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66 그 화가는 빌런을 걱정한다(2)
“야, 따뜻한 말 하지마... 눈물날 것 같잖아.”
“한심한 놈이라니까....”
“그래, 좋아. 차라리 욕을 해줘.”
메이벨의 말에 13호가 눈가를 꾹꾹 누르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심을 말하자면.
13호는 풀이 죽어있었다. 최근에 푹 잠이 들었던 적이 언제인지.
13호는 악당이다.
그러나 악당이지만, 악당이기 때문에.
그만큼 목숨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고 있다.
――‘이 계집의 목숨은 내가 맡았으니라.’
그래서 그 선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 울리니까, 죽을 것 같았다.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혹시나 잠에 든 사이 뭔가 변화가 있는 건 아닌가, 자고 일어났더니 스페이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게 아닐까.
나 때문에 죽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13호는 쪽잠을 자다가도 몇 번이나 깨서, 7번대 기지에 찾아가 새근새근 자고 있는 스페이드를 확인하고, 그리고 여러 문헌들을 뒤져보며 도깨비와 선녀를 어떻게든 할 방법을 찾아보고... 그 외에도 다른 빌런 업무도 차질 없이 해내고 있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메이벨에게 한소리를 듣고 보니 엄청 피곤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곤할 때는 스스로가 피곤한 줄을 모르는 법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말이라도 해보랑께. 들어는 줄테니까.”
“...고마워. 그럼 푸념이라도 해볼까.”
13호는 손에 들린 차로 가볍게 입술만을 적시고, 지금 상황을 이야기했다. 딱히 누군가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것도 아니니, 거리낄 건 없었다.
‘뭐, 털어는 놓겠는데, 들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지.’
딱히 뭔가 묘안이 나오리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최근 일주일간 제대로 잠도 안 자고 조사하고 고민하던 13호다.
그렇게 고민하고 찾아봤는데 별 다른 수가 없었건만, 이런 절체절명과는 연이 없을 능력있는 히어로가 뭔가 뾰족한 수를 낼 수 있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 * *
그리고 일어난 전말의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했을 무렵.
메이벨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별거 아닌데?”
말이면 단 줄 아나 이 여자가.
팍씨 덮쳐버린다?
“.......야야야야. 너 제대로 듣긴 한 거야? 도깨비에 선녀라고?”
“글쎄.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가능할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응, 생각나는 게 있당께.”
호오, 생각나는 거라.
나는 메이벨의 말에 아하하하하 웃었다.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방법이 있다니. 참. 정말이지.
나는 그대로 메이벨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옷 위로 만졌을 뿐이지만, 얇은 천과 그 아래 속옷 너머의 건실한 과실 같은 융기가 손안에 착 달라붙는다.
좋은 가슴이다.
“.......”
짜악!
그리고 무표정의 메이벨에게 뺨을 얻어맞고.
뻐억, 콰득...!
이어서 복부, 등, 명치를 순차적으로 얻어맞아 몸이 꺾이고.
우드드드드득. 뿌드드득......!
마지막으로 화려한 관절기에 온 몸의 뼈가 뽑히는 것 같은 고통이 온 몸에 내달렸다.
과연 썩어도 히어로. 그 한순간에 물 흐르는 듯이 폭력을 휘두르다니.
“사, 살려줘...!”
“무슨 짓이지?”
“...아니, 꿈인가 싶어서....”
일주일을 조사했는데도 별다른 방안이 없었는데, 이야기만 듣고 뭔가 생각났다니.
뭐라도 만져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있었을 뿐이야!
“이, 일단 이거 놓고 말하자. 응? 무슨 생각이 났는지 궁금해. 엄청 궁금해! 그러니까 제발이거아야야야야야야야야아파아파아파빠진다뭔가빠져버려관절은거기로꺾이지않는아파파파파팟!”
“......차라리 잘 됐어.”
“뭐, 뭐가... 야, 야, 진짜 아파! 아파앗!”
메이벨은 내 관절을 지혜의 고리 같은 상태로 꺾어버리더니, 그대로 툭툭 치며 나를 책상 위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무방비한 내 입에, 차가 담긴 도기 주전자의 입구를 들이대더니 그대로 주르르륵 흘려넣었다.
내용물은 얘기하던 도중 많이 식었다. 뜨겁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레 밀고들어오니 코로 넘어갈 뻔 했다.
