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1부 5장 (7)
<오후 9시, 신서울 정부청사 대통령 집무실.>
선의철이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LP판이 돌아가며 나오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심신의 안정을 가져온다.
덜덜덜.
그러나 그의 다리는 사정없이 떨렸고, 두 손은 손잡이를 타닥타닥 두드렸다. 무엇보다 시선이 맞은편 소파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선의철의 현 상태를 두 글자로 표현하자면, 초조.
그는 몹시 초조해하고 있다. 2%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도 담담히 인사하던 그가 지금 떨고 있다.
푸스스. 소파 옆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크게 울렁거렸다. 선의철은 태연함을 가장하고 찻잔을 들어 올렸다.
"어떻게 됐나?"
"안 됩니다. 경계가 너무 삼엄합니다."
청송은 불에 타버린 제 팔을 들이밀었다. 가냘픈 손목이 훤히 드러났다. 선의철은 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소리 질렀다.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지금 내가 자네한테 그 소리 듣자고 이 시간까지 기다린 건 아니지 않나!"
선의철이 그답지 않게 성을 내지만, 청송의 대답은 단호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낮에는 새가 지켜보고 있고, 밤에는 등대가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여의도 근처에 가기만 해도 곧장 공격이 날아옵니다."
"젠장!"
선의철은 화를 삭이며 차를 들이켰다. 심정이야 지금 당장 여의도로 달려가서 빌런들의 모가지를 따버리고 큐브를 찾고 싶지만, 선의철은 비능력자다.
신은 그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여줬어도, 이능력은 주지 않았다.
결국 소나무 부대만이 그가 음지에서 움직일 수 있는 히어로 전력의 끝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는 여의도에 잠입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분을 삭인 선의철이 질문했다.
"또 예의 그 S급인가?"
"예. 틈을 조금만 보여도 귀신같이 나타나 공격합니다. 유독 목을 자르는데 신경 쓰는 것이, 분명 상자를 보낸 장본인일 것입니다."
선의철은 제 목을 쓸었다. 상자에 소나무 부대원들의 목을 담아 정부 청사 옥상에 던지고 간 괴물은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는 속도로 선의철의 정수리 위를 다녀갔다.
광검이 재빨리 요격에 나섰지만, 괴물은 그 공격을 유유히 막고 도망쳤다고 했다.
"끙. 광검은 아직도 소식이 없나?"
"네. 아직 소식 없습니다. 폐관 수련 중이니 언제 나올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선의철이 혀를 찼다.
"현실이 무슨 무협지인가? 거 참. 21세기에 폐관 수련이라니."
"초월의 경지에 오를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한 건 대통령님 아닙니까?"
청송이 어이없다는 듯 따졌다. 선의철은 입을 오물거리다가 차로 목을 축이고 말했다.
"설마 이 주 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을 줄 몰랐지. 이보게 청송, 자네가 S급 되면 안 되겠는가? 벌써 6년째 A급에서 발전이 없는 것 같은데."
청송이 울컥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능력의 각성이 어디 쉬운 건 줄 아십니까? 평생을 노력해도 C급 이상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히어로가 전 세계에 수만은 될 겁니다."
"이승형은 한 방에 S급 됐잖아?"
청송의 주먹이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불에 그을린 의복 사이로 튀어나온 손은 섬섬옥수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희고 고왔다.
"그건 화권님이 비정상적인 겁니다. 유사 이래 S급에 이른 화염 술사는 고작 1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급작스런 각성의 반동인지 몰라도, 그는 아직도 설화공주와 함께 병원에서 요양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에 여의도는 손도 대지 못한다는 말인가. 하아."
선의철이 탄식했다.
정황으로는 분명 사악한 악당들의 손에 큐브가 들어갔을 것이다. 국회의사당에 자리 잡은 S급 괴수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빌런들이 국회의사당에서 특사단을 맞이했다는 게 그 심증이었다.
"어쩔 수 없군. 큐브의 진정한 힘을 모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청송, 준비는 끝났나?"
"예. 10명의 히어로들 모두 잠재웠습니다. 오늘 밤 연구동에 그들을 넣고 각인을 시작하면, 대략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청송은 손가락으로 목을 가리켰다. 선의철이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웃었다.
