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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화 〉#42 그리고 빌런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고 합니다(임시)(1) (177/271)



〈 177화 〉#42 그리고 빌런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고 합니다(임시)(1)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쩔 거야아~~~~~~~!”

빼애애액 우는 닥터...였던 여자를 앞에 두고, 나는 턱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띄엄띄엄 들려오는 한탄 소릴 들어보니, 아무래도 내게 놓으려던 약은 <각성화약>인 모양이다.

비각성자들을 각성자로 만드는 닥터의 발명품.

동시에, 약이 주입된 당사자는 여자로 변하게 된다. 【시궁쥐】의 인원들이 그러했듯이.

결국 닥터의 약도 ‘여자가 아니면 각성자가  수 없다’는 벽은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있던 나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 어디 아픈 덴 없어?”

“없어!”

“그거 다행이네.”

“하나도  다행이야!”

버릇없이 빼액 외치는 닥터.

“어쩔거야! 어쩔거냐고! 이 몸으로는 누나한테 청혼 못하잖아! 믿을  없어! 말도 안 돼! 난 반드시 누나를 신부로 맞이하겠다고 유치원 때부터 마음에 정했는데!”


“.......”

뭐라는 거야,  멍청이는.

성별의 문제 이전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지 않냐고, 딴지라도 걸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생각해보니 인격이 파탄난 매드 사이언티스트 녀석에게 그런 걸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관두었다.


대신 질문을 코코에게 던졌다.


“흐음... 어떻게 생각해, 코코?”

“자업자득 아냐? 잘됐네. 불알을 콱 밟아 깨뜨리지 못한 건 아쉽지만.”

코코는 쌀쌀맞게 대꾸했다. 진심이 담긴 말에 나와 닥터는 나란히 몸을 떨었다.


나는 여자로 변한 닥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괜찮아. 처남이 처제로 바뀌었을 뿐이니까.”


“‘바뀌었을 뿐’이 아니야아~~~~~!”


“처제라... 뭔가 마음을 울리는 단어인걸... 자매덮밥이라던가....”

“하지마! 하지마 변태야!”


꺅꺅거리며  가슴을 퍽퍽 두드리는 닥터.


그나저나 참으로 귀엽게 변해버렸구만... 도로시와 비슷한 외모에다, 무슨 조화인지 도로시보다 긴 머리가 바닥에 부드럽게 흩어져있는 닥터의 모습은, 밉살맞은 흑막이라기엔 지나치게 귀여운 풋풋한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계속 보고 있으면 분노도 화도 전부 녹아버릴 것만 같다.


나는 내 가슴을 퍽퍽 때리는 닥터를 무시하고, 주머니에서 손수건과 세뇌약을 꺼냈다. 약을 듬뿍 적신 손수건으로 닥터의 입을 틀어막는다.


“......?!”

닥터는 하지말라는 듯 버둥거렸지만, 이내 눈에서 힘을 잃고 추욱 늘어졌다. 이걸로 공략완료다.

“이제 어쩌실 건가요, 서방님?”


“죽이지는 않겠지만... 이만큼이나 고생을 시켰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없지.”

보스를 동생의 일로 자극했던 것도.

도로시며 참모를 납치감금한 일도.

4번대의 일도.


그 외에 이것저것.

이 정도로 헤집어 놨는데 그냥 넘어갈 정도로, 나도 성인군자는 아니다.

“조직의 쓴맛을 보여주겠어.”

그렇게 말하자, 애플과 코코가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세뇌약으로 인해 트랜스 상태에 빠진 닥터를 애플에게 맡기고, 나는 실험실 한켠에서 괴로운 듯 신음하는 도로시에게 다가갔다.


“으으으읏....”


힘들어보이는데, 이 헤드기어 때문인가.

아마도 닥터의 세뇌도구 같은 걸텐데, 그냥 벗겨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조금 전 장악했을 때 권한을 뺏어뒀습니다. 도로시님을 세뇌하는 내용물도 고쳐써놨어요.”

“오, 애플.”


다행스럽게도.


닥터의 세뇌의 영향을 없애고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자, 그럼 이제 이제 곧 도로시의 헤드기어를 벗겨낼 수 있다는 건데....

