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9화 (139/1,497)

〈 139화 〉외전3. 온천 여행 (7)

<오후 4시 30분, 황신당 1층 라운지.>

"그래서 이제 서로는 잘 알았죠?"

원형의 테이블을 두고 앉은 피닉스는 캔음료를 홀짝이며 좌중을 훑었다.

청화단 간부, 빌런 천가을, 김지화, 유이신.

원탁 대표, 히어로 석하랑.

잡상인 은유하.

"잠시만요. 잡상인?"

"괘씸죄에요. 이상한 짓 하려고 한 거에 대해."

피닉스의 말에 유하는 별다른 부정을 하지 못했다. 가을과 하랑, 그리고 사장을 통해 이루어진 크로스 체크에 의해 유하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피닉스는 은유하를 저와 가장 먼 거리에 배치했다.

"흠흠, 그럼 다시 소개하죠. 유성의 주인, 은유하. 저랑은-"

"사랑으로 맺어진 비밀 친구죠."

"금전으로 맺어진 비밀 동맹입니다. 자꾸 사람들 오해하게 하지마요, 망나니. 그럼 다음은...."

피닉스가 하랑을 가리켰고, 하랑은 청화단의 앞에서 상당히 조신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설화공주> 석하랑입니다."

"물속성 정령이고, 서울에 5천명 수속성 이능력자를 만든 장본인이에요. 참고로 지금은 일반인 코스프레해고, 친해지면 부산 사투리에 반말 찍찍 내뱉으니까 적당히 알아서 처신하세요."

하랑은 제 손에 쥔 머리핀을 손톱으로 슥 긁었다. 피닉스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가 청화단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쪽은 우리 간부진. 제 왼쪽부터 <팬텀>, <등대>, <궁성>. 서울에 있는 사람이랑 아직 안 온 사람이 있기는 한데, 일단 이정도로 소개할게요."

"야."

가을이 촉수로 피닉스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바닥을 기어 의자 자리를 타고 오른 촉수는 다행히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았다. 피닉스가 가을에게 귀를 기울였다.

"우리 그러면 이명으로 불리게 되는 거야? 저 설화공주 앞에서는?"

"......소개해도 돼요?"

가을과 지화, 이신 모두 피닉스의 말에 긍정했고, 피닉스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주의를 환기했다.

"여기는 <팬텀> 천가을, 전직 배우에요.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살아있죠."

"덧붙여서 지금은 A급이지만 언제든 S로 올라갈 이능력자야.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와, 대박 소름."

하랑은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에 놀라 입을 막았다. 비슷하다고 느끼기야 했지만 설마 이능력자가 되어 살아있을 줄이야.

"...소름?"

가을은 흠칫하며 촉수를 쓸어모았다. 역시 일반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외형일까. 하랑이 그 불편한 낌새를 눈치채고 곧장 손사레를 쳤다.

"아니에요! 그런거. 저 <마지막 사랑> 첫회부터 본방사수 했었거든요.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고마워."

가을은 촉수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아홉 꼬리가 모두 길게 뻗어졌다가 다시 늘어지는 기이한 움직임에 하랑은 눈을 깜빡이며 놀랐다.

"전부다 마력으로 컨트롤 하시는 거예요?"

"놀라는 포인트가 거기야?"

"언니야...는 저게 안 놀라워? 하나하나 멀티태스킹을 하는데?"

유하가 어깨를 으쓱이며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나야 맨날 '사람' 일곱 명 분량 움직이는 걸."

"흥, 겨우 일곱? 나는 아홉이나 되는 걸."

다시 유하와 가을의 시선이 부딪혔다. 하랑은 이미 둘이 알고있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시선을 돌렸다.

"그, 그러면 여기있는 분들도 네가 말하던 그 <괴인>?"

"그렇습니다. 설화공주 님께서는 저를 모르시겠지만...."

이신이 변장을 풀었다.

"저는 <로빈>으로 알려졌던 소나무 부대 소속 B급 히어로, 유이신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궁성>이라는 이명을 받고 A급 빌런으로 현상금이 붙었죠."

