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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4화 (144/1,497)

〈 144화 〉1부 8장 (3)

불꽃 늑대에서 내린 피닉스와 두 간부는 순순히 집정관의 안내를 따라 안양으로 내려왔다. 화마룡이 이승형을 쫓다가 만든 길은 졸지에 도로가 되어버렸고, 아키택트에 의해 4차선 포장도로로 탈바꿈했다.

"저기…."

이승형이 조심스레 피닉스에게 다가갔다. 피닉스는 가녀린 소녀를 연기하다가 이승형을 보고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뭐예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그대로 튀어나오자, 이승형도 피닉스도 놀랐다.

두 간부는 코스프레를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본성을 드러내나 싶었지만, 다행히 그걸 들은 이는 이승형과 집정관 유영호밖에 없었다.

"그…. 혹시 저랑 예전에 만난 적 있지 않습니까?"

"......."

피닉스는 리무진 차의 안에서 엉덩이를 옆으로 옮기며 이승형으로부터 멀어졌다. 이승형은 상대가 오해한 게 아닐까 당황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뇨! 절대 헌팅한다거나 그런 게 아닙니다! 진짜로 당신을 본 것 같은 기분이-"

"화속성."

피닉스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화속성이면 누구나 제가 강화할 수 있어요. 그게 괴수든 이능력자든."

"......!!"

이승형은 그제서야 상대의 진짜 정체를 눈치챘다. 꿈속에서조차 만나기를 바라왔던, A급이었던 자신에게 S급으로 오르는 힘을 준 태양의 화신이 바로 눈앞의 청화였다.

"감사합니다."

"감사 받을 일을 한 적이 없는데요."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모로."

이승형은 직감했다. 눈앞의 이 소녀가 천가을을 구한 장본인이라고.

"그.... 혹시 제가 뭐 도와드리거나 할 일은-"

천가을은 비록 알 수 없는 이유로 괴물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건 청화 덕분이 분명했다. 이승형은 얼굴을 붉히며 청화의 시선을 끌었다.

"화속성…? 그 속성론? 과연. 이승형도 흑염소도…. 괴수들이 따르는 이유도.... 그렇군. 그래. 그런 거였어."

유영호는 피닉스가 던진 단편적인 정보 만으로도 피닉스의 실체에 대해 어느정도 사실에 가깝게 유추해냈다.

"그 "화속성"이라는 자들만 강화할 수 있는 모양이군. 종족에 상관없이."

"맞아요. 상대가 재능만 있으면 S급으로도 올릴 수 있죠. ...저는 고생을 좀 하지만."

피닉스는 일부러 말을 흘리며 여지를 남겼다. 재능있는 이를 각성시키는데에도 명박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는 피닉스의 말에, 유영호는 홀로 자문자답하며 그 리스크를 추측했다.

"본인의 마력? 수명? 그도 아니면 기억? 그처럼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른 법인데…."

"......."

그런 거 없다. 피닉스는 굳이 유영호의 삽질과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

괜히 "노 리스크로 화염술사 각성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유영호는 10만 화염술사 양병설을 주창하며 피닉스을 괴롭히려 들 게 뻔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생이 정말 많으십니다. 청화 양."

"별말씀을."

피닉스가 이승형을 S급으로 각성시켰다는 것을 시인한 순간부터, 청화단의 두 간부진은 스마트워치를 통해 급히 회의에 들어갔다.

-쟤가 천가을 썸남인데 왜 각성시켜준 거지?

-몰랐거나, 반했거나. 나는 몰랐다에 B급 코어 하나 걸지.

-그럼 나는 반했다에 B 코어 둘. 이성으로 반한 게 아니라 재능에 반한 걸 수도 있잖아?

딱! 유영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리무진 안에 탄 이들의 시선이 유영호를 향했다.

"석하랑을 이겼던 SS급의 빌런, <피닉스>. 자네가 강화시켜준 이능력자군."

"......."

피닉스는 먼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유영호의 원대한 착각을 바로잡아줄까 고민했으나, 유영호는 너무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가설을 설파하고 있었다.

"SS급에 오를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이가 있었고, 자네는 그 남자를 SS급 이능력자로 만들었어."

청화와 피닉스가 동일인물이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유영호였다.

정답에 '가까운' 가설을 추론하는 것은 제법 잘 하지만, 본인의 경험과 상식 선에서 판단하기에 비상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헛다리를 잘 짚는다.

