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1부 1장 (4)
지부장은 운장의 전투를 지켜보며 눈을 찌푸렸다.
상대는 '괴수의 반응으로 위장한 화염술사 계열의 빌런'. 아마도 괴수의 코어를 들고 밀입국을 시도하는 멍청이일 것이다.
그런 멍청이와 운장이 격돌했다. 지부장은 적토의 마갑에 장비된 영상을 보며 이를 갈았다.
'...혼자서는 무리인가?'
다년간 영웅들의 괴수 전투를 지휘한 경험이 말하고 있다. 지금 운장과 적토는 이름 모를 빌런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역시 관운장!"
하지만 그 진실을 깨닫지 못한 직원들은 운장이 일방적으로 빌런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콰앙, 콰앙, 콰앙!
상황실에 폭음이 들려온다. 운장이 빌런의 보호막을 두드릴 때 마다, 부하들은 운장의 이름을 연호하며 운장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내가 만약 여기서 불리하다고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운장은 중국 히어로계의 '영웅'이다. 좋게 말해서 그렇고 실상은 당의 선전도구.
운장이 불리하니 후퇴를 지시하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것만으로 집에 공안이 들이닥칠 것이다. 운장의 위신을 깎아버렸다면서.
'만약 운장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럴 일은 없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당연히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지부장이 걱정하던 찰나, 운장이 빌런의 날개를 갈랐다.
[콰과과광!]
우레와 같은 폭발소리. 주변 일대를 모두 흔드는 듯한 기세에 둘의 전투를 송출하던 중계기가 망가졌다.
"어떻게 된 거야?!"
"방금 폭발 때문에 중계 드론이 망가진 것 같습니다! 적토 님의 마갑에 있는 영상으로 전환하겠습니다!"
모니터병이 황급히 영상 송출을 적토에게로 돌렸다.
적토의 투구에 달린 카메라에는 소녀가 화염구를 만들어 쏘아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이건...."
"젠장!"
지부장은 테이블을 거세게 내려치며 성을 냈다. 동시에 지부장의 단말에 벨소리가 거세게 울렸다.
띠리리리-
'헙.'
이 급한 상황에 누가 보안을 뚫고 전화를 했나 성을 내려던 지부장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하고 전화를 받았다.
"예! 류 요호 항저우 영웅협회 지부장입니다!"
[인사는 됐네. 바로 명령을 하달하지.]
지부장의 말을 자르며 본론을 말하려는 상대의 고압적인 태도에 지부장은 그저 저자세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이 중국 내 주석 아래 최고의 권력자로 알려진 자.
[운장과 전투 중인 '괴수'를 향해 미사일을 쏘았다. 전투 영상은 자네가 알아서 소거하도록.]
"예? 괴수라뇨, 적은 인간-"
[괴수라고, 분명 말했네.]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지부장은 순간 공황상태에 빠져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뭘 놀라는 건가. 괴수 하나를 적당히 날려서 타국으로 넘기자는 건 자네 의견이 아니었나.]
딸칵. 상대의 전화가 끊어지자 지부장은 멍하니 단말을 바라보았다.
국경지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괴수를 쫓아내 타국에서 처리하도록 떠넘기는 책략. 그건 분명 지부장이 본부에 있을 때 상부에 올린 계획이었다.
'그런데 미사일을? 이미 쐈다고?'
지부장은 벌벌 떨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이 드디어 나를 알아준 거다!'
먼 곳에 좌천되다시피 쫓겨난 몸이다. 몸은 협회에 두고 있지만 이미 마음은 협회에서 떠난 지 오래.
언젠가 당의 중앙에 들어갈 장밋빛 미래를 속으로 삼키며, 지부장은 재빨리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영상 중지! 운장께서 '오의'를 쓰실 거다!"
"예!"
부하들이 황급히 영상을 멈췄다.
운장의 오의는 당에서 직접 관리하는 전략적 대외비라는 이유로, 이렇게 부하들은 아무 의심 없이 상황실로 전송되는 영상의 재생이 멈췄다.
"어?"
모니터병 한 명이 막 영상을 끊으려다 손을 멈췄다. 빌런은 운장을 농락하듯 하늘을 불꽃의 구체로 가득 메웠다.
탈칵.
황급히 그 근처로 달려간 지부장이 영상을 정지시켰다.
"자네.'
"예, 예?!"
직원이 사색이 되어 대답했다.
"이전에 운장의 오의를 촬영해 시보에 올리려던 한 기자가 있었지. 어떻게 되었는지 자네도 알잖는가?"
"...히익."
괴수의 등장과 히어로 협회의 위상에도 중국 내에서 공안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지부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직원의 어깨를 토닥였다.