"아, 알아요. 곡사의 로빈. 그럼 이쪽은...?"

지화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고개숙여 인사했다.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뒤집힌 악마눈에 하랑이 흠칫 놀랐다.

"현재 <청화단>의 단장으로 알려진 <등대>, 괴인 김지화라고 합니다. 물론 바지사장 같은 거고 실제로 청화단의 주인은...."

지화가 피닉스를 곁눈질로 가리켰다. 피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화의 뒷말을 긍정했다.

"나머지 넷이 더 있기는 한데, 둘은 서울에서 지금 일하고 있고, 한 명은 지금 선약으로 사람 만나고 있어요. ...덕배는 어디갔어요?"

"...하늘성과 함께 온다고 했습니다."

"뭘 돌려말해요. A급 빌런 <하늘성>의 이름은 류천성이에요. 누군지는 알죠?"

"이 사람들 뒤에서 뭔 난리를 친거야?"

하랑은 기가 찬 얼굴로 피닉스와 유하를 번갈아봤다. 피닉스와 유하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하랑에게 말했다.

""악당짓이요.""

"허이구, 지금까지 한게 악당질이면 진짜 악당들 울겠다."

피닉스가 하랑의 말에 손가락을 튕겼다.

"말 한 번 잘 했어요. 청화단의 활동 목표 중에 하나가 '멸망의 씨앗'들을 제거하는 거죠."

"그냥 비유하는 거야. 선의철같은 학살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막는 거지. 그래서 우리도 얘 악당놀음에 한 손 거들고 있고."

가을의 말에 피닉스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노, 놀음? 가을 씨, 저 지금 엄청 열심히 일하고 있거든요? 그게 다 놀이라고요?"

"그럼 정정할게. 유사악당이야. 다크 히어로라고 부르면 좋겠는데, 하는 짓 봐서는 그렇게 말하기도 힘들어."

"그건 공감해요. 남의 아버지한테 한 짓 생각하면."

하랑의 대답에 지화가 선글라스를 떨어뜨렸다. 왜 놀라나 곰곰이 생각한 하랑은 피닉스에게 따지고 들었다.

"이 분들 내 아버지에 관한 거 몰라?"

"아니. 당신이 그렇게 담담하게 얘기할 거라고는 생각 못하는 거죠."

"......단장님. 일단 이것부터 해결하면 안 되겠습니까?"

지화가 손을 들어 피닉스를 불렀다. 피닉스는 예상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는 테이블에 앉은 이들을 모두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끼리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모르는 지 너무 많이 차이가 나는데, 일단 정보라도 공유하면 안되겠습니까?"

"좋아요. 석하랑도 이제 한 배를 탄 사람이니까. 지금 시간이...."

"오후 4시 40분입니다."

이신이 재빨리 답했다. 피닉스는 만족한 얼굴로 사람 수를 세었다.

"여기에 6명, 덕배랑 류천성 까지 2명. 좋네요. 여기 저녁 된다고 했죠?"

"예. 사장님이 바베큐를 준비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피닉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다.

"자. 그러면 우리 10명 모두 저녁 식사나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나 할까요?"

"......10명?"

가을이 얼굴을 찌푸렸고, 피닉스는 제 귀를 가리켰다.

"지금 엿듣는 두 명까지 포함해서 10명이죠. 자기 지금 원탁 들어갔다고 은근슬쩍 공유채널 열어둔 누구랑, 그거 해킹해서 듣고있는 꼬마 아가씨까지. 이참에 다 까발리고 편하게 지내죠."

피닉스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하랑을 향해, 아니 하랑의 스마트워치를 통해 몰래 듣고있던 히메지 하야테와 히메지 히카리를 향해 선언했다.

"듣고 있으면 내려와요, 히메지 남매."

잠자코 있던 두 일본인 남매가 내려오고, 곧 류천성과 조덕배가 도착했다.

그들은 사장이 준비한 바베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오후 7시, 각자의 호실.>

[205호, 히메지 남매의 방.]

"어쩐지 너무 순순히 제 정체를 드러낸다 싶더라."

