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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71화 (171/1,497)

〈 171화 〉1부 9장 5

싱크로.

정령이 신화의 경지에 오르려면 사랑이 필요하고, 그 대상은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 그게 괴인이어도 가능한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환룡은 환속성 최고봉인 천가을과 관계가 나쁘지 않고, 샤오린은 아예 부하로 만들었다. 언젠가 괴인을 인간으로 돌리는 방법을 찾게 된다면 모를까, 사실상 환룡에게는 두 명의 히로인이 신화 각성의 후보로 대기중이다.

세계를 구해야하는 나로서는 베스트. 가을이 이승형과 썸을 타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삽질을 하며 얻은 교훈같은 거지만, 최대한 히로인들이 누구와 사랑을 나누더라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신경쓰지 않기로 했는데.

“......지금 나를 놀리나?”

조금, 심사가 뒤틀린다. 가을과 환룡은 베스트 콤비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가을에게서 애써 무시하고 있던 것을 지적받으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놀릴만 하지. 자기는 사랑하는 사람 따로 있으면서, 자기 사랑해주는 사람들 다 어장관리하고 있는데.”

“.......”

가을의 뼈있는 말에 심장이 쿡쿡 쑤셨다. 가을은 내 사랑이 다른 존재를 향해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그 존재와 만날 때 까지 나를 사랑해주겠다고 했다.

“거기에 하나 둘 늘려나가고 있잖아. 솔직히 얘기해 봐. 샤오린. 그리고 환룡. 둘 다 맞지?”

“......그래.”

거짓말은 소용없었다. 이미 가을 또한 S급에 오르면서 마력을 통한 감정의 흐름 정도는 쉽게 읽어낼테니, 어줍잖게 거짓말을 하는 순간 가을을 실망시키게 될 것이다.

“무슨 얘기야?”

“얘가 지금 미래에 네 남편이었다는 얘기? 아,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야. 우리도 아직 진실은-”

“이런 미친 씨발?”

환룡은 쌍욕을 내뱉으며 질겁했다. 역시 인간 히로인과 정령 히로인은 반응부터 달랐다. 내가 원작 인간 주인공이었다면 모를까, 지금 나는 엄연히 같은 정령인 창염의 피닉스 안에 깃들어있는 존재일 뿐이다.

“저 미친 년이랑 내가? 결호오온?!”

“......엄밀히 따지면 결혼은 아니다.”

나는 더이상 욕을 듣지 않기 위해 환룡의 오해를 정정해야 했다.

“결혼은 안 했고, 네가 좋다고 달려들었다. 키스도 네가 먼저 했지.”

“ “

환룡이 서서히 투명해졌다. 너무나도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마력이 흩어지며 영체로 변해버렸다.

“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가을은 나를 향해 비웃었다. 흩어지려던 환룡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가을의 위에 다시 실체를 드러냈다.

“소중한 사람 하나 더 있었네. 환룡아, 우리 피닉스 어장안에 있는 물고기들끼리 즐겁게 지낼까? 관리인 그냥 무시하고, 우리끼리….”

“어, 어어…. 자, 잠깐만.”

환룡은 두뇌 회로가 과부하된 것 마냥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건 또 신선했다.

“그…. 내가 아내였다는 건…. 그것도 했다는 말이야….?”

“섹스?”

“꺄아아악?!”

환룡이 비명을 지르며 내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환자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하는가 싶기도 했지만, 나는 순순히 환룡의 폭력에 거스르지 않았다.

“너, 너너너!! 내 영체를 상대로 무슨 짓을…!”

“무얼. 그저 서로 재미있게 즐겼을 뿐이다.”

나는 환룡의 턱을 붙잡았다. 서로 콧김이 입술에 닿는 위치에 이르자, 환룡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굳이 원한다면 알려줄 생각도 있지만….”

“거기까지. 순진한 애 상대로 어디까지 하려는 거야?”

가을이 환룡을 빼앗아갔다. 나는 멋쩍어져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보시다시피 상당히 쓰레기긴 한데, 그래도 어쩌겠어. 반한 쪽이 지는 건데.”

“그건 공감하는 바이다.”

“진짜 쓰레기같은 사람이야. 한 마디를 안 져. 어휴.”

가을이 한숨을 내쉬며 환룡의 머리를 쓸었다.

"그래도 이 쓰레기가 내 주인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혹시 모르잖아? 언젠가 내가 얘 마음 꺾어서 내 치맛자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고."

"......."

