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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4화 〉#54 그것은 마치 공명의 함정처럼(3) (214/271)



〈 214화 〉#54 그것은 마치 공명의 함정처럼(3)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으아아아악!

아비규환. 끔찍한 지옥도.

【사이코】의 거래터인 조잡한 건물의 지하의, 룸 안 풍경이었다.


아이우스의 하이 커맨더 소피아. 그 오른팔인 클로에의 능력은 【골렘소환】.

그녀는 반경 십수미터 이내라면 어디서든 은으로 된 골렘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또 조작할  있다. 혹은 골렘 전체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사지의 일부나 골렘의 무기만 소환하는 것으로 마력을 아낄 수도 있다.

스페이드를 제압했을 때도 거대한 골렘의 팔만을 소환해 짓뭉개는 것으로 제압했었다.

그리고 지금.

“파, 팔이... 팔이이이이이이...!!!”


“으윽... 아...!! 살려...!!”


강화개조 된 몸으로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진짜배기’의 능력에, 빌런조직 【사이코】의 조직원들은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

“아... 잠깐만... 용서해주세요... 그만...!!”


우드득!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인간의 키를 훌쩍 뛰어넘고, 개조된 근력이 우습게 보이는 힘을 가진 골렘이 팔을 붙잡고 아무렇지 않게 으스러뜨리자, 나름 주먹깨나 쓴다는 빌런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싸움이며 다툼이 일상인 그들에게 있어서, 솔직히 뼈가 부러지는 정도는 딱히 무서울 게 아니었다. 전신이 으스러지더라도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 쪽이 중요했다.

그러나 마치 귀신에게 사람들이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어딘지 사는 세계가 다르고, 급이 다른 상대에게 유린당하는 지금 그들은 치밀어 오르는 공포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금 그들이 살아있는 것도, 저 클로에가 천천히 괴롭히다 죽일 생각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가볍게 손짓하면, 언제든지 이 목이 날아갈 수 있다.


생사여탈권이 상대에게 주어져, 이 목숨의 무게가 지나치게 가볍다고 느껴졌다.

“으, 아아아아....”

“Yocky(역겨워), yocky(역겨워), yocky(역겨워)... 하여간 추한 돼지들 같으니.”


이곳저곳에서 골렘들에게 붙잡혀, 뼈가 으스러지고 관절이 뒤틀리고 사지가 잡아 찢기는  고통받는 빌런들을, 클로에는 감흥 없이 쳐다보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발치에는 사람크기의 골렘에게 붙잡혀,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사이코】의 보스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흐억...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살려줘... 살려주세요...!”


관절이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려버린 그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필사적이게 애원했다.

그러나 클로에는 그 모습에서 측은함을 느끼긴 커녕, 역겨움과 혐오스러움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는, 빌런은 더럽다.


여기서 처리하는 편이, 세상을 위해서 이득이겠지.


클로에의 손이 슬쩍 들려 올라간다. 남자의 눈이 절망으로 깃들었다.


 손이 내려가는 순간,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는 모르지만, 남자의 목숨은 확실하게 끝장날 거라고, 그것만은 확연히  수 있었다.

손이 들려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남자는 클로에의 눈을 쳐다봤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오만한 시선.

그 시선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으아아아아아아아!!!!!! 히어로오오오오오오오!!!!!!!!”


저 시선만큼은 죽어도 받기 싫었는데.

그토록 질투하고, 원망했던 히어로들.


히어로보다 뛰어나고, 히어로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마치 벌레가 짓이겨져 죽듯, 지금 이 순간 죽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게 너무나 억울하고,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원망과 비통이 담긴 외침 속에서, 클로에의 손이 떨어져 내리고――


탕-!

하는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 * *




“......?”


클로에가 기계처럼 끼긱, 끽 고개를 돌렸다.

총알은 빗나간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녀를 노린게 아니었는지, 그녀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씨불... 저 재수 없는 빌런  죽든 말든 신경 쓰면 안 됐는데....”

“13호...?”


“아, 그래. 13호님 납시셨다, 아이우스의 히어로.”

활짝 열린 룸의 출입문 너머.

그곳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가까스로 권총을 쥐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빌런 13호.

【어비스】의 빌런이자, 소피아가 말한 【만능】의 열쇠.

그런 남자가, 왜 이곳에...?

탕! 탕-!

빌런 13호의 총구가 두어번  불을 뿜었다.

애초부터 맞출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그마저도 허공에 나타난 은방패에 가로막혀 튕겨나갔다.

“갑자기 뭐하다 나타난 건지 궁금하지만... 이 쓰레기들을 지키려는 건가요? 빌런 주제에 히어로 행세야?”

“닥쳐. 그딴  할 생각 없어. ...그냥 그놈은 내 손으로 손봐주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려서 그래. 네가 훅 죽이게 냅둘까보냐.”

13호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비규환인 참상과 【사이코】 조직원들의 고통스런 외침을 듣다듣다 참지 못하고 나온 것이지만, 굳이 그런  구구절절히 설명할 이유는 없다.

“밖에 타마라가 있었을 텐데....”