하야테는 침대에 걸터앉아 멎쩍은 얼굴로 웃었다. 하랑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스마트워치에 대고 말했다.

"그래서 원탁에 다 까발릴 생각이야?"

"전혀. 여기서 도망을 칠수나 있어? 너 저거랑 완전 편 먹었는데."

"완전 편 먹은 건 아니야. 원탁도 그렇지만 '최종 목적'이 같은 거지. 우리는 남극으로, 쟤들은 북극으로 돌아서 지구 반대편에서 만나자는 거지."

"멸망의 예언을 막는 건 같지만.... 뭐 됐어."

하야테는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내가 왠만하면 어떻게든 도망쳐서 가웨인한테다 말하려 했거든?"

"그런데 왜 안했대?"

하랑의 의문에 하야테는 침대를 팡팡 두드렸다. 그 침대는 하야테의 것이 아니었다.

"내 동생 앞길 막을 일 있냐."

질풍객의 또다른 이명, '살인귀'. 그는 진짜로 사람을 죽인 악인이었고, 가웨인은 그를 교정하기 위해 검으로 쓰러뜨려 그를 원탁에 집어넣었다.

"나야 내 동생 잘 되면 그만이지. 키워준대잖아."

하랑은 허탈하게 웃었다.

"참 대단한 형제애구나."

"물론 나도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지. 쟤가 걔지? 관악에서 너 쳐발랐다는 <블루 피닉스>."

"...안 쳐발렸거든? 거어어어의 호각이었거든? 지금 싸우면 이길 수도 있거든?"

"거짓말은 됐고, 너 쟤한테 내 부탁 하나만 들어달라고 해줘라."

하야테가 들뜬 미소로 제 허리춤의 검집을 가리켰다.

"딱 한 판, 딱 한 판만 싸우게 해줘."

하랑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하야테를 비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나부터 이겨보시던가. 야, 밖으로 나와. 나 지난번에 결계치는 법 배웠으니까 어디 한 번 붙어보자."

"......식후 운동으로 딱 좋겠네. 콜."

잠시 뒤, 부산 바다 깊은곳에서 얼음으로된 결계가 펼쳐졌다.

* * *

[204호, 은유하의 방.]

"그래서 유성의 기술 연구소에 얘를 넣어달라?"

유하는 안쓰던 안경까지 들고 피닉스가 적어준 내용을 읽었다.

잡다하게 적힌 리스트에는 '히메지 히카리'가 앞으로 5년 동안 어떤 연구를 하고 실제로 어떤 성과를 낼지 쭉 적혀있었고, 유하는 그것의 실제적 가치와 히카리를 받아들였을 때의 디메리트를 본격적으로 비교하고 있었다.

"최소한 손해는 아닐 거다."

피닉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가을은 둘만 놔두게 할 수는 없다며 그 사이에 의자를 들고와 앉아있었다.

"네가 경제 방면으로 천재라고 한다면, 그 아이는 '마도과학' 쪽으로 너 못지 않은 천재가 될 아이다. 내가 보장하마."

"고객님이 말씀하시는 거야 당연히 믿죠. 하지만 이 내용들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렇죠."

유하가 스크린을 두드렸다.

"4세대 코어웨폰? 이제 1세대가 상용화되고 있는데?

개인 마력 친화율 검사기? 그런게 있으면 누구나 다 자기 재능을 파악하죠. 심지어 친화율 단계까지 정확히 파악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갈지 알아낸다고? 나 참.

각성 여부 확인 장치? 이건 또 뭐예요? 각성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마법의 아이템? 세상에 자기가 각성했는지 안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S급 이능력자를 발굴?

거기에...."

유하는 리스트의 마지막에 적힌 문구를 가리켰다.

"'큐브 제어 장치'?"

"설명하려면 좀 긴데."

"괜찮아요, 그러니까 설명해봐요."

속에서 무언가 욕구가 끌어올랐지만, 피닉스는 설명을 간추렸다.