"아, 이건 어때? 환룡이 나를 사랑해주고, 거기에 내가 너희 둘을 똑같이 사랑해주면? 이참에 나 정령으로 하렘 차려봐도 될까?"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괜찮다. 다만."

나는 가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단 외형상 여자끼리인데 괜찮겠나?"

"......풉."

가을이 입꼬리를 비틀며 웃음을 참으려했다. 내게 일격을 얻어맞았던 환룡도 정신을 차리고 코웃음을 치며 나를 비웃었다. 둘의 시선이 잠시 맞닿은 순간, 둘은 배를 잡으며 깔깔 웃어댔다.

"아하하하하하!!"

"흐흐흐, 얘, 얘 완전 바보네, 하하."

"...이것들이."

내가 인상을 쓰며 노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환룡은 내게서 떨어져 가을에게 엉겨붙었고, 가을도 내게서 몸을 살짝 떨어뜨렸다.

"가을아, 그거 해봐."

"잠시만."

가을이 마력을 일으켰다. 머리에 걸어둔 가면이 빛을 내기 시작했고, 가을의 몸은 회색 마력에 휩싸였다.

"아니 ㅆ…."

나는 가을이 변한 모습을 보자마자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나름 S급이라고 자기가 봤던 S급은 다 변신해본건지, 가을은 이승형으로 변신했다.

"어때?"

목소리, 어조, 심지어 말투까지 이승형을 빼다 박았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가을의 것이었고, 나는 절로 오한이 들었다.

"보기 흉하다. 바꿔."

"왜? 이 얼굴이 대한민국 최고 미남인데."

"그 몸으로 나나 환룡에게 박겠다는 거냐, 지금?"

"그런 플레이를 원한다면? 흐흐. 그리고 나 뿐만이 아니야."

가을은 이승형의 모습으로 환룡을 가리켰다. 환룡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히히. 귀찮더라도 이런 재미있는 일에 빠질 수 없지. 야. 아무나 취향인 남자 골라봐. 내가 바로 빙의해서 너 꼬셔줄게. 히히히!"

"이게."

나는 환룡의 목덜미를 낚아채 집어던졌다. 환룡은 그 사이에 영체로 바꾸어 공중에서 멈춰 나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

"부끄러워하긴. 아, 저런 얼굴이 취향이야? 한국에 있는 거지? 다녀올까? 흐히히, 아니면 피닉스는 아저씨 취향인가? 그도 아니면 여자끼리…? 아, 그렇구나! 내가 남편이고 네가 아내였어! 으히히! 아무나 말해봐! 빙의해서 다 빼앗아올게! 그리고 너를 내 아래에 깔고 앙앙거리게 만들어 줄-"

"그렇게 남의 몸 빼앗고 싶으면 모택평 몸이나 빼앗아라!!"

나는 화딱지가 나서 빽 소리 질렀다. 자꾸만 피닉스의 몸을 건드리겠다는 두 환속성의 콤비 플레이에 절로 짜증이….

"이야, 역시 쓰레기나 할 법한 생각이야. 그 아저씨 몸에는 들어가고 싶은 생각 따위 없지만…."

환룡은 입술을 혀로 훔치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너같은 쓰레기한테 안 박히려면 남자 몸이 낫겠지…?”

의도치 않게 환룡이 성별을 결정한 순간이었다. 나는 둘의 시선을 피했다.

하여튼 이놈의 입방정. 그리고 이 입방정은 누구 때문에 내 속내가 필터링 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푸흐흐.

내 속에서 진심으로 내 자멸을 바라는 내 사랑 때문에.

* * *

결국 나와 가을, 그리고 환룡은 사온 맥주를 마실 생각도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환룡이 어디까지 빙의할 수 있나 테스트를 해야만 했다.

"너스콜 하셔서 왔-빙의 성공! ...네.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이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에는 무난히 성공. 일반인은 환룡의 빙의를 눈치채지 못했다.

"히어로를 찾으셔서 왔-빙의 성공! …어라? 나 지금 무슨…?"

이능력자에도 무난히 성공. 하지만 이능력자는 자신의 기억이 잠시 붕 뜬 것에 기시감을 느꼈다.

"이능력자 경지가 높을 수록 잘 안 통하는 느낌인데?"

"원래 환속성들이 다 그래요. 양학머신이죠."

네임드 고렙들에게는 성공 확률이 낮지만 잡병들에게는 성공 확률이 높은게 환속성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대충 이해했습니다. 과연, 주군의 빙의 능력에 탄복했으며, 감히 모택평에게 빙의한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야시장에서 주전부리를 사온 봉효는 맥주 안주로 탕후루를 건넸다. 가을은 적당히 포도를, 환룡은 종류별로 하나씩, 그리고 나는 딸기였다.