"됐네. 멈추었으니 다행이지. 이 이상을 봤다가는 아무리 협회라도 봐주지 않을 거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을 뒤로한 지부장은 정적에 휩싸인 상황실 전원을 향해 소리쳤다.
"운장께서 오의로 적을 물리칠 거다! 그러니 자네들은 당장 방금 전의 적이 어디서, 왜 이 바다에 나타났는지 파악하도록!"
"예!"
제정신을 차리고 제 역할로 돌아가는 직원들을 보며, 지부장은 차게 식은 눈으로 열심히 영상을 정리하는 직원의 뒤를 노려봤다.
'나중에 저걸 지우기만 하면 된다.'
지부장은 당의 훈장을 건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 * *
"정신 차려! 적토!"
샤오린이 흥분한 적토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히히히힝?!
남은 마력을 쥐어짜네 고삐를 강화했음에도 적토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적토의 이상행동이 '포식자를 앞에 둔 초식동물의 본능'임을 깨달은 샤오린은 적극적으로 적토의 기수를 돌리지 못했다.
'겁을 먹었어? 내가?'
언제나 강자 앞에서 더 전의를 태우던 자신이 적을 앞에 두고 무기를 떨어뜨렸다. 격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은 아직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치면 안 돼.'
샤오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언월도를 꽉 쥐었다.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 해안 도시에 상륙해 날뛰기 시작한다면? 자신을 놓친 빌런이 화풀이로 다른 도시에 상륙한다면?
'막아야 해.'
어쩌면 죽을 수도 있지만 막아야 했다. 그게 악인을 눈 앞에 둔 히어로의 사명이니까.
"적토, 제발! ...?!"
적토의 고삐를 다시 잡아당기며 시선을 불사조에게 돌리려던 찰나, 자신의 상공을 스쳐 지나가는 물체를 보며 샤오린은 사색이 되었다.
"저건?!"
적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을 보며 샤오린은 직감했다.
샤오린 혼자서 빌런을 감당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린 당에서, 적을 쫓아내기 위해 미사일을 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아."
적토는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적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샤오린은 미사일의 탄두가 적에게 닿기 직전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웃었어?'
푸른 머리칼의 소녀는 미사일이 자신을 때리는 그 순간에도, 웃고 있었다.
이윽고,
쿠우우우우우웅!!
소녀가 배에 미사일이 꽂혀 날려가는 것을 끝으로 샤오린은 막대한 마력의 폭발 속에서 의식을 잃었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미친놈들 아냐 이거.'
기존 재래식 병기가 괴수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건 이 세계에서 상식 중의 상식이다.
괴수의 외피에 작용하는 아주 얇은 마력의 막.
괴수는 성주가 파괴할 새로운 세계를 찾기 위해 마구잡이로 연 차원문에서 흘러나온 테라의 '마기'에 영향을 받아 태어난다. 이 마기의 영향으로 괴수는 순수한 지구의 힘만으로 쓰러뜨릴 수 없는 무적의 결계를 얻었다.
'이능력자만이 괴수를 쓰러뜨릴 수 있다.'
물론 지구 또한 그런 괴수에 대항하기 위해 그 마기에 반응하여 이능력을 얻게 된 히어로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현대의 군대는 치안 유지와 주민대피, 그리고 히어로가 도착하기까지의 시간벌기 등의 임무가 주된 임무였다.
'그런데 나한테 미사일을 쐈다고?'
나는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잠시 머리를 식혔다. 과연 마그마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숨쉬더니, 바닷속도 어떤 문제도 없었다.
'졸지에 방어 스킬도 테스트하게 됐네.'
온몸에 푸른 불꽃-'창염'을 둘러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기술, '창염의 베일'.
화속성 공격에 대해서는 그 힘을 흡수하고 저장한다는 무시무시한 성능의 이 스킬은 지금 비단 포처럼 내 온몸을 감싸고 있다.
'졸지에 미사일 하나를 달고 다니게 생겼어.'
애초에 피닉스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데, 도심 한복판에서 베일을 해제하기만 하면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내가 자폭 테러범도 아닌데 그럴 필요는 없지.'
베일이 흩날리지 않게 꽉 붙잡은 나는 체내에 흐르는 마력을 점검했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자.'
피닉스의 능력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미사일까지 얻어맞았다.
거기에 이 정도까지 강할 줄 모르고 12 영웅 중 한 명을 가지고 놀아버렸으니, 조만간 전 세계가 피닉스의 존재를 알게 될 터.
'안 돼. 피닉스는 미스테리함이 중요한데.'
모든 간부가 당하기 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만큼 신비주의가 강했던 캐릭터다. 최초의 등장이 보스전 직전 미 해군 항공모함에서 날개를 펼쳐 출격하는 장면이 아니던가.
'이제라도 조용히 살아야지.'
미사일을 맞고 바다에 처박힌 뒤로 지상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해해줄지도 모른다.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고.
