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58 빌런 13호의 즐거운 관찰일지(1)
“야, 13호.”
“응? 도로시?”
“데이터가 너무 부족해, 데이터가. 요즘 제대로 일 안하지? 그냥 생각나는대로 막 놀기만 하는 거지? 보고서 안 쓸래 이 자식아?”
“.......”
“뭐라고 지껄이기나 해봐 이 놈팽아!”
“요즘 하도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아이우스? 너 그 전부터 농땡이 부리던 거 다 알고 있거든?”
“아냐. 진짜 바빴다니까?”
“컴퓨터에 숨겨 놓은 야동 분류할 시간은 있고?”
“그 숭고한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없는 거야.”
“......”
“아야, 아야! 말없이 때리지 마! 이상한 발명품 들이대지 마! 살려줘!”
“네 그 변변찮은 거시기나마 달고 있으려면, 내일 아침까지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해.”
“제출 안 하면 내 거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그보다 변변찮지 않거든!”
“흥.”
“...네가 변변찮다는 거시기에 그렇게 앙앙거렸으면서.”
“......뭐?”
“왜, 아닌 것 같아? 기억 안 나? 영상이라도 보여줄까? 도로시의 행복한 냥냥메이드!”
“.......”
“미, 미안...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미안해... 오싹오싹 찌릿찌릿해지잖아... 기쁘긴 한데... 용서해 줘....”
“됐으니까 오늘 내로 제대로 된 보고서 제출해. 제대로 안 하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네....”
* * *
대충 그게 아침부터 있었던 일이다.
도로시의 압박감에 견디지 못한 나는 흔쾌히 오케이 해버렸고.
그러면 이제 어쩐다, 하고 고민하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7번대에 휘적휘적 와버렸다.
“으엑, 13호! 왜 또 온 거야! 무슨 짓을 하려고!”
“심심해서 온 건데.”
“빌런 주제에 히어로 기지에 심심해서 오지 말라고!”
“Fuck... 아침부터 13호 씨를 보다니, 오늘 하루 최악 확정이네요. 버러지처럼 밟혀서 죽지 않으려나.”
“아니 뭐, 오는 건 상관 없는데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찌그러져있그라?”
“쓰레기! 유능한 나를 훔쳐보러 온 거구나!”
“아... 안 그래도 요즘 일이 많아서 피곤한데... 빨리 꺼지세요. 당신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확 나빠지네요.”
그러자 도착하자마자 스페이드부터 시작해서, 클럽이나 체크나 코코에 라헤까지 차례대로 나를 오물덩어리 취급하는게 아닌가!
이럴 수가!
나처럼 청결하고 깨끗한 빌런이 어디에 또 있다고!
이건 분명 7번대가 잘못한 거다.
세뇌까지 당한 주제에, 나에 대한 취급이 너무하니까.
그리고 마침 도로시가 내준 과제도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내게 묘안이 뿅 하고 떠올랐다.
내 생각대로 진행된다면 재밌을 것 같다. 도로시에게 제출할 보고서에 쓰기도 괜찮은 내용이고.
그럼 바로 실행해볼까.
* * *
[■■■■년 ■■월 ■■일 오전 9:02]
[본 기록은 세뇌 경과 후 ■~■개월이 지난 히어로들의 세뇌 상태 확인 및 세뇌 강화를 위한 실험에 대한 것임.
이 실험에 있어서 관측자(빌런 13호)의 직접적인 개입은 세뇌를 제외하면 가능하면 지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함. 단, 예외적으로 피관측자가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행동의 다양화를 위한 목적으로는 허락함.
인간은 보통 3대 욕망 앞에서 자신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하는데, 세뇌라고 함은 심층에 가라앉아있는 정신을 자극하는 측면이 강하므로, 상대의 본성을 알고 끌어내는 건 분명 앞으로의 행보 및 연구적인 측면으로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함.
이에 관측자가 판단하기로, 3대 욕망, 즉 식욕, 수면욕, 성욕 중 단언컨대 성욕이야말로 최고의 재료라고 생각함. 이유를 대자면 끝이 없지만, 가장 큰 이유는 관측자의 취향에 의거함을 부정하지 않음.
서론 및 정리는 여기까지, 이하부터는 관측한 실험에 대한 보고를 서술함.
첫 번째 피관측자는 스페이드. 괄괄한 성격이 괴롭히기 좋아보이는 히어로로서――]
* * *
“응......?”
별안간 오싹한 한기에, 스페이드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봤다.
뭔가 되게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지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도 없다.
“끄응... 하도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예민해졌나....”
꽃잎이 휘날릴 것 같은 붉은 머리카락, 단정한 이목구비에 왼쪽뺨에는 큼지막한 스페이드 문신이 그려진 무투파 히어로.