"빙의하면 모택평은 눈치챌까요?"

"아마도 못할 겁니다. 주군께서 겉으로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

"그럼 간단하네요. 모택평 위치만 알면 되겠네요."

"예. ...어디서 뭘 하는지야 황제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아마 계속 하고 있겠죠."

절로 짜증이 일었지만, 그래도 화를 삭히며 환룡에게 물었다.

"부작용같은 건 없나? 가령 빙의한 몸의 주인이 반발을 한다거나."

"아니. 전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간 따위가 정령인 내 빙의를 이길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또 걱정하네. 너무 걱정마. 어차피 오랫동안 빙의할 것도 아닌데."

환룡은 모처럼 의욕을 내며 눈을 빛냈다. 술이 잠깐 들어가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환룡은 모택평에 빙의하는 것에 제법 상당한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흐흐. 나라의 2인자 아냐. 그럼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면 된다고. 흐아아, 인간의 몸으로 자보는 것도 오랜만인데. 히히."

"어, 그."

가을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내가 재빨리 가을의 손을 잡아당겼다. 가을은 금방 입을 닫았고, 환룡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노려봤다.

"뭐야, 쓰레기 주제에 어디서 우리 가을이를 넘보려고 해? 확 모택평 아래에 깔려서 박히고 싶어?"

"......아니. 천가을이 너 따라가려 하길래."

나는 가을에게 눈짓을 했고, 가을은 표정을 바꾸며 손을 슬며시 놓았다.

"...알았어. 안 그럴게. 환룡. 조심해야 한다?"

"응! 가을이도 원하면 언제든지 말해! 나 남자든 여자든 둘 다 빙의 가능하니까!"

환룡은 떠나기 직전까지도 가을에게 어필했다. 가을은 손을 흔들며 환룡을 배웅했고, 나와 봉효는 슬며시 서로를 바라보며 눈신호를 주고 받았다.

"그럼 가자! 빨리 인간 몸에서 자고 싶단 말이야."

환룡은 봉효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둘은 영체가 되어 병실을 떠났고, 가을이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며 앉았다.

"왜 말 막았어?"

"쟤는 일 좀 해야돼."

주군인 환룡이 부지런한 이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수하, 그리고 환룡이 태업을 부리는 게 아니꼬왔던 나.

나와 봉효는 눈짓만으로도 환룡을 노동의 현장에 어떻게하면 투입할 수 있을지 의견을 교환했고, 마침 내가 나도 모르게 던진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럴싸한 작전을 마련했다.

통칭, 환룡 갱생 프로젝트.

"모택평은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고, 환룡은 놀고 먹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 환룡을 위시한 환룡단이 중국 전역을 먹는 거지. 1석 3조다."

환룡이 진실을 눈치채기 전에 일사천리로 진행해야 했다. 환룡은 모택평에게 깃들어 마음껏 놀고 먹겠다며 선언했지만, 절대로 두 다리 뻗고 편하게 바닥에 누워 쉴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 모택평 본인이 되든, 아니면 모택평의 몸으로 범죄를 저질러 실각하든 그건 이제 봉효에게 달렸다. 우리는 이제 우리 할 일만 하면 돼."

나는 스크린을 띄워 지도를 펼쳤다. 피닉스로서의 활동은 이제 끝났으니, 철저히 청화로서 활약할 때였다.

"사람들에게 괴수 조종하려면 코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은 뒤에, 흑염룡도 부활시키고 중국에 있는 S급 괴수들 모두 우리가 서리-"

"야."

가을이 내 말을 잘랐다.

"너 내가 환룡이랑 놀겠다고 해서 삐졌지?"

"......안 삐졌다. 그리고 그 얘기는 그만. 내일부터 있을 계획을-"

"야."

가을이 다시 말을 끊었다. 나는 자꾸만 어깃장을 놓는 가을의 행동에 살짝 짜증이 일었다. 아무리 내가 가을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고는 해도 이건-

"......허."

"어때?"

그곳에는 나, 창염의 피닉스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푸른 여인이 앉아있었다. 비록 입고있는 옷은 다르고, 눈은 변신에 마력을 쓰고 있는 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외형만큼은 나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네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신해봤는데. 막 두근두근거려?"

가을이 나를 향해 손을 뻗어 얼굴을 쓸었다. 내 손가락과 똑같은 형태로, 내 얼굴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두근.