“스턴건으로 기절시켰지. 여기까지 와서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고 있던데.”


“타마라...!”

클로에가 골치 아프다는  머리를 싸매쥐었다.

“...그래서, 여기는 왜  건가요? 당신은 지금 능력도 사용하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죽고 싶어서 왔나요? 자살지망자? 그렇게 죽고 싶다면 좋은 강을 소개시켜드릴까요?”


“사람한테 투신자살을 강요하지마. 죽을 생각으로  거 아니야. 애초에 내가 죽으면 곤란한  너희면서.”

클로에의 눈썹이 꿈찔 떨렸다.


13호는 그 틈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꺼내든 것은 표면에 X자가 쳐진 원통형의 물건이었다. 안에는 가스가 가득 들어차 있는, 도로시 특제 기절탄!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온 것도 아니거든!”

쾅!


13호는 기절탄을 있는 힘껏 던지고, 출입문을 잽싸게 닫았다.


좋아, 이제 1분만 있으면 기절탄의 가스가 룸 전체에 가득차겠지. 그러면  여자라도――

콰아아아아앙!

“......옴마?”

바로 옆의 벽이, 굉음과 함께 무너졌다. 벽을 뚫고 나타난 것은 묵직한 골렘의 팔.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골렘의 팔다리가 벽에 난 구멍을 넓혔다.


또각, 또각, 하는 발소리가 구멍 너머에서 들려왔다.


“죽이진 않을테니, 쓸데 없이 저항하지 말고 잡혀주면 좋을텐데.”

13호는 곧바로 복도를 달려나갔다.





캉-캉-캉-!

쇠로 된 계단을 다리가 걸려가며 서둘러 달려올라갔다. 바로 뒤에 뭔가가 바싹 따라붙는 기분이 들었지만, 일일이 고개를 돌려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1층. 거의 아무 것도 없는 휑한 현관을 지나,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총도 기절탄도 먹히지 않는다면, 남은 수는――’

“What a nerve(뻔뻔하긴). 그쪽에서 먼저 도발해놓고 도망치다니, 이래서 남자란.”

“?!”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갑자기 나타난 은색 팔에, 13호는 다리를 붙잡혀 그대로 고꾸라졌다.

쿠당탕-! 안면부터 바닥에 처박힌 13호의  위로, 새로이 나타난 골렘이 쿵 떨어져내렸다.

“우아아아아악...! 허, 허리...!”

“술래잡기는 벌써 끝인가요.”

이미 클로에는 바로 뒤까지 와있었다.


발소리도 안 났는데!


“잠시만 얌전히 있도록 하세요. 죽일 수는 없으니까... 타마라를 시켜서 기억을 개조시키도록 하죠.”

클로에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면서, 13호를 내리누르고 있는 골렘의 위에 걸터앉았다.

허리에 가중되는 부하에 13호가 “으컥...!”하고 신음을 흘렸다.

“클로에?”

타마라를 부르려고 전화를 걸려던 순간, 건물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3호의 스턴건에 당했을 타마라가 분한 표정으로 비칠비칠 걸어오고 있었다.

“타마라? 기절했다고 들었는데.”

“끄응... 조금 전에 일어났어. 갑자기 뒤에서 공격하다니....”

“이런 곳에서 한가롭게 게임이나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씨이.”

“항상 그랬어. 좀 더 매사에 진지하게 하라니까? 그렇게 설렁설렁하니까 이딴 한심한 빌런한테 당하는 거잖아? 소피아님께 보고드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타마라가 분한 눈으로 클로에를 노려봤지만, 클로에는 그 시선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넘겼다.


타마라는 능력의 유용성 때문에 소피아가 계속 곁에 두는 거지, 그 성격 때문에 워낙 실수가 잦은지라 클로에는 항상 불만이 많았다.


“......흥. 됐어. 너 같이 고지식해서 재미 없는 여자랑은 마음이 안 맞으니까.”


“딱히 나도 친해질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니까 상관없어. 빨리 와서  남자 기억이나  보도록 해. 그 정도가 아니면 쓸모도 없잖아 너는?”


“Damn bitch(썩을 년).”

“Says who?(누굴 말하는지)”

타마라는 아직 스턴건의 영향이 남아있는지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13호와, 그 위에 걸터앉은 클로에를 향해 다가갔다.

기억조작을 위해 13호의 머리로 손을 뻗던 타마라는――

턱.

스턴건을 쥐고 있던 반대쪽 손을, 클로에에게 붙잡혔다.

“――칫...!”

타마라가 크게 혀를 찼다.

스턴건의 끝은 클로에를 향하고 있었으며, 이렇게 팔을 붙잡아 막지 않았으면 그대로 클로에를 지졌을 것이다.


“이게 뭐야, 타마라?”

타마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조금 화가 났다고 해도 이 상황에 장난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을텐데.”

“.......”

“소피아님이 그러셨어. 타마라 네가 수상하다고. 아무래도 13호에게 당한 것 같다고. 이번 임무도 진짜로 네가 배신했는지 아닌지 확인하려던 것뿐이었어.”

“.......”


