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51 빌런 인 더 트랩(Villain in the trap)(2)
“이거 어렵네... 발목이 아니면... 턱인가?”
“히으윽?!”
“오, 정답.”
고양이를 대하듯 턱을 가볍게 간질이자, 그것만으로 엔데는 또다시 절정했다.
“자, 그러면 다음은....”
“이제 고만하랑께, 씨벌것아!”
“껙!”
어느샌가 바로 옆까지 다가온 메이벨이 날린 촙에 목젖을 얻어맞은 13호가 다 죽어가는 원숭이처럼 기성을 질렀다.
“케헥, 켁켁... 야! 아파!”
“하아... 하... 벨 언니....”
“진짜, 이런 곳에서 무신 파렴치한 짓이고 니는. 콱 죽여버린다?”
“알겠어, 알겠어. 그만하면 되잖아.... 자, 엔데.”
13호는 마지못한 듯 스마트폰을 조작한 후, 그대로 엔데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엔데의 몸이 움찔 떨렸지만, 금방 편안한 얼굴로 바뀌었다.
“오오... 돌아왔다. 벨 언니, 감사요.”
“그래...... 잠깐 자리 좀 비켜주랑께. 잠깐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으니까. 다른 애들도 못 오게 좀 해주고.”
“네넵!”
엔데는 착! 하고 손을 들어 경례하고, 토도돗 행정실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왜 온기야? 13호. 빌런 주제에 당당히 히어로 기지에 쳐들어오지 말라고.”
“오랜만에 메이벨이 보고 싶어서.”
“농담은 그 얼굴만으로 끝내주게.”
“내 얼굴이 뭐 어때서. 그리고 뭐... 아이우스 쪽에서 뭔가 일은 없었어?”
“아이우스?”
저번에 실 대장 대신 대리로 갔었던 회의. 거기서 아이우스 쪽에서 사람이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4번대 쪽에는 별 다른 얘긴 없었는데....
“왜? 무슨 일 있어?”
“7번대 쪽에 좀... 혹시 몰라서. 실은 없고?”
“실 대장은 놀러갔어.”
“...그래도 돼?”
“한가하니까. 덕분에 내만 바쁘당께.”
“그래... 위험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위험?”
메이벨의 눈썹이 꿈찔 움직였다.
“여기 와 있는 건 소피아라는 여잔데, 평판이 좀 그래. 같은 히어로한테 손을 댈거라곤 생각하진 않지만....”
“뭔지는 모르겠지만... 됐당께. 실 대장은 누구도 손 못 대니까.”
“어딜 갔길래?”
“미래.”
.................?
13호가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자, 메이벨은 팔짱을 낀 채 짜증 내는 티를 풀풀 내며 말했다.
“저번에 너네랑 일 있었던 뒤로 능력이 개화해서...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여행을 다닌다나 봐. 그 여자, 진짜 괴물 됐당께.”
“...진짜냐. 여행 감각으로 시간을 오가는 거야?”
진정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보기는 어렵겠네. 혹시 몰라 부탁할 것도 있었는데.”
여차할 때면 라헤전 때 썼던 도핑 같은 기술을 써달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시간축으로 가버린 사람을 찾아내긴 어려울 것 같다.
“뭐, 가끔 이쪽으로 돌아오긴 하니까 그때 니가 찾는다고 말이나 해보겠당께. 할 말은 그게 끝? 그럼 빨리 꺼져.”
메이벨이 훠이훠이 손을 휘젓자, 13호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노?”
“.......”
“왜 말이 없――”
성큼 다가온 13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 이거....’
키, 키스...?
메이벨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입술을 꼭 오므렸다.
그러나 찾아온 건 뺨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여기 먼지 묻었다.”
“에......?”
손가락을 후 부는 13호. 그런 13호를 메이벨은 눈을 깜박이며 쳐다보다, 금방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무슨, 무슨 생각을 한기야...! 마치 기대했던 것처럼...!’
이게 전부 그 약 때문이다.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고, 내것이 아닐 욕망이 자꾸만 살아나고....
“벨.”
“왜!”
부끄러움을 얼버무리려는 듯, 자연스레 메이벨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런 메이벨에게, 13호는 맥락없이 자신의 페니스를 꺼내 들이댔다.