"좋네. 진실을 알아버렸으나 살인 멸구 할 수는 없으니, 입마개를 채워야 하지 않겠나. 자네 덕분에 내가 오늘도 두 발 뻗고 편안히 지내네. 항상 고맙네."
"......별 말씀을."
청송이 낯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선의철은 미묘한 눈빛으로 청송에게 질문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그저...."
청송은 잠시 뜸을 들였다.
"대통령님께서는 제가 S급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십니까?"
"......허, 그걸 신경 쓰고 있었나?"
선의철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괘념치 말게. 자네가 직접 말하지 않았나. S급 되는 건 몹시나 어렵다고.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무리할 필요 없어."
"......."
청송이 아무 말이 없자, 선의철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괜히 자네도 광검처럼 폐관 수련 같은 거 들어가지 말게. 자네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해. 자네가 나를 이 자리까지 올려준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알겠습니다."
청송이 고개를 숙였다. 의자에 앉아있던 그대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선의철은 묵묵히 남은 차를 들이켰다.
"쯧."
차의 끝 맛은 텁텁했다. 선의철은 그대로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저것도 이제 더 못쓰겠군."
그 누구도 듣지 못한 선의철의 독백이 음악을 타고 허공에 흩어졌다.
* * *
<청화단 아지트.>
대전 연구 단지 어딘가에 큐브가 있다.
내 폭탄 발언 아닌 폭탄 발언에 간부들이 말문이 막혔나 보다.
"허...."
"아니, 그게 말이...."
덕배를 제외하고는 다들 하나같이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공통된 반응을 보인다. 지화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런 게 있으면 당장 그걸 찾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진정하게."
류천성이 손을 들어 지화를 제지했다. 지화를 다그치는 눈이지만, 내게 향하는 잠깐의 시선에는 추궁이 담겨있었다.
"이보게 단장. 자네는 어디의 누가 큐브를 연구하고 있는지 아는가? 대전 연구 단지가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겠지?"
"...아니요? 하지만 의심 가는 곳은 있어요."
내 말에 류천성이 잠시 침묵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확신할 수 없기에 움직일 수 없다는 건가."
류천성의 말에 나는 손가락을 튕겨 긍정했다. 다른 이들은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운 눈치였다. 나는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한 마디로 부연설명을 했다.
"연구소는 광검의 '영역' 안에 있어요. 들어가는 즉시 광검이 달려들겠죠."
"아."
"광검...."
모두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만큼 광검이라는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은 무거웠다.
"그래서 대전은 어쩔 수 없어요. 광검이 신서울을 벗어난다면 모를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거죠. 바로 이 서울에서."
"하긴. 당장 서울만 하더라도 쌓인 문제가 산더미지."
류천성이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슬슬 회의를 마치기 딱 좋은 시점이다.
"네. 그런데 말이에요."
나는 스마트워치를 가리켰다. 이미 시각은 9시를 훌쩍 넘겨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다들 그동안 열심히 했잖아요? 특사단과 협상을 통해 한시름도 덜었고. 모처럼 내일 토요일이고 하니까...."
모두의 표정이 환해졌다. 다들 내 의도를 읽은 눈치였다.
"이번 주말은 편하게 쉬죠? 밤늦게까지 잡아둬서 미안해요. 그러면 우리 모두 한숨 잠이나 푹 자봅시다. 청화단 간부진들, 모두 해산!"
그 말을 끝으로, 회의는 막을 내렸다.
* * *
<같은 시각, 신서울 외곽 호텔.>
"언제까지 우리는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이기성이 문을 두드리며 따지고 들었다. 쿵쿵대는 소리가 벽 쪽의 유리창을 흔들 정도로 컸지만, 밖에서 그들을 지키고 있는 경비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젠장!"
이기성은 문을 거세게 발로 찼다. 강철로 된 철문이 신발 앞굽의 자국으로 움푹 파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밖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다.
"후우, 후우."
그는 심호흡으로 화를 삭이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안양에서 차량에 태워져 이곳 신서울의 외딴 호텔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그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포토타임을 잠깐 가지고 바로 이곳으로 이송되었다.