꿀꺽꿀꺽 목울대를 울리며 간신히 마셨다. ...어우, 물배가 차는 느낌.
“케헥, 콜록... 무슨 짓이야, 너.”
“가만히 있으랑께. 약발 돌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나....”
‘약발?’
무슨 말을 하는지 멍하니 생각하고, 그리고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 실한테서 세뇌약(가짜)를 받아가고 있댔지.
눈만을 데굴 굴려서 쳐다보니, 메이벨이 약간 초조한 표정으로 더불어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내려보고 있었다.
* * *
“......13호? 자?”
“아니, 안 자... 근데 머리가 좀 멍한 것 같네.”
조금 전까지 뭔가 시끄럽게 웅얼거리던 13호는, 이제는 어딘지 힘이 없는 목소리로 순순히 대답했다.
메이벨이 조심조심 흰 물고기 같은 손을 내밀어, 13호의 눈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었다. 반응은 없다.
‘약발이 먹혔나.’
“야, 얌전히 있으랑께.”
“...그럴게.”
메이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꺾어 누르고 있던 13호의 관절을 풀어주었다.
“이쪽 돌아봐.”
메이벨의 명령대로, 13호가 느긋하게 몸을 돌려 메이벨을 쳐다봤다.
그 시선과 마주치자, 어째 거북한 듯 느껴진 메이벨이 다시근 그 눈 앞에서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보았다.
메이벨에게 세뇌나 최면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다. 그러나 실 대장이 해준 조언은 남아있다.
――‘약을 먹이고 약 20초쯤 뒤. 눈앞에서 뭔가를 흔들어 보였을 때 반응이 없으면 약발이 제대로 먹힌 거야.’
그렇다고 한다.
그 대장이 자신을 속일 이유는 없다.
‘뭔가 감이 좋지 않은 기분도 드는데... 에이, 모르겠당께.’
조금 이상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억지로 밀어냈다.
지금 메이벨은 안쪽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욕망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은 마음뿐.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봐도, 13호는 반응이 없었다.
세뇌약은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잠시만 기다려.”
서랍에 넣어둔 쪽지 크기의 자그마한 메모장을 꺼내, 안을 뒤적였다.
메모장에는 그녀가 홀로 있을 때 망상한 각종 변태적인 시나리오와 상황극이 적혀있었다.
맨정신으로 부탁할 수 있을 리 없는, 히어로로서 용납할 수 없는 욕망들.
‘일단....’
“에, 13호. 너는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은 전부 잊어버리는 거랑께... 알아들었나?”
“응, 그럴게.”
13호는 순순히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한심하다는 듯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기분탓인게 분명하다. 세뇌약의 효과 아래에 있는 13호가 그런 생각을 할 리 없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아, 아니야. 내가 변태라서가 아니라, 그... 13호가 주입한 약기운 때문이니까. 응.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13호가 나쁜 거지, 내가 변태인 게 아니야.’
팔락팔락 넘기며, 스스로가 기록한 망상에 “우와~”니 “흐에....”니 알 수 없는 감탄사를 흘리던 메이벨은, 결국 스스로 고르기를 포기했다.
들고 있던 노트를 13호에게 넘긴다.
“니, 니가 골라보랑께, 13호.”
“골라?”
“명령이야. 지금부터 너는 엄청나게, 엄청나게 발정해버리는 거랑께. 나를 엉망진창 범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 짐승이 되는 거니까... 응, 그치만 어떤 식으로 범할지는 그 책에서 고르는 것으로. 알겠지?”
“호오... 좋아.”
13호는 세뇌당한 사람답지 않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노트를 한 장 한 장 신중히 넘겨갔다.
자신의 망상이 전부 드러나고 있는 이 상황에 메이벨은 기묘한 흥분을 느꼈다. 거기가 무심코 젖어 들것 같았다.
흰 뺨을 살짝 붉게 물들인 채, 메이벨은 기대 반 초조함 반으로 13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 * *
도로시, 참모 같은 경우는 스스로 세뇌약이나 세뇌도구를 자주 사용해봤으며, 그렇기에 트랜스 상태로도 불리는 일시적인 최면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세뇌의 프로인 애플도 마찬가지로, 상대의 반응을 보고 최면 상태인지 아닌지 한 눈에 알아본다.
