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79화 (179/1,497)

〈 179화 〉1부 9장 13

나는 샤오린을 달고 다니면서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샤오린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보다는 느릴테니, 내가 안고 날아가는 대신 정보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중국 중앙당과 협회에서 지파룡의 시체에 대한 회수를 선언했습니다. 일단 먼저 건져올린 다음 지분에 대해 논의할 것 같습니다."

[인양비용인가. 무의미한 짓을.]

지파룡의 사체는 환염령들이 열심히 옮기고 있을 것이다. 넓디 넓은 호수 바닥을 찾고 있는 동안, 지파룡은 땅속을 파고들어 몰래 숨어있을 것이다. 그들이 찾게 될 것은 지파룡에게서 떨어져 나간 비늘 조각 뿐이다.

[다음.]

"물지기는 현재 흑염룡과 대치 중. 다행히 인근에 민가가 없어서 인명 피해는 없습니다. 현재 협회에서 격전지를 중심으로 통제 중입니다."

[괴수들끼리 대결하는게 장관이기는 하지.]

원숭이같은 물지기와 드래곤같은 흑염룡이 붙는 장관은 개인적으로 나도 구경하고 싶다. 물지기에는 큐브가 없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으니, 괜히 코어를 뜯어내려고 드잡이질을 해서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흑사갈 밑에 딸린 흑전갈들 잡는게 더 낫지.]

"그러고보니 오라버니는 무슨 계획일까요. 그 전력으로는 공략이 불가능할텐데."

[숨겨둔 수가 있을 거다. 동창의 제독이었던 자가 그것도 판단하지 못할 리가 없지.]

"...흑사갈에 대한 반응은 아직 없습니다. 다들 흑염룡 쪽에 시선이 끌려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흑사갈이 튀어나오면 그 모습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나는 기억 속 흑사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샤오린.]

"네."

[흑사갈의 전갈 몸통 위에 뱀 머리를 한 인간 여인의 몸통이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나신이지.]

"......대단하군요."

샤오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샤오린은 아주 은밀하게 중요 부위는 가렸을 지언정, 대놓고 모든 옷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SR-6974가 아니라, 샤오린 루트에서만 보게되는 어떤 특정 사진들이 있다. 정체를 숨긴 채 세미 누드 셀카를 보내오는 여인의 사진이.

[샤오린.]

"예."

[너는 SS급에 올라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될 거다. 그러니 앞으로 캠방같은 건 하지 마라.]

"......제 나신이 드러나는 게 싫으십니까?"

[아니. 앞으로 전세계가 너를 찍게 될텐데, 괜히 무리한 짓은 하지 말라는 거다.]

"그러면 한 가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샤오린은 자신의 아래를 눈으로 가리켰다.

"앞으로 제가 입을 옷들…. 전부 당신께서 마력으로 짜주시겠습니까?"

[내가 마력으로 해제하면 너는 바로 알몸이 된다. 그 정도는 알고 있을텐데.]

"알다마다요."

샤오린은 얼굴을 붉히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래서 더 끝내주게 흥분되는 걸요. 언제 어디서든 당신이 바라기만 하시면, 저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게…!"

[흠. 그렇군.]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샤오린의 몸을 잡아당겨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디 평생 얼굴 못 들고 다니게 해줄까?]

"......후훗."

[...아니, 농담이다. 몸 붙이지 마라. 가슴 닿는다.]

"후후후."

[......좋을대로 해라.]

나는 샤오린을 자유롭게 내버려뒀다. 큐브를 가을에게 맡겨둬서 그런지 창염이 튀어나와 내 속을 뒤집어놓는 일은 없었다. 그도 아니면 그의 말마따나 괴인형의 육체이기에 그닥 관계 없는 상황이라거나.

…...그러고보니 하고 싶으면 괴인형으로는 해도 좋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걸 한 번 물어볼까.

[흑사갈을 잡을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아…. 직접 잡으실 겁니까?"

[왜? 잡고 싶나?]

"예. 지파룡도 물지기고 빼앗겼으니 흑사갈이라도 잡아야 성이 찰 것 같습니다."