S급에 이르러 S급들은 모두 변신이 가능해졌을 터. 아마도 세계에 시스템이 있다면, 피닉스의 인간형은 S급이니 변신 가능 대상으로 분류된 걸지도 모른다.

두근.

분명 내 심장은 뛰고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가을에게 혹했기 때문이 아니다.

두근. 두근. 두근.

집주인이 분노하고 있다. 자기자신으로 변신한 가을에게. 심장에서 쿵쾅대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고, 나는 양쪽 다 달래야했다.

"...천가을."

나는 가을의 얼굴을 붙잡았다.

"나로 변신하지마라."

"왜?"

"난 가슴 큰 천가을이 좋다."

"......변태."

천가을은 바로 자기자신으로 변신했다. 나를 변태라고 매도하기는 했으나, 가슴을 따로 숨기지는 않았다.

"잠시."

나는 손을 뻗어 가을의 웃옷 아랫자락을 잡았다. 내 심장의 혈기는 가라앉았지만, 이제는 가을의 코어가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락.

나는 가을의 웃옷을 전부 들어올렸다. 가을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내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엄지를 집어넣어 밀어올린 셔츠가 탄력있는 밑가슴에 걸렸고, 가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흐음."

가을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가을의 피부를 쓸었다.

"이제 흉터도 없군."

가을이 유이신이 쏜 화살에 바람구멍이 났던 상처가 전부 아물었다. 흉한 자국은 S급으로 오르며 전부 사라진 모양이었다.

"...뭐야. 안 해?"

"뭘 해주길 바라나."

"그야…. 그걸 내 입으로 말하라는 거야?!"

가을이 빽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제법 사람다워진 피부 덕분에 시체같은 모습은 사라졌다. 덕분에 귀까지 잔뜩 달아오른 가을은 진짜 사람같아 보였다.

"......잠깐만."

나는 가을을 붙잡고 잠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단순 터치는 오케이라고 했었지.'

쿵쿵쿵쿵!

심장이 들썩거린다. 제법 아팠지만, 나는 애써 고통을 감내하며 가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말로 하지 않으면 몰라. 그래. ...뭘 해줬으면 하나?"

"......지, 진짜 해줄거야?"

"환룡을 각성시켜준 포상이다. 그래. 네가 바라기만 한다면-"

"야! 야참 사왔다!"

덕배가 창문으로 들어와 야시장에서 파는 음식들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가을은 셔츠를 황급히 내렸다.

"오우, 역시 연예인. 몸매 하나는 진짜 S급 맞네. 근데 너희 암만 그래도 남의 나라 병실에서 그짓은-"

"나가 죽어 이 개새끼야아아아!!!"

촉수가 덕배를 찔렀다. 하지만 덕배는 야참을 집어 던지는 것으로 촉수를 막고, 가을을 향해 중지를 날리며 유리창으로 달렸다.

"지금 죽나 나중에 죽나 똑같지! 꼬우면 잡아보던가!"

가을이 나로 변신할만큼 성장한 것 처럼, 덕배도 가을의 촉수에 반응할 정도로 성장했다. 덕배는 창문을 활짝 열고 몸을 던졌고, 가을은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

"......갔다와서 계속 해!!"

가을이 내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른 뒤, 창문으로 점프해서 사라졌다.

"......휴우."

나는 숨을 크게 고른 뒤 방 안에 어질러진 음식들을 불로 태웠다.

'넘어갈 뻔 했군.'

"내 몸으로 스킨십 금지라고 했을텐데요…?"

어.

이거 내가 한 말 아닌데.

나는 내 입술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남자라면 누구나 다 그런 큰 가슴은 만지고 싶어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적어도 그 정도 아량은 베풀어주셔야-'

"그럼 내 거 만지면 되잖아요?"

척.

몸주인이 손을 움직여 내 가슴에 손을 올렸다. 가을보다는 작지만 제법 큰, 피닉스의 탐스러운 가슴이 내 손바닥 아래에 놓였다.

"......어때요?"

조물조물.

"햐응…."

나는 내 스스로의 몸을 만지며, 잠깐 솟아났던 음심을 간신히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환룡을 각성시키며 풀렸던 긴장이 다시금 팽팽해졌다.

'무서운 여자야, 천가을.'

"하아, 하아…."

공략당할 뻔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열기를 가라앉혔다.

"야! 조덕배 죽이고 왔…."

"절호의 기회를 놓쳤군, 천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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