- 몇 주간 고생하였을 테니 호텔에서 하룻밤 묶어 피로를 풀며 내일은 준비하라.
정부에서는 히어로들을 배려해 최고급 시설의 호텔을 내어줬지만, 이기성은 이 호텔 방이 여의도의 허름한 방보다 더 감옥 같았다.
아니, 감옥이 맞았다.
그들은 현재 신서울에서 다시 갇혔다. 살아 돌아왔다는 죄가 아니라, 알 필요 없는 '진실'을 알아버렸다는 죄목으로.
"선의철, 이 개자식이...."
이기성은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소나무 부대. 민간인 학살. 그 무엇도 히어로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거대한 죄악이었다.
하지만 이기성에게는 힘이 없다. 그는 서울 수복 작전에서 헬하운드에게 물려갔을 정도로 약한 C급 히어로.
히어로 위키에서도 '정의롭고 사명감은 넘치지만 그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촌철살인의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이기성은 쇄골 부분을 손으로 쓸었다. 아직 그의 피부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오늘 밤이 지나면 곧 하나의 문장이 새겨질 것이다.
소나무 문장.
이기성을 비롯해 납치당했던 히어로들은 범죄자가 아님에도 소나무 부대의 낙인이 찍혀 선의철의 노예가 될 것이다.
순간, 이기성의 머리에 꾀꼬리같은 여인의 웃음섞인 목소리가 떠올랐다.
- 진실을 외면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좋아요. 대신 다음에 소나무 부대로 만나면 적이에요? 푸흐.
"이래서야 그놈들 말대로잖아."
긴가민가했다. 빌런이 말하는 교묘한 감언이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히어로가 민간인을 학살한다는 충격적인 광경은 그들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어두었고, 그 씨앗은 이 호텔에 갇히게 되며 싹을 틔웠다.
외부와의 연락 차단. 하룻밤의 시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이기성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실례합니다."
두꺼운 철문이 열리며 검은 슈트 차림의 여인이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물들인 여성의 가슴팍에는 '괴수대책부'라는 문구가 새겨진 명찰이 달려있었다. 이름도 없이.
이기성의 몸은 자연스레 긴장되었다. 여인이 손을 밀자 두꺼운 철문이 굳게 닫혔다.
야심한 시각, 외딴 호텔 방에 둘만 남겨진 남녀. 이기성은 침을 꼴깍 삼켰다. 여인이 피식 웃었다.
"C급 히어로 이기성 요원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슬슬 이동하겠습니다."
"...어딜요?"
이기성은 슬쩍 여인의 전신을 살폈다. 추잡스러운 목적으로 몸매를 살피는 게 아니라-물론 몸매도 좋았지만-, 상대에게서 흐르는 마력의 잔향을 확인했다.
없다. 상대는 이능력자가 아니다. 이기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인은 인자한 얼굴로 답했다.
"혹시나 차원문의 영향으로 신체에 이상이 생기거나 한 게 아닌지, 대전 연구 단지에서 검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차원문은 닫혔지만, 그 여파가 남아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네."
그럴싸하다, 고 이기성은 생각했다. 이유 모를 불쾌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잠시 정적. 초침만 째깍째깍 흘렀다. 여인은 슬쩍 스마트워치를 확인하고는 방 안을 훑었다. 여인의 시선이 책상 위에 올려진 식기에 닿았다.
"저녁, 안 드셨네요?"
죽과 스프. 그리고 약간의 영양제. 장기간 식사를 걸렀을 히어로들을 위한 배려가 담긴 식사였다. 이기성은 부끄러운 얼굴로 변명했다.
"제가 유동식을 좀 싫어해서...."
이기성은 여인의 시선을 피했다. 노려보는 것이 꼭 송곳으로 찔러버릴 듯한 기세였다.
"하아."
여인의 깊은 한숨이 이기성의 심장을 흔들었다. 식사 투정을 부리는 히어로에 대한 한심함과 동시에, 아주 미약한 짜증이 서려 있었다.
여인이 스마트워치를 두드렸다.
"마지막에 와서 귀찮게 하네, 정말."
쾅!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 선글라스의 양복 사내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목을 스카프로 가리고 있었다.
"...!"