샤오린은 자신이 활약하지 못하는 것에 상당히 아쉬워했다. 모처럼 샤오린이 나서서 위풍당당하게 세 S급 괴수들의 목을 날리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지만, 봉효가 저지른 뒷통수 때문에 샤오린이 나설 기회가 엄청나게 줄어버렸다.

[걱정마라. 제일 맛있는 건 너를 위해 남겨뒀으니.]

"...?"

[캘리펠라. 영체인 네게는 그야말로 딱인 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대가 되는군요. 그래도 흑사갈을 잡고 싶기는 합니다만…."

[그렇다면 둘 다-]

나는 바람을 타고 전해진 날카로운 감각에 오한이 들었다. 환염령들이나 그들의 원형인 밴시보다도 더 깊은 원한을 가진 귀기에 절로 마력이 흔들렸다.

"......이 기운은."

[아래다.]

나와 샤오린이 동시에 아래를 살폈다.

"......훗."

미사일이 터진 크레이터 한 가운데, 새벽이슬을 맞으며 발도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한 여인이 있었다. 아, 여인은 아니다. 이슬이 맺힌 흑단같은 머리칼에 그가 아니라 진짜 그녀인 줄 알았다. 그 미모는 샤오린을 훌쩍 넘어 감히 정령을 넘볼 정도.

"저 사람은 계속 저러고 있던 걸까요. 당신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올 때 까지 기다릴 것 처럼 하더니."

[...대충 계산만 해도 지금 18시간은 훌쩍 넘겼을텐데.]

집념도 참 대단하다. 설마 내가 태양권을 사용하고 기습을 할 거라고 생각한건가. 그렇다면 역시 그녀...그는 원작대로 전투에 있어서는 광기어린 집착을 보이는 전투광이며 살인귀인게 분명했다.

[샤오린. 하나 부탁하지.]

"저 옷 만들어주시면요."

샤오린이 선수를 쳤다. 나는 샤오린의 등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방사해 그의 옷을 재구성했다.

[그러면 잘부탁한다.]

"예. 금방 쓰러뜨리고 가겠습니다."

나는 샤오린을 떨어뜨렸다. 샤오린은 웃으며 내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지상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야아아아! 어디가는 거야아아아!"

지상에서 질풍객, 히메지 하야테의 비명이 울려퍼진다. 나는 그걸 무시한 채 목적지를 향해 계속 날았다. 질풍객이 나를 쫓으려는 듯 마력을 일으키는게 느껴졌지만, 질풍객은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원탁 외모 최강자전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아.

석하랑이 들어갔으니 그건 아닌가?

* * *

"원탁끼리 싸우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질풍객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자신을 습격한 괴인의 정체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전신을 가리는 청색의 바디슈트는 마치 라텍스와 같은 재질로 괴인의 몸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 착 달라붙는 재질의 특성상, 괴인의 몸은 유감없이 드러나게 되었다. 잘록한 허리선, 살짝 도드라진 복근, 거기에 크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감이 드러난 가슴까지.

"거 어제도 그렇고 복장이 너무 대담한 거 아니냐. 평소에 운장 카리스마는 어디로 갔어?"

"......당신은 아직까지도 모르겠습니까?"

괴인 샤오린은 팔을 들어올렸다. 봉을 쥐는 듯한 자세를 갖추자, 질풍객은 상당히 당황한 얼굴로 자세가 흐트러졌다.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그럴 리 없어. 그래. 전투 방식을 바꾼 거지? 그런 거야."

"이미 서울에서 만났을 때부터 직감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현실부정? 그게 그렇게 인정하기 싫으십니까?"

괴인 샤오린은 질풍객을 도발했다.

"제가 먼저 SS에 도달했다는 것을."

"하. 누가 그런 개소리를."

질풍객은 예쁜 얼굴로 상스러운 소리를 내며 샤오린에게 빈정거렸다.