“.......”


흐음.


음.


그냥 원래대로 되돌리는  재미가 없는데.


“애플.”


“네, 서방님♥”

애플의 도움을 받아, 도로시를 세뇌하는 헤드기어의 내용물을 약간 손봐주기로했다.




“읏.......”


도로시의 헤드기어가 벗겨졌다.

땀투성이가 된 도로시는 빛이 없는 눈을 힘없이 가늘게 뜬 채,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차츰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살짝, 이쪽을 향했다.

“1...3호...?”

“나야, 도로시.”

“...언제봐도 한심한 면상이네. 저리 치워.”

구하러 온 사람한테 너무 가차 없는 거 아닐까.


“동생...토리는?”

“저기에.”

도로시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무슨 소리야? 여자애 밖에 없는데.”

“저게  동생인데.”


“......농담이지?”

“농담처럼 보여?”

“.......”

“.......”


도로시는 체념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이 힘없이 떨린다. 동생이 여자로 변해버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됐고, 거기 체온계있어?”

“응. 여기.”

“내놔.”

“어디에 쓰게?”


“뭘 물어봐. 당연한 거잖아.”

도로시는 몸을 일으켜 실험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는, 스커트 아래로 팬티를 끌어내렸다.


“보지 체온 재야지... 과학자로서 자기 몸 상태 체크는 필수니까. ...저기 보고 있어.”

“흐응~.”


“...뭐, 상관 없지만. 딱히 야한 것도 아니고.”


불만스러운 눈을 내게 향하면서도, 도로시는 치마를 말아올려 드러낸 보지균열에 조심스럽게 체온계를 찔러넣었다.


“흐익......!”

차가운 체온계의 감촉이 오싹오싹한지, 이상한 소리가 나오려는 입을 도로시는 한쪽 손으로 틀어막았다.

곧이어 측정이 완료됨을 알리는 삐삐삑, 하는 소리가 났다.


“36.9도....”


“건강하네.”

“뭘 듣고 앉았어. ...아직, 몇 번  측정해야 돼. 보지는 섬세하니깐... 뭘 그렇게 히죽거려?”

“아니, 아무것도.”


웃고 있는 내게 불만을 느낀건지, 도로시가 뾰로통한 얼굴로 노려봤다. 그러나 소용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체온측정 쪽이 급한 건지, 아무 말 없이  번  훤히 드러낸 보지에 체온계를 찔러넣었다. 그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떠는  보기 즐겁다.

당연하지만 닥터의 세뇌도구인 헤드기어를 조정해서, 살짝 손을 본 덕분이다.


시간도 별로 없기에 거창한 것은 할 수 없었지만, 애초부터 우리에게 세뇌되어 있기도 하고 애플의 기술이 들어가니 단시간에 이런 암시도 심어줄 수 있었다.


어쨌든 잠시간의 눈요깃거리가 되어주었다.



[엔데, 엔데는 싸움을 멈추도록. 닥터는 투항했다.]


그리고 빌딩 건물의 한 층.


메이벨과 대치해, 죽일 기세로 싸움을 벌이던 엔데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섰다.

“늦었당께, 참말로... 피곤해죽겠구만.”

“......닥터가 투항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근거를 요구합니다.”

메이벨이 드디어냐며 바닥에 붓과 함께 털썩 주저앉고, 엔데는 기계처럼 근거를 요구했다.


그녀의 귀에 걸린 통신기 너머에서, 13호는 뭔가 두런두런 확인하나 싶더니,


[어디 보자... 명령코드 X98EL333TA. 어라, 맞나? 맞지? 응. 싸움을 그만두고 투항해, 엔데.]

닥터만이 알고 있을 비밀코드에, 엔데는 의심을 거두고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다만 【기계화】는 해제하지 않았는데, 기계적인 보조뇌가 지배하는 지금 상태여야 13호가 주입한 ‘바이러스’로 그녀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4번대간의 싸움도 일단락이 났다.



* * *

엔데도 멈췄고, 그 외에 우리가 오지 못하도록 요격하던 프로그램도 잠재웠다. 이제 곧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페이드며 클럽네도 금방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세시간 후, 라헤와 함께 돌아올 실을 기다려야한다.