그러나 메이벨은 그런 지식도 경험도 없었다.
실이 전해준 세뇌약 밖에 사용해 본 적 없고, 사용한 대상도 13호 한 명 뿐이다. 더군다나 실은 나름 메이벨이 깊이 신뢰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지금 메이벨은 실에게서 받은 약을 확실히 신뢰하고 있었으며, 13호가 세뇌 상태에 있음을 흔들림 없이 믿고 있었다.
“그럼, 이걸로.”
“으음.......”
13호가 오랜 숙고 끝에 어느 한 페이지를 내밀었을 때, 메이벨은 동요하기는 했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면 13호는 전부 잊어버리고, 얼마든지 자신의 개로 전락시킬 수 있으리라고.
* * *
쭈웁... 추웁... 추릅...!
치적치적 비가 내리는 창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다.
다른 모두가 퇴근해 자리를 비운 4번대의 행정실 안에서, 메이벨은 일사분란하게 13호의 자지를 입에 물고 사랑스럽다는 듯이 빨고 있었다.
“우읍... 추릅... 쭈웁...!”
“좋아, 좋아, 벨. 좀 더 안쪽을... 그렇지.”
자신의 육봉에 달라붙는 메이벨의 보드라운 혀의 감촉과, 따뜻한 입 안의 온도에 13호가 감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수액에 달라붙는 장수풍뎅이처럼, 혹은 꿀을 따기 위해 밀착한 나비처럼, 메이벨은 13호의 하반신에 찰싹 들러붙어 열심히 그 자지를 입에 물고 있었다.
여기저기 풀어헤쳐진 개조한복 사이로, 그녀의 싱그럽고 눈부신 살결이 드러나있다. 가슴을 가린 천도 느슨하게 풀어내려, 그녀의 모양 좋고 예쁜 유방도 드러냈다.
그렇게 드러난 유방과, 뒤집힌 치마 아래로 보이는 국부를, 메이벨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다.
13호가 주입한 포션 때문에 잔뜩 비대해진 욕망이, 그녀의 이성을 무너뜨리고 13호의 물건을 깊이 탐하게 만들었다.
지금 메이벨의 머리에는 오로지 13호의 정자를 섭취하는 것과 몸의 욕망을 있는 대로 해소하는 것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쭈읍... 흐읍....”
13호의 지시에, 메이벨은 멍한 머리로 순진하게 따르며 혀의 움직임을 바꿨다.
귀두갓 아래의 패인 홈을 혀 끝으로 자극하고, 넓게 편 혓바닥으로 귀두 끝에서 배어나오는 씁쓸한 쿠퍼액을 핥고 빨고....
단숨에 행복감에 젖은 메이벨의 얼굴이 칠칠치 못하게 풀어졌다.
“좋아, 좋아. 변태인 너를 위해서, 특별히 진한 걸 먹여줄게, 메이벨.”
자신을 얕보고, 깔보는 말투.
그러나 그 오만한 말투에 메이벨의 거기가 더 깊이 젖어들었다.
기뻐하며 보지구멍에 넣은 손가락을 좀 더 세심히 움직이는데, 13호가 근녀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웁......!”
입 안을 가득 메우는 그 비릿한 냄새가, 불기둥의 감촉에, 그리고 난폭하게 날뛰며 목구멍을 찌르는 그 취급에, 메이벨은 피학(被虐)의 기쁨으로 어깨를 떨었다.
동시에 울컥울컥울컥울컥... 뜨겁고 씁쓸한 정액이 메이벨의 입 안 깊숙이 부어졌다.
하아... 오랜만의 정액이다....
조금도 남기지 않고자, 입 안에 부어지는 정액을 필사적으로 빨아마시는 메이벨.
13호는 그런 메이벨의 머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고는, 근처에 놓아두었던 얇은 붓을 집어들고 먹물을 묻혔다.
“야, 이 변태 히어로야. 네가 망상하던 해줄테니까, 감사히 받아라잉?”
13호가 비웃듯이 이를 드러내며, 붓으로 메이벨의 뺨에 붓을 가져다 대고 한 일(一)자를 그렸다. 입에 한 발 사정했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곳곳에 드러난 메이벨의 흰 살결에는, 천박한 낙서들이 이래저래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