-상식적으로 사실 저 꼬맹이가 사람 목숨을 벌레로 아는 SS급 괴물이라는 건 믿기 힘들지.

-그럼 어떡해? 마력 검사할 때 들통나지 않아?

"걱정마세요."

피닉스는 차안에 탄 네 남자를 둘러보며 한 번에 답을 내렸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으니까."

"......실례했습니다."

이승형은 자신이 추파를 끈 것 같은 상황에 사과를.

"......절대로, 절대로 나쁜 생각을 해서는 안 돼. 알겠어?"

유영호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피닉스가 가진 리스크에 대한 오해를.

"......."

"......."

두 간부는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 헛소리하면 괴인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창염의 피닉스.

남들 앞에서는 성군인 척 하는 존재이지만, 중국집 회식을 할 때마다 의견을 묻지도 않고 탕수육 소스를 부어버리는 희대의 폭군이다.

* * *

신서울.

집정관 유영호와 S급 히어로 화권 이승형이 서울까지 마중을 나가 청화를 데리고 왔다.

원탁의 중재하에, 중국 정부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중국의 괴수들을 제거해줄 것을 부탁했고, 총리 백세준은 반으로 갈려버린 정계에 이리저리 치이며 골머리를 썩혔다.

- 석하랑 믿고 중국 무시하자. 우리도 이제 원탁 보유국 아니냐.

- 그러다가 또 압록강 도하하려면 어쩌려고 그러냐. 진짜 전쟁날 수 있다.

'괴수를 억제할 수 있는 이능력자를 중국으로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두고 밤낮으로 싸웠다. 가운데 끼인 백세준은 이도저도 못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선의철은 적당히 권력욕이 있는 자를 총리의 자리에 세웠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선의철이 다 때려치는 바람에 백세준은 한 나라를 운영하는 자리에 오르고 말았다.

"총리님! 무언가 말 좀 해보십시오!"

"이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시는 분 아닙니까?!"

정계의 요인들이 닥달하기 시작한다. 의견 조율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총리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음."

총리는 손을 깍지 끼며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리 그가 당황하고 있더라도, 전 6선 국회의원이라는 이름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집정관은 어떻게 됐나?"

총리의 물음에 회의장 말석에 자리잡은 소녀 한 명이 고개를 숙였다. 검은 단발을 한 소녀는 나이 지긋한 이들의 앞에 나서기에는 다소 어려보였으나, 그는 유영호를 대신해 협회를 대표로 하는 히어로 중 한 명이었다.

"비스트 테이머는 흔쾌히 조건에 응했습니다. 협회 등록, 국내 괴수 제거, 그리고 중국행까지."

회의장에 소란이 일었다. 문제의 여인이 협회와 정부의 구걸같은 부탁에 흔쾌히 응함으로써,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논쟁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왜 말 안하고 있었나?"

"그야."

소녀는 뭘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듯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제 마이크 꺼져있으니까요."

소녀는 고장난 마이크를 툭툭 건드렸다. 그는 현재 자신의 육성에 '마력'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총리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물었다.

"왜 말 안하고 있었나?"

"그야."

소녀는 바로 옆 자리에 앉은 험상궂은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한테 부탁드렸는데, 깍두기는 조용히 닥치고 있으라고 하셔서."

"......."

총리는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흔들며 남자에게 지시했다.

"중국 측에 연락 하시게."

"......예."

* * *

잠시 뒤. 히어로 협회 신서울 지부.

리무진이 협회의 정문에 멈춰섰다.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시민들이 히어로들이 만든 인간벽에 가로막힌 채, 서울에서 온 이들을 반기고 있었다.

"난리네요. 정말."

피닉스는 떨떠름한 얼굴로 신서울의 이들을 맞이했다. 그들 중 절반은 피닉스를 환대하고 있었으나, 절반 가량은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왜 저럴까?"

"다른 거 뭐 있어요? 신서울 집값 떨어져서 그렇지."

피닉스는 신랄한 어조로 그들을 비웃은 뒤, 리무진에서 내려 협회 건물의 입구로 성큼성큼 걸었다.

"어, 어어?!"

이승형과 유영호는 먼저 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가는 피닉스의 뒤를 급히 따라갔다. 피닉스는 마치 협회 건물의 구조를 잘 알고 있다는 것 마냥, 그 누구의 안내도 없이 정문으로 들어갔다.