도로시의 체온재기도 끝나고,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참모를 찾기로 했다.


“우리가 오기 전에 도망쳤다고?”


“네... 그렇습니다....”


세뇌약을 맡고 애플에 의해 의식이 어느 정도 조율된 닥터는, 의지를 잃어버린 인형 같은 눈으로 순순히 대답했다.

아니 그런데, 도망이라니....

“밖으로 빠져나갈 출구는, 우리가 열고 들어온 그 길 밖에 없는 거지?”


“네... 비상구도... 전부 잠가놨습니다....”

우릴 들이지 않기 위해, 모든 문은 봉쇄했다. 우리도 우리가 돌입해 들어오기 위한 문만을 개방했으니, 우리와 엇갈리지 않은  참모가 밖으로 나갈 일은 없었을 터다.

“어딘가에 숨어있으려나....”


오래 걸리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실험실을 빠져나왔다. 모든 방의 락은 시스템을 장악한 애플이 풀어두었다.


닥터가 있는 최상층에는 실험실이 여러곳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숙식을 위한 방이나 회의실, 무대가 딸린 소강당도 있었다.

신기한 곳이 많네, 닥터는 돈을 많이 번 모양이라며 혀를 내두르며, 어느  방의 문을 열었는데,

별안간.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확, 하고 나를 잡아당겼다.


“엇?!”

반격을 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먼저 눈에 보인 것은 반짝이는 은발. 그리고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은색 눈.

가는 선의, 소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앳된 외모의 그녀는, 나를 잡아당겨 단숨에 바닥에 넘어뜨리고는 내 몸 위에 올라탔다.

은발의 소녀는 그대로 유혹하듯, 자신의 허리를 굽혀 자신의 몸을 내 몸에 바싹 밀어붙였다. 살집이 많은 편은 아니라지만, 그러나 여성스러운 부드러움이 몸에 닿았다.


“너, 너는...!”


몸을 밀착한 채 이쪽을 올려다보는 소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마치 이계에서 찾아온 듯한 신비한 분위기, 이쪽을 유혹하듯 요염하게 지은 표정은, 살짝 촉촉하게 젖은 눈빛은  마음을 심히 뒤흔들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어떡하지.

취향저격이다.


완벽하게, 내가 바라는 이상의 여성상이 눈 앞에 있었다.

“닥터님은 패배한 모양이군요. 승산 따위는 이제 보이지 않으니, 가능한 제 처우를 긍정적이게 고려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이 여인의 몸뚱아리를 십분 활용해 ‘미인계’로 헤롱헤롱하게 만드는 것 밖에는....”

방 안에는 어떤 향을 피워놓은 건지,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은발의 소녀는 숨이 흐트러져 있었고, 뺨은 상기되어 있었으며 하의는 벗어 던진 채. 입고 있는 셔츠는 단추가 거의 풀어져, 속옷을 입지 않은 가슴이 빼꼼히 엿보였다.


“방 안에서 혼자 위로하며, 보지를 적셔 두었습니다... 언제든지 오셔도 상관 없습니다.”

소녀는  귓가에 중얼거리더니, 귓구멍으로 혀를 밀어넣었다.


“자, 잠깐...우호아아...!”


나는 벗어나고자 버둥거렸지만, 소녀의 가는 사지가 내 반항을 용납하지 않았다.

몸짓 하나가, 토해내는 뜨거운 숨결이, 내 귓가에 닿는 목소리가, 그녀의 체온이, 열기가, 내 몸을 간지럽히는 손이, 움직이는 혀가――모든 것이, 완벽한 계산 아래 이루어진, 남자를 반드시 거꾸러뜨리는 필승이자 필살의 유혹.

마왕 같던 애플의 그것에 비견하는, 무시무시한 베테랑 창부와도 같은 요녀(妖女)의 손짓.


방 안에 충만한 향과 내 몸을 더듬거리며 애무하는 손에 어질어질해진 머리로, 나는 경악하며 생각했다.

혹시.

설마.

믿고 싶지 않지만.