'일단 마력부터 확실하게 숨기자.'
바깥으로 새는 마력이 없도록 단단히 갈무리하고, 체내의 마력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마력을 몸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쌓아 숨겼다.
'이럼 아무도 모르겠지?'
비록 즉각적으로 마력을 사용하기에는 어렵더라도 샤오린에게 걸리는 것 같은 사태가 또 일어나는 건 사양이다.
'그럼 이제 슬슬 움직이자.'
다행히 바닥이 경사를 보인다. 오르막을 쭉 오르다 보면 뭍이 나올 터.
나는 살포시 땅에 발을 디디고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걸어갔다.
'스킨스쿠버 하는 느낌이라 또 새롭네.'
빙의한 덕분에 마그마 속에서 헤엄도 쳐보고 하늘을 전투기처럼 날아도 보았다.
'하긴 살면서 어떻게 미사일도 맨몸으로 맞아보겠어.'
스스로가 겪은 황당한 일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아마 미사일을 쏜 것은 중국 내의 2인자이자 샤오린 이벤트의 메인 빌런, 대괴수관리대책본부의 국장 '모택평'일 것이다.
'그 양반 아니면 누가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겠어.'
괴수를 이용해 전 세계를 중국이 통일하려는 야망을 품은 자다.
미사일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면 그를 구실로 진짜 전쟁이라도 일으키려 했을 양반. 후에 명분 따위는 개나 주라면서 선전포고고 없이 미사일을 발사해대던 전쟁광.
그런 양반의 씨에서 그런 참한 아가씨가 나왔다고 믿기는 어렵-
"엥?"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이상하다. 무언가 턱을 지나온 느낌. 심지어 모래의 감촉도 조금 축축한 느낌이다.
'어. 잠깐.'
나는 제자리에 멈춰서서 원작의 경험을 떠올렸다.
7회차였나. 바닷속 괴수를 퇴치하는 임무에서 기껏 열심히 키웠던 여자 동료가 함정에 빠져 사망했다. 꽤 열 받아서 그 괴수는 그 다음 회차에도 철저하게 죽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괴수의 이름은 '서해무기'. 평소에는 모랫바닥 속에 숨어있다가, 먹이가 지나가면 재빨리 입안에 넣고 산성 액체를 뿜어내는 사냥 습성을 가진 괴수.
'그래 봐야 A급이지만.'
창염의 피닉스는 공식 설정상 S급 이상의 괴수다.
짐승이 그 근본인 이상 서해무기도 피닉스의 위험함을 본능적으로-
'아. 나 진짜 빡대가리인가봐.'
샤오린에게 시달릴까 봐 너무나 철저하게 마력을 숨겼다.
샤오린 정도로 강자에게는 그 숨겨둔 기세가 느껴지겠지만, 어중간하게 강한 녀석에게는 그저 약한 먹잇감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 그럼 조금만 해방을-'
체내에 묵혀둔 마력을 잠시 끌어올리기 직전.
수우욱!
바닥이 꺼지며 주변에 거대한 벽이 세워진다. 돔처럼 천장을 닫아버리는 그 모습에 나는 자신의 멍청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아, 진짜 시작부터 되는 게 하나도 없네.'
공식설정상 창염의 피닉스가 가진 행운 능력치가 E였던가. 나는 갑자기 치솟아 오르는 짜증에 화염구를 만들어 서해무기의 입안을 향해 쏘아댔다.
쾅! 콰광! 쾅!
캬오오오오오오!
"시끄럽고 그냥 뒤ㅈ-"
아.
물먹었다.
* * *
히어로 협회 신서울 지부, 대괴수 관측망.
언제나처럼 담배와 커피에 찌들어 레이더만 24시간 주구장창 보던 직원의 눈에 이상 현상이 들어왔다.
삐빅, 삐비빅.
"서해?"
인천으로부터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 아주 미약하지만 강렬한 괴수의 반응이 잠깐이나마 점멸했다.
"......?"
직원은 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반응의 크기에 따라 커지는 동심원은 분명 S급 이상의 크기였다.
"어라? 이젠 또 없네?"
잘못 본건가. 직원이 긴가민가하여 종이컵을 들어올리려던 찰나, 새로운 반응이 나타났다.
"으악?!"
A급. 도시 하나는 쑥대밭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괴수가 바다에서 서해의 육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비상, 비상을-"
삑.
이번에는 A급의 반응도 사라졌다. S급이든 A급이든 두 괴수의 반응은 온데간데 없이 말그대로 '증발'해버렸다.
"......도대체 뭐야?"
보고를 해야할까 속으로 망설이던 직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눈꺼풀을 붙였다.
"잠이 부족해서 그래...잠이...."
직원은 다시 꿈뻑 고개를 떨구며 잠꼬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