"하늘성. 협회 방문이 이번 처음이지?"

"그렇다네."

"그럼 저렇게 들어가는 건 익숙한 사람 아니면 불가능 한 거 아닌가?"

"......아키택트. 그 말에는 어폐가 있어."

류천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협회 건물이 익숙한 자라 함은, 최소한 이 땅의 히어로였다는 얘기 아닌가. 자네는 단장이 히어로였다고 생각하는 겐가?"

"그치?"

둘은 고민에 빠진 채, 인파를 가르며 협회로 들어가야했다.

"자, 잠시만요! 인터뷰를!"

"......."

피닉스는 협회 입구에 마련된 포토라인조차 무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파천황같은 그의 행보에, 유영호는 사람들에게 급히 소리치며 피닉스를 변명했다.

"처, 청화 양은 낯가림이 많은 소녀입니다! 여러분께서 보이는 관심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조, 조금 진정해주세요!"

이승형은 졸지에 피닉스를 '대인기피증이 있는 부끄럼 많은 소녀'로 만들어버렸다.

"그런...가?"

"하긴, 서울 촌년인데 그럴 수 있지."

사람들은 금방 수긍해버렸다. 포토라인의 표시조차 모를 정도로 피닉스는 긴장한 얼굴로 협회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면 인터뷰는...."

"아앗! 저기 서울의 6만 시민들을 구한 영웅들이?!"

사람들의 시선이 청화단의 두 간부를 향했다. 괴수 조종자에 대한 호오와는 달리, 대외적으로는 '서울을 구한 영웅'인 둘에 대한 이미지는 나쁘지 않았다.

"시장님! 직접 서울에서 내려올 정도로 괴수 조종자가 중요한 인물입니까?!"

"그.... 이름이.... 에이, 이능력자 <아키택트>님! 정말로 홀로 지하에 토굴을 만들어 6만의 주거공간을 만든 게 사실입니까?!"

인파가 두 간부들에게 몰려들었다. 하늘성과 아키택트는 유리문 너머로 사라진 피닉스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튀었구나.

귀찮아서 도망갔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서울 지하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 지옥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겁니까?!"

히어로들이 세운 인간벽도 서서히 좁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성은 하는 수 없이, 포토라인의 앞에 서서 마이크를 들어야 했다.

"저희는...."

간부들은 단장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 * *

"이런 일 하라고 그 자리 앉혀놓은 거죠."

"응? 방금 뭐라 말했나?"

"아뇨, 아녜요. ......."

피닉스는 주변을 훑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히어로 협회 건물은 피닉스 적으로 상당히 애증어린 건물이었던 만큼, 모처럼 추억을 되살리며 느긋히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구경거리가 된 건 피닉스였고.'

기웃기웃.

복도 끝. 창문. 벽 틈. 테라스 위. 협회의 모든 장소에서 피닉스라는 손님을 구경하고 있다. D급 히어로부터 시작해 베테랑 A급 히어로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피닉스에게 지긋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 쟤가 서울수복작전 막아낸 장본인이지?

- 혼자서 나라 전력의 1/4를 후드려 팼지. 괴수를 조종해서.

- 아이 아니야? 너무 조그맣지 않아?

"......."

피닉스는 울컥한 마음을 참아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뒤따라오는 유영호와 이승형은 그의 행보에 이상을 느꼈고, 그 이상은 '피닉스가 협회 건물의 구조를 알고있다'는 확신으로 변했다.

"언제 한 번 와본 적 있어?"

"네. 예전에."

세계 최강의 지휘관이자 미연시 주인공으로 심심하면 들렸던 게 히어로 협회 본부다. 피닉스는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걷다가, 잠시 어느 방문 앞에서 멈춰섰다.

"......."

"아, 거긴 아니야. 빈 휴게실이거든."

"그래요? ......."

피닉스의 시선이 한참 휴게실에 닿아있었다.

"그렇군요."

피닉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유영호는 주변을 구경하며 걷는 피닉스의 움직임에 당황했으나, 그가 향하는 방향 끝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검사장?"

마력 패턴 검사장.

인간이 마력을 각성했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초대형 검사기가 있는 거대 홀이며, 동시에 각성한 이능력자의 마력 패턴을 협회에 등록하는 창구.

피닉스는 그 검사장을 그 누구의 안내도 없이, 스스로 찾아 검사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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