“슬슬 필요한 거지?”
“아.......”
꿀꺽, 침을 삼키는 메이벨.
고작해야 수컷의 그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고가 저해되고, 오로지 그걸 바라는 욕망만이 안 쪽을 가득 메웠다.
과거 조종당하던 엔데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메이벨은, 13호의 체액을 샘플로 만든 도로시 특제 만능 포션의 덕으로 살아남았다. 다만 그 약의 부작용으로, 정기적으로 13호의 체액을 섭취하지 않으면 몸 상태가 이상해졌다.
마치 발정나는 것처럼.
‘아, 아냐... 티를... 내믄...!’
“솔직하게 말해, 벨.”
“아, 으.......”
벨은 힐끔힐끔 13호의 물건을 쳐다보더니, 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피, 필요하당...께.”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치뜬다.
“원해... 하지만... 이기 내 원해서 하는 게... 아니랑께...!”
“그래? 그런데 벨, 요즘 자위는 일주일에 몇 번해?”
“!”
메이벨은 속으로 뜨끔하는 걸 느꼈다.
그도 그럴게, 13호와 엮이고 나서부터 자위횟수가 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한디, 그런 거.”
“거짓말 하지 말고. 안 그러면 안 준다?”
“으.......”
13호가 거들먹거리듯 페니스를 흔들자, 메이벨이 분한 듯 신음했다.
“......일.”
“뭐라고?”
“매일...한당께, 씨벌놈아...!”
“이야, 대단해~. 근데 그거, 하루 한 번?”
“으... 읏...!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한다... 씨벌...!”
수치심으로 메이벨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13호는 음흉하게 웃으면서도, 그래도 역시 이 이상 건드리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13호의 손이 위로하듯 메이벨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알았어, 알았어. 네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약의 부작용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니까. 괜찮아, 벨.”
“으웃... 웃...! 괜... 찮아....”
“그래그래. 정말로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 말고.”
“누가 울어!”
“안 울어, 안 울어. 우쭈쭈쭈. 그래그래, 괜찮아. 전부 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니까... 알겠지? 그럼, 빨아줄래?”
13호는 메이벨을 위로하며 페니스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쓱 훑은 메이벨은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이며, 13호의 앞에 무릎 꿇었다. 눈 앞에 불쑥 드리워진 페니스에, 그 농후한 수컷의 냄새에 약의 부작용으로 후각이 예민해진 메이벨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아......”
메이벨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조심스레 입을 열어... 딱딱해진 페니스를 입에 물었다.
* * *
‘좋아, 좋아. 새로운 증거물이에용~.’
메이벨이 약의 부작용을 억누르기 위해 13호에게 봉사하고 있는, 행정실의 구석.
그곳에는 아무도 모르게 설치된 카메라가 두 사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으며, 그 카메라가 찍고 있는 영상은 실시간으로 타마라의 스마트폰에 전송되고 있었다.
13호의 머리에 【기억조작】을 이용해 끼워 넣은 기억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4번대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다」였다.
타마라의 능력으로는 상대방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기억에 ‘이러려고 했지’라는 기억을 심어 넣으면 웬만한 인간들은 그 기억대로 하려는 법이다. 이유는 적당히 붙여넣으면 되고.
적어도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는 일은 없으니까.
‘커맨더가 간섭했다는 얘길 듣고 7번대 쪽으로는 방문하지 않고 있으니, 그쪽 관련된 증거자료는 아직 못 구했지만....’
4번대 쪽은 마크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지나치게 허술했다. 덕분에 이렇게 치고 들어올 틈이 생겼다.
한국의 히어로, 빌런과 결탁... 이런 내용으로서는 충분한 증거물이다.
뭐, 커맨더 소피아의 요구가 워낙 많아서,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
‘되게... 기뻐보이네....’
실시간 영상인데도 화질이 매우 깔끔해서,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13호의 음경에 달라붙어 열심히 빨고 핥으며 봉사하는 4번대의 히어로. 그녀는 어쩐지 서투른 움직임이었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기에도 음란함에 질척하게 젖어있는 게 보였다.