"내가 너를 질투한다고? 먼저 SS에 올라서? 하,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 내가 너를 질투해서 어디에다 써먹게? 잔말말고 비켜. 나는 당장 저 불사조를 잡으러 가야한다고."

"붙어볼까요?"

"......킥."

질풍객은 칼을 빼들었다.

"좋아, 좋아. 그렇게 죽기를 바란다면 얼마든지 죽여주지. 나중에 원망하지마라!"

"원망하지 않습니다. 강자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건 치욕스러운 일이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까?"

샤오린은 손으로 턱을 받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무예라면 제가 이기지만, 아무리 저라도 미모는 당신에게 이길 수 없죠. 그러니 당신은 강-"

카앙!

질풍객은 일언반구도 없이 칼을 휘둘렀다.

"난 남자다!"

"여자보다 예쁜 남자죠!"

"죽여버리겠어!"

"죽일 수 있으면!"

유치한 말싸움과 달리, 두 원탁이 겨루는 합은 매섭기 그지 없었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시안 성 인근의 크레이터.

두 무인의 창칼이 부딪혔다.

* * *

[샤오린이 무난하게 이기겠군.]

나는 두 무인의 전투에서 샤오린의 승리를 점쳤다. 질풍객도 분명 상당한 강자이지만, SS급과 S급의 한계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은유하도 도착했을테고.]

본인은 아닐 것이다. 한 나라의 통수권자와 실질적 1인자를 두고 벌이는 협상에 본인이 오지는 않았을 터. 아마도 은가의 남자 중 하나를 보냈을 것이다.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유성의 것을 팔아먹는 유성맨을 보냈다거나.

[그래서 일단 도착은 했는데.]

나는 초원과 산을 벗어나 사막의 초입에 이르렀다. 괴인들이 이동한 마력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었고, 나는 그 흔적을 쫓아 그들의 이동 방향을 추적했다.

[역시 흑사갈이 목표인가.]

환룡단은 흑사갈에게 직행하고 있었다. 나는 덕배를 빙빙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역시 알이 한 번씩 더 터져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군.]

원작 게임 커뮤니티에 누가 그런 말을 했다. 괴인은 동료로 들일 수 없냐고. 그래서 내가 손수 댓글을 달아줬다.

[착한 괴인은 코어가 된 괴인 뿐이지. 어떻게 생각하나?]

"그 말인 즉슨 피닉스 님께서는 착하지 않다고 자백하시는 꼴입니다만."

봉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홀로 사막의 입구에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원활한 대화를 위해 날개를 접어, 인간의 몸으로 덕배를 겨눴다.

"선택해요. 왼쪽부터 터질래요, 오른쪽부터 터질래요?"

"어느쪽도 터질 생각 없습니다. 그도 그럴게."

착. 봉효가 양 팔을 좌우로 뻗으며 소리질렀다.

"이 모든 일은 결국 환룡단의 이익을 넘어, 청화단의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아요. 어디 한 번 궤변을 늘어놔봐요. 어차피 환룡단 남은 전력으로 흑사갈 피부는 꿰뚫지도 못할테니."

"궤변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일단 한 번 들어보시고 판단하시죠."

나는 덕배를 내 어깨에 올렸다. 언제든지 허튼 소리를 하면 아래에서 수직으로 쳐올려 양 쪽 알을 으깨버릴 각오를 했고, 봉효는 우선으로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쳤다.

"우선 코어에 대한 문제가 있겠군요. 지파룡은 순수하게 저희 환룡단의 힘으로 쓰러뜨렸습니다."

"딜 지분 따져볼까요? 황제가 지파룡 죽이는 데 얼마나 공헌했는지?"

"원 소속은 청화단일지 모르나 지금은 저희 환룡단에 적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환룡단의 것이 곧 청화단, 나아가 제 것임을 모르는 건가요? 환룡은 제게 굴복했어요. 환룡이 얻는 것은 곧 제 것이라는 말입니다."

"피닉스 님께서는 부하의 공적을 가로채는 악덕 상사셨습니까?"

"누가 공적을 가로챈대요? 정당한 지분을 요구하는 것 뿐이지."

