체크의 주먹이 내 복부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다.


체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가운 눈으로, 내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은  나를 올려다보았다.

“오야, 기절 안 하다니, 아프겠어라.”

“끄윽...! 이, 녀석...!”

휘릭- 꽈아아아악...!

체크는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리더니, 이어서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내 목을 팔로 휘감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작은 그녀인데도, 도저히 그 팔 힘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급하게 마력을 끌어올려 봐야 그녀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데이, 13호.”

“끄으그윽... 체...크... 너.... 설마.......”

“응. 그렇데이.”


천천히 어두워져 가는 시야 속에서, 체크가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내는 이미 오래 전에, 니랑 나가기도 전에, 이미 주인님(도로시)에게 세뇌되어 있었었데이.”

그런, 거였나....


애초부터 그렇게 철저하게 배신할 준비를 마친 도로시가, 체크까지 그 수중에 넣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지.

바보도 이런 바보가 따로 없다.

“크흐... 우구욱.......! 흐어......”

숨이 막힌다. 더이상 의식을 유지할 수가 없다. 저항하던 팔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이럴...수가...!


'가슴이... 가슴이 등에 닿아서... 행복해....'

죽어도 여한이... 없다...!

결국 나는 그대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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