굉장할 정도로  취향을 저격하는 이 소녀가... 설마하니... 참모야?!


“너, 너 설마――웁?!”

내가 뭔가 말하기도 전에, 소녀의 입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내 입을 비집어 열고 들어온 혀가, 능숙하게 내 입안을 유린한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여기서 뭔가 느껴버리면 안 돼! 진짜! 그건...


“후우우우... 아직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군요.”


“허억, 허억... 자, 잠깐... 내 말을 들어...!”

"그렇다면, 추가로. 제 책략대로라면 이것으로 당신은 완전히 떨어지겠지요."

은발의 소녀는 내 제지를 뿌리치고, 내 위에 올라탄 채 빙글 돌았다.


아래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투명하고 순결한, 그러나 요사스럽게 젖어있는 보지를, 음순을 그대로 내 얼굴에 대고 비볐다.

“후읍...?!”

달콤한 향기가 난다. 뜨겁다. 그리고 부드러웟...! 코끝이, 입이 그녀가 밀어붙이는 보지 균열에 삼켜졌다.

"어떻습니까. 범하고 싶지 않습니까. 당신의 것으로 삼고 싶지 않습니까. 탐욕스러운 수컷이 되어 암컷을 오만하게 차지하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후, 후후, 후후후후후...!"

"우우우웁......."

'아아, 페로몬... 여자의 향기가... 체온이....'


허벅지의 감촉을, 부들부들한 보짓살의 감촉을 얼굴로 느끼면서, 질식할 것 같은 헤롱헤롱한 기분 속에  머리는 차츰 생각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덮쳐도 돼요... 얼마든지, 오시지요...."

이제는 그냥, 욕망에 따라 행동하면 되는 거 아닐까.

눈 앞의 상대가 누구인지 상관 없이, 그냥 덮치면 되는  아닐까.

 향기가 나는 균열을 비집어 열고, 터질 듯이 발기한 자지를 꾸욱 찔러넣어도 좋은 거 아닐까.

‘아니, 그래...도......!’

만약 이게 참모라면, 하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마음을 다 잡으려던 순간,

“서방님?!”


경악하는 목소리와 함께, 구세주가 나타났다.

* * *

“아이고, 그러니까 혼자서 나가시면 어떡해요~~~~.”


“미안... 그리고 덕분에 살았어.”

마침 나를 찾기 위해 왔던 애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은발의 소녀를 떼어놓을 수 있었다.

애플의 말대로면, 이 은발의 소녀가 참모임에 틀림이 없는 모양이었다.

도로시의 손에 여체화된 참모... 아니, 상상한 것과 다르잖아.

너무 다르잖아!


남자였을 시절의 모습이 하나도 없잖아!

아니, 남자일때도  곱상한 미남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유전자를 어떻게 마개조한 거야,  양아치 과학자!?


“세뇌용 헤드기어를 멋대로 벗는 바람에 살짝 폭주했던 모양이에요. 물론 미인계를 위해서는 눈을 제대로 마주치는 편이 효율이 좋으니까, 이해는 가지만요.”

바닥에 눕혀 놓은 참모는, 헤드기어를 머리에  채 가만히 누워있다. 애플의 권한에 의한 세뇌 제거 작업 중이다.

“그래... 이대로 씌어놓고 있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지?”


“닥터의 세뇌방식이면 괜찮아요. 컴퓨터처럼 세뇌코드를 주입해  느낌이라, 코드를 제거해버리면 더 이상 닥터의 암시는 떠오르지 않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잘했다며 애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애플이 기쁜 듯 에헤헤 웃는다.


어쨌든 다행이다.

참모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니.


“...수고했다, 참모.”

이 녀석이 옆에 없으면 불안하다. 그만큼이나 나는  녀석을 의지하고 있었던 거겠지. 이렇게 되찾게 되어서 다행이다.

마치 잠에 든  색색거리는 고운 얼굴을, 얼굴 옆에 흘러내리는 고운 머리카락을 나는 가볍게 매만지고, 쓰다듬어주었다.


......

.................

..................................

‘이 녀석은 남자야, 남자...! 아니, 지금은 여자긴 하지만...!’