“그 얼굴을 보니 진짜구나. 너,  멍청한 빌런한테 세뇌당한 거지?”


“......13호님을.”


타마라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지금껏 본  없었던,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이 찌를 듯이 클로에를 노려봤다.

“13호님을 멍청하다고 하지 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준비해 둔 스턴건은  개. 클로에에게 붙잡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타마라는 또 다른 스턴건을 꺼내들었다.

타지직!


번쩍 빛나는 스턴건의 전류가 공기를 태웠다. 옷 위로 닿기만 해도 건장한 남성조차 단번에 기절해버리는 개조 고압 스턴건.

그러나 스턴건의 끝이 클로에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커...흑...!”


“소피아님이 이미 눈치채고 계셨다고 했잖아.”

골렘의 장갑으로 뒤덮인 클로에의 주먹이, 타마라의 명치를 묵직하게 찌르고 있었다. 스턴건은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클로에에게 닿지 못하고, 힘이 빠진 그녀의 손에서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되도록 ‘시나리오’가 완성돼있었다고, damn idiot(빌어먹을 멍청아).”

【배신자의 기습은 실패하고, 반격하는 클로에의 일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시나리오대로, 타마라는 명치를 때린 일격에 몸에서 힘이 빠져 풀썩 쓰러졌다. 클로에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새로운 골렘이 나타나 기절한 타마라를 끌어안아 13호에게서 떨어뜨려놓았다.


“...동료한테 가차 없네.”

“저한테 그런 걸 들이밀었으니, 이 정도로 봐주는  감사해야죠. 그나마도 능력이 아까워서 살려둔 거지, 아니었으면 명치를 찌른 게 주먹이 아니라 칼이 되었을 거예요.”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13호가 혀를 내둘렀다.


클로에의 눈이 13호를 차갑게 내려보았다.


“그나저나 타마라를 세뇌했군요. 빌어먹을 쓰레기가.”

“화났어?”


“아뇨.  멍청한 여자가 어떻게 되든 상관은 없고, 애초에 믿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이 타마라 보다 조금 덜 멍청했단 거겠죠. 아쉽게도.”

“칭찬해주니 고마운데.”

“그보다 선택의 시간입니다.”


다시 한번 클로에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녀의 손에 자그마한 나이프가 들렸다.

클로에는 골렘에서 내려와, 13호의 머리를 잡아 억지로 끄집어 올리고, 입 안에 나이프를 쑤셔넣었다.


“흐어...?!”

“Shut up(닥쳐). 조용히 해. 조금이라도 소리내면 찌르겠어. 입 안에 칼자국 나는 건 싫겠지?”

“......!”


“타마라의 기억조작에는 더 이상 의지할  없으니까. 내 말대로 한다면 적어도  성하게 돌려보내주겠어. Yes면 왼쪽 눈을, No면 오른쪽 눈을 깜박이도록 해. 단, No라고 대답하면 입에 구멍이 하나 생긴다고 생각하면 돼.”

클로에의 목소리에는 도저히 거부할  없는 박력 같은 게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상처입히는 데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위압감.


13호는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그런 클로에를 올려다보았다.

‘기억조작을 할 수 없으면 계획이 지나치게 파탄나.’


원래는 기억을 조작한 13호를 뒤에서 조종해, 그 손으로 직접 【어비스】의 인원들을 하나하나 바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가능한 강제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으려 한 것은, 혹여나 【만능】의 단서를 찾는데 지장이 생길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다소의 강경책은 감수하는  밖에.


“지금 바로 전화로  보스를 불러. 이곳으로, 혼자 오도록. 그 다음에는――”

그 때였다.

쉬익- 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난 것은.


“?!”

무언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클로에는 반사적으로 얼굴 앞에 커다란 은방패를 만들어냈다. 웬만한 총탄도  방패를 꿰뚫을 수는 없는 두꺼운 방패.

그러나.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은방패는 너무나도 손쉽게 관통당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방패의 뒤를 뚫고 나와, 클로에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고――그녀의 볼을, 살짝 베어냈다.

“......Nonsense(말도 안 돼)....”

놀라 깜박이는 클로에의 눈. 그 시야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다.

또각, 소리가 건물 앞의 부지에 들어섰다.

“어머나, 13호. 거기 그렇게 벌레처럼 깔려있는게 참으로  어울리네요.”


“늦었어! 나 지금 입에 구멍 뚫릴 뻔 했다고!”


“거짓말만 하는 그 입에는 구멍이 몇 개쯤 뚫려도 싸요. 조금만 더 천천히 올  그랬네.”


두꺼운 굽의 통부츠, 대장임을 뜻하는 흰 전투복. 흩날리는 고운 상아색 머리카락.


클로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거기 있는 여성분, 제 부하가 신세를 졌다고 들었습니다만.”


손을 감싼 흰 장갑을 고쳐 쓰면서, 그녀는 클로에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스페이드의 상관으로써, 7번대의 대장으로써, 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각오하세요.”


7번대의 대장 라헤의 눈이, 만년서리가 내려앉을 듯 차갑게 클로에를 노려봤다.

클로에의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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