"그럼 저희의 노력에 대한 대가는 무엇입니까?"

"음, 당신에 대한 제 인정? 노동의 참된 기쁨? 푸흐흐."

나는 봉효를 약올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평정을 잃게 하여 틈을 찾아야했다. 내 꼰대 발언에 봉효는 인상을 미미하게 구겼다.

"...피닉스 님의 인정은 기쁘지만, 역시 노동에 대한 기쁨 정도로 만족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드려요? 환염령 500 명도 같이 대여해드렸는데. 도대체 뭘 요구하기에 이런 쓸데 없는 짓을 저지른 거죠?"

"환룡단의 자치권을 요구합니다."

자치권이라. 나는 봉효가 하는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한 계획의 전모를 일거에 파악했다.

"즉 환룡단이 청화단의 아래에 복속되어 있는 단체가 아니라, 청화단과 대등한 수평적 관계를 구축하자?"

"예."

"제가 왜 그래야하죠?"

"환룡 님의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예."

이건 또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그의 궤변을 더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어깨에 올려두고 있던 덕배를 들어올렸다.

"그게 지파룡의 코어를 훔쳐가고, 물지기를 날름 훔쳐먹으려다 나한테 걸리고, 흑사갈을 잡으러 가는 길을 가로막으면서까지 내게 요구하는 것의 목적이라고요? 환룡의 성장?"

"예. 정확히는 '모택평'의 안에 들어간 환룡 님의 성장이지요. 낡은 동창을 재편성해 환룡단으로 재구축하고, 그 전원의 안에 있는 고독을 제거하고, 환룡 님은 이 땅의 2인자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 필요한 때가 되면 환룡께서는 모택평의 육체를 버리고 진실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겠죠."

"모택평의 육체는?"

"살아는 있을 겁니다. 예, 살아는 있겠죠."

봉효는 음침하게 웃었다. 그제서야 나는 봉효의 속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당신에게 가장 최선이 되는 방향으로 하는 거군요. 환룡단도, 동창도, 샤오린도, 환룡도."

"부정은 하지 않습니다."

내가 창염의 피닉스만을 생각하며 모든 계획을 설계하여 움직였듯, 봉효 또한 자신의 것을 최대한 생각하며 움직였을 뿐이다.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역시 고깝다.

"그러면 왜 나한테 미리 얘기 안하고 이런 짓을 저지른 거죠?"

"......말씀 드렸으면 들어주실 분이 아니잖습니까?"

"들어줬을 건데요?"

내 말에 봉효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여튼 머리 좋은 놈들은 지들 멋대로 생각하고.... 아주 그냥 자기가 생각하는 게 전부 답인 줄 알아요. 이봐요. 봉효."

나는 손목을 두드렸다.

"내가 당신을 가만히 놔둔 건 환룡을 잘 보좌하라는 의도였지, 이런 식으로 내 뒷통수를 치라는 말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당신 고환 두 개랑 코어까지 같이 으깨버리도록 하죠. 그러면 이제 요절을-"

"SR-6974를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덕배를 휘두르려던 내 손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봉효는 나를 보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궁금하기는 한데, 그걸로 딜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네요. 폐기하시던가."

"......."

샤오린 루트에서 더한 것도 봐서 그닥 감흥이 없다. 이스터 에그 정도로는 내 분노를 막을 수 없다.

"그러면 한 번 더 죽어봅시다. 봉효."

나는 봉효에게 달려들어 덕배를 휘둘렀다.

"그럼 큐브는 어떻습니까?"

"어."

늦었.

퍽!

"......."

봉효가 죽었다.

나는 허리가 반으로 꺾인 봉효의 시체를 덕배로 툭툭 건드렸지만, 봉효는 경악한 얼굴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처음부터 그러면 큐브 가지고 딜을 하던가."

왜 뜸을 들여서 이 사단을 만드는가. 나는 봉효에게서 코어를 뽑아냈다. 큐브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나중에-

캬아아아아아아악!!!

"아. 타이밍 진짜."

내 머리 위로 거대한 모래 언덕이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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