“일단 실험실로 돌아갈까요, 13호님? 아직  대장님이 돌아올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마음 속에 생겨난 무시무시한 갈등에 고민하는데, 애플이 자리를 털며 일어섰다.
그래... 고민해봐야 뭐하겠어.

“도로시의 성전환약으로 빨리 돌려놔야지, 이대로 두면 내 심장에 나쁘겠어....”


“네? 소용 없을 텐데요?”

“......?”

“도로시님 말로는, 성전환 기능이 있는 약은 한번 먹으면 내성이 생겨서, 다시는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없다던가... 하셨는데요.”


누군가 내 머리를 쿵! 때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하, 맙소사.

“......거짓말이지?”

애플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는, ‘제가 13호님께 거짓을 말할 것 같나요?’라며 결백을 호소하는 것 같았다.

나는 요란하게 한숨을 쉬고는, 애플의 머리를 다시금 쓰다듬어주었다.

아아, 이제 정말 어쩌지.


...도로시는 천재 과학자니까, 어떻게든 해주겠지.


“그래... 맡기자. 고민해봐야 뭐하겠어.”

“그러니까요!”

“돌아가자.”


그렇게 안이한 결정을 내리며, 실험실로 돌아가기 위해 참모을 품에 안아들었던, 그 때였다.


구불텅-! 하고.


별안간 시야가 크게 일그러졌다.




* *



“뭐, 뭐야 갑자기?!”


먼저 이변을 눈치챈 것은, 지금 막 실험실에 발을 들이던 스페이드였다.

무슨 일이냐며 코코며 먼저 와있던 메이벨이 눈썹을 모으는 가운데, 하나둘 이상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살짝, 비스듬해지거나.

별게 없는데도 벽이며 기둥이 굴절되어 보인다거나.

어딘지 무게중심이 수직이 아닌 다른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거나.


“마, 말도 안 돼...!”

갑작스런 사태에 다급하게 감시카메라 화상을 살펴본 코코는,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지켜보는 화상은 조금 전까지 실과 라헤가 서로 결사의 각오로 겨루고 있던 복도를 비추고 있었으며,

그 화상의 한 가운데에는,

마치 공간에 균열이 생기듯 이질적인 흔적과 함께, ‘사람의 팔’이 허공에 쑥 튀어나와있었다.



* * *



무시무시한 마력에, 공간이 일그러졌다. 공간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어선 당연해야 할 법칙마저 일그러뜨렸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의 일부가 터져나갔다.

깨어지고 무참하게 구멍이 뚫린 균열에서 가장 처음 나타난 것은, 나긋나긋한 오른팔.

이어서 어깨가, 앞으로 힘차게 내딛는 발이, 히어로 대장임을 뜻하는 흰색을 기조로  제복이――그리고 금이 가기 시작한 헤드기어를 쓴, 라헤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목을 붙잡혀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실이 들려있었다.

“......배제... 합니다... 닥터의 적은... 그리고 귀여운 제 판판의 적은... 정의의 적... 배제합니다...지지 않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마력으로 세계를 비틀어버리며, 세시간이 아니라 30분도 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라헤.


지나친 마력의 역류에 그녀가 쓰고 있던 헤드기어가, 연기를 뿜어내며 그녀의 얼굴에서 투둑, 떨어져내렸다.

드러난 아름다운 얼굴은, 아름답고 냉혹한 얼음의 여신의 그것과 같다.


살기가 가득한 흉흉한 공기.


미래로 향하던 실의 ‘시간의 틈새’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위쪽, 닥터가 있을 최상층에 ‘침입자’이자 ‘적’의 기척을 느끼고――다음 순간.

무시무시한 기세로, 닥터가 있을 최상층으로 가기 위해, 복도를 달려나갔다.

"전부, 죽이면...."

닥터의 세뇌용 헤드기어가 제대로 된 수순을 밟지 않고 부서져버린, 그 반동.

더이상 명령은 통하지 않는다. 누구도 멈출  없다.


오로지 마지막으로 그녀의 머리에 입력된 '적'을 전부 섬멸하기 위해.


최강의 마녀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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