7번대의 에이스 중 한 명인 스페이드는, 잠시 최근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어비스】며 13호한테 얽히고 나서 되는 일이 없다.
깜빡 속아 넘어가서 세뇌당하고, 이상한 옷이나 입혀지고, 클럽이랑 탈출극을 벌이질 않나, 그 외에도 【시궁쥐】나 닥터나 아이우스나....
‘아니... 지금 머리를 떠나질 않는건 그런 게 아냐....’
솔직히 이 모든 게 아무래도 좋았다.
호방탕탕한 스페이드의 성격이라면, 이 정도 일쯤은 그냥 물에 흘려보내는 기분으로 전부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난 네가 싫어.’
――‘넌 반드시 내가 체포할 거야, 13호.’
‘......아, 아아아아아아...! 뭐야, 뭐냐고 이 새콤달콤한 문답은! 거기다 상처는 왜 핥았던 거지?! 난 뭐가 하고 싶었던 거야?! 나 왜 그랬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그 때의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죽을맛이었다.
하이 참, 맙소사.
‘시, 13호한테는 미안했던 것도 있고... 으... 다, 다쳤을 때 간호도 해줬고... 맞아! 그 녀석도 내 멍난데 핥았잖아! 내 허벅지...를... 아으으으....’
그것도 떠올리면 죽을맛이었다.
하여간....
따악-!
“어......?”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
.......
.................
..................................................?
“....어라? 뭐지?”
어쩐지 잠깐 멍해졌던 것 같다. 스페이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처럼의 풍경이 있을 뿐이다.
기묘한 기분이네.
“................!?”
그리고 이어서, 갑자기 달아오르는 몸에 깜짝 놀랐다.
가슴이 백미터 마라톤을 한 듯이 빠르게 쿵쿵 뛰어오르고, 무언가를 갈망하듯 온 몸이 초조해하는 게 느껴졌다.
온 몸이라고 했지만, 특히나, 가랑이 사이가... 거기가, 간질간질해지고 뜨거워졌다.
“하앗... 읏....”
스페이드는 허벅지를 비비며 비틀거렸다. 가까스로 바로 옆의 벽을 짚은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아응...!”
거기가 순식간에 젖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유두도 발딱 섰을 게 분명하다. 가슴에 꼭 맞게 끼이는 브래지어의 안감에, 유두가 쓸리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갑자기 왜 이렇게 온 몸이.... 발정난 것처럼 이러는 거지?
스페이드는 답을 내지 못한 채, 머리카락처럼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기적어기적 어딘가로향했다.
* * *
[이번 실험의 테마는 ‘성욕으로 넘쳐날 때 히어로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이 테마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는 실험대상인 히어로에게 「지금 바로 발정한다」, 「자제심을 잃는다」라는 세뇌암시를 주입시켰다.
물론 피관측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사전에 「빌런13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라는 암시를 걸어두었다. 내가 그들의 눈앞에 서 있든, 알몸댄스를 추든 나를 알아차리지는 못할 것이다(다만 암시를 걸기 위해 트랜스상태를 만들 필요가 있으므로, 특정 제스처에 대해서는 반응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실험대상은 사전에 서술한 대로 7번대의 전도유망한 히어로 스페이드.
그녀는 신체가 발정함을 느끼자마자, 가까스로 냉정함을 유지하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교태로운 교성과 함께, 비틀거리면서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비비던 허벅지 사이에서 애액이 한줄기 떨어진 것은 꽤 유쾌한 광경이었다.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봤지만, 맛을 보고서에 적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생략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해서 스페이드가 도착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 * *
덜컹! 찰캉!
스페이드는 하아하아 숨을 내뱉으면서도, 가까스로 가까이 있던 화장실에 들어온 스페이드는 비어있던 칸막이의 문을 닫고, 변기에 앉았다.
다행히도 이 층의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다. 기지에 멤버수가 굉장히 많았던 옛날이라면 모르겠지만, 정예 히어로 몇 명만이 남아있는 지금 도중에 누군가 들어올 일도 적을 것이다.
적기를 바랐다. 아예 없기를 바란다.
지금부터 그녀가 할 일을 생각하면....
“아... 안 되는데....”
자제심을 잃은 손이, 자연스레 스커트 안으로 들어갔다.
“으흑....”
이미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젖어버린 팬티를 젖히고, 거기에 손가락을 넣는다.
찌걱... 하는 소리가 났다. 뜨거운 꽃잎에 차가운 손가락이 닿자, 기분이 좋았다.
‘아, 아아아... 바, 방에서도 아니고... 신성한 히어로 기지의 화장실에서... 언제 누가 올지 모르는데....’
하지만 그런 거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거기가 너무 간지럽고, 초조했으니까.