청화단이 없었다면 청송 강소연은 대전에서 큐브를 계속 연구했을테고, 한국으로 귀화한 히카리를 대전으로 데려가 연구를 시켰을 것이다. 온갖 장치들을 개발하며 재능을 착취당하던 히카리는 결국 큐브의 연구에까지 활용당하게 되고, 큐브의 위험성을 깨달은 히카리는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렇게 탈출에 성공한 히카리는 착한 히어로들의 비호 아래 큐브를 적절히 제어할 방법을 찾아내지. 이계에서 넘어오는 오염된 마력을 정화해 S급 코어를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장치를 만든다."

피닉스는 아쉬운 듯 비어있는 제 앞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니까 큐브 하나로 나라 하나가 먹고살 마력 에너지를 뽑아낼 무한 동력 발전소를 만든다는 거다. 저 꼬마애가."

"풉--!"

가을이 커피를 뿜었다. 피닉스는 그게 유하에게 닿기 전 재빨리 손가락을 튕겨 커피를 소멸시켰다. 가을은 촉수로 제 앞뒤를 두드리며 기침을 토해냈다.

"그, 그러면 그 때 나 부활시키면서 썼던 큐브라는 게...."

"경제적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지. 그냥 그대로 두기만 해도 마력을 무한히 뽑아내는데."

"......최소한 S급 코어 수 만개 분량의 가치는 증명해주셔야겠네요, 천가을 님."

유하는 날선 목소리로 가을을 노려봤다. 가을이 어쩌다 죽어서 부활했는지 이미 들었기에, 가을을 보는 유하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가을은 촉수를 꼼지락거리며 변맹했다.

"그, 그래도 아직 26개나 남아 있잖아!"

"미안. 내가 하나 썼다."

"뭐라고요?!"

유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피닉스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변명거리를 즉석에서 만들어냈다.

"......중국 히어로들을 막을 때 급하게 썼어. 폭주하려고 하길래 소멸시켜버렸다."

차마 창염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큐브를 사용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창염의 존재를 말했다가는, 곧장 창염이 제 몸을 빼았아 이들을 죽여버릴 것이다.

다행히 유하와 가을은 어물쩍 넘어가려는 피닉스의 태도에 딱히 뭐라 따지고들지는 않았다.

"가치를 제일 잘 알고있는 분이시니 어련히 잘 알아서 쓰셨겠죠."

"대신 다음에 구하면 바로바로 얘기해. 엄한데다가 쓰지 말고. 알겠어?"

"...알았다."

피닉스는 왠지 바가지를 긁히는 느낌이 들어 속으로 혀를 찼다. 계산상 최소 큐브 다섯 개는 앞으로 따로 더 써야하는데.

'해외출장 다닐 때 몰래몰래 하나씩 찾아야겠군.'

입이 무거운 부하로 데리고 다니자. 피닉스는 속으로 음흉한 계획을 세우며 철면피를 깔았다.

"그러니까 히메지 히카리를 한 번 잘 써봐라. 시간은 앞으로 한정되어 있어도, 네가 예산을 마음껏 퍼부어주면 그 이상의 성과를 내줄테니."

"당신은 그만큼 코어를 수급해오고?"

피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 그러면 그런 중요한 인재를 지금 가만히 내버려둬도 돼? 옆에서 지켜야 하지 않아?"

"이 건물에 S급 이상이 몇이나 있는데 무슨. 괜찮다. 지화."

피닉스가 등대 김지화를 호출했다. 지화는 곧장 응답하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단장님. 저기....]

[이거 개쩔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어!]

[거, 거긴! 사, 살려주십시오! 만지면 안, 꺄아악!!]

녹색의 활을 음흉한 미소로 쓰다듬는 히카리의 모습에 유하와 가을은 피닉스를 노려봤다. 피닉스는 목에 걸어둔 베일을 만지작 거리며 모른척했다.

"......'괴인의 무기화', 굳이 매커니즘을 따지자면 저건 5세대 코어웨폰이라서."

[코어에서 흐르는 마력이 무기 전체에 흐르고...흐흐흐, 으흐흐흐흐흐흐흐.]

유하는 손을 뻗어 피닉스의 스크린을 내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피닉스는 유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잘 키워봐라."

"졸지에 애엄마 됐네, 우리 회장님?"

"......."

유하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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