엉덩이를 씰룩인다거나, 자지에서 못 박혀 떨어지지 않는 두 눈이라거나, 영상 너머로도 들리는 흥분된 숨소리라거나...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흐응... 그래봤자 야만스런 땅끝 나라의 일반적인 수컷....’
타마라는 실실 웃으며 영상을 지켜봤다. 입안에 잔뜩 사정받아, 입가로 흘러내린 차고 넘치는 정액을 섬세한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는 것까지 보고 영상을 꺼버렸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궁지에 몰렸지만... 이보다 더 많은 게 필요해. 다시는 없을 기회야.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뺏어버려야 해.’
【어비스】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쓸어 담아야 한다. 참모라는 실험체에 대한 것도. 세뇌에 대한 것도. 닥터의 각성약에 대한 것도. 바이올렛이나 도로시라는 특별한 각성자들도. 전부 다. 철저하게.
그리고 되도록.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 기고만장해 하는 오만한 수컷이... 밑바닥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잔뜩 절망하는 표정도 보고 싶은 걸용...★”
소피아를 포함해, 소피아 위하의 부하들은 전원 남자에 대한 일그러진 감정을 가지고 있다. 때론 혐오처럼도 보이고 질투처럼도 보이며, 깔보고 질척질척한 감정으로 내려다본다.
‘신인류’로서 각성하는 것은 여성뿐이다. 남자는 도태된 생물이다.
타마라의 근본이 된 그 일그러진 사상이, 지금 그녀의 안에 가학심의 불을 타닥타닥 불태우고 있었다.
* * *
그리고 아이우스의 소피아가 머무르는 호텔방.
소피아는 폭신한 베스가운을 입은 채, 테이블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유명 브랜드의 가장 비싼 노트북이, 그리고 정중앙에는 체스판 같은 보드판이 놓여있는데, 특이하게 보드판 위에 있는 말 위의 장식이 전부 달랐다.
스페이드 모양, 클로버 모양... 그 외에 ‘13’ 같은 숫자가 올려져 있는 것도 있었다. 각각 흰색이나 검은색, 그 외에도 조금씩 다른 색의 말들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누구나 알만한 법칙성이 있었다.
소피아의 섬세한 손이 검은말을 하나 옮겼다.
‘13호는 지금 나를 경계해서 7번대에 가까이 가지 않고 있어. 이래서는 증거를 잡기 어려워.’
빌런조직과 7번대가 내통했다는 명확한 증거물을 얻으려면, 실제로 만나는 장면을... 나아가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장면을 포착해야한다.
‘미디어는 자극적인 쪽을 좋아하니까.’
단순히 손을 잡았다, 라고 하면 원인을 알지 못해 아리송하겠지만, 성욕에 이끌려 만남을 가졌다... 그런 쪽이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렇게나 상대가 소극적이게 군다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찔러줘야겠지.
‘그러면 【어비스】를 찌를까, 7번대를 찌를까?’
오랜 시간을 들일 수는 없다. 애초에 이 나라에 온 이유도, 【어비스】며 히어로협회를 장악하려는 이유도 【만능】의, 【소원을 이뤄주는】 능력자를 손에 넣기 위해서니까.
천년만년 여기에 체류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자극적이며, 간결한 작전이 필요하다.
“.......”
‘일단 【어비스】는 타마라에게 맡기겠지만, 한가지 더... 만약을 생각해둘까.’
타닥, 탁.
소피아가 한손으로 노트북을 타이핑 하자.
딸그락-
보드판 위의, 아무 것도 없던 공간에서 새로운 말이 생겨났다.
‘7번대에 직접 간섭하려면... 라헤는 당연히 안 되겠지. 체크도 감당하기 어려워. 클럽은 능력의 종류를 생각하면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릴지도 모르고, 코코는 트릭키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겠고, 애플은 어비스에 넘어갔고, 아리아는 현장에 잘 나오지 않아.’
소거법으로, 결론은 금방 나왔다.
소피아는 머리에 스페이드 장식이 된 말을 흰 말들 사이에서 따로 떼어놓고, 조금 전 새로 만들어 낸 말로 그 주변을 에워쌌다.
“일단 스페이드를 찔러볼까... 클로에, 클로에! 거기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