음부를 만지는 손과는 반대쪽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브라와 교복이 굉장히 답답하다....
스페이드는 떨리는 손으로 제복의 단추를 끌렀다. 한 손으로 하려니 잘 되지 않았지만, 다른 한 손을 음부에서 떼기가 싫었다.
“흐읏...! 응...!”
겨우겨우 벌린 제복 앞섶. 그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유두를 만졌다. 예상한대로, 벌써 완전히 곤두서 있었다....
스페이드는 혹여나 소리를 낼까 싶어,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몸을 숙이면서, 스스로의 민감한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돌렸다....
왜 갑자기 이런 발작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빌런 13호와 얽히고 나서, 스페이드는 변해버렸다. 스스로도 이건 자각하고 있었다.
자위, 라고 행위 자체는 알고 있지만 이렇게 발정나서, 스스로 자제못할 정도로 하지는 않았다. 가끔씩, 뭔가 살짝 쌓였다거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반짝 즐기는 정도였다. 나름 건전한 생리현상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뭐랄까, 느낌이 다르다.
쾌락에 몸이 지배당해서... 빼앗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대로 계속 기분이 좋아지면 머리가 이상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살짝 무섭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유혹은 감미로워서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자신의 민감한 곳을 바로바로 만지고 자극하는 손이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 때의 자신이 얼마나 미숙했는지 통감하게 된다.
지금이 훨씬, 훨씬 기분이 좋다. 좋지만....
“응... 아... 앙....”
찔걱, 찔걱, 하는 소리가 커져간다.
하지만 부족하다. 이 정도로는. 자신의 가는 손가락으로는, 뭔가가 아쉽다. 허전하다.
“시, 13호........”
무심코 그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얼굴이 추가로 화악 달아오르는 걸 느꼈지만――그 이상으로 쾌감이 부풀어오르는 것도 느껴졌다.
“어, 어.....?!”
고작해야 13호, 그 이름을 부른 것 뿐이다.
고작해야 13호, 그 녀석을 떠올렸을 뿐인데.
그런데 어째서... 기분이 좋아지는 거야?!
스페이드는 당황하면서도, 성감이 몇 배는 높아진 것 같은 성감대를 매만졌다.
하지만 역시, 단순히 만지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스페이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결단을 내리고,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시, 13호... 13호오오오....”
무심코 그 이름을 중얼거려버렸다. ...뭐랄까, 그 이름을 입에 담고 나니...거기가 화악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너무 좋다....
찔걱, 찔걱....
“13호... 13호님....”
눈꼬리에 기쁨으로 눈물까지 맺으며, 스페이드는 연신 그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곁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차츰차츰 그의 감촉을 떠올렸다.
단단한 몸도, 의외로 부드럽던 손길도, 이쪽을 유혹하는 남자답지만 달콤한 목소리도, 무엇보다 자신의 질벽을 가르고 열어 마음껏 휘젓던 그 단단한 자지도....
“아, 아아... 13호... 13호오... 좋아아....”
아냐, 아냐, 아니다.
이건 그냥... 육체적인 느낌으로... 그런... 하지만... 기분 좋은 건 맞아....
“흐우우우우웃....”
가까스로 조수가 빠져나가듯, 스페이드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몸 안의 쾌락이 살짝 가라앉았다.
컵으로 치자면 아직 입구 언저리에 찰랑찰랑 남은 듯한 기분도 들지만, 조금 전보다는 확실하게 안정되었다.
“......역시 손으로는 부족해....”
스페이드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무리 만져도, 자신의 손으로는 제대로 갈 수 없다....
맞아... 그 남자한테 있었을 때는... 그 때는... 그렇게 가고 싶었을 때는....
‘......하아.’
스페이드는 지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미약한 절정을 맞은 덕분인지 신체가 살짝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덧붙여서 묘하게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도 있다.
젖은 속옷과 축축해진 손가락의 감촉. 팬티는 제대로 벗을걸 그랬나....
스페이드는 그 감촉을 똑똑히 느끼면서 손가락을 꺼냈다. 자신의 애액으로 끈적하게 젖은 손가락을 무심코 쳐다보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바본가봐... 나....”
쪽쪽, 끈적끈적한 자신의 액으로 젖은 손가락을 빨면서, 스페이드는 자책하듯 중얼거렸다.
아무생각 없이 발을 앞으로 휘저었는데, 발 끝에 뭔가가 닿았다.
“......? 뭐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인데. 뭔가가 있는 것 같은 착각.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역시 착각이겠지.
스페이드는 제복 차림새를 정돈하고, 손도 깨끗하게 씻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나오고 보니 기지 한복판에서 이런짓을 했음에 후회가 폭풍처럼 몰려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