이기성은 화들짝 놀라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검은 양복의 사내들은 이기성을 제압해 무릎 꿇렸다.
이기성의 어깨를 잡은 사내들의 장갑 너머로 약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여인이 손으로 넥타이를 끌어 내렸다. 답답한 듯 셔츠의 맨 윗단추를 풀자, 쇄골 끝에 소나무 문장의 끝자락이 빼꼼히 드러났다.
"뭣?!"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기성의 당황한 눈동자에 여인은 오른쪽 입꼬리를 올렸다.
"궁금하지? 어쩌니. 가르쳐 줄 생각 없는데."
여인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소꿉놀이에서나 나올법한 아주 작은 주사기. 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보라색 액체가 흔들거렸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돼.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달라져 있을 거야. 으휴, 왜 괜히 밥투정을 부려서 사람 귀찮게 하고 난리야."
푹. 주사기의 바늘이 이기성의 목을 찔렀다. 마력이 순간적으로 다 증발해버리는 상실감과 함께 이기성은 의식을 잃었다.
♪♬
모두가 사라진 호텔 방.
천장에 숨어있던 작은 카나리아 한 마리가 유유히 창문을 통과해 옥상으로 날아갔다.
* * *
우우웅.
밤바람이 차다. 달은 예쁘게 반달로 하늘에 걸려있었다.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옥상 난간으로 다가온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눈치가 좋네요. 모를 줄 알았더니."
"B급 밑으로는 간부 아니라며? 그러니까 나는 해산 못 하지."
맞다. 아직 C급인 덕배는 간부가 아니다. 덕배는 내 말 마지막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이렇게 따로 나를 찾아왔다.
간부는 해산. 덕배는 그저 조무래기인 주제에 짬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을 뿐이다.
"눈치는 A급이네요. 정령석 덕분인가?"
"됐고. 본론부터 말해. ...갈 생각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배가 골치 아프다는 듯 제 관자놀이를 눌렀다. 나는 웃으며 덕배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깐 정찰만 갈 거예요. 알겠죠?"
"가는 곳이 광검이 있는 대전인 거는 비밀로 하고 말이지. 하아. 너 광검 이길 수 있냐?"
"이길 수 있냐고요?"
나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이 지구상에 단독으로 저를 1:1로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어요."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의 원천이 뭔지 궁금하긴 한데, 일단 1퍼센트라도 광검 이길 수 있다 치자. 그러면 그 뒤는 어떻게 할 거야?"
"뒤?"
내 반문에 덕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이랑 중국이 가만히 있겠냐? 광검 무너지면 곧장 신서울로 원탁 파견할걸?"
"일본은 모르겠지만 중국은 가능성 있죠."
화권은 병상에 들어갔고, 설화공주는 절치부심하며 수련에 들어갔지만 나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사실상 광검 말고는 그 위상에 크게 흠집이 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광검이 살해당한다면 한국의 히어로 전력은 절반 이상이 사라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그 놈들, 차원문 때도 보니까 서해에서 진치고 대기하고 있었던 걸요."
그리고 일본과 중국은 곧장 한국을 집어삼키러 올 것이다. 국제 사회가 극동의 작은 나라의 사정을 봐주기에는 이미 많이 혼란스러운 와중이니.
덕배가 떨떠름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최악의 상황은 피하자며?"
"괜찮아요. 그때는 둘이서 감당하면 될 테니까."
"누구? 천가을이랑?"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동족이요."
"...그 정령? 야, 잠깐. 광검이랑 정령이랑 무슨 관계라도 있냐?"
"당연히 있죠. 아. 신호 왔다."
저 멀리 남쪽에서 마력의 파장이 울렸다. 나는 옥상 난간에 일어서 손을 털었다.
"혹시 누가 저 찾으면, 피닉스는 밤놀이 갔다고 해줘요."
화륵. 내 시야가 푸르게 물든다.
잠깐의 현기증과 함께 다시 눈을 뜬 곳은 미니피닉스가 숨어있던 호텔의 옥상. 나는 이기성에게 붙여둔 미니피닉스로 전이했다.
부우웅-!
이기성과 히어로들이 거센 엔진 소리로 호텔을 빠져나갔다.
나는 조용히